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restructuring RAW novel - Chapter 151
Chapter 34. 매출, 매출, 매출(3)
[요즘 것들은 근성이 없어, 근성이.]한참 위의 선배들이 늘상 하는 얘기였다.
고객 만족센터의 순식(瞬息) 또한 ‘요즘 것들’에 속하는 건 마찬가지.
그럼에도 그는 썩 자부심 있는 영업사원이었다.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때가 아니면 잘 뛰지도 않을 만큼 느긋함.
누가 뭐라 해도 저 듣고 싶은 말만 골라 듣는 뻔뻔함.
백번 양보해도 성실한 직원이라 할 순 없었으나, 자고로 영업이란 무식하게 낯짝만 들이댄다고 되는 게 아니니까.
‘어차피 살 놈은 사. 영업도 스마트하게 해야지.’
최소한의 노력으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효율을 뽑아낸다.
그게 순식이 추구하는 전략이자 영업 철학이었다.
그래서.
[근본도 없는 놈들이 또 누구 돈을 털어먹으려고!]‘지팡이 노인’처럼 까다로운 고객은 그의 타깃이 아니었다.
호감도는커녕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것조차 힘든 건 물론.
조금만 심사가 뒤틀려도 ‘절대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하라’며 다른 어르신들에게 으름장을 놓아 버려 대하기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효율이 안 좋아.’
그였다면 무조건 포기했을 거다.
설사 꼭 공략해야 할 고객이었어도 마찬가지.
오늘은 안면을 텄으니 됐다. 그리 생각하고 다음을 기약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응?]신입 병아리는 주저 없이 앞으로 나섰다.
멋모르는 자의 패기다 싶어 비웃을 심산으로 쳐다보고 있자니.
“소환.”
놈이 대뜸 꺼내 놓은 파란색 캔.
[저거 내 방에 있던……?]“돼지우리인지 소 우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방 주인이 커피 중독자라는 건 확실하네요.”
방에 쌓여 있던 커피 캔이다.
그새 챙겼다고? 저걸?
[언제? 아니, 왜?]황당함에 묻자 담담하게 답하는 병아리.
“판촉물이라는 겁니다.”
[판촉물?]“판매촉진 물품. 고객들에게 주는 작은 뇌물…… 뭐 그런 거죠.”
[?!]순식은 당황했다.
뇌물이라니?
아니, 뇌물을 주려면 제대로 줘야지.
별것도 아닌 캔 커피 따위에 넘어갈 만큼 멍청한 고객이 어디 있다고?
“재혁아, 잠깐만.”
“혀, 형님?”
[이건 또 뭐여?! 한 대 맞고 시작할 텨?!]더군다나 상대는 괴팍하기로 유명한 지팡이 노인.
신입들이 멋모르고 들이댈 때마다 최상급 운철로 만든 지팡이로 머리통을 수박처럼 으깨 버리는 양반인데!
그깟 캔 커피 하나에 움직일 리가 없…….
움찔!
없…….
없…… 을 텐데?
“어르신, 우선 더운데 커피 한 잔 먼저 하시죠.”
[……이게 뭐여? 공짜여?]인상 더러운 병아리가 눈웃음을 지었다.
세상 순진한 젊은이처럼.
“물론이죠. 저희 할아버지 생각나서 드리는 거니 부담 말고 드세요.”
공짜로 준다고?
순식은 또 한 번 당황했다.
‘지팡이 노인’의 악명은 고객 만족센터 안에도 파다했다.
모아 둔 재산도 엄청난 주제에, 엄청난 수전노에 까탈스럽고 의심 많은 성정.
간혹 어쩔 수 없이 살 때도 가격을 흥정하려 들어, 여간 곤란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갓 들어온 병아리가 그 사실을 알 리 없는데.
[또 내 돈 뜯어 가려고 지랄허는 거지? 이 도둑넘들 같으니! 당장 안 꺼져?!] [설마 처음 그 한마디로 알아낸 건…….]에이. 아니겠지.
순식은 피식 웃으며 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 동안.
“아, 제가 따 드리겠습니다. 제가 손가락이 좀 튼튼하거든요.”
[허! 손가락이 튼튼하면 뭐 얼매나 튼튼하다고?]“하하, 아마 어르신 지팡이 정돈되지 않을까요?”
