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Academy’s Battle God RAW novel - Chapter (396)
제396화
오늘 스미레는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냈다. 평소처럼 아카데미의 친구들과 방학을 보냈고 일본에 있는 가족들과 전화를 했으며 부실에서 맛있는 디저트를 만들어 먹었다.
평소처럼 웃고.
평소처럼 떠들고.
평소처럼 행복한 너무나 평범한 하루였다.
“하움, 스미레 엄마. 벨벳 잘 시간이 대써…… 벨벳 가튼 어린이는 8시면 잠에 들어야 해.”
소파에 앉아 있던 스미레는 벨벳이 옆으로 다가오자 싱긋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하움……. 스미레 엄마 동화책 읽어죠.”
벨벳은 여느 때처럼 동화책을 읽어달라고 했다. 스미레나 아델라의 이야기를 들으며 잠이 드는 건 벨벳이 가장 좋아하는 일이니 이것 또한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이렇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도 오랜만이네요.”
“벨벳은 무슨 책이든 좋아.”
그러나 문득.
스미레는 신유성이 전해준 동화책 한 권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건. 스미레를 위한 선물이다. 후후, 부디 벨벳과 재미있게 읽어주길 바라…….]그건 라플라스가 사라지던 순간.
스미레에게 남긴 책이었다. 하지만 스미레는 그 동화책을 좀처럼 펼칠 수 없었다.
물론 스미레도 라플라스가 남긴 너무나 읽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좀처럼 손이 가지 않았다.
어떤 이야기가 적혀 있을지 예상조차가지 않아 더욱 그랬다.
그래.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이별의 이야기를 건네지 않았으니까. 그래.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잠들면 이별도 없다.
그 사실을 무시하고 하루하루를 충실히 보내다보면 언젠가 돌아오지 않을까? 없었던 일이 될지도 모른다.
“스미레 엄마, 무슨 일 이써? 울 거 같은 얼굴이야.”
스미레는 걱정스런 벨벳의 물음에 도리도리 고개를 저으며 정신을 차렸다.
“그냥 잠깐 바보 같은 생각을 했어요.”
“헉…… 바보 가튼 생각?”
스미레는 포켓에서 동화책을 꺼냈다. 당연히 그건 라플라스가 남긴 동화책이었다.
제목은 마녀 이야기.
“헉 재밌겠다. 벨벳도 본 적 없는 동화야!”
벨벳은 스미레가 꺼낸 책이 서재에서 본 적 없는 동화라는 사실에 만족했다. 그게 라플라스가 남긴 책이라는 건 모르지만 책에서 익숙한 마나가 흘러나온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신기해. 벨벳은 알 수 있어. 책에서…… 엄마의 냄새가 나!”
“그런가요?”
“응!”
스미레는 라플라스가 마지막 선물에 그녀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스미레는 짧은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리고 마치 동화책이 보물이라도 되는 듯 조심스레 펼쳤다.
“옛날 옛적 어느 왕국에 한 소녀가 살았어요.”
동화책에 그려진 건 가난한 빈민가였다. 그 뒤에는 번쩍번쩍 멋진 왕국이 그려져 있지만 소녀가 사는 짚으로 덮인 허름한 나무집은 더없이 초라해 보였다.
“빈민가에서 태어난 소녀는 가난했지만 불행하진 않았어요. 소녀에겐 부모님과 여동생. 두 명의 남동생이 있었고 가족들은 너무나 화목했어요.”
이건 라플라스가 아직 인간이던 시절의 이야기다. 마녀는 ‘초월’의 경험을 한 인간이 선택을 받아 만들어 진다. 인간 시절의 감정을 잃고 전혀 다른 존재가 된다.
그러니 이건 라플라스와 별개의 이야기로 보아도 좋았다. 하지만 마녀인 라플라스도 한낱 인간에 불과 했다는 사실이 왜 이렇게 가슴 한편을 아릿하게 만드는 걸까?
“벨벳도 동생이 이쓰면 좋겠어.”
물론 이야기를 듣는 벨벳은 동생이 많다는 사실에 꽂힌 모양이었다. 벨벳에겐 오르카 같은 친구가 있으니 이젠 동생이 가지고 싶은 모양이었다.
“아…… 헤헤……. 분명 언젠간.”
스미레는 붉어진 얼굴로 페이지를 한 장 더 넘겼다. 동화책에 그려진 소녀의 동생들과 가족들의 모습은 마치 스미레의 가족 같았다.
