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restructuring RAW novel - Chapter 28
Chapter 6. 희생(3)
타닥! 타닥! 화르륵-!
부서진 가구를 모은 뒤, 재혁이가 가져다 준 배낭 속에서 찾아낸 라이터로 불을 피웠다.
‘그나마 멀쩡한 건물이 있어서 다행이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저 사체들 틈에서 밤을 지새워야 했다면 정신이 이상해졌을지도 모를 일이니.
“누님. 형님께선 어떻게 저걸 혼자 다 처리하신 걸까요?”
“아무래도 은호 씨, 사람 아닌 것 같아. 그치?”
“하아…… 제 갑옷은 아무래도 형님께서 쓰시는 편이 우리 모두에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게 말이야. 내 스킬도 은호 씨가 개방했다면 훨씬 잘 쓰셨을 텐데…….”
유리창 너머로 널브러진 마물들의 사체 더미를 허탈하게 쳐다보며 풀이 죽은 두 사람.
이어서 나를 향해 선망과 부끄러움이 뒤섞인 시선을 연신 던져 댔다.
그 모습에 저러다 땅굴까지 파고들겠다 싶어 서둘러 입을 열었다.
“두 분, 기죽을 필요 없습니다.”
내가 스킬을 여럿 얻은 덕이지, 두 사람이 남들보다 떨어지는 건 절대 아니었으니까.
물론 많은 사람을 만나 본 건 아니라 확신할 수 없지만…….
어쨌든,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재혁아. 나도 잘은 모르지만, 내가 하는 걸 따라 해 볼래?”
“옙…….”
검술 스킬 보정 덕에 자세는 좋은 편이니까.
따라만 해도 꽤 도움이 될 거다.
문제는 지은 씨인데.
“컨트롤이 필요한 스킬이라서 그런 것 같은데, 찬찬히 연습해 보죠.”
“네에…….”
지은 씨가 모기만 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당당하게 나선 주제에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게 민망한지, 시선을 내리깐 채 모닥불만 흘끗거리면서.
“음, 혹시 스킬 개방할 때 메시지 나오지 않았나요?”
“아! 맞아요, 나왔어요.”
“알려 주시겠어요? 힌트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음…… 그러니까…….”
그러자 지은 씨가 입술을 오물거리더니 손가락을 펴 하나씩 접기 시작했다.
“기물을 제어하기에 이른 정신력, 공감력, 그리고 애정 어린 대상과의…… 앗!”
“네?”
그리고 혼자 말꼬리를 흐리더니, 갑자기 손사래를 치는 지은 씨.
“아, 아니에요! 제가 알아서 해 볼게요!”
뿐만 아니라 얼굴이 달아오르고 손부채질까지 하기 시작했다.
모닥불이 너무 강한가?
“생각나는 부분이라도 말해 주시죠. 같이 고민하면 방법이 나올 겁니다.”
“아뇨! 정말 괜찮아요! 제가 원래 혼자 고민하는 걸 좋아해서!”
“네?”
이상한 소리를 하는 지은 씨에게 재차 물으려는 찰나.
[대상자 ‘김한울’로부터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율이 아빠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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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수신 : 이은호
ㆍ발신 : 김한울
ㆍ저희 둘은 무사합니다. 남산 타워로 왔는데 지진도 없고 안전합니다. 선생님들도 괜찮으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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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했구나.
다행이다.
“율이 아버님이죠? 뭐라 세요?”
“음…… 뒤가 잘리긴 했는데, 남산 타워에서 만나자는 얘기 같습니다.”
“네? 남산 타워요?”
남산 타워라.
그러고 보니…….
타닥!
건물 밖으로 나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둠이 눈에 익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올려다본 곳에는.
“!!”
둥그스름한 무언가로 둘러싸인 철탑이 있었다.
아비규환의 한가운데서 멀쩡히 네온사인까지 반짝이는 강북의 랜드마크.
“어떻게 멀쩡한 거죠?”
“그러게 말입니다, 누님! 나머지는 다 무너졌는데…….”
