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Scrapped Extra Villain RAW novel - Chapter 245
다시 해일이 일어난다. 출렁임에 놀라서 무슨 일인가 보니, 크라켄 킹이 거대한 팔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막대한 여파를 끼치며 수면 위로 솟구쳐 하늘 위로 올려진 팔이, 수직으로 낙하한다. 막대한 질량과 무게가, 바다를 내리친다.
“꺄악!”
“큭!”
“으음…!”
귀가 터질 것만 같은 굉음과 함께, 막강한 충격파가 사우스 호너를 강타한다.
“리나! 부탁해!”
“알겠습니다!”
길버트와 리나가 뱃머리로 달려 나가더니, 이내 도약한다. 배 위에서 저 바다로! 날아드는 충격파와 정면으로 맞서며 길버트와 리나의 고절한 검격이 휘둘러진다.
두 갈래 검기가 잠시간 크라켄 킹이 발생시킨 충격파와 힘겨루기를 하고서는, 서로 상쇄되었다.
“해일이다!”
“으악! 바다가 진노한다!”
곧이어 제2파가 달려든다. 충격파에 따른 해일.
“제가, 제가 막을게요!”
메리가 딛고 선 갑판과 머리 위로 마법진이 그려진다. 최상급 마나석이 터질 듯 달아오르며 마나를 뿜어낸다.
중얼중얼, 메리가 입술을 달싹거리며 주문을 왼다. 해일이 다가온다. 시시각각 닥쳐와 불안감이 들 그때.
“【씨 브레이커 컨트롤(Sea breaker control)】!”
거대한 해일이 좌우로 갈라지며 사우스 호너를 사이에 두고 지나간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광경.
“메리! 괜찮아?!”
이만한 업적은 개인이 행할 수 없다. 본디 여러 명의 마법사가 모여 행하는 대마법이었다. 길버트가 메리를 돌아보며 외쳤지만.
“네! 괜찮아요!”
메리는 당당히 선 채로 계속해서 주문을 외웠다. 해일을 물리적으로 가르는 게 아니다. 크라켄 킹의 거체에서 뿜어지는 거력을 보라. 하려고 해도 못 하리라.
메리는 해일을 막은 게 아니라, 파도 그 자체를 조종해서 양분하는 수준 높은 마법을 시전한 것이었다. 원래라면 해일을 가르는 게 아니라 ‘해일을 일으켜서 도시를 박살 내버리는 마법’이었다.
‘어라.’
이제 보니 메리의 마법 지팡이에 장착된 최상급 마나석… 두 개였다.
‘하, 그런가.’
헤레인 악마 소환 사건 때 감춰뒀던 데미니얀 가문의 것 하나와 안개섬을 공략하고 나온 것 하나. 무려 두 개를 결합시킨 것이리라.
데미니얀이 몰락하고 프로하딘이 죽은 덕분에 세상에 나온 기물이다.
‘메리의 지성에 마나량만 갖춰지면 이런 정신 나간 짓도 할 수 있나 보군.’
기감을 기울여 조타실을 살폈다. 거대한 해일에 필사의 각오로 임하던 데린 선장과 선원들이 벙찐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느새 갑판 위로도 괴수들이 올라와 있었다. 총구를 돌리려는 찰나, 청백색 검기가 갑판 위를 순식간에 정리했다.
“여기는 맡겨, 마틴! 집중할 수 있도록 주위를 정리할게!”
충격파를 상쇄하러 나갔던 길버트와 리나가 돌아온 것이다. 저 둘이라면 맡길 수 있다.
‘순조롭군.’
크라켄 킹의 공격을 받아내며 승객들의 피난 유도까지. 완벽하다.
선박 지하에서 네르진이 방어 마법을 주관하고, 사보와 비앙카가 선미로 올라오는 해양 괴수들을, 길버트와 리나가 선수로 올라오는 해양 괴수들을 처리하고 있다.
승객들이 구명정에 올라 탈출하기까지 시간을 버는 건 어렵지 않아 보인다.
‘남은 건….’
고개를 들어 올려 크라켄 킹을 보았다. 바다 위로는 그의 어깨까지만 나와 있을 뿐이지만, 압도적이다. 이미 패배가 확정 지어진 것처럼.
‘무지막지하군.’
