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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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다 된 밥에 재 뿌리기
80# 다 된 밥에 재 뿌리기
클럽 홀에 복귀한 노구덕을 가장 먼저 반긴 것은 그가 기르는 강아지와 고양이…가 아니라, 소피아와 신소율이었다.
“주인니임!”
“아저씨이이이!”
노구덕은 양 팔에 진드기처럼 찰싹 달라붙은 두 여인을 두고 난처한 한숨을 내쉬었다. 목에 딱 달라붙은 밴드를 단 신소율은 글썽거리는 눈으로 자길 쳐다보고 있었고, 큰 귀를 우울하게 축 늘어뜨린 소피아는 단단히 붙들어 맨 두꺼운 팔뚝에 연신 몸을 비비적거리고 있다. 꼬리만 없다 뿐이지, 정말 강아지와 고양이 같은 두 여인이었다.
“지금 회포를 풀 시간이 없다. 바로 회의실로 가자. 조만간 연맹 놈들이 들이닥칠 거야.”
“말도 없이 가출하더니 고작 그게 첫마디예요? 이 민폐 아저씨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다고요!”
“자자, 소율아, 주인님 말씀이 옳아요. 그리고 눈, 비는 또 뭐니? 요 일주일 간 날씨가 얼마나 화창했는데….”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리고 언니 행세하지 말랬잖아! 이 울보가!”
“우울보? 하아… 그 옛날 일을 아직도… 사골 냄새가 진동을 하는 것 같아.”
“뭔 소리래? 사골을 먹어본 적도 없는 사람이! 네가 사골 맛을 알아?”
만나자마자 요란하게 다투는 두 사람을 보니, 오히려 적잖이 안심이 되는 노구덕이었다. 클럽 홀에 연금을 당하고, 다가온 선거에서는 거의패배가 확정된 분위기다. 그럼에도 이렇게 활기찬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 고마웠다.
“어서 들어가자. 유진이는?”
“언니는 집무실에서 아저씨 보여줄 서류를 정리하고 있어요. 이제 거의 다 끝났을걸요.”
“그래…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구나.”
노구덕은 사막처럼 황량한 클럽 홀을 살피며 말했다. 평소라면 소피아와 신소율의 야단법석에 몇 명은 무슨 일인가 구경을 나올 법 한데도, 지금의 클럽 홀은 쥐 죽은 듯 고요하기만 했다.
“주인님, 사용인들이랑 다른 헌터들은 일단 다 내보냈답니다. 연금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데, 괜히 그들까지 불이익을 받을 필요는 없으니까요. 아마 다들 근방의 숙소에 투숙해 있을 거예요.”
“그래? 잘했다.”
그때, 노구덕의 왼팔을 붙잡고 있던 신소율은 뒤에서 우두커니 인형처럼 서 있는 데모나에게 다가가 손가락을 내밀었다.
“데모나 언니,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고요. 이제 이런 짓 안 한다고 약속해요.”
“…….”
“약속 안 할 거예요? 다들 얼마나 걱정했는데!”
신소율의 가느다란 새끼손가락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데모나는 이내 고개를 저으며 그녀의 손가락을 뿌리쳤다.
“엑?”
설마 이토록 매정하게 거부당할 줄은 몰랐던 신소율은 상처 입은 토끼 같은 눈으로 데모나를 쳐다봤다.
“너무해….”
“무식하기는… 마녀 앞에서 함부로 약속을 입에 담는 게 아냐. 마녀의 맹세는 천금과도 같은 가치가 있으니까. 한낱 네 손가락에 그 정도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해?”
“그, 그런 건 아니지만…….”
“흥. 천둥벌거숭이 같으니라고.”
망연자실. 매몰차게 매도를 당한 신소율의 큰 눈망울에 억울함과 서운함이 밀물처럼 스며들려는 찰나, 그녀의 눈동자가 크게 치떠졌다. 갑자기 약지를 살짝 깨문 데모나가 손가락에서 새어나오는 핏물을 그녀의 손바닥 가운데에 콕 찍어 혈흔을 남긴 것이다.
신소율은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행동에 어리둥절해하며 데모나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데모나는 이미 그녀의 곁을 냉랭히 지나쳐버린 뒤였다.
