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restructuring RAW novel - Chapter 222
Chapter 48. 도약(2)
거대한 샹들리에가 드리운 화려한 왕좌.
그 앞에 무릎 꿇은 사내가 울부짖는다.
[구, 국장님! 송구합…….] [닥치거라!]끔찍한 손아귀가 울부짖던 사내의 목을 움켜쥔다.
그리고.
[격도 갖추지 못한 잔챙이들에게 당하다니.] [끄윽…….] [내 명령이 그리도 우스웠나 보구나.]악의(惡意)가 똘똘 뭉쳐 만들어진 시커먼 손아귀가 사내의 생기를 훔친다.
그 순간.
[사, 살려 주십…… 시오……!]까만 머리카락이 노인의 그것처럼 하얗게 세더니 후드득 빠져 버린다.
잘 관리되어 반질반질하던 피부는 주름이 깊게 파여 쭈글쭈글해진다.
그리고 늘 총명하던 눈빛은…….
섬뜩!
지켜보던 저를 향했다.
시뻘건 피눈물을 뚝뚝 흘리며.
[……내가 어떻게 했는데…….]그리고 다가온다.
[내가 몇십 년을 모셨는데……!] [자, 잠깐! 나는…….]툭 치면 쓰러질 듯 썩어빠진 몸뚱이로.
벽에 처박혀 비틀리고 꺾인 팔다리로.
쿵! 쿵! 쿵!
야차처럼 일그러진 얼굴이 코앞까지 덮쳐 온다. 부릅뜬 눈에서 흘러내린 피가 뺨 위에 뚝뚝 떨어진다.
그리고.
[누구 때문에 여기까지 따라왔는데!!] [자, 잘못했어! 잘못…… 으아아아아악!]한때 제 ‘라인’이자, 수족이자, 몇십 년간 호흡을 맞춰 온 부사수에게 잡아먹히는 동시에.
인사처장이 눈을 떴다.
덜커덩!
멀쩡히 앉아 있는 채였으나, 절벽에서라도 떨어지는 사람처럼 발을 구르며.
[……꿈인가.]처장이 쩍쩍 갈라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필…….]‘그날’의 악몽을 꾸다니.
‘무리……하긴 했지.’
국장의 히스테리가 날로 심해지고 있다.
덕분에 폭탄처럼 쏟아지는 업무를 막아 내며, 벌써 이틀 밤을 꼬박 새운 상태였다.
[요즘 사내망이 시끄럽던데.] [사내망 말입니까?] [……노사협력팀, 노사협력팀 열심히도 떠들어 대더군.]노사협력팀.
그리고 팀장인 이은호.
국장께서 놈을 여간 거슬려 하는 게 아니셨다.
처음 팀이 신설되었을 때야 그렇게까지 거슬릴 일인가 싶긴 했지만, 이젠 이해가 간다.
[대리님! 그거 보셨어요? 영쉬남?] [봤어, 봤어! 노사협력팀이랬나? 거기 진짜 대단하던데?] [일 진짜 잘하던데. 국장님은 왜 없애려고 하셨던 걸까요?]‘영쉬남’ 영상의 유명세를 이용한 이슈몰이 및 언론 장악력.
그리고 그걸 온전히 제 성과로 포장해 버린 이미지 메이킹 능력.
또한 이슈가 꺼지기 전, 발 빠르게 움직이며 홍보하는 추진력까지.
신임 팀장.
그것도 갓 입사한 신입사원이 가졌다고는 믿을 수 없는 역량들이었다.
‘원래 신입들이 제일 무서운 법이긴 한데.’
눈에 뵈는 게 없고, 가진 게 없으니 잃을 것도 없는 법이라.
하지만 본디 그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그런데 저놈은 팀장 직위와 저만 믿고 따라오는 팀원들.
그리고 ‘노사협력팀’이라는 전무후무한 팀을 만듦으로써 노(勞) 측과 사(使) 측을 중재한다는 명분까지 갖췄다.
심지어 실적으로 그것을 증명해 내기까지!
그야말로 멋모르는 하룻강아지의 패기에 범의 이빨을 더한 격.
무서운 자다.
여기서 더 컸다간 무슨 폭탄을 터뜨릴지 몰라 인사국 전체가 긴장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지만.’
[서두르되, 빠트리는 거 없도록 철저히 준비해.] [예, 국장님.]처장은 국장의 명을 따랐다.
인사처장과 인사과장이 비리에 연루되어 동시에 공석이 되었을 때.
그때도 국장의 부름 한 번에 집 지키는 개처럼 기뻐하던 그였다.
밑에 있던 후배 놈까지 데려와 과장 자리에 앉혔던 것도 그였고.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처장 자리 앉혀 줬으면 밥값은 해야지.]인사국장이 가면 속에 숨기고 있던 악(惡)이 이 정도로 거대한 줄 미리 알았더라면…….
[네 후배 놈처럼 되고 싶지 않으면 반드시 성공해야 할 거다.] [……예.]동고동락을 함께한 후배가 한순간에 산송장이 될 일은 없었을 텐데.