멀어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인간과 비율이 비슷하다는 가정하에 놈의 키는 100m를 거뜬히 넘긴다. 어쩌면 기괴한 식탐의 악마군주 브라하무스에 필적하거나 더 거대할 지도 모른다.
“공략, 이라….”
크라켄 킹을 공략해야만 한다. 하지만… 적을 쓰러뜨리는 것만이 답일까. 공략에도 여러 방법이 존재할 수 있음을 상기했다.
[오오오오오…!]괴성이 들려온다. 저 바다 심해의 괴수들만이 내지르는 기괴하고도 정신 나갈 것 같은 포효가.
크라켄 킹의 몸이 흔들린다. 한 발자국, 이쪽으로 다가온다. 육안으로 선명하게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졌다.
‘지금은 고민할 때가 아니야!’
엽총을 꺼내 들고 곧장 사격을 개시했다. 관통탄, 마법탄, 성탄을 있는 대로 꽂아 넣었다.
불꽃이 일고 성력이 피어오르지만, 크라켄 킹이 멈추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한 걸음, 한 걸음. 빠르게 사우스 호너로 다가오고 있었다.
[주인님! 탄환이 효과가 없어요!]‘역시.’
크라켄 킹. 원작에서도 출현했던 막강한 존재다.
네이처 파이브 중 하나인 바다의 심장을 지닌 채로 오염된 구정물 같은 바다에서 대군을 이끌고 등장했었으며…, 유일하게 길버트를 패퇴시킨 빌런이었다.
‘정공법으로는 무리인가.’
원작의 길버트 또한 백금기사. 하지만, 그 수준을 따지자면 지금의 나와 길버트의 성취 쪽이 더 높다.
‘그럼에도 이기지 못한다.’
왜냐하면.
“오오, 바다의 왕이시여….”
저 멀리서 하이진이 절규한다. 그가 가슴팍의 브로치를 꽉 잡았다. 그 브로치의 형상이, 크라켄 킹의 머리 모양과 똑같았다.
그래, 크라켄 킹이야말로 바다의 왕. 먼 고대의 시대 때 혼돈과 싸워 패퇴시킨 후, 상처를 입고 심해로 가라앉았다는 고대 대륙 암흑기의 신화적 존재였으니까.
‘바다왕….’
인류존속연장기관이 크라켄 킹이라 코드명을 정하고 종말에 준하는 몬스터로 분류한 존재의 정체였다.
‘바다 위에서 크라켄 킹은 무적이나 다름없어.’
태생이 바다의 왕으로 태어난 데다가 네이처 파이브 중 바다의 심장까지 지녔으니 그 강함은 말할 것도 없다.
크라켄 킹을 상대하는 건 바다를 상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유의미한 충격을 주려면 ‘바다’에 충격을 줄 정도가 아니어선 불가능하다.
[가, 라 앉아라…!]“…!”
크라켄 킹이 다시 한번 오른손을 들어 올린다.
바다를 내리찍는 줄 알았으나, 이번에는 그 손을 뒤로 쭈욱 뺀다. 이어진 정권 찌르기.
내질러진 팔은 어느 지점에서 그쳤지만, 진흙처럼 더러운 오물 같은 것이 파동처럼 뿜어졌다.
가만히 관찰하던 내 눈이 크게 뜨였다.
‘역시, 저것은…!’
“방호 전개!”
갑판 위 정중앙에 우뚝 선 보르드가 목청이 터지도록 소리친다.
“프론트키퍼!”
이윽고, 풀과 나무가 엮여 형성된 듯한 마나의 거인이 갑판 위로 형체를 드러낸다.
“으랴아아아아압─!”
보르드가 마주 주먹을 내질렀다. 크라켄 킹이 내지른 주먹의 파동과 프론트키퍼의 주먹이 맞부딪친다.
굉음이 울려 퍼지고 강력한 충격파가 사방으로 뻗쳐나갔다.
“큭!”
“읏!”
가장 가까이에 있던 길버트와 리나가 검을 갑판에 박아넣고 버텼다. 나 또한 균형이 흔들릴 뻔했고.
‘허, 굉장하네.’
어느 정도 기대는 하고 있었지만, 정말 대단한 놈들이다.
‘크라켄 킹의 공격을 다 막아내고 있잖아?’