앞에서 두 사람의 행동을 빠짐없이 지켜보고 있던 소피아는 데모나에게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냈다.
“호오오… 방금, 혈통에 대고 맹세를 한 건가요? 약식처럼 보이긴 하는데… 괜찮다면 제 손바닥에도 기념 삼아 하나 찍어줄래요? 아, 아니면 새끼손가락 걸기도 괜찮고요. 제 손가락에는 천금의 가치가 있거든요.”
“꺼져.”
소피아의 능글맞은 요청을 단번에 묵살해버린 짜증이 잔뜩 서린 얼굴로 노구덕을 채근했다.
“뭐해? 바쁘다며?”
“음.”
자기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던 노구덕은 데모나가 보기 전에 얼른 표정을 수습한 뒤, 세 여인을 대동한 채 계단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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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왔어.”
“네. 잘 돌아오셨어요.”
임유진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왜 아무 말도 남기지 않고 혼자 떠났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책망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문을 열고 들어온 노구덕에게 다가와, 그의 지친 몸을 힘껏 안아줄 따름이었다.
“오너는 복 많은 사람이군.”
“허허… 요즘 시대에 저런 양처(良妻)가 어디 있겠나.”
“저기, 두식아. 내가 저러면 어울릴 것 같아?”
“…아닙니다. 누님은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넓은 집무실에는 임유진을 포함해 헨더슨, 가이탄, 나타샤, 이두식 등이 모여 있었다. 노구덕이 복귀한다는 소식을 접한 임유진이 미리 주요 멤버들에게 연락을 돌려 소집을 한 것 같았다. 그들은 노구덕이 무사히 돌아올 줄 알고 있었다는 듯, 크게 동요하는 빛 없이 그에게 인사를 건네며 귀환을 반겨주었다.
“당신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소피아, 저 아이가 가장 먼저 느낄 수 있었을 테니까요. 덕분에 다들 믿고 기다릴 수 있었죠.”
“미안하다. 좀 더 빨리 돌아오지 못해서.”
“아뇨. 이제라도 돌아오셔서 다행이에요. 어차피 이쪽의 승운(勝運)은 오로지 주인님께 달려 있었는걸요. 그리고, 만약 급한 일이 발생했다면 제가 자해를 해서라도 주인님을 불렀을 거예요.”
임유진과 소피아의 부연설명을 들은 노구덕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노구덕에게 불상사가 생기면 곧바로 소피아가 반응하듯, 소피아의 몸에 무슨 일이 생기면 노구덕도 바로 알 수 있었다. 소피아가 ‘부른다’고 말한 건 바로 그런 의미였다.
간단하게 멤버들과 해후를 나눈 노구덕이 비어있는 자기 자리에 앉으려는 그때, 문밖에서 우당탕탕 거친 소요가 일더니 한 무리가 문을 박차고 뛰어 들어왔다.
“아빠아아앗!”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선두의 임가희였다. 그 뒤로, 다소곳하게 두 손을 모아 인사를 올리는 소냐와, 삼남매처럼 붙은 채 어정쩡하게 서 있는 안세희, 안세영, 김진솔 등의 앳된 젊은 층이 보였다.
“대부님. 무사히 귀환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형님…. 돌아오셨군요!”
“그래, 걱정을 끼쳐서 미안하다. 이런, 이런. 가희야, 다 큰 처녀가 이러면 안 되지.”
뒤늦게 등장한 젊은이들의 인사를 받아주던 노구덕은 곤란한 기색을 보이며 목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임가희를 토닥였다. 하지만 임가희는 그의 품에서 떨어지기 싫은 듯, 세차게 도리질을 하며 칭얼거렸다.
“그치만… 엄마도, 나도 많이 걱정했단 말야. 잠깐만 이렇게 있으면 안 돼?”
“가희야, 이리 오렴. 아빠가 곤란해 하시잖니.”
“히잉…. 알았어.”
보다못한 임유진이 준엄하게 타이르자, 임가희는 아쉽게 눈을 깜박이며 깍지를 풀었다. 노구덕에게는 한없이 어리광을 피우는 임가희도 제 어머니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영 미련이 남는지, 임유진 쪽으로 걸어가면서도 자꾸 그가 있는 쪽을 힐끗거리는 임가희였다.