스미레의 집도 소녀와 다를 바 없었다. 가난했지만 화목했고 행복했다. 스미레는 작은 것에 만족하는 법을 배웠다.
“맛있는 음식은 없었지만 가족과 함께 하는 식사는 뭘 먹든 행복했고, 예쁜 옷은 없었지만 소녀는 내면을 갈고 닦았어요.”
벨벳은 스미레의 목소리에 취해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잠에 들고 있었다. 스미레의 온기를 느끼며 품안에 기댄 벨벳의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엄마와 딸의 모습이었다.
“착한 마음씨를 가진 소녀는 어려운 사정에도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답니다. 결국 소녀의 이야기는 빈민가를 넘어 왕국 전체에 퍼졌어요.”
스미레는 말없이 동화책을 넘겼다. 라플라스가 어떤 사람인지 알 게 될수록 왜 라플라스의 편린과 자신의 동화율이 높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건 외모 같은 단순한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결국 소녀의 명성을 들은 성당의 사람들이 소녀를 찾아 왔습니다.”
라플라스가 살던 세계에선 각기 다른 여신이 있고 그걸 모시는 사람이 있다. 여신은 마녀와 반대 되는 존재다. 특별한 상징을 가지고 인간에게 축복을 내리는 존재다.
“소녀는 여신을 모시는 신도가 되면 힘든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 이야기에 단번에 제안을 승낙했습니다. ……빈민가에 살던 가족들은 소녀가 보낸 돈으로 하루 세 끼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녀가 되기 전 라플라스는 여신을 모시는 신도였다. 신앙을 가진 마녀란 있을 수 없는 존재지만 그때는 아직 인간이었다.
‘초월’의 경험을 하기 전이었다.
“하지만 소녀의 행복은 영원하지 않았어요.”
스미레는 다음 페이지를 펼쳤다.
“소녀가 살았던 빈민가에는 정체 모를 역병이 덮쳤습니다. 빈민가에 살던 소녀의 가족들은 역병을 피할 순 없었어요.”
신도가 되어 여신을 모시던 라플라스는 역병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라플라스가 태어나고 자란 빈민가는 이미 지옥이 되어 있었다. 인간이었던 라플라스가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긴 가족들은 역병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소식을 들은 소녀가 빈민가로 달려갔습니다. 빈민가에선 먼 곳에서도 보일 만큼 거대한 연기가 피어올랐고…‥ 소녀는 숨이 찰 정도로 달렸어요.”
스미레는 떨리는 손으로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커다란 화마는 빈민가를 삼키고 있었다. 귀여운 그림체로 그려진 동화책이 이렇게 섬뜩하다면 현실은 어땠을까?
“소녀는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달렸습니다. 잿더미가 된 집을 보았습니다. 소녀는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집을 보았지만 눈물조차…… 흐르지…… 않았어요.”
스미레는 힘겹게 페이지를 넘겼다. 거기엔 귀여운 그림체의 동화책이 아닌, 정말 사진으로 찍은 듯 선명한 라플라스의 모습이 있었다.
라플라스의 얼굴엔 절망이 선명했고 두 눈에선 검은 액체가 눈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소녀는 생각했어요. 이 또한 여신의 뜻일까요? 자신에게 주어진 시련일까요?”
라플라스는 지키려던 빈민가와 가족을 한순간에 잃었다. 믿고 있던 왕국과 여신에게 배신당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소녀는 그 시련을 넘지 못했어요. 왕국과 여신을 이해할 수 없었어요. 대신 하늘에 소원을 빌었답니다.”
인간의 이지를 까마득히 초월한 절망의 순간. 인류의 모든 기록이 새겨진 아카식 레코드는 기꺼이 손을 뻗는다. 인류의 역사 중 최고의 절망에 찬사를 보낸다.
“자신의 가족과 이웃. 소녀가 소중하게 여긴 모든 게 살아났으면 좋겠다고. 그 대가로 무엇을 잃어도 절대 후회하지 않겠다고.”
물론 절망으로 빚어낸 결과물에 희망이 있을 리는 없다. 절망은 당연하게도 절망을 낳는다. 그게 소녀가 원한 결과는 아니었지만 소녀는 후회하지 않았다.
고통 받은 자들의 여왕이 되어 기꺼이 왕국이 두려워한 역병의 마녀가 되었다.
“아…….”
