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restructuring RAW novel - Chapter 121
Chapter 27. 능력vs능력(4)
쌔액-!
지은 씨의 몸이 직선으로 쏘아져 나갔다.
날개를 접고 먹이를 노리며 급하강하는 물새처럼.
“누, 누나?!”
지웅이의 벌어진 입이 닫히질 않는다.
제 누나의 능력을 제대로 본 게 처음인 탓이겠지.
“와…….”
“너희 누나 멋있지?”
“그러게요! 스탯 빌려준 보람이 있네요.”
하도 감탄하기에 한마디 건넸다.
그러자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는 녀석.
“민첩 스탯, 10 빌려줬지?”
“네!”
아까 경기 시작 전, 지은 씨에게 민첩 스탯을 빌려주라 얘기했었다.
지웅이의 ‘회계’ 스킬로.
“저 아직 3 남았는데, 빌려 드릴까요?”
“됐어. 너 스탯 0 돼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싶어?”
“음…… 아뇨?”
“웬만하면 5 정돈 남겨 둬.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흘끗 쳐다보며 말하자 지웅이가 웃음기를 머금고 말했다.
“근데 그거 알아요? 누나가 형 얘기 엄청 했어요.”
“어? 내 얘기?”
구조 조정이 시작되기 전을 말하는 걸까, 아니면 그 후를 말하는 걸까.
전보다 더 험해진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는 안심을 주기 위해서였으려나.
아니면 직장 동료를 살리려다 보니 스킬이란 걸 개방했다 알려 주기 위해서였을지도.
괜히 궁금한 마음에 대답을 기다렸지만.
“뭐, 그런 게 있어요.”
녀석은 의뭉스럽게 웃을 뿐이었다.
어느새 구간의 절반가량을 돌파한 제 누나를 향해 박수 치면서.
결국 러시아까지 재꼈다. 순식간이었다.
내가 생각해 낸 거지만, 지은 씨는 이번 미션에 딱 맞는 인재다.
“와 씨, 딱이네. 사기 아니냐?”
“자전거 타고 가는 놈도 있는데 뭐.”
벙쪄서 쳐다보던 장한일이 질린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 정도면 앵커로 써도 괜찮았겠는데?”
“그래도 됐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앵커, 그러니까 끝내기 주자는 보통 팀에서 가장 빠른 사람으로 배치하곤 한다.
선두를 달리고 있다면 그 자리를 지켜야 하고, 뒤처져 있다면 상대를 추월해야 하니까.
그러니 우리 팀 앵커는 가장 빠른 지은 씨가 되어야 맞다.
하지만 지은 씨가 아닌 내 이름을 마지막에 올린 이유는.
‘가속 스킬은 모든 변수에 대처할 수 있으니까.’
누가 무슨 짓을 벌이든 간에.
게다가 나 또한 지은 씨의 비행만큼, 아니 그보다 더 빠르게 달릴 자신도 있고.
어쨌든 가속과 염동 모두 대단한 능력이다.
참관자들 또한 같은 생각인 듯 비슷한 감상을 내어놓았다.
【다수의 참관자가 대상자 ‘이은호’의 주자 선정에 만족합니다.】
【‘관리국 까마귀’가 여자 부하가 한 마리 새 같다며 감탄합니다!】
【저 부하는 꼭 데려가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데려간다고? 어딜?”
【다수의 참관자가 일부 참관자의 경솔한 언행에 고개를 젓습니다.】
음?
‘뭔가 있네.’
정말 실수였는지 입을 닫아 버린 까마귀를 닦달하려는 순간.
“소환.”
끼기기긱-!
누군가의 한마디와 함께 지금 상황에 들릴 리 없는 기계장치 끼우는 소리가 들렸다.
‘!!’
팔뚝을 덮는 길고 두꺼운 쇠 장갑.
붉은 쇳덩이를 이어 만든 글러브에서 불길한 윤기가 흐르더니.
화르륵!
그 손바닥에서 화끈한 불길이 타오르고…….
“폭파(爆破)!”
