How To Ruin A Love Comedy RAW - Chapter (431)
EP.431 렌카 조교일지 5 #3
매점 앞에서 팝콘과 아이스커피, 그리고 콜라를 산 나는, 때마침 렌카가 다가오자 그녀의 손에 있는 표를 턱짓했다.
“무슨 영화에요?”
“액션.”
“등급은요?”
대답 대신 벽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가리키는 그녀.
잘생기고 예쁜 남녀가 등을 맞대고 서있는 포스터 밑에는 R15+라는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다소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영화라는 뜻.
고개를 끄덕인 나는 왼쪽 손에 들고 있는 커피를 눈짓했다.
“이거 가져가요.”
“어.”
시큰둥하게 대답한 렌카가 커피를 집어 들고, 상영관 입구 앞의 직원에게 티켓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상영관으로 들어간 우리는 구석 자리에 앉았다.
렌카가 내 취향을 알고 예매한 좌석이었다.
“팝콘 이리 줘. 내가 들게.”
“아뇨. 괜찮아요.”
“그냥 줘.”
그리 말한 렌카가 내 품에서 팝콘 통을 빼앗듯 가져가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아니, 즐겁게 방치를 해야 하는데 왜 죄책감이 생기는 거지?
렌카가 내 눈치를 보는 걸 팍팍 티를 내서 그런가?
아니, 그것보단 평소의 떽떽거리던 렌카의 모습이 오늘따라 안 보여서 그런 듯하다.
방치 플레이는 내 욕심이었다.
물론 최근 떽떽거리기만 하고 애정을 많이 표현하지 않는 렌카의 교육이란 목적도 있긴 하지만, 이 또한 욕심의 범주 안에 들어간다.
그렇기에 렌카가 상처를 많이 받지 않는 선에서 끝내야하는데, 이 선이란 게 참 어렵다.
너무 싸늘하게 대해버리면 렌카가 몹시 노심초사하겠지.
겉은 강인한 척하지만 속은 여린, 그리고 자존심이 센 그녀의 성격상 아마 혼자 끙끙 앓을 거다.
그렇다고 풀어주면 앞으로도 계속 츤츤거리기만 할 테고… 고민이 깊어진다.
“야.”
팔걸이에 팔꿈치를 괸 채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렌카가 날 불렀다.
“왜요.”
“이상한 생각하지 마. 딱 영화만 봐.”
음음. 딱 동정심이 일어나려고 할 때쯤 츳코미가 훅 들어오는구나.
약해질 뻔한 나… 한심하다.
역시 렌카는 이러는 게 맞아.
마음을 다잡은 나는 렌카를 쳐다보지도 않고 실소를 터뜨렸다.
“안 합니다.”
“왜?”
“하지 말라고 하니까요?”
“너 그런 놈 아니잖아.”
“제가 무슨 놈인데요?”
“…. 됐어. 어쨌든 안 한다니까 다행이네.”
“예.”
내가 팔을 괸 팔걸이는 바깥쪽이었다.
그 때문에 자연스럽게 몸이 반대로, 렌카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마치 거리를 둔 것 같은 느낌.
이건 일부러 이런 게 아니라, 그냥 편안하게 앉으려다가 생긴 일이었다.
“유치하게…”
하지만 렌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뚱한 투로 저런 말을 중얼거렸던 것이다.
내가 이상한 짓을 하지 말라는 말에 삐쳐서 거리를 두는 거라고 느끼는 듯했다.
“뭐가요?”
“아냐. 팝콘은 안 먹어?”
“지금은 별로 먹고 싶지 않아요.”
“그럼 왜 산 건데?”
“생각나면 먹으려고요. 부장도 먹일 겸.”
“먹인다니… 무슨 아이한테 분유 주듯 말하지 말지?”
“그렇게 들렸으면 미안해요.”
이런 상황에서, 내가 보편적으로 하는 말은 피해망상이라도 있느냐다.
나는 렌카가 태클을 걸어오는 것을 지지 않고 반박하는 경향이 있었고, 그녀 또한 그 사실을 잘 안다.
그럼에도 한 발 물러나 사과를 한다?
그것만큼 수상쩍은 일은 없을 것이었다.
“…. 야, 너 미쳤냐?”
예상대로, 렌카가 나름 격하게 반응을 해왔다.
그제야 그녀를 돌아본 나는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척을 했다.
“뭐가요?”
“왜 이러는 건데? 오늘 기분 안 좋아?”
“좋기만 한데?”
“근데 왜 맥아리가 빠져있어?”
“그렇게 보여요?”
“어. 엄청.”
“아무 일은 없는데… 걱정해줘서 고맙네요.”
“이거 봐…! 평소엔 안 하는 짓을 하잖아…!”