스미레는 품에 기댄 벨벳을 보았다. 다행히 벨벳은 이미 꿈나라로 떠나 있었다.
스윽-
스미레는 자신도 모르게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어떻게든 차분해지려 애쓰며 들어주는 이가 없음에도 소리 내어 읽었다.
“마녀가 된 소녀는 자신의 이름을 버렸어요. 대신 라플라스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빈민가에서 시작된 시체들의 연회는 왕국을 집어삼켰다. 상대는 아카식 레코드에 선택받은 진짜 마녀다. 감히 변방의 왕국 따위가 상대할 존재가 아니었다.
“이게 라플라스 님이 마녀가 된 이유…….”
마녀가 된 인간은 인간을 초월한다. 감정은 물론 인간이 인간답기 위한 모든 걸 잃는다.
‘진짜’ 라플라스는 그 모든 걸 잃었다. 스미레가 만난 건 그 일부인 편린에 불과했다. 그러나 분명 그 소녀가 될 수 있는 미래였다.
만약 자신이 신유성을 만나지 못했다면 소녀처럼 절망을 겪었다면 지금쯤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자신과 마녀가 된 라플라스를 정말 다르다 말할 수 있을까?
“죄송해요. 라플라스 님…… 저, 더는…… 읽을 수가 없어요.”
척-
결국 스미레는 동화책을 덮었다. 라플라스가 마지막으로 남긴 유품이었지만 도저히 읽을 수 없었다. 더는 읽을 수 없었다.
마녀가 되어 왕국을 몰살시킨 라플라스를 옹호하려는 건 아니지만 스미레의 눈에선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그건 라플라스는 차마 흘리지 못했던 인간의 눈물이었다.
저벅저벅.
신유성은 그런 스미레에게 말없이 다가왔다.
“아, 유성 씨…… 언제부터…….”
당황한 스미레는 언제부터 보았는지, 언제부터 들었는지 물었지만 신유성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스미레에게 다가와 눈물을 닦아주었다.
“슬퍼할 필요 없어. 스미레. 라플라스는 마지막 순간 누구보다 행복해했어. 그건 스미레 네가 만든 선물이자 변화야.”
스미레는 신유성의 위로에 훌쩍이며 일어났다.
“아콩! 캬, 캬항…….”
덕분에 소파에서 떨어진 벨벳은 데구르르 구르더니 슬쩍 두 부모님의 눈치를 보았다.
그리곤 신유성과 스미레가 서로를 향해 보내는 강렬한 눈빛에 고개를 끄덕였다.
‘벨벳은 방에서 자야게써.’
벨벳이 눈치 빠르게 사라지는 동안 신유성은 스미레의 손을 잡았다. 그리곤 함께 동화책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 아, 스미레. 마지막 대화조차 하지 못했구나. 그러니 대신 이 메시지를 남기마.
그러자 마나를 연료 삼아 생생한 라플라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메시지는 언제나 일방적이다. 정말 살아 있어 서로 소통하거나 대화를 할 순 없었다.
그래도 그걸로 충분한 걸까
– 메시지를 남기는 이 순간에도 처연하게 눈물을 짜고 있는 네 모습이 선명하구나.
스미레는 라플라스의 목소리에 훌쩍임을 멈췄다.
– 명심하여라. 인간의 인생은 슬퍼하기엔 너무나 짧다!
왜 자신은 이별은 모두 슬프다고 했을까? 스미레는 그게 바보 같은 생각이라는 걸 깨달았다. 멋진 이별도 있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 그러니 활짝 웃거라!
그러니 스미레는 라플라스의 충고대로 해맑게 웃었다. 자신의 옆에 신유성의 손을 꽉 잡았다.
– 한평생 사랑하거라.
스미레는 신유성을 보았다.
– 부디, 내 몫까지 행복하거라.
귓가에 라플라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겉모습은 비슷해 보여도 라플라스라면 자신을 보며 어머니처럼 인자하게 웃고 있겠지.
“저 유성 씨……. 저, 이런 말을 하기엔 너무 울어서 눈도 붓고 바보 같은 얼굴이지만…….”
신유성은 고개를 저어 무언가를 말하려던 스미레의 이야기를 끊었다. 그리곤 오히려 먼저 이야기해주었다.
“아니. 무척 예뻐 스미레.”
“유, 유성……. 읍…….”
자신이 먼저 얼굴을 가까이 대어 당황한 스미레에게 입술을 맞춰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