[예끼! 뭔 허파에 바람 든 소릴 하고 앉았어?]이미 병아리와 어르신의 대화는 시작된 뒤였다.
“동네 풍경이 좋네요. 나무 그늘도 시원하고.”
[아무것도 없는 촌구석인디 풍경은 무신 풍경?]“할아버지 댁 생각이 나서요. 마을 입구에 딱 이런 나무가 있었거든요. 그 마을 이름이 아마…….”
커피에서 시작한 작고 시시한 대화가 동네 칭찬으로, 마을 정보로, 그리고 자기소개로 이어지기까지 채 1분이 걸리지 않았고.
“아 참, 제 소개도 안 드렸네요. 이은호라고 합니다.”
[떼잉! 누가 궁금하댜?]— 띠링!
이내, 경쾌한 알림과 함께 떠오른 메시지.
【OJT 특명(25조)】
【1】인사하기(1/20)
[!!]첫 번째 특명 ‘인사하기’가 성공했다.
별것도 아닌 캔 커피 하나로.
[흠흠, 맛 더럽게 없네.]그리고.
“너무 달진 않으십니까?”
[뭐, 뱉을 정돈 아니고만.]“아, 다행이네요. 운동하고 오셨으면 입에 텁텁하셨을 텐데. 평소에 운동은 좀 하십니까?”
“아아…… 그렇겠네요. 그럼 적적할 땐 뭘 주로 하십니까?”
물 흐르듯 이어진 대화.
[돌이나 놓고 노는 거지 뭐.]“아아.”
이은호가 입꼬리를 미세하게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취미가 장기나 바둑 종류신가 보네요.”
— 띠링!
【2】취미 알아내기(1/10)
두 번째 특명도 순식간에 완료.
[뭐야? 무슨 대화가…….]“은호 씨, 말 진짜 잘하죠?”
모든 대화가 강물처럼 자연스럽고 시원시원하게 이어진다.
그것도 죄다 이은호가 원하는 방향대로.
꼭 강물이 이쪽으로 흐르라고 미리 땅을 다 파둔 것 같았다.
[누가 보면 전부 계산해서 말하는 줄 알겠어.]그리 말하자 꼬마 병아리가 의견을 보태왔다.
감정 없는 무표정한 얼굴 위, 이은호가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는 눈빛에만 이채를 띄고서.
“……다 생각하는 거예요.”
“응? 뭐가?”
“저 할아버지가 무슨 수를 둘지. 뭐라고 답하면 다음 수를 끌어낼 수 있을지.”
하?
꼬마의 과장에 순식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웨이 말이 맞아요.”
그러자 단발과 꼬마가 동시에 반박했다.
이은호.
도대체 뭐 하는 놈이길래 이 정도의 무한한 신뢰를 받고 있는 걸까.
이쯤 되니 슬슬 궁금해진다 생각하며 다시금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아, 저희 쪽에 엄청난 기사(棋士)가 한 명 있는데.”
[기사?]움찔!
꼬마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예. 그게…….”
지팡이 노인이 흥미가 돋은 듯 하얗게 샌 눈썹을 움찔거렸다.
그러자 중요한 얘기라도 하려는 듯 짐짓 목소리를 낮추는 이은호.
“세상천지에 못 이길 상대가 없다고 콧대가 아주 하늘을 찌르더군요.”
[예끼! 햇병아리 주제에 어디서 허장성세여?]하아?
갑자기 무슨 소릴 하는 거며.
“콧대가…… 하늘……?”
이 꼬마 병아리는 왜 황망한 얼굴을 하는 거지?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아주 건방진 놈인데…… 어르신께서 한 수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데려와! 아주 혼쭐을 내줄 테니께.]이은호가 입꼬리를 티 안 나게 올렸다.
기다렸던 말을 들었다는 것처럼.
그리고 들려온 알림.
— 띠링!
【3】초대받기(1/10)
[……말도 안 돼.]엄청난 기세다.
【4】친구되기(0/10)
【5】판매하기(0/10)
남은 특명은 고작 두 개.
고객에게 친밀감을 인정받아야 완수할 수 있는 ‘친구되기’ 특명과 마지막 산인 ‘판매하기’다.
