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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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남부 지구로
“내 이름은… 레이나드다.”
“좋아, 레이나드. 자네는 헌터인가?”
“그, 그렇다. 나는 프리 헌터로… 자, 잠깐만! 그 전에 너희들이 누군지부터 밝혀라!”
순순히 응답하던 레이나드는 아차 싶었던지, 급격히 얼굴을 굳히며 일행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쥐새끼가 아무리 앞니를 드러내봤자 호랑이 앞에서는 귀여운 장난에 불과할 뿐이다. 노구덕은 레이나드의 위협 아닌 위협을 피식거리며 받아넘겼다.
“우리가 누군지가 그리 중요한가?”
“뭐, 뭐라고?”
“프리 헌터라니… 웃기는군. 주둥아리를 놀리더라도 상대는 보고 놀려야지. 제대로 대답하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머리통을 부숴 주겠다.”
“무, 무슨….”
“남부에서 리버들이 준동하고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 네놈도 같은 패거리겠지?”
“……!”
레이나드의 눈알이 놀란 원숭이처럼 크게 떠지자, 노구덕은 내심 쾌재를 불렀다.
‘제대로 물었군.’
혹시 몰라 미끼를 던졌는데, 그것이 단번에 물고기를 낚은 것이다.
남부의 미개척지대에서 리버들이 군집하고 있다는 정보는 지난 연맹총회 때 퀸젤에게서 들은 내용이다. 만약 상대가 리버라면 그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했는데, 그것이 정통으로 들어맞은 셈이었다.
“다, 당신은 대체…?”
레이나드의 눈에는 노구덕이 흡사 귀신처럼 보였다. 리버들이 은밀하게 모여들고 있다는 것은 극비 중에서도 극비. 일반 헌터들은 까맣게 모르는 얘기였다. 그런 사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거론하는 상대라면, 필시 평범한 인물은 아닐 터. 그리 생각하자 상대가 더욱 두렵게 느껴졌다.
“나는 이번 일의 진상 조사차 파견된 연맹위원이다.”
“여, 연맹위원? 허어업!”
긴가민가하던 레이나드는 노구덕이 금빛 배지를 눈앞에 들이대자, 금방이라도 게거품을 물 것처럼 경기를 일으켰다. 실제 그는 엄청난 충격을 받고 공황 상태에 빠진 상태였다.
‘지랄! 염병! 미치겠구나! 연맹위원이 이딴 촌구석에는 왜?’
잘못 걸려도 한참 잘못 걸렸다. 배지의 진위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자신을 단번에 제압하는 실력이나 특급 정보를 알고 있는 사실에 비추어 봤을 때, 그의 신분이 진짜일 가능성은 충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강자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레이나드. 이제 좀 자기 처지가 어떤지 자각이 좀 생겼나?”
“…….”
“내 질문을 무시하는 건 이번 한 번이 마지막이야. 한 번만 더 날 번거롭게 한다면 바로 연맹총단으로 압송하겠다. 연맹에는 네 입에서 진실을 토해내게 만들 수단이 꽤 많거든.”
레이나드의 얼굴이 숯검댕이처럼 거무죽죽하게 변했다. 연맹총단으로 압송한다니, 절대 안 될 말이었다. 체제에 반하는 리버들에게 있어 그곳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생지옥. 연맹총단에 압송된 리버는 세포 하나하나까지 낱낱이 해부된 다음, 죽어서 영혼조차 빠져나오지 못한다고 전해진다.
리버들 사이에 퍼져 있는 무시무시한 괴담을 상기한 레이나드는 금세 태도를 바꾸어 바닥에 거북이처럼 넙죽 엎드렸다. 그리곤 노구덕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간절히 애걸하기 시작했다.
“제발… 그, 그것만은 절대 안 됩니다!”
“레이나드… 그걸 결정하는 건 내가 아니라 자네야. 무슨 소린지 알겠나?”