충격파는 길버트와 리나가, 해일은 메리가, 물리적인 공격들은 보르드가. 어떻게든 다 막아내고 있었다.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생길지도 모르겠군….’
난 원작을 읽었다. 대항이 불가능한 수준인 크라켄 킹의 무력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자진하여 지금 이곳에 서 있으며, 다른 원군을 청하지도 않았다.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도박에 가깝지만, 지금으로써는 가장 성공률이 높은 방법이.
원작에서 보았던 가능성과 이곳에 와서 새롭게 얻은 가능성의 결합이다.
그게 아니고선 답이 없다. 정말로.
‘그러니 원작에서도 그렇게 끝났지.’
원작에서는 길버트가 안개섬을 해방시켰다.
그러나 나타난 것은 성체의 세계수가 아닌, 작은 새싹.
아직 힘을 쓰지 못하는 어린 세계수라니. 얼마나 달콤한 먹이였겠나. 순식간에 빌런들이 안개섬으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길버트는 그들로부터 세계수의 새싹을 지켜야 했다.
그리하여 ‘주인공 일행 VS 크라켄 킹, 네크로맨서, 악마군주’라는 말도 안 되는 매치가 성사되었다.
당연하지만 상대가 될 리가 없었고 주인공 일행이 모조리 빈사 상태가 된 그때, 갑자기 크라켄 킹이 각성하더니 주인공 일행을 돕기 시작했다.
그 혼자서 일곱 악마군주와 네크로맨서의 합공에도 한참을 버텼으니 얼마나 대단한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정도다.
‘그때는 몰랐는데.’
왜 크라켄 킹이 갑자기 각성해서 도왔는지.
주인공 일행과 크라켄 킹의 싸움에 앞서, 남해를 지켜주었다던 수호신의 무덤에 관한 서술이 있었다.
‘이제는 알겠군.’
나는 자리를 이탈했다. 향한 곳은 바로 함내.
쿠궁! 쿵!
연이은 충격에 흔들리고 조명이 붉게 변한 복도를 지나, 조타실.
거기엔 데린 선장이 분주하게 지휘 중이었고, 하이진 의장이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었다.
“하이진 의장님.”
“아, 아, 마, 마틴 경.”
그제야 그가 날 돌아본다. 그런데… 정상처럼 보이진 않았다.
“진정하십시오.”
“하지만, 저, 저것은, 아니….”
“압니다. 바다의 왕이란 걸.”
내 말에 하이진 의장에 근심과 절망이 드리워 힘겨운 표정으로 날 보았다.
“지금은 막아내고 있지만, 바다왕이 여기까지 도달한다면 우린 끝입니다…!”
“그렇겠죠.”
“아뮬런트 공작께서 대함대와 함께 지원 오고 계시다지만, 그분이 오셔도 소용없습니다!”
“네, 그럴 겁니다.”
“플래티넘 넘버링 모두가 와도 바다 위에서는 가망이 없단 말입니다!”
“그렇군요.”
“저건 신화적인 존재입니다!”
“네.”
한결같은 내 대답에 하이진 의장이 그제야 말을 멎었다.
날 가만히 바라보던 그가 스스로 뺨을 후렸다.
쩌억!
커다란 소리가 나더니, 붉어져 피멍까지 든 얼굴로 날 보았다.
“죄송합니다. 추태를 부렸습니다.”
“괜찮습니다.”
“방도가 있으십니까?”
“네.”
당당한 대답에, 하이진 의장이 멈칫했다. 방도가 있다 뿐이랴.
“지금 제가 당신께 온 것만 해도 보십시오. 상당한 여유마저 있습니다.”
크라켄 킹이 무척 위협적이긴 하지만, 놈이 이곳에 도달할 때까지 어차피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나는 하이진 의장과의 짧은 대화를 통해 내가 세운 해결법의 빈 구멍에 대한 답을 얻었다.
척척박사는 성공 가능성을, 야생 감각은 성공의 직감을 얘기했다. 그리하여 나도, 결단했다.
“하이진 의장. 어차피 소용없다면, 기존의 작전을 바꿉시다.”
“하지만….”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으음….”
하이진 의장은 망설였다. 저 뒤에서 오고 있을 아뮬런트 공작, 정면에서 달려드는 크라켄 킹, 칭송받는 눈앞의 젊은 영웅.
짧게 고민한 의장이 결단을 내렸다.
