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restructuring RAW novel - Chapter 241
Chapter 52. 회사의 입장(2)
탁.
고요한 집무실 안, 테이블 위에 찻잔 놓는 소리가 클랙슨처럼 울려 퍼졌다.
[죄, 죄송합니다, 회장님.]새내기 비서가 제가 낸 소리에 화들짝 놀랐으나, 회장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늘 의전을 담당하던 비서실장이 자리를 비웠음을 잘 알기에.
[실장은?] [아직 소식은 없습니다만…….]새내기 비서가 말꼬리를 흐렸다.
마치 제가 잘못이라도 한 듯 시선이 바닥에 처박혔다. 그러더니.
[곧 들어올 겁니다! 연락 오는 대로 즉시 보고드리겠습니다!]시키지도 않은 일까지 하겠다 외쳤다.
의도와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에 노했을 그들의 하늘을 위해.
하지만.
회장의 주름진 얼굴에는 조바심 대신 여유가 자리 잡고 있었다.
투입한 수하 중 단 한 명도 연락이 닿지 않는 상황에서도, 천천히 차향을 음미할 정도의 여유가.
[이번 싸움은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니 말일세.] [……?!]새내기 비서는 당혹스러웠다.
이게 무슨 친선 경기도 아니고, 결과가 중요치 않은 싸움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리 생각하며 물음표 가득한 질문을 조심스레 던졌다.
[이겨야만 하는 것 아닙니까? 시스템 선에서 잘라 줬다면 좋았겠지만…….]망할 노동조합이 결국 시스템의 인정을 받아 낸 상황이다.
만약 이대로 조합이 힘을 얻으면 아무래도 회사가 하는 일에 제약이 많아질 터.
회장님도 그걸 알기에 무려 비서실장을 직접 파견하신 건데…….
[우리가 이긴다면 반동분자들의 구심점이 사라져 와해될 것이고.]회장이 손에 든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만에 하나 이은호가 이기더라도, 놈들은 가장 큰 힘을 잃게 될 것이네.] [가장 큰 힘……말입니까?]알맹이가 빠진 듯 의뭉스러운 회장의 대답에 비서가 고개를 갸웃하자, 갑작스런 질문이 날아왔다.
그네들이란 노사협력팀, 노동조합, 그리고 이은호를 말하는 것일 터.
그들의 가장 큰 힘이라면, 아무래도 하나다.
[정의로운 일을 한다는 명분……일까요?]직원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복지를 개선하고.
부당한 요구에 맞서고.
직원들의 작은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 크게 말해 준다는 명분.
[아! 무, 물론 사측이 정의롭지 않다는 건 아니지 말입니다!] [틀린 말은 아니네만.]너무 솔직하게 말했나 싶어 비서가 손사래를 쳤다.
그러자 손에 든 찻잔을 탁, 내려놓은 회장이 늙은 몸을 소파에 푹 기댔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여론일세.] [여론이라면…….] [그들이 정의이며 회사가 악(惡)이라는 프레임. 직원들을 위한다는 명분. 그게 다 여론에서 나오는 거란 말이네.]여론.
성가시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힘.
그렇기에 정치질에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프레임을 짜는 것이다. 자신은 어떻게 보면 이미 당한 셈이라 볼 수도 있겠다만.
영겁의 시간 동안 그 짓을 해 온 회장은 아주 느리게 몸을 일으키며 말을 이었다.
[그 정의롭다는 놈들이 직원들을 상대로 무력 행사를 했어.] [그건…….] [그것도 그 많은 직원들을 상대로 압도적으로 이기고, 일방적으로 쓸어버린단 말일세. 그럼 그 여론이 어찌 될 것 같나?]인자한 거죽 뒤에 숨은 광기가 흐릿하게 비쳐 보이는 미소와 함께.
[그래도 노조가 정의라 보나?]* * *
칼로 상대하고, 힘으로 제압한다.
이런 세계가 되고부턴 당연시했던 논리였다.
내가 가는 길에는 늘 적이 있었고, 그들을 베어야만 걸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늘 정답이진 않았어.’
남산에서 달려들던 놈들을 죽이는 대신 ‘자동 사냥’ 판을 벌였던 때가 그러했고.
이번이 또 그러했다.
회장의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그러나 놈은 날 일방적으로 ‘삭제’해 버리는 대신, 애먼 직원들의 손을 빌려 철퇴를 가하려 했다.
그 아비규환 속에 복면 쓴 수하들을 꽁꽁 숨겨 놓기까지.
그렇게 전 직원들이 주목하고 있는 상황에, 만약 우리가 찾아온 이들을 죄다 쓸어버린다면…….
‘전술에선 이겨도 전략에선 진다.’
자충수, 혹은 자살골.
자칫 이겨도 이기는 게 아닐 수 있다.
즉, 이번 판의 진짜 싸움은 무력 다툼이 아니라는 거다.
‘회장 놈도 이걸 노린 걸 테고.’