“알겠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거라면 뭐든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렇잖아도 오랜 도망생활로 심신이 피폐해져 있던 레이나드에게 노구덕의 공갈을 이겨낼 힘은 남아있지 않았다. 삽시간에 정신이 무너져버린 레이나드는 비루한 얼굴에 눈물까지 줄줄 흘려대며 말문을 열었다.
불쌍한 레이나드. 그는 본래 남부 출신의 헌터로, 끝없는 탐사만 반복하는 헌터의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리버가 된 케이스였다. 리버가 된 레이나드는 몇몇 뜻이 맞는 동지들과 함께 약탈을 일삼으며 생계를 유지했고, 그렇게 나름 경력이 쌓이자 제법 규모가 있는 클랜에도 들어가게 되었다.
그가 들어간 클랜의 두목은 하몬이라는 자였는데, 사막지대에선 ‘불사신 하몬’이라는 별명으로 꽤 악명을 떨치고 있는 인물이었다. 하몬이 이끌고 있는 클랜은 레이나드 같은 고만고만한 리버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하며 순식간에 세를 불렸는데, 그 규모가 백 단위를 넘어가자 하몬에게 어떤 남자가 찾아왔다고 한다.
의문의 방문자와 하몬 사이에 어떤 말이 오갔는지, 레이나드 같은 말단이 알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 남자가 떠난 뒤, 하몬은 기존의 근거지를 버리고 대륙의 최남단으로 이동했다. 이른바 미개척지대로 알려진 사막의 최심부에 제 발로 들어간 것이다.
상당수의 부하들이 불만을 제기했지만, 난폭한 독재자인 하몬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남쪽으로 가야한다는 맹목적인 믿음을 지니고 있었다. 하몬이 피의 숙청을 불사하면서까지 찾아간 미개척지대. 그곳에는… 레이나드가 생각지도 못한 별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떼를 지어 다니는 흉포한 카름들? 사람이 살지 못하는 열악한 환경? 미개척지대에 대한 소문은 여러 가지였지만, 정작 직접 들어가 본 미개척지대에는 앞서 말한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곳에는 물경 수천에 달하는 군대가 있었다. 그것도 대부분이 남부에서 활동하던 유명한 범죄자들이거나 악명을 떨쳤던 리버 클랜들이었다. 세간에는 모두 죽거나 토벌되었다고 알려진 자들. 그런 이들이 거짓말처럼 하나로 뭉쳐 거대한 군세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미개척지대의 주둔지에는 물자가 풍부했고, 원할 때마다 안을 수 있는 여자도 얼마든지 있었다. 정체불명의 군세에 합류한 하몬은 곧장 백부장으로 임명이 되었고, 그 휘하의 리버들은 그대로 그의 부대에 속하게 되었다.
정기적으로 약탈을 나가야했던 기존 리버의 생활에 비해, 모든 것이 안정된 삶이었지만 천성적으로 자유분방한 레이나드는 엄격해진 군율을 견디지 못했다. 뒤바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던 그는 결국 몇몇 동료들을 모아 탈영을 결행했는데, 도중에 동료들은 모두 죽어버리고 결국 그 혼자만 살아남고 말았다.
주둔지로부터의 추격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며, 살기 위해 도망치다 사막을 횡단해 접경 도시인 이곳까지 흘러들었다는 사연을 마지막으로 그의 기나긴 설명이 끝났다.
“…….”
레이나드의 이야기를 들은 일행은 잠시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데모나와 브리트라는 뭔가 다른 생각을 하는 눈치였고, 임유진은 말로만 듣던 ‘리버 군대’의 실체를 간접적으로 확인하고 나자 상당한 충격을 받은 듯했다.
‘퀸젤의 말이 정말이었군. 그런데… 결국 이놈과 브리트라의 일부는 무슨 관계가 있는 거지?’
레이나드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아무리 되새겨 봐도 브리트라와의 연관성은 찾을 수 없었다. 의아해진 노구덕은 딴생각에 잠겨 있는 브리트라의 이마를 콩콩 두드렸다.
“이봐.”
“으읏! 무슨 짓이냐! 이 무엄한 것!”