[딸자식 생각해서라도 열심히 뛰어야지. 안 그래?] [……명심하겠습니다.]딸린 식솔들을 인질처럼 대하는 모욕 또한 받을 필요 없었을 거고.
‘다 내 업보다.’
까득-
그리 생각하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소용…… 없습니다. 이제, 쿨럭, 그만 찾아오시죠.] [……내가 미안하다.]머릿속을 가득 채운 과장의 시커먼 얼굴을 털어 내려 애쓰며.
‘……후.’
처장은 마른세수를 하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좀 자야겠다.
이러다간 정말 큰일 나겠다 싶어 산처럼 쌓여 있는 서류들을 정리하고 일어섰다.
[활성화.]그리고 열쇠를 꺼내 활성화시키고, 자택으로 이어진 ‘문’을 만들기까지 순식간이었다.
쉬고 싶다.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죽은 듯 자고 싶다.
그 간절함이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주변은 돌아보지 못하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그리하여.
쌩-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처장의 등 뒤.
불어온 한 줄기 바람을 인지하지 못한 걸지도.
‘다 자고 있을 테니…….’
불은 켜지 말고, 조용히 올라가자.
그런 태평한 마음으로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기는 처장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스릉-
평화로운 가정집에 어울리지 않는 쇳소리.
[!!]어느샌가 제 목을 겨누고 있는 쇠 날.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달빛을 반사하는 쇠 날을 손에 쥔 복면의 사내.
순간, 처장의 눈에 당혹감이 일렁거렸다.
[누구……!]그러나 복면의 사내는 당황할 여유까지 줄 생각은 없었는지, 날카로운 칼날을 바투 쥐며 첨언 했다.
“참고로 부탁은 아닙니다.”
[……말로 하지.]* * *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
고전적인 명언이 아니더라도,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적을 파악하는 건 필수다.
그 적이 나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사람인지 뭔지 알 수도 없는 윗급의 존재라면 더더욱.
《세라》인사과장 무단결근 중.
《세라》처장은 계속 쉬쉬하는 분위기
물론 인사국에 침투시킨 세라가 유용한 정보들을 물어다 주긴 했다.
하지만, 지금의 세라로선 얻을 수 있는 정보에 한계가 분명했다.
《나》국장 능력은?
《세라》확인 불가.
《세라》과장급까지도 아는 게 없음.
지난번 경쟁PT까지 시켰던 ‘노사협력팀 해체’ 프로젝트가 실패로 돌아간 게 민망했던 걸까.
아니면 아랫것들에게 맡긴 탓에 망했다 판단한 걸까.
어느 쪽이건, 어쨌든 이번 작전은 인사국장의 지시하에 은밀히 진행된다고 했다.
높으신 분들끼리 모여서 쑥덕쑥덕 진행하겠다는 거지.
정보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물론 높으신 분들이라고 말이 안 새어 나오는 건 아니지만.’
“이번 입찰, 포기하자. 경쟁업체가 적자 감수하고 들어온단다.”
“예? 아니, 확실한 정봅니까?”
“어. 사장님이 그쪽 사장이랑 고등학교 동창이셔.”
“아…….”
숱하게 봐 왔다.
술 한 잔 거나하게 기울이며 주고받는 이야기들.
높으신 분들이 덕담과 일상 대화 도중 주고받는 정보들.
게다가 그런 정보가 말단 사원들이 백날 물어보고 다니는 것보다 훨씬 정확하고, 스케일도 크더라고.
그러므로 나는.
‘찾는다.’
인사국장의 근처.
중요 정보에 접근할 수 있지만 표출할 수 없는 불만이 있는 자.
그중에서도 특히 내가 채워 줄 수 있는 아킬레스건이 있는 자.
그렇게 찾고 찾아 나온 이는 하나였다.
인사처장.
‘그 과장, 노인처럼 생기를 다 빼앗겼다고 했지.’
제가 데려온 후배가 제 상사에게 모든 걸 빼앗기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한 처장이라면…….
그리고 그렇게 떨어져 나간 후배라도 챙기며 아끼는 자라면.
‘공략할 수 있어.’
“아아.”
서슬 퍼런 눈으로 쏘아보는 처장을 달래며—목에 칼을 들이밀며— 말했다.
“흥분하실 필요 없습니다. 몇 가지 질문에 답만 해 주시면 해치지 않을 테니까.”
회유가 가능한 상대라면 회유한다.
앞으로도 쭉 써먹을 수 있도록.
그리 생각하며 물었는데.
[……이은호.]처장의 입에서 흘러나온 건 동의가 아닌 내 이름.
“우리가 목소리만 들어도 알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습니까?”
이렇게 바로 알아챌 줄은 몰랐다.
[목소리가 아니라 눈이다.]“눈?”
음?
“제가 24시간 내내 쳐다볼 만큼 잘생긴 얼굴은 아닌데. 혹시 취향이…….”
[뭔 개소리냐?! 국장님 명령이라 어쩔 수 없…….]오케이.
걸려들었고.
“국장이 시킨 거군요? 제 이름으로 된 서류와 보고서를 하나하나 뜯어 보고 약점을 찾아내라고?”
[……입이 방정이군.]처장이 스스로가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혀를 쯧, 찼다.