임유진에게 고맙다는 눈인사를 보낸 노구덕은 곧바로 회의를 시작하기 위해 헛기침을 하며 목을 풀었다.
“허흠… 그러면…… 응?”
안건을 꺼내려던 노구덕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임가희의 뒤에 서있던 소냐의 얼굴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소냐의 표정은 평소와 다름없이 차분하고 무덤덤했지만, 애써 관리한 표정과는 달리, 여자아이의 길쭉한 귀는 뭔가에 크게 실망한 것처럼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소피아도 그렇고, 소냐도 그렇고, 이 엘프라는 종족은 은근히 이 귀 덕분에 속내를 알기 쉬운 측면이 있었다.
터벅터벅 소냐에게 다가간 노구덕은 두터운 손을 조그마한 머리 위에 살포시 얹었다. 비단결처럼 보드라운 머리카락의 질감과 함께, 따스한 정수리의 체온이 느껴졌다.
애꿎은 바닥만 바라보고 있던 소냐는 노구덕의 뜻밖의 행동에 놀란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보면 볼수록 소피아와 쏙 빼닮은 맑고 예쁜 눈동자라고, 노구덕은 생각했다.
“얘야, 늦어서 미안하구나.”
“…아니요…….”
귓불을 붉히며 수줍게 답하는 소냐를 보니 뭔가 기분이 이상했지만, 노구덕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지나쳐버렸다.
“그런데… 지현이가 보이지 않는군.”
“지현이는 아직 혼수상태예요.”
임유진은 박지현의 상태를 전하며 데모나를 쳐다봤다. 그녀의 시선을 받은 데모나는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단순한 혼수상태가 아니라 영성(靈性)을 키우고 있는 중이니까…. 억지로 깨울 필요는 없어. 아마 깨어나면 내게 고마워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다행이군.”
박지현의 문제까지 대충 일단락을 지은 노구덕은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서둘러 속에 품고 있던 이야기들을 꺼내놓았다.
“여러분이 제게 묻고 싶은 게 많을 줄은 압니다. 일주일 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여기 데모나가 자리를 비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이런 것들이겠지요. 저도 자세한 상황을 모르는 만큼 여러분께 묻고 싶은 게 많습니다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으니, 본론만 간단히 이야기하겠습니다.”
좌중의 시선이 잠시 데모나의 얼음장 같은 얼굴로 향했다가, 다시 노구덕의 입으로 모여들었다.
“데모나가 부득이한 이유로 아이리스를 떠났던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클럽을 배신한 것은 아닙니다. 그녀는 바이론이 아이리스를 노린다는 것을 알고, 그 교섭을 위해 대신 나섰던 것뿐이죠. 왜 굳이 데모나가 나서야만 했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드리자면, 바이론은 그녀의 친부이기 때문입니다.”
“…허.”
“아…!”
가지각색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데모나와 바이론의 관계를 알고 있는 것은 노구덕을 비롯한 그의 여인들 뿐, 이곳에 모인 대부분의 멤버들은 흉악한 범죄자인 바이론에 대해서는 알고 있어도, 데모나가 바이론의 딸이라는 건 모르고 있었다.
멤버들의 반응을 확인한 노구덕은 미리 진실과 거짓을 적당히 섞어 짜 맞춰 놓은 각본을 천천히 읊기 시작했다. 이들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구태여 데모나의 집안사정을 시시콜콜 늘어놓을 까닭은 없으니까.
“그가 비록 데모나의 아버지이긴 하지만, 데모나는 그의 범죄행각과는 일절 관계가 없습니다. 그건 데모나를 옆에서 지켜본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실 테지요. 심지어 바이론이 저지른 오키도의 대참사 때에도 데모나는 우리와 함께 그에 맞서 싸우기까지 했으니까요.”
그 말에 수긍하듯, 당시 현장에 있었던 나타샤와 이두식의 얼굴이 위아래로 흔들리는 게 보였다.