“무엄하긴? 주인에게 바락바락 소리 지르는 네가 무엄한 거지. 어쨌든 그래서 저놈은 뭐냐? 네 ‘일부’ 말이다. 가지고 있는 거냐?”
노구덕이 바닥에 엎어져 멀뚱멀뚱하게 고개를 들고 있는 레이나드를 가리키자, 브리트라는 옅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닌 것 같구나.”
“아니라고?”
“내 처음에 말하지 않았느냐? 존재감이 너무 미미하다고. 아무래도 저 녀석은 내 일부가 발휘한 권능에 스친 것 같다.”
“흠….”
“내, 저 녀석에게 물어볼 게 있느니라. 잠시 기다려 보거라.”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노구덕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내던 레이나드는 돌연 의아하게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와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던 백금발의 아름다운 소녀가 종종걸음으로 자신에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고압적으로 팔짱을 낀 소녀는 아침 이슬이 어린 백합처럼 청초한 미를 뽐내고 있었다. 헌데, 소녀의 불그스름한 입술에서 튀어나온 말투는 노인네의 그것처럼 늙수그레하기 짝이 없었다.
“레이나드라고 했더냐? 내 긴히 물어볼 게 있으니, 솔직하게 대답해주길 바란다.”
“예? 아, 예….”
잠시 기가 찬 얼굴로 브리트라를 올려다보던 레이나드는 슬며시 표정을 수습했다. 상대가 꼬맹이 소녀이건 뭐건 간에, 이 자리에 지금 자신이 함부로 대할 사람은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은 것이다.
“물을 흡수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느냐?”
“…물을 마시는 사람이라면 많이 봤습니다만…?”
레이나드가 질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멍청히 되묻자, 답답해진 브리트라는 작은 가슴을 쿵쿵 두들기며 버럭 성을 냈다.
“에잇! 그게 아니고, 손바닥으로 물을 흡수하는 인간 말이다! 꼭 물이 아니더라도 좋다. 뭐 생각나는 게 없느냐? 잘 생각해 보거라. 넌 분명히 만난 적이 있을 것이다!”
브리트라의 성화에 찔끔 놀라 고민을 거듭하던(누가 봐도 고민하는 척으로 보였지만) 레이나드는 갑자기 무릎을 치며 소리쳤다.
“아! 짚이는 게 있습니다!”
“오오! 역시로구나! 그래, 어떤 인간을 보았느냐?”
“사막에는 커다란 선인장을 잘라, 우기(雨期)에 빗물을 보관해두는 부족이 있지요. 수분을 잔뜩 흡수한 선인장은 그 물맛이 그렇게 좋다고 합니다. 혹시 그걸 말씀하시는 것인지…?”
“이익…! 멍청한 녀석이로고!”
콩!
분기를 참지 못한 브리트라는 크게 씨근덕거리며 레이나드의 정수리를 한 번 쥐어박았다. 그 하얗고 앙증맞은 손에 꿀밤을 얻어맞은 레이나드는 바보처럼 멍하니 앉아 있다가, 또 다시 손뼉을 치면서 크게 소리쳤다.
“아, 아아! 호, 혹시 이걸 말씀하신 겁니까?”
“됐도다! 지렁이만도 못한 네 녀석의 말은 신빙성이 없구나!”
“불사신 하몬! 그자가 사람의 생기(生氣)를 빨아들이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냉랭히 몸을 돌리던 브리트라의 걸음이 우뚝 멈추고, 웃음을 참으며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일행의 시선이 레이나드의 경망스런 주둥이에 쏠렸다.
“…생기를 빨아들인다고 했느냐?”
“예엡! 하몬의 부하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자는 ‘악마의 오른손’을 이용해서 사람의 생기를 흡수하는데, 그에게 당한 인간은 순식간에 미이라처럼 말라붙어 버립니다! 반대로, 생기를 흡수한 하몬은 아무리 심한 상처를 입어도 금방 몸을 회복하지요! 그자가 불사신이라도 불리는 것도 그 ‘악마의 오른손’ 덕분입니다!”