푸화아아아앗-!
그 화력을 이용해 대포…… 아니, 대포 같은 사람이 쏘아져 나갔다.
“저게 뭐야!”
“로, 로켓 펀치?!”
경악한 사람들의 비명이 사방에서 들려온다.
무조건 이겼다고 생각한 판이었는데.
[USA 구역! FRA 추월!] [USA 구역! ARG 추월!] [USA 구역! CN 추월!]금발, 구릿빛 피부, 탄탄한 근육질 몸매를 숨기지 않는 서양인.
아까부터 호전적인 인상이 눈에 띈다 싶긴 했는데.
‘저런 능력을 여태 숨기고 있었다니.’
[USA 구역! RUS 추월!] [150m 돌파!]로켓 펀치의 주인공이 지은 씨 바로 뒤까지 따라붙었다.
꼭 지은 씨를 타게팅한 유도탄처럼.
쌔앵-
푸화아아아앗!
둘의 거리가 좁혀졌다가, 멀어졌다가, 다시 좁혀졌다.
아슬아슬하게 따라잡힐 듯 따라잡히지 않는 지은 씨.
그럴 리 없지만, 이 멀리서도 간절하고 절박한 표정이 보이는 듯했다.
“누님! 힘내십쇼!”
“김 비서님! 조금만 더 가면 돼요!”
“잠깐만, 지금 저 자식 뭐라는 겨?”
그렇게 가까워질 듯 가까워지지 않는 거리에 화력을 키우던 로켓 펀치가 입을 뻐끔거렸다.
일찌감치 승부를 보겠다는 의지가 담긴 비장의 카드.
[USA 구역, ‘물폭탄’ 활성화!] [타깃의 머리 위에 폭탄이 떨어집니다!]“물폭탄?!”
“!!”
끓는 물처럼 부글부글하는 공기.
누가 봐도 위험하다 싶을 정도로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수십 가닥의 수증기가 서로 얽히고설켜 만들어 낸 거대한 구체.
그리고.
퍼어어어엉-!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폭탄.
홱!
총알처럼 날아가던 지은 씨의 움직임이 멈췄다. 속도를 신나게 밟다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잡듯이.
그리고 그 반동에 휘청이는 몸을 겨우 이끌고 서둘러 뒤로 물러난 순간.
푸화아아아앗-!
지면에 떨어진 물 덩어리가 물로 만든 핵폭탄처럼 터지고 퍼졌다.
그 틈에 재빨리 치고 나가 거리를 벌리는 미국놈.
[USA 구역! ROK 추월!]“빨리 뚫고 가야지! 멍청하게 뭐 하는 거야?!”
“X발, 저기 걸리면 못 움직이는 거 몰라? 아까 물파리 못 봤냐고!”
누군가의 외침에 욕쟁이가 시뻘게진 얼굴로 반박했고.
“누나! 제발!”
“안 돼……!”
지웅이와 장한일이 동시에 소리쳤다.
그러자 그 염원을 듣기라도 한 듯 금세 사그라지는 물폭탄과.
[ROK 구역, ‘자석’ 활성화!] [앞선 상대에게 빠르게 따라붙습니다!]내가 부탁한 대로 움직여 주는 지은 씨.
지지직-!
지은 씨의 몸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한참 앞서 버린 미국 놈의 몸 또한.
그리고.
쌔애애애액-!
지은 씨가 가녀린 몸을 추스를 틈도 없이 끌려갔다.
신체의 한계를 뛰어넘어, 아까보다 더 빠른 속도로.
가늘고 긴 몸과 팔다리가 비행운 같은 잔상을 남겼다.
“됐다! 거의 따라붙었어요!”
“거의 비슷하게 들어오겠는데?!”
조마조마하게 보고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지웅이 또한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며 물어 왔고.
“형! 일부러 물폭탄 쓰면 바로 자석으로 따라붙으라고 한 거예요?”
“아, 어. 너무 벌어지면 따라잡기 힘들거든.”
뒤늦게 부스터를 썼음에도 지은 씨의 뒤꽁무니에도 닿지 못한 프랑스 선수처럼.