“회장님 손으로 반란의 불씨를 만들어 주시는 겁니다.”
제 손에는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반란의 불씨도 꺼 버리려는 회장의 시커먼 속내가 훤히 들여다보인다.
[자네 같은 친구들이 몇 명이나 있었을 것 같나?]지금껏 이런 식으로 해치워 왔겠지.
혁명을 끝까지 끌고 가지도, 중간에 포기하지도 못하도록 벼랑 끝에 내몰아서.
‘여우 같은 늙은이.’
실눈으로 웃을 때부터 알아봤다.
뭐, 하지만…….
“저도 곰보단 여우과라서 말입니다.”
[읍! 읍읍?!]이럴 것 같아 데려왔지. 회장의 일거수일투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비서실장을.
【카바나 1식 – 충격 흡수】
【쿤달라 1식 – 방출(放出)】
태양의 무구가 지닌 힘은 엄청났다.
아마 30%의 개방률이 아니었다면 방출량을 조절하긴커녕 숲을 죄다 터뜨려 버렸을 거다.
‘이것도 다 타 버렸을 거고.’
탁, 탁!
여자에게서 빼앗은 물약이 손안에서 너울거린다.
특수 제작된 용기 속에서도 터질 듯 꿀렁이는 적록색 액체.
▣ 초월(超越) 물약
– 고대로부터 전해져온 순결한 정수(精髓)를 액화하여 만든 물약.
– 기력과 심력을 1분간 최대량의 2배로 폭주시킨다.
단, 지속시간이 끝나는 즉시 24시간 동안 기존 최대량의 절반으로 감소한다.
– 하루 최대 1병 이상 섭취할 경우, 영혼의 활력을 영영 앗아 가니 주의.
기력과 심력이라.
확실히, 검기를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많이 운용할 때마다 심력이 부족하다는 경고창이 뜨긴 했다.
내 경우에는 운기조식으로 해결하곤 있지만.
‘운기조식할 시간도 없는 상황엔 유용하겠네.’
젖 먹던 힘까지 긁어모아 싸우고, 회복할 시간도 없이 곧장 공방을 이어 가야 하는 치열한 전투.
그 정도의 급박한 상황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보관.”
여자에게서 빼앗은 세 병의 물약을 고이 보관했다.
그러자 고통스러운 얼굴로 짐승의 울음을 내지르는 여자.
팔다리를 들어 올릴 힘까지 다 빠진 주제에 얼굴은 무시무시하다.
“제어구가 남아돌아서 다행이네요.”
천여 명의 패잔병들을 위해 준비했던 제어구.
게다가 혹시 모를 능력 발동을 예방하기 위한 마개까지 더했다.
덕분에 여자는 목숨만 겨우 부지한 채 여기까지 끌려와야 했고.
“감옥보단 아늑하지 않습니까?”
[읍! 으으읍!!]미니멀하지만 필요한 건 다 갖춘 아늑한 방. 살짝 어두운 듯하면서도 눈이 편안한 주광색 조명. 소음이라곤 1데시벨도 전달되지 않는 고요함.
그야말로 ‘비밀의 방’에 딱 어울리는 인테리어 아닌가.
꽤 만족스러운 마음에 방을 둘러보며 묻자 여자가 기가 찬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지만.
비밀의 방의 핵심은 ‘방’이 아니라 ‘비밀’이었다.
“내가 이분을 데리고 있다는 걸 비밀로 해 줘.”
[설정 완료.] [금번 ‘비밀의 방’이 유지되는 동안 ‘비밀’은 새어 나가지 않습니다.]그래 봤자 여긴 인스턴트 룸.
생성자인 내가 퇴실하거나 하루의 시간이 지나는 즉시 사라지는 임시 방이기 때문에 영원히 숨길 순 없을 거다.
이것만 놓고 보면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머리가 복잡해지지만.
[‘비밀 통로’가 개설되었습니다.]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성으로 들어가고, 또 빠져나갈 수 있는 비밀 통로만 해도 이 방의 가치는 충분하다 볼 수 있지.
게다가.
‘이 안에서 바깥 상황도 볼 수 있으니까.’
【‘성주’ 권한 확인 완료.】
【모니터링을 시작합니다.】
팟! 팟! 팟! 팟! 팟…….
한쪽 벽면 가득, 수백 개의 스크린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형 건물의 관제실에서 실시간으로 돌아가는 CCTV 영상을 한눈에 확인하는 느낌.
360도 선회 포탑의 머리에서.
성벽 곳곳에서.
성의 첨탑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방 안에 펼쳐진다.
“물러나세요! 다가오면 쏘겠습니다!”
“어이, 거기! 선 넘어오믄 끝이여! 알겠남?!”
곳곳에서 대치 중인 팀원들의 모습 또한.
《연보라》 오빠 지금 어디예요?
《연보라》 답 안 해도 되니까 꼭꼭 숨어 있어요!
《민여진》 절대 나오지 마요. 절대!