하몬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브리트라의 얼굴에 파릇파릇한 생기가 감돌았다.
“그으래? 그 악마의 오른손은 어떻게 생겼더냐?”
“그게… 별로 평범한 사람과 다를 건 없습니다. 다만 손바닥에 뱀 모양의 문양이 새겨져 있다는 것 외에는…….”
“바로 그것이다!”
유레카! 라고 외치듯 빽 소리를 친 브리트라는 신바람을 내며 뒤편의 노구덕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찾았다! 찾았도다!”
“뒤에서 다 들었으니 좀 진정해라. 그러니까 그 하몬이란 녀석이 네 일부를 가지고 있다는 거냐?”
기뻐서 어깨까지 들썩이던 브리트라는 노구덕의 반응이 생각보다 시원치 않자, 금세 김이 빠진 듯 싱거운 표정을 지었다. 쌔무룩하게 입술을 삐죽인 그녀는 흥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십중팔구는 그럴 것이다. 내 이명을 잊었느냐?”
“이명?”
“나는 세상 모든 물을 먹어치우는 검은 뱀의 화신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아, 그랬던가?”
“으으으으! 그대는 이 몸을 좀 더 존중할 필요가 있다! 시정을 요구한다!”
“고려하도록 하지. 그래서?”
끓는 주전자처럼 부르르 몸을 떤 브리트라는 노구덕에게 날 선 눈초리를 보내다, 이내 힘없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내 일부에게 나누어 준 것은 흡수(吸水)의 권능이다. 본질은 물을 빨아들이는 것이지만, 조금만 응용하면 인간의 생기를 흡취하는 것도 가능하다. 인간 또한 대부분이 물로 이루어진 생물이니.”
말을 들어보니 브리트라는 이 권능을 이용해 비를 내리거나 호수를 만드는 등, 자신을 수호신으로 떠받들던 부족에게 여러 이적을 행한 모양이었다. 그녀가 자신이 지닌 가장 강력한 권능을 뚝 떼어준 것도, 지리멸렬한 부족이 생존하는데 ‘흡수의 권능’이 가장 필요할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막강한 권능이, 뜬금없게도 범죄자들로 이루어진 군대의 백부장, ‘불사신 하몬’의 수중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이것 참… 골치 아픈 상황이로군.”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은 노구덕은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쥐어뜯을 머리라도 있다면 한결 나을 텐데, 그럴 머리도 없는 민대머리인지라 더욱 짜증이 났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보셨다면 추천/코멘 부탁드립니다.
자정 전후해서 한편 더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월병인 / 뱀 표식…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asd메이지 / 소율이 절대 쩌리가 아닙니다 ㅠㅠ 나중엔 소율이도 강화의 기회가 있으니까요!
은신설야 / 점점 코멘이 개성발랄해지시는군요… 다음 기대합니다..
니오그타 / 옆에 맛있는 떡들이 있는데 왜 참아야하는 거죠??
노여연 / 저녁에 한편 더 달리겠습니다! 쿠폰 감사합니다~!
kil12 / 모고르 족 입장에서는 찢어죽일놈..?
불타는고기 / 3처 4첩은 알았는데 그 뒤는 또 몰랐네요. 하렘은 뭐.. 그때 보시면 아시겠죠?
가식적썩소 / 도끼 재능이 없다고 전해라~!
코카콜라중독 / 에이 유부녀는 귀엽지 말란 법 있나요!
호야[虎夜] / 일침녀 ㄷㄷ
북치네 / 감사합니다! 한편 더 달릴게요~!
무꾸914 / 리버 쓸어버리기엔 물량이 너무…
벌레 / 전쟁! 전쟁이다!
연북갤 / 그 갭모에가 매력을 만드는 거죠…
펄미스트 / 떡국… ㅋㅋㅋㅋ 표현력에 웃고 갑니다
smxdmdmd / 가능성이야 언제든지 열려 있지요!
신수[神手] / 아주 재밌는 상황이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