“아…….”
프랑스 선수를 향해 턱짓하며 말하자, 지웅이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USA, 400m 돌파!]그동안 속도를 줄인 로켓 펀치가 다음 주자에게 바통을 넘겼고.
[ROK, 400m 돌파!]지은 씨 또한 장한일의 후배에게 바통을 넘기고는 곧장 이쪽으로 날아왔다.
“누나!”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요.”
6명 중 2등으로 끝난 레이스. 지은 씨는 성에 차지 않는지 아쉬움 가득한 얼굴이었다.
“제가 차이를 더 벌렸어야 했는데…… 미국에도 비행 능력자가 있을 줄은 몰랐어요.”
“괜찮습니다. 이게 끝이 아니니까요.”
지은 씨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고는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은호 씨, 미국 4번 주자…… 그 사람이에요.”
“네, 봤습니다.”
미국의 마지막 주자는 거대화 능력자.
건물만 한 크기에, 한 걸음 걷기만 해도 내 키의 몇 배는 이동해 버리는 놈이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는 꼴이겠네.’
지은 씨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얼굴에 불안함과 미안함이 가득했다.
하지만.
“죄송…….”
“쉬고 있어요.”
웃으며 말했다.
왜냐하면…….
“이기고 올게요.”
뱁새도 뱁새 나름이니까.
* * *
와아아아아-!
3번 주자를 기다리며 패싱 존에 섰다.
미국 거인의 그림자가 만들어 낸 그늘 속에서, 사람들의 함성 소리가 귓가에 웅웅거린다.
[ROK, 200m 돌파!]장한일의 우려 대로 놈의 후배는 그리 빠르지 않았다.
비슷하게 출발했음에도 미국의 흑인 선수에게 한참 뒤처졌다.
눈에 띄게 가까워지는 미국 선수를 지켜보던 거인이 입을 열었다.
“어이.”
북소리 같은 낮은 음성. 공기가 웅웅 울린다.
“또 쥐새끼처럼 숨어 있다 튀어나오지 그래?”
“……뭐?”
“투명화 능력이라…… 아주 유용하겠어. 특히 남들 뒤통수칠 때 말이야.”
과연.
기마전 때, 율이 스킬로 몸을 숨긴 채 다닌 걸 내 능력이라 오해한 모양이다.
그렇다고 해도 온몸으로 뿜어내는 적대감은 이해가 안 되네.
“지저분한 플레이는 여기까지다.”
“미국에선 정당방위도 지저분한 플레이로 보나?”
“…….”
저들이 떼거리로 달려드는 건 괜찮고, 미리 대비해 몸을 숨긴 건 쥐새끼고 지저분한 플레이로 보는 건가.
내 되물음에 놈도 할 말은 없었는지 대화를 끝냈다.
“……하루 1등 했다고 너무 자만하진 마. 금방 따라갈 테니까.”
놈의 바통이 도착하기도 했고.
탁!
그렇게 거대한 그림자가 먼저 바통을 챙긴 뒤.
[USA, 바통 터치!]“헉……!”
내 손에 들어와야 할 바통이 겨우 마지막 코너를 돌았을 무렵.
쿵! 쿵! 쿵!
[USA, 100m 돌파!]쿵! 쿵! 쿵!
[USA, 200m 돌파!]쿵! 쿵! 쿵!
[USA, 300m 돌파!]거인의 레이스는 벌써 3분의 2지점을 지나고 있었다.
어느새 한 바퀴를 거진 돌고서 내가 서 있는 출발선으로 돌아오고 있는 놈.
【‘조사국 프린스’가 뛰기도 전에 끝나겠다고 혀를 찹니다.】
【‘대외협력국 신입사원’이 2등이라도 하려면 서둘러야 한다며 재촉합니다.】
【‘관리국 뱃사공’이 왜 이렇게 침착하냐며 일침을 놓습니다.】
이미 졌다고 생각했는지 참관자들은 오두방정을 떨어 댔지만…….