[흠. 그래 봤자…….]초심자의 행운도 여기까지.
지금까지야 운이 좋아서 파죽지세였다지만 이제는 다를 거다.
다른 건 몰라도 친구되기 특명부턴 절대적인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
영업국 OJT 미션을 성공시킨 사례가 없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최소 4개월.’
얼굴도장을 찍는 데만 한 달.
믿을 만한 놈이라는 신뢰를 쌓는 데 두어 달.
거기서 고객 취향을 파악하는 데 최소 한두 달은 더 걸리는 법이다.
‘이제 정신 차리겠지.’
그렇게 순식이 절망한 병아리의 얼굴을 기대하며 눈을 반짝이는 사이.
“이런,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이은호가 갑자기 대화를 끝마쳤다.
뭐야?
말하다 말고 왜 일어나?
“이만 가 봐야겠습니다. 제가 업무 중에 반가워 인사드린 거라…….”
[잉? 물건 팔러 온 거 아녔어?]놀란 눈을 한 건 어르신도 마찬가지.
무리라는 걸 파악한 건가.
하긴, 이성적인 선택이긴 하다.
고객에게 마음을 열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고 억지로 밀어붙였다간, 있던 호감도도 바닥나고 말 테니.
하지만 어디까지 가나 보고 싶었는데.
아쉽게 됐다.
그리 생각하던 찰나.
“에이, 저야 오늘 들어온 교육생인데요, 뭐. 팔든 안 팔든 큰 상관은 없습니다. 게다가.”
이은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처음 사귄 친구한테 강매할 순 없으니까요.”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는.
[허! 친구는 무신…….]“낯선 곳이라 두려운 마음이 있었는데…… 어르신과 담소를 나누고 나니 한결 편해지네요.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낯선 곳이라 두려웠다니.
씨알도 안 먹힐 거짓말이었다.
[……에잉, 늙은이랑 얘기해서 즐거울 게 뭐 있다고.]어르신 또한 곧이곧대로 듣진 않았는지 툴툴댔고.
하지만.
스윽-
어르신의 지팡이가 꼬리를 내리듯 얌전히 놓이더니.
— 띠링!
다시금 들려온 알림.
【4】친구되기(1/10)
[그, 뭐, 하나 내놔 보던가.] [!!]영업…….
[…이렇게 하는 거였나?]순식의 입이 떡 벌어졌다.
* * *
“이은호 씨는 참 신기해.”
“뭐가 말입니까?”
“몸도 불편한데 어쩜 그렇게 영업을 잘해?”
영업부서에 있을 때마다 늘 들었던 말이다.
계약직에 몸도 불편하다 보니 큰 건수를 맡진 않았으나, 현장만 나갔다 하면 실적을 올리곤 하니 다들 신기했던 모양.
“몸이 불편해서 오히려 유리합니다.”
“응?”
“보통 미안해하시면서 왜 찾아온 건진 들어 주십니다. 그다음은 제 실력이고요.”
대화를 시작하기 어렵다는 점만 제외하면, 상사건 고객이건 똑같다.
상대를 관찰하고 그가 원하는 바를 알아내서 해결해 준다.
가려운 곳을 긁어 주면 된다.
가려운지도 몰랐던 곳을 긁어 주면 더 좋고.
[이봐! 이은호!]“형님, 안 합니까?”
난리 치는 사수 옆으로 돌아와 카탈로그를 뒤적였다.
[원래 교육생들한테 이런 얘기 굳이 안 하는데…… 넌 크게 될 놈 같아서 말해 주는 거야. 내 말 들어.]흠. 제일 비싼 거라면…….
▣ 살인의 추억(Best!)
– 비가 오면 그날이 떠오른다. 마니아층이 선택한 ‘다시 보고 싶은 기억 1위!’
– 체험가 : 복지 포인트 10만 점
……이건데?
[너무 비싸다고 하시면 조금씩 싼 걸로 내밀면 돼. 이거 엄청난 꿀팁이야. 알지?]10만 점이라.
이거 하나면 다른 상품 서너 개는 판매한 거나 다름없다.
영업 실적을 한 번에 왕창 쌓을 수 있는 기회.