“이번 일은… 운이 좀 없었습니다. 하필이면 데모나가 바이론과 접선을 한 그날, 그 은신처를 마티아스의 경무대에 들켜버리고 말았죠. 그리고 보다시피, 그건 마티아스에게 좋은 구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
“각설하고, 먼저 이 영상수정을 보도록 할까요. 마티아스의 경무대가 어떤 위인들로 이루어져 있는지… 그 파렴치함을 증명할 수 있는 좋은 증거가 될 겁니다. 이 또한 데모나의 협력 덕분에 얻어낸 성과지요.”
간단히 말을 마친 노구덕은 허리춤의 주머니에서 조그마한 영상수정을 꺼냈다. 데모나가 그에게 전한, 게돈과 경무대의 후안무치한 행각이 적나라하게 녹화되어 있는 영상수정이었다.
“그럼…….”
테이블 위에 잘 보이도록 영상수정을 올려놓은 노구덕은 마력을 주입해 수정을 작동시켰다.
그러자 은은한 빛을 머금은 영상수정은 곧 녹화되어 있는 영상을 정직하게 내보내기 시작했다.
-아흐윽…! 너, 너무 깊어! 히그읏…!”
-데모나…!”
…영상수정이 내보낸 것은 나체의 두 남녀가 격렬히 몸을 섞고 있는 장면이었다.
탁.
노구덕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손을 움직여 영상수정을 꺼트렸다. 그 아연실색한 얼굴 위로, 식은땀이 송골송골 잘게 돋아났다.
‘뭐, 뭐지? 이게 무슨…!’
“…….”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고도로 발달된 감각을 통해, 이곳에 모인 모두가 할 말을 잃고 넋이 나가 있는 것이 느껴졌다. 아니, 모두가 넋을 잃은 건 아니었다. 그의 등 뒤로, 타는 듯이 무시무시한 시선이 목덜미를 사정없이 찔러 대고 있었으니까.
“…여보?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설명을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착 가라앉아 있는 임유진의 음성은 북풍한설보다 더한 한기를 발하고 있었다.
…노구덕은 차마 뒤를 돌아보기가 두려워졌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보셨다면 추천/코멘 부탁드립니다.
뜻하지 않은 조기 성교육…
영상수정이 이런 해프닝을 일으킨 것은 일단 쥔공이 노친네 답게 현대문명의 이기를 다루는 데 익숙치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노친네라는 건 농담이고, 마력을 주입해 작동시키는 물건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거죠. 영상수정이라는게 기능마다 세세히 마력주입 정도를 조절해야 하거든요. 아시다시피 노구덕이 마력을 얻은건 고작 2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하..
덧)데모나의 심리에 대해서는 이후 간간이 개인적 생각이나 주변인물들과의 대호를 통해 천천히 풀어나갈 생각입니다. 애초에 처음 결심대로 죽을 작정이었다면 구더기 뒤를 따라 나오지 않았겠죠?
호야[虎夜] / 이대로 10을 채우시는 건가..
월병인 / 아마 다음편에 대략적으로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asd메이지 / 허흠… 그렇게 말씀하시면 신사력 운운한 작가가 심히 낯부끄러워지는군요.
은신설야 / 아마 반했다기 보다는 적당히 의탁할 수 있는 상대로 보고 있는 게 맞을 것 같네요! 처음의 실렌처럼요!
벌레 / 사실 편집.. 그걸 두고 고민입니다만, 뭐 어떻게 되겠나요. 일단 다음편 쓰면서 천천히 생각해봐야겠습니다.
보쌈 / ??? 이런 닉네임을 하시고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니오그타 / 파리의 초감각은 공기 진동을 통해 감지를 하는건데 영상수정은 뭐 그런거 없으니까요.. ㅎㅎ
Na-Ru / 일단 유진이의 분노부터 잠재워야…
†아마테라스† / 담지 말고 다 마셔버리면 안되나요??
김도리131 / 넵. 차후 이야기에서 천천히 풀어나갈 생각입니다. 아마 초창기 실렌의 심리와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네요.
그눈건 / 까를..??? 의미 불명… 해석.. 필요…
………。 / 데모나는 츤데레 포지션을 굳건히 지켜야죠. 욕데레인가?
14C2A58H2 / 이걸 편집을 할지 아니면 그냥 증거고 뭐고 그냥 소장용으로 할ㅈ.. 작가도 고민입니다
아토므스크 / 추천 코멘만으로도 작가는 만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