“성격 좀 고치려고요.”
“웃기시네.”
“부장도 자꾸 문제 삼았었잖아요. 저도 이젠 얌전해져야죠.”
“뻥 치지 마.”
“사람 말 좀 믿어요.”
“믿음직스러워야 믿지.”
시종일관 내 말을 부정하는 렌카에게 가벼운 미소를 지어보인 나는, 상영관 안이 암전되자 스크린을 가리켰다.
그러자 렌카가 불만이 가득 담긴 투로 무어라고 중얼거리더니 시선을 돌렸다.
나는 세 손가락을 뺨에 붙여 머리를 지탱하고, 한쪽 다리를 꼰 자세로 영화를 관람했다.
그 자세로 스크린만을 쳐다보며 가끔씩 콜라를 마시던 중간중간에 렌카의 시선이 느껴졌는데, 그때마다 웃음을 참아내느라 힘이 들었다.
팝콘이 씹히는, 와그작거리는 소리가 들려와서 웃음기를 더해주는 건 덤이었다.
그렇게 영화가 중반부를 지났을 때쯤, 나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리고는 렌카를 돌아보며 손을 내밀어, 정중한 목소리를 내었다.
“저도 팝콘 하나만 줄래요?”
“직접 가져가서 먹어.”
“예.”
순순히 대답을 한 내가 팝콘 통으로 손을 뻗자, 렌카가 돌연 몸을 반대쪽으로 홱 돌렸다.
그러더니 직접 팝콘을 한 움큼 집어 내게 내밀었다.
생각을 고쳐먹은 듯한 그녀의 모습에 빵 터질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아낸 내가 물었다.
“뭐예요?”
“달라니까 주는 건데.”
“직접 가져가서 먹으라면서요.”
“왜.”
“왜라고요? 그건 제가 말해야하는 거 아닌가요?”
“시끄러워. 가져가서 먹어.”
표정과 더불어 몸짓, 그리고 손아귀에 가득 담겨있는 팝콘까지…
이 모든 게 조화를 이룬 렌카는 몹시도 귀여워보였다.
얼마 있지도 않은 볼살을 마구 깨물어버리고 싶어진다.
“알겠습니다.”
손을 뒤집은 나는 렌카가 그 위로 팝콘을 조심스럽게 얹어주자 포근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손 다 더러워졌겠네요.”
“그래서 먹기 싫냐?”
“누가 그렇대요? 피해망상이에요 그거.”
그 말에 렌카의 안색이 살짝… 눈치채지 못할 만큼 펴졌다.
평소처럼 말하는 내게 안심한 거다.
이런 식으로 가끔씩 당근을 주면서 교육을 해야 렌카가 날 얼마나 좋아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마음속으로 느끼지.
우리 사이의 팔걸이에 물티슈를 둔 나는, 재차 스크린으로 눈을 돌리며 천천히 팝콘을 먹어댔다.
**
영화가 끝나고 차를 탄 우린 렌카의 집으로 향했다.
아직 해가 지기 전이라 하늘이 쨍쨍한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는 밤에 활동성이 높아지는데… 돌아가서 낮잠이라도 자야겠구나 싶다.
“너도 바로 집에 가게?”
“그렇죠. 부장은 뭐해요?”
“나? 뭐… 할 거 없어.”
“그럼 편히 쉬어요.”
“그래.”
서로 짧은 대화만 나누면서 조용히 운전을 하니, 어느새 렌카의 집 앞에 차가 도착했다.
조수석 문을 열고 내린 렌카를 따라 차에서 나온 나는, 포근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앞에 섰다.
“…. 뭐하는 거야? 고맙다고 말하라고? 지금 하려고 했어.”
“그런 거 아닙니다. 우리 한 번 안아볼까요?”
“무슨…”
“자.”
어리둥절해하는 렌카에게 양팔을 벌리자, 잠깐 주뼛거린 그녀가 눈동자를 데굴 굴리더니 신발 밑창을 끌면서 내게 다가왔다.
이럴 때의 눈치는 참 빨라요.
아무런 틱틱거림 없이 내게 안기는 그녀의 등을 포근하게 감싸 안고 느릿하게 토닥인 내가 말했다.
“오늘 재미있었어요.”
“…. 난 별로.”
저건 렌카가 으레 하는, 속내를 감추려는 반어법이 아니라 진짜로 별로라 느껴서 하는 말 같다.
“별로였어요? 그럼 다음에는 더 노력해볼까요?”
“뭘 노력하겠다는 건데?”
“부장이 재미있게 느낄 수 있게끔 노력해본다는 뜻이에요.”
“아 됐어…! 뭔 어울리지도 않는 소릴 하고 앉아있는 건지…”
“앉아있지 않고 서있는데 지금?”