그러면서 덧붙인 첨언.
[팀장까지 돼서 이런 망나니짓을 하다니. 패기와 무리수를 구분할 줄도 알아야지.]“구분해서 여기까지 온 겁니다.”
[……뻔뻔하기까지.]처장이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다는 듯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뭐지?]“정보를 원합니다.”
피차 바쁜 사람들이니, 본론부터 가자고.
“전투 준비를 열심히 하던데.”
[……!]“정확한 날짜. 장소. 병력. 그리고 인사국장의 능력까지. 전부 말해 주시죠.”
흠칫!
처장의 몸이 잠시 미동을 멈췄다.
그제야 제 목에 닿은 칼날의 예기가 느껴지는지 잠시 내려다보다가, 숨을 골랐다.
그리고 뱉은 완곡한 거절.
[너무 비싼 정보를 바라는군.]“그쪽 목숨값보다 비싸다 생각된다면…… 뭐, 어쩔 수 없고요.”
두고두고 쓸 수 있는 장기 말을 원하긴 했다.
하지만, 그조차 얻지 못할 바에야 일회성 졸(卒)로라도 써먹어야 하니까.
“안 걸리면 되지 않습니까.”
하.
그러자 인사처장이 기가 찬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그러더니.
[국장은…….]부르르 떨었다.
[……넌 아무것도 모른다.]본능적인 두려움. 공포.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뒤섞인 떨림.
‘역시.’
그렇다면, 다른 방식으로 공략할 차례다.
[아무 것도…… 몰라.]그 동요가 끝나길 기다렸다가.
“인사과장과는 각별한 사이라 들었습니다.”
조심스레 꺼내 놓았다.
[그 얘긴 갑자기 왜…….]“이거.”
▣ 피부 재생 및 탄력 개선제
– 재생형 마물에게서 추출한 회귀 세포와 진귀한 영약들을 배합해 만든 약품.
손상된 피부에 도포 시 세포를 재생시킬 수 있다.
– 단, 손상된 정도가 클 경우 단시간에 원복 되진 않으며, 지속적인 도포가 필요함.
“돌려줄 수 있습니다. 젊음.”
[……!]내가 가져온 회유책.
굳게 닫혀 있는 처장의 문을 열어 줄, 세상에 하나뿐인 열쇠를.
* * *
인사처장은 말을 잃었다.
고마움이나 감사함.
또는 이걸 제 눈앞에 갖다 댄 놈의 패기에 분노가 인 건 아니었다.
‘어째서…….’
당혹스러움에 가까웠다.
지금 뱃속에서부터 슬금슬금 기어오르는 감정은.
[네 후배 놈처럼 되고 싶지 않으면 반드시 성공해야 할 거다.] [……예.]믿고 가자 했던 상사는 제 수족을 자르고, 저 또한 그리될 수 있다며 입에서 칼날을 쏘아 대는데.
“돌려줄 수 있습니다. 젊음.”
적이라 믿어 의심치 않던 햇병아리는 기적의 약제를 가져와 건넨다.
이 아이러니에 늙은 처장은.
헛웃음을 흘렸다.
“단번에 원래대로 돌아오진 않겠지만, 꾸준히 바르면 분명 괜찮아질 겁니다.”
[…….]“이거 밖에 갖다 팔면 비싸게 받을 수 있는데 가져왔다는 거, 딱 봐도 아시죠?”
그래서.
‘……줄을 잘못 서도 한참 잘못 섰군.’
그리 생각하는 동시에, 절로 열린 입.
[일주일 뒤. 통곡의 숲으로 진격할 거다.]“병력은?”
[1천.]“……생각보다 많네요.”
이제 와서 이은호의 편에 서겠다는 마음은 아니었다.
어리석음에 대한 탄식.
그 정도의 마음이었다.
왜냐하면.
[……넌 절대 이길 수 없을 거다.]이 햇병아리가 마주할 첫 번째 전쟁은, 단언컨대 절대 이길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으니.
[국장은 보통의 존재가 아니야.]“그럼 어떤 존재입니까?”
꿀꺽.
처장은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다.
[백 년 전, 네가 머무는 그 땅을 죽음의 숲으로 만든 게 바로 그분이시다.]“……그런 거였습니까?”
[그리 태평하게 지껄일 소리가 아니란 말이다. 그동안 얼마나 강해졌을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고!]……하지만.
“글쎄요.”
이은호는 무덤덤했다.
‘미친 자식.’
처장은 목에 겨눠진 칼만 아니었어도 눈앞에 있는 미친놈의 멱살이라도 쥐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서, 잠시 고민하다가.
[……이번 전투. 국장님께서 직접 갈 거다.]말해 버렸다.
[절대 지난번 전투처럼 물렁하게 가진 않으실 거라더군.]그러니 도망을 치든, 무릎 꿇고 빌든 해라.
돌려 전한 경고.
어떤 방식이든, 제게 도움을 주려 했던 녀석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국장이 직접…….”
하지만 이은호는.
아니, 이 미친놈은.
“좋네요.”
웃었다.
판돈이 커지는 걸 지켜보는 승부사의 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