[그리고 이거 판매액의 10%를 수수료로 떼 주니까 무조건 비싼 거 파는 게 이득이야.]“10% 수수료면…… 1만 점?”
수수료를 주는 줄은 또 몰랐다.
미션 보상과 영업 실적에 따른 베네핏을 제외하고, 1만 점을 추가로 얻을 수 있는 상황.
[그려. 뭣이여? 난 기냥 경치 좋은 데서 유유자적하면 되겠구만.]하지만 내가 선택한 건.
“경치 좋은 곳이라면…… 혹시 바다는 어떠십니까?”
[바다라면…… 이거?]▣ 7지구 심해 탐사(New!)
– ‘발광 크라켄’부터 ‘피쉬 드래곤’까지, 우주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심해종들을 소개한다.
– 체험가 : 복지 포인트 2만 점
……가 아니라.
▣ 7지구 심해 탐사 준비(New!)
– 7지구 심해종들을 탐사하러 가기 전, 특수 슈트를 착용하고 몸을 물에 익힌다.
산호초가 가득한 에메랄드빛 풍경은 덤.
– 체험가 : 복지 포인트 1만 점
이거.
“지팡이 끝이 많이 닳았더군요.”
[갑자기 무슨…….]“쓰신 지 오래되신 것 같은데. 오랜만에 편하게 움직여 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 뭐여?]“물속에 들어가는 게 부담되시면 해안가에서 물놀이만 해도 기분 전환이 꽤 될 겁니다. 산호초가 깔린 해안이라면 경치도 아름다울 거고요.”
[!!] [운동은 무신! 이 몸뚱이로 퍽이나 하겠다! 뛰다가 콱 부러지지만 않으면 다행이지.]아까 그 한마디에서 한스러움이 느껴졌거든.
불편한 도포 차림으로도 지팡이 휘두르는 걸 보면 팔 힘은 엄청난데, 불편한 다리 탓에 답답해한다는 느낌도 받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대로 활동할 수 있는 것들 중에 이게 제일 가성비가 좋더라고요.”
“가격 대비 효과가 좋다는 거죠.”
실적도 실적이지만, 당신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는 느낌까지 들면 끝이다.
【‘지팡이 노인’의 호감도가 대폭 증가합니다.】
— 띠링!
【5】판매하기(1/10)
【25조, 판매 성공!】
【누적 실적 : 1만 점】
【신입사원 ‘이은호.’ 판매 수수료로 1천 점을 획득합니다.】
판매 수수료라.
조별로 주어지는 영업 실적 외에 개인 보너스가 들어왔다.
이거 잘하면…….
‘사업 아이디어가 샘솟는데?’
머리를 재빨리 굴리고 있자니, 어르신이 쯧! 혀를 찼다.
[이딴 식으로 영업해도 먹고 사는 거여?]“아아.”
비싼 상품을 내버려 두고 고객만 생각하는 순진한 영업사원이 걱정되시는 모양.
‘……먹혔네.’
그럼, 우선 한 단계 더 나아가볼까.
“걱정되시면 친구분들 좀 소개시켜 주시겠습니까? 잘해 드릴 수 있는데.”
[……할망구 할방구들 불러 주면 되는 겨?]‘!!’
“예! 좋습니다. 어디 메시지를 보내시는 건가요?”
됐다.
영업의 기본이자 꽃은 지인 추천이다.
입소문만큼 효과가 확실하면서도 내 품이 들어가지 않는 건 없으니까.
그렇다면.
“저…… 그럼 올리실 때 이벤트 내용도 같이 부탁드립니다.”
[이벤트? 그게 뭣이여?]그냥 한 명씩 파는 게 아니라, 조금 더 나아가서.
“첫째, 상담만 받으셔도 커피 무료 증정. 둘째, 3만 점 이상 구매하시면 도수치료 서비스 들어갑니다. 그리고 셋째.”
판부터 키워야지.
“친구 소개 이벤트 진행합니다. 추천받아서 온 친구가 구입한 금액의 5% 페이백.”
크게 한탕 해 보자고.
“선배님, 말이 짧으십니다.”
[……영업사원 사관학교라도 다닌 겁니까, 형님?]“뭐, 비슷한 데서 오긴 했죠.”
고향에서 배운 대로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