“…. 말장난하지 마.”
“미안해요.”
“비켜. 나 들어갈 거야.”
렌카의 뜻대로 포옹을 푸니, 집으로 들어가려다가 머뭇거린 그녀가 입을 열었다.
“태워줘서 고맙고, 조심히 들어가.”
그리고 나는 렌카의 감사에 방긋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다음에 보자는 말은 일부러 하지 않았다.
그녀가 먼저 보자는 연락을 해오길 기대하기 때문이었다.
아마 오늘이나 내일 안으로 만나자 할 것 같은데… 렌카의 성향을 보면 다른 이유를 붙일 가능성이 컸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마친 나는, 즉석 밥을 데워 미도리가 싸준 반찬과 함께 이른 저녁을 챙겨 먹었다.
이후 게임기를 들어 무료한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데, 휴대폰에서 진동이 여러 번 울렸다.
렌카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다.
이럴 거라고 예상은 하긴 했지만 최소한 밤에 연락해올 줄 알았는데…
우리 렌카가 많이 초조하긴 했나보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으니 잠깐의 텀과 함께, 렌카의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예.”
-삼촌들 기억해?
“장사하는 쌍둥이 삼촌들요? 기억하죠. 근데 그분들은 왜요?”
-내일 일 도와주러 갈 건데… 혹시 나랑 같이 갈 생각 있나 해서. 일당 많이 준대.
과연 렌카는 삼촌들을 돕는 걸 미리 계획하고 있었을까?
아니면 오늘 갑자기, 나와의 시간을 만들기 위해 즉흥적으로 떠올린 생각일까?
후자일 거라는 확신이 강하게 든다.
“돈이 궁한 건 아닌데… 생각할 시간이 좀 필요해요.”
-바로 말해줘야 돼.
“이유는요?”
-네가 안 간다고 하면 그에 맞게 동선을 짜야지. 메뉴 개수도 좀 줄여야 되고.
코딱지… 는 아니지만 자그마한 가게인데 동선은 무슨.
메뉴 또한 많지 않으면서 이상한 핑계를 대고 있다.
솔직하지 못한 학생에게는 적절한 훈육이 필요해요.
아쉬운 사람이 대답할 수 있게끔 질문을 떠넘겨야겠다.
“음… 어떡했으면 좋겠어요?”
-도와줬으면 해. 삼촌들도 네 도움이 크다고 하니까…
한 번을 튕기지도 않는구나.
다만 덧붙인 뒷말은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다.
“확실하게 말해요. 도와줘요, 말아요?”
-그건… 아 그냥 도와줘. 부장이 하는 부탁인데 들어줘야지…!
불리하니까 권위주의적으로 나가는 렌카가 참 그녀답다고 생각되어진다.
진심으로 권위를 내세울 생각이 없는 걸 알기에, 그녀가 전전긍긍하고 있는 걸 알고 있기에 그냥 웃기기만 하다.
“예, 뭐… 그렇게 할게요. 부장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죠.”
-말투 뭐야…! 불만 있어…?
“아뇨. 없습니다.”
-아이 씨… 미안해. 실언이었어. 네가 도와줬으면 해.
나는 주먹으로 입을 틀어막고 꺽꺽 웃어댔다.
제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나름 상냥하게 말하려 노력하는 렌카의 목소리를 들으면 누구라도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답 안 해?
터진 폭소를 참고 또 참아낸 나는, 작게 목을 가다듬으며 재촉을 해오는 렌카의 물음에 대답했다.
“알았다고 했잖아요. 내일 몇 시에 만나요 그럼?”
-아침에 일찍 일어날 수 있어?
“예.”
-그럼 내가 6시 30분까지 너희 집으로 갈게.
“그럴 필요 없어요. 제가 태우러 갈 테니까 그때까지 나와 계세요.”
-아냐. 도와주는 사람을 번거롭게 할 수는 없잖아.
“지금 선 긋는 거예요?”
-아 좀…! 그런 거 아니라고…!
“왜 짜증을 내요. 제가 가는 걸로 해요.”
-…. 알았어.
“내일 봐요.”
-어.
뚝.
그대로 끊긴 전화.
통화가 종료되었다는 빨간 글귀를 본 나는 만면을 활짝 펴면서 요 위에 누웠다.
렌카는 지금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감출 수 없는 미소? 아니면 짜증이 잔뜩 서린 험악한 얼굴?
어쩌면 그 중간의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을 수도 있겠다.
날 다시 만나서 좋기도 하고, 자존심이 상하기도 한… 그런 표정 말이다.
내일이 이토록 기다려졌던 적은 최근엔 없었다.
빨리 자버려서 시간을 삭제할까? 그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