아까부터 이런 메시지들을 끝도 없이 보내오는 이유가 있었던 모양.
《김지은》 전사에서 몰려들고 있어요!
《명태평》 미친 새끼들이 서로 공유해 주고 난리 났다고!!
전사에서 몰려들고 있다라…….
이번 행사가 그 정도로 파급력이 있어 보이진 않았었는데.
‘서로 공유……그것 때문인가.’
그렇다면.
“단체 미션.”
스윽.
“서로 공유하게 만들어 바이럴 효과를 노렸나 보네요.”
비서실장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것도 내 손님들을 초대한 행사에서.”
[…….]읍읍거리며 소리칠 땐 언제고, 정작 내 물음에 실장은 반응이 없었다. 서슬 퍼런 눈만 치켜뜰 뿐.
“하긴, 비교 전력을 높이려면 상대편 머릿수 빼 오는 게 최고지. 그렇죠?”
날 해치우라는 미션.
그걸 받고서 전사에서 몰려드는 직원들과, 이미지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우리 팀원들.
여론에 기대어 관심은 폭주했지만, 충성스러운 지지 기반은 부실한 노동조합의 현 위치까지.
“……역시 정치는 네거티브 전략인가.”
이 모든 조건을 고려한 회장의 전략일 터.
확실히 머리를 잘 썼다.
그러나.
“근데 실장님. 그거 알아요?”
딱 하나 있거든.
[?!]먹히기만 한다면.
아니…….
먹힐 수밖에 없게 만들면.
“네거티브론 오래 못 가.”
[읍? 읍읍?!]이 기울어진 판을 한 번에 뒤집어 줄 도박 수가.
* * *
《레이라》 여진아! 게시판 봤어?
《레이라》 여론이 안 좋아.
민여진이 대치 중인 성벽 뒤에 숨어 스크린을 펼쳤다.
한창 뜨거운 감자가 된 그들의 이야기를.
“언니! 아저씨! 여기 와서 이것 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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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사협력팀의 더러운 실체를 폭로합니다 ▧
노사협력팀 노조 설립행사 참석했습니다.
근데 갑자기 단체 미션 떠서 완수하려고 했더니, 무슨 포탑에 나무 괴물에…….
꼭 이렇게 될 줄 알고 함정이라도 미리 파둔 것 같더라고요.
이래도 되는 겁니까?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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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만히 있었는데 공격했다고??
⇒ 직원들 대표한다면서 이래도 되는 부분?
⇒ 좀 실망이다. 회사나 저놈들이나 똑같네
⇒ 근데 원글 뭔가 말투가 이상한데? 회사 알반가
└ ㅇㅇ니 말투가 더 이상
└ 억까 지리네
“시방 이게 뭣이여?!”
“제일 중요한 얘기를 안 했잖아!”
갑자기 떴다는 단체 미션이 ‘이은호를 죽이라’는 내용이라는 말만 쏙 빠진 폭로에 팀원들은 기함을 토했다.
“이거, 미션 내용을 우리가 댓글로 달면 안 됩니까?”
얼굴이 벌게져서는 흥분한 재혁이 콧김까지 내뿜으며 말했다.
그러자 어금니를 까득 깨물며 반박하는 연보라.
“뭐라고 달아요?”
“그야, 사실대로 자세하게…….”
“미션이 오빠 죽이라는 거고, 참여한 놈들 전부 진급이라고? 그래서 미친 직원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든다고요?”
그건 안 되지. 안 돼.
곧장 납득한 재혁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어떡하지?”
“계속 싸워도 되는 거 맞아요?”
“어서 청년한티 알려야…….”
팀원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지금 아저씨 속이 말이겠어요?”
“좋은 마음으로 모집했는데, 자길 죽이려고 달려들다니……충격 많이 받으셨을 거야.”
“형니이이이이임…….”
우선 급한 대로 대피는 시켰으니, 상황이 정리될 때까지 은호에겐 비밀로 하자는 부류.
“그래도 얘기하자. 은호 씨도 알아야 해.”
“그래, X발. 그 자식 여기까지 이미 생각해 뒀을지도 몰라.”
그리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모든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는 부류가 팽팽하게 대치하려는 찰나.
파앗-
팀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은호》 미션 내용이 정확히 뭐라고 했죠?
“히익! 형님이 먼저 물어보셨지 말입니다?!”
“어쩔 수 없어. 얘기하자.”
그리하여 설명한 미션창의 내용. 대치 중인 직원들의 반응. 그리고 지금의 좋지 못한 여론.
“은호 씨 잘못 아니니까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라고 덧붙…….”
……이려 했는데.
이은호의 반응은 그들의 예측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늘 그랬듯이.
《이은호》 그 미션, 저도 공유 부탁드립니다.
“……어?”
《이은호》 보상, 다 같이 받아 보죠.
“예에?!”
“미션 보상을 다 같이 받는다고요?”
“그러니까, 지금 형님 말씀은…….”
다 같이 이은호를 죽이자.
“……그게 뭔 개소리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