‘1초 만에 400m를 주파하면 돼.’
아직 나한테는 1초이자 35초인 시간이 남았다.
그리고.
“소환.”
혹시 모를 변수까지 제거해 줄 아이템 또한.
파앗-!
손바닥 위에 둥그스름한 배불뚝이 병을 올렸다.
연분홍빛 액체가 반짝이는 약병.
[‘천재 연구원의 실패한 각성제(민첩 강화형)’을 섭취합니다!]이로의 연구실에서 훔쳐 온 물약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꿀꺽!
마지막 남은 한 방울까지 목구멍으로 넘겼을 때, 마침 도착한 3번 주자.
[ROK, 바통 터치!]탁!
단단한 바통의 끄트머리를 잡아 쥐었다.
어느새 돌아와 버린 거인의 그림자가 머리 위로 드리워졌다.
난 이제 시작이지만, 놈은 마지막 한 걸음만을 남겨 둔 상황.
거인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구경꾼들 또한 포기했는지 고개를 저었지만.
“이걸로 끝…….”
“가속.”
“나아아아아아아아아았…….”
타앗-!
팔다리를 움직이기도 전에 몸이 앞으로 치달린다.
뇌에서 신경까지 이어지는 시간도 아깝다는 듯, 제멋대로 움직이는 사지.
그럼에도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이 매끄럽다.
다리가 모터 달린 바퀴처럼 쉼 없이 움직인다.
100m.
몸을 살짝 기울이며 곡선 주로를 돌았다.
코너링보단 직선 주로에 특화된 편이었으나, 민첩 스탯 때문인지 차이는 없었다.
달리면 달릴수록 점점 더 빨라지는 듯한 기분.
200m.
달팽이처럼 움직이는 이들을 하나씩 재꼈다.
자전거. 중국의 호위무사. 아르헨티나의 육상 선수. 불곰 같은 러시아 선수까지.
300m.
그렇게 뛰고 또 뛰어 마침내 거인의 뒤통수에 코를 처박을 만큼 가까이 다가갔을 때.
째깍!
시간의 축이 제자리를 되찾고.
[ROK, 100m 돌파!] [ROK 구역! FRA 추월!] [ROK 구역! CN 추월!] [ROK 구역! ARG 추월!] [ROK 구역! RUS 추월!] [ROK, 200m 돌파!] [ROK, 300m 돌파!]밀려 있던 메시지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하지만 문제는.
‘!!’
거인의 발은 이미 마지막 걸음을 내디딘 뒤였다는 것.
‘조금만 더……!’
가속은 시간을 느리게 만들 뿐, 아예 멈추진 못한다.
내가 400m를 주파할 동안 거인의 발이 땅에서 떨어지고, 들리고, 이동해 결승선 코앞까지 간 건 어쩔 수 없었으리라.
찰나의 차이다. 1등과 2등이 갈리는, 아주 짧은 차이.
이 정도 차이로 질 수 없다.
그 생각 하나로 허벅지와 장딴지에 안간힘을 쓰자니, 머릿속을 스친 거인의 말.
‘그래! 그거라면……!’
타앗-!
지면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거인의 발등으로.
【‘대외협력국 신입사원’이 직접적인 공격은 규칙 위반이라며 소리칩니다!】
【‘관리국 까마귀’가 그냥 다 죽여 버리고 페널티 받자고 제안합니다!】
【‘관리국 뱃사공’이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2등에 만족하라며 외칩니다!】
그러자 바이킹에라도 올라탄 듯, 붕 떠오른 몸.
애써 다리를 움직이지 않아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느끼며.
그 반동을 이용해서 다시금 몸을 날리고는, 손부터 뻗었다.
놈의 발등 너머로.
무언가를 고민할 틈도 없었다.
머릿속에는 어떻게든 결승선을 먼저 통과해야겠다는 생각뿐.
팟!
그렇게 내뻗은 팔이 공중에서 보이지 않는 선을 통과하고.
경기가 끝났다.
[모든 라운드가 종료되었습니다!] [최종 순위를 발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