분명 남산 전체를 무너뜨리고도 남을 만큼 강한 지진이었다.
근데 저기만 깨끗이 피해를 피해 갔다?
그것도 나무 한 그루 쓰러지지 않고?
게다가 아무리 봐도 타워를 보호막처럼 둘러싸고 있는 희미한 반구(半球)…….
‘뭔가 있어.’
직감 따위가 아니더라도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한울 씨도 저 산에 올라간 거겠지.
어린 율이를 데리고.
— 퐁!
그때 지은 씨 앞에 나타난 선물 상자.
“솔아랑 여진이도 무사하대요!”
그렇다면.
“남산으로 오라고 전해 주세요.”
“!!”
가서 확인해 보자고.
* * *
AM 08:00.
날이 밝았다.
아니, 밝아 온 지 좀 됐다.
우리 셋이 연이은 전투에 피 칠갑이 된 지도.
폭격이라도 맞은 것마냥 고층 건물이 사라진 폐허 한복판.
하늘범 무리가 시뻘건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와 앞서 죽은 동지들의 사체를 밟고 섰다.
동료 의식 따윈 없는지, 지체 없이 질주하는 마물들.
“마물이 점점 늘어나는 것 같아요!”
남산에 가까워질수록 도처에 도사린 마물의 수가 늘었다.
마치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바리케이드처럼 널려 있는 하늘범 무리들.
대부분 잡긴 했지만.
“이거, 보통 사람들은 지나가지도 못하겠는데요?!”
“그러게요. 율이 아버님은 마물들이 모이기 전에 올라간 모양입니다.”
푸확-!
범의 몸에 꽂아 넣은 검을 뽑아내며 동조하자 지은 씨가 말을 이었다.
“다른 분들이 걱정돼요.”
“그러게요. 이것들, 꽤 강한데.”
공격력이 전무한 솔아와 여진이도 그렇고, 나머지 MS 타워 사람들은 생사도 모르는 상황이다.
덕분에 남산으로 향하는 내내, 내가 마물을 해치우는 사이 재혁이와 지은 씨가 반복해서 주변을 뒤지는 중이었고.
“여긴 아무도 없습니다!”
양쪽 시력 2.0이라며 수색병을 맡은 재혁이가 툴툴거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름이라도 알아 둘 걸 그랬습니다.”
몰랐지.
이름 하나에 의지해 잡템 선물로 생사를 확인하게 될 줄은.
“예지 씨는 아직 답장 없죠?”
“네, 없어요. 다들 무사해야 할 텐…….”
“지은 씨! 뒤에!”
스걱-!
[‘맹독 하늘범’을 처치했습니다!]그리고 이어서 하나 더.
“누님!”
“내가 처리할게!”
— 쌔액!
지은 씨가 일자로 날린 단검이 궤적을 꺾어 순식간에 하늘범의 날개를 찢었다.
‘금방 익숙해졌네.’
징그럽게 달려드는 놈들이 그나마 우리에게 선물한 게 있다면.
[‘맹독 하늘범’을 처치했습니다!] [복지 포인트 50점 획득!]두 사람의 전투 경험과 함께 쌓여 가는 복지 포인트일까.
“복지 포인트 확인.”
[대상자 ‘이은호’의 복지 포인트 현황을 확인합니다.] [보유 포인트 5,020점, 총 누적 포인트 5,550점.]5,020점이라.
정신없이 마물들을 해치우다 보니 잔뜩 쌓이긴 했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형님?”
고민에 빠져 있자니 재혁이가 조심스레 물어 왔다.
재혁이는 1,350점, 지은 씨는 1,900점이라고 했지.
“다들 너무 여유 있어.”
“예?”
“상점에서 가장 비싼 아이템이 500점밖에 안 돼. 너무 싸지 않아?”
“예? 그럼 좋은 거 아닙니까? 비싸서 못 사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그야 그렇긴 한데.
“하나 더. 왜 굳이 누적 포인트를 알려 주는 거지?”