“…알겠습니다.”
끝내 불가능을 가능케 만들었던 젊은 영웅의 손을 들어주기로.
“데린 선장.”
“듣고 있습니다.”
“마나 엔진을 전력 가동하게. 항로를 재설정하지. 상시로 뱃고동을 울리도록. 아뮬런트 공작님의 대함대가 들을 수 있도록. 아니.”
조타실이 결의로 가득 찬다.
“온 대륙이 우리의 결단을 들을 수 있도록 크게.”
*
“좋아! 이걸로 마지막!”
구명정이 아래로 내려간다. 소형 모터가 달린 보트가 대륙으로 향한다.
승객들의 탈출을 돕던 선원들과 질서 유지를 돕던 엘리샤가 땀을 닦았다.
“엘리샤 언니! 더는 못 버텨요!”
“여기도 다 끝났어!”
엘리샤와 선원들이 모이자 비앙카와 사보가 마지막 힘을 다해서 길을 뚫는다.
구명정에 달라붙는 해양 괴수들을 뿌리치기 위해 승객 중에 섞여 있던 금기사 전원이 구명정에 탑승했기 때문에 남은 전력은 엘리샤를 포함해서 셋이 끝이다.
셋은 갑판 위로 몰려드는 해양 괴수들을 뚫고 선실 안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고, 안에서 걸어 잠갔다.
“흐아아!”
“후!”
비앙카와 사보가 바닥에 벌러덩 쓰러졌다. 둘의 고생을 알았기에 모두가 얌전히 자리를 비켜주었다.
‘대단한 아이들이야.’
엘리샤는 놀란 눈으로 비앙카를 보았다.
‘비앙카는 임페리움 아카데미 신입생으로 들어와도 이상하지 않겠어. 아니, 1년 전의 나 보다도 강해 보이는데? 하르마듄에서 후원해줄 수 있을까? 사건이 끝나면 마틴에게 말해볼까?’
비앙카뿐만이 아니다.
‘사보는… 어떻게 이렇게 강하지? 저 나이에, 1년 전의 길버트보다 강한 게 말이 되나…?’
비앙카가 놀랍다면, 사보는 두려울 지경.
‘반면에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무력하다. 엘프 여왕에게 수련을 받았다지만, 아직 실전에서 민첩하게 사용할 수준은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피난 유도로 1인분은 했어. 일단 쉬자.’
안도와 피로에 찌든 한숨을 쉬고 있으니, 함께 피난을 돕던 갑판장이 곧장 어딘가로 길게 이어진 파이프 장치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뚜껑을 열더니, 배관 같은 곳에 대고 소리친다.
“갑판장입니다! 승객들의 피난 완료했습니다!”
귀청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리고 곧, 방송 장비가 켜졌다.
[데린 선장이다. 피난 완료를 확인했다. 수고했다. 선원들은 각기 비상 규율에 따라 정해진 함내의 최중요 위치로 돌아가 사수하라. 지금부터 사우스 호너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최후의 항해를 시작하려 한다.]그 말에 지쳐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던 선원들이 힘차게 대답하며 우르르 함내 여기저기로 뛰어갔다. 그러나 갑판병들은 갑판 출입구에 남아 망부석처럼 서 있었다. 지금 갑판은….
[그리고 갑판병들은 무기를 들어라. 사우스 호너의 갑판 마나포를 개방하겠다. 탈환하여, 바다왕을. 아니, 크라켄 킹을 요격하라.]갑판원들이 망설였다. 숭고한 임무다. 목숨을 버리는 일이라면 각오가 되어있다.
하지만…, 도저히 성공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여기까지 온 것도 두 어린 소녀와 한 소년의 도움을 받아서 정말 간신히 해낸 일이거늘.
갑판장이 조심스레 외쳤다.
“하, 하지만 대다수의 전투병이 구명정의 호위를 위해 하선했습니다! 전력이 부족합니다!”
[이견은 받지 않겠다.]철컥! 철컥!
“아.”
비상사태임을 알리는 붉은 조명의 복도 끝에서 누군가 걸어오고 있었다. 양손에 새하얗게 빛나는 순백색 쌍권총을 들고.
“아, 사장님!”
“주인님.”
비앙카와 사보가 일어나 그를 맞이한다.
[젊은 영웅이 가는 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