“으음, 그건 저도 잘…….”
【익명의 참관자가 대상자 ‘이은호’의 포인트 독식에 크게 만족합니다!】
게다가 참관자들 반응도 왠지 마음에 걸린다.
그렇게 생각에 빠져 있자 지은 씨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뭔가 더 있는 거죠?”
“아마도요.”
짐작 가는 건 있다.
확신하기엔 근거가 부족하지만.
“필요해질 일이 있을 겁니다. 일단 모아 두세요.”
“네!”
“예, 형님!”
그렇게 다시금 길을 나선 지 몇 분 되지 않았을 때.
[‘용산구’ 지역 생존자는 총 531명.] [528명.]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 명이 추가로 목숨을 잃었고.
“꺄아아아아악!”
“!!”
단말마의 비명이 귓가에 때려 박혔다.
타닥-!
그렇게 간절한 비명을 따라가자 나타난 건, 하늘범의 송곳니에 꿰뚫려 숨통이 끊어진 여자.
그리고 그 옆에는…….
“!!”
“시체가…….”
열 구는 족히 넘는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반면 죽은 하늘범은 고작 둘.
— 크와아아아아아앙!
인간 시대의 종말을 알리듯 비참한 광경.
탁-!
참혹한 광경에 눈이 뒤집혀 곧장 뛰어가려는 재혁이를 잡아챘다.
“사람들이……!”
“이미 늦었어.”
조금만 빨랐으면 구할 수 있었을까.
분한 듯 주먹을 콰득 잡아 쥐는 재혁이의 눈이 불탔다.
“……제가 잡겠습니다.”
재혁이가 허락이라도 받으려는 듯 불같은 눈을 맞춰 온다.
적은 고작 한 마리.
적당하다 싶어 고개를 끄덕이자 결연한 표정의 재혁이가 당차게 외치며 앞으로 나섰다.
“누님! 엄호를!”
“알았어!”
뒷모습이 꽤 듬직하다.
군에 몸담았다는 말이 이제야 믿어질 만큼.
—깡!
재혁이가 하늘범의 송곳니를 향해 포환처럼 쏘아져 나갔다.
그리고 연습한 대로 반듯하게 찔러 넣은 검신.
푹-! 푸구구구국-!
부드럽게 들어간다기보단 힘으로 억지스레 찔러 넣는 느낌이지만, 마물은 충분히 괴로워했다.
그리고.
안간힘을 다해 울부짖는 범.
크와아아앙! 크와아아아아앙-!
범이 목덜미에 박힌 검과 성가신 인간을 떨쳐 내려는 듯 온몸을 비틀며 포효하자.
“어?! 어어어!”
엄청난 괴력으로 들어 올려지는 상체.
재혁이가 미처 뽑지 못한 제 검에 매달려 하늘로 땅으로 출렁이는 순간.
지은 씨가 앞으로 나섰다.
“재혁아, 조금만 버텨! 염동!”
쐐액! 푸확-!
그리고 비장하게 쏘아져 나간 단검이 범의 머리통을 쪼갰다.
쿠웅!
십수 명의 목숨을 앗아 간 마물이 쓰러졌다.
고작 두 명에 의해.
【‘관리국 까마귀’가 역시 사나이가 대업을 이루려면 인재를 모아야 한다고 흡족해합니다.】
【‘조사국 프린스’가 잘 키우면 수족으로 부릴 만하겠다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제발 좀 닥쳤으면.
치열한 생존 투쟁을 열혈 만화나 삼국지 따위로 둔갑시키는 참관자들의 반응에 치가 떨린다.
꼬챙이에 꿰뚫리듯 구멍이 숭숭 뚫리고 팔다리며 머리가 온전치 않은 시체들.
산 채로 뜯어 먹힌 게 분명했다.
최소한의 존엄성도 남아 있지 않은 참혹한 광경.
그럼에도 우리에겐 추모할 시간 따위는 주어지지 않았다.
[‘용산구’ 지역 생존자분들께 안내 말씀드립니다.] [잠시 후 9시 정각에 다음 미션이 진행될 예정입니다.]AM 8:50.
10분 뒤 시작할 다음 미션은.
[관리자의 권한으로 신규 프로젝트가 활성화됩니다.] [프로젝트 명, ‘사냥.’]“사냥?”
[지도에 표시되는 사냥감을 처치하고 수당을 받으세요.] [모든 생존자는 퇴근 시간까지 정해진 일당을 제출해야 하며, 제출이 불가능한 경우 일괄 삭제됩니다.]“사냥감을 처치해서 일당을 모아 오란 소리인 거죠?”
“예, 누님! 좀비 속에 들어 있던 벌레처럼 잡으면 되는 모양입니다!”
재혁이 말대로 그 정도 마물 사냥이라면 할 만하다.
나도, 재혁이와 지은 씨도 서울역 미션 때보다 성장했으니까.
[제출할 일당은 5천 점.] [퇴근 시간은 금일 오후 6시입니다.]5천 점이 어느 정도인지 감은 안 오지만.
어차피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라고는…….
“무사히 퇴근하거나 삭제당하거나. 둘 중 하나네요.”
스륵!
사냥감이 실시간으로 표시된다는 지도를 펼쳤다.
남산을 중심으로 색색의 원이 빽빽하게 그려져 있는 3D 지도.
50, 100, 200…….
엄지손톱만 한 원에는 각기 다른 숫자가 새겨져 있었다.
저게 사냥감을 처치하면 받는 수당인 모양이다.
“대부분 50점이에요!”
“50점이라면…….”
맹독 하늘범을 잡고 받은 복지 포인트가 50점이었지.
“이거, 숫자가 높아질수록 색이 진해져요. 대부분 흰색이네요.”
“여기 초록색이랑 노란색도 있습니다. 500점, 720점, 900점…… 점점 올라가요!”
스륵!
열심히 각자의 지도를 들여다보던 일행들이 동시에 어딘가에서 멈췄다.
“여기!”
“빨간색 원입니다!”
수많은 원 중에서 우리의 시선을 동시에 잡아끈 빨간색 원.
“5천 점이 넘어?!”
주변 마물들에 비해 독보적으로 높은 숫자.
“이놈이 보스 몹인가 봅니다!”
“어쩌면 한 번에 끝날지도 모르겠네요!”
이놈이다.
다른 놈들에 비해 강하긴 하겠지만 한 번에 일당을 다 채울 수 있다.
“어딘지 알겠어? 이 근처인 것 같은데.”
“이거, 원이 커서 정확한 위치는 안 보입니다.”
“잠깐. 한 마리가 아니에요! 원을 선택해 봐요!”
지은 씨의 말대로 빨간 원을 선택하자 근처에 있는 여러 놈들의 수당이 쭉 펼쳐졌다.
‘가까이 있어서 겹쳐 보였나 보네.’
[일당을 제출하고 무사히 퇴근하세요!]그나저나.
5,020, 1,900, 1,350.
왠지 익숙한 숫자인데…….
“어라, 근데 이거 위치가…….”
“응?”
“여긴데요, 형님?”
……뭐라고?
잠깐만.
이거 설마.
“……지은 씨 복지 포인트 1,900점이라고 했죠?”
“맞아요! 복지 포인트는 왜요?”
“재혁이는 1,350점이고?”
“예, 맞습니다!”
하…… 이런.
“이거, 사냥감이 마물이 아니네요.”
“예?”
“그게 무슨…… 앗! 설마!”
머리가 아파와 말없이 이마를 짚었다.
눈치 빠른 지은 씨는 곧 깨달았는지 소리를 질렀고.
“왜, 왜 그러십니까?”
“……나야.”
“예? 뭐가 말입니까?”
아직도 어리둥절해 있는 재혁이.
그래서 친절히 설명해 줬다.
“5천 점짜리 보스 몹.”
이 프로젝트, 메인 사냥감이 나라고.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