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shipping lord RAW novel - Chapter (129)
129화 – 입찰 경쟁(2)
울산과 거제, 통영의 눈길이 일본 도쿄에 자리한 도시상선 본사를 바라보길 2주째. LNG선을 건조할 조선사를 빨리 결정해 달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도시상선도 엄청나게 부담스러운 그 눈길에 빨리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고 있었다. 도시상선의 하나오카 짓타 상무는 그 압박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 결론을 내서 그 압박에서 해방되리라 마음을 먹었다.
“2주 동안 고생 많았다. 자, 이제 최종 후보를 고를 차례다.”
짓타 상무는 LNG선 발주 점검위원회장으로 마지막 회의를 주재했다.
이날 회의에서 가장 적합한 후보를 골라 손혁 회장에게 보고하고 결재를 맡으면 이 험난한 여정도 일단 종지부를 찍는다. 물론, 그 뒤로도 해당 업체와 지난한 협상이 이뤄져야 하지만.
“상무님. 종합적으로 검토했을 때 유일조선이 가장 경쟁력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성급하게 판단하지 말고! 왜 그런지 차근차근 설명해 봐.”
유일조선을 방문해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설명을 들어야 했던 모리바야시 겐진은 자기도 모르게 유일조선을 강조한 것에 뜨끔했다. 그러나 질타 정도로 생각이 바뀔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하며 말을 이어갔다.
“네. 일단 화물창 방식을 검토한 결과 멤브레인형의 No.96 타입이 더 적합하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미국에서 여기까지 오는 거리나 과정 등을 고려했을 때 말이죠.”
“뭐 그래. 가격경쟁력이 좀 떨어지긴 하지만, 종합적으로 따져봤을 때 아무래도 No.96 타입이 낫겠지.”
“No.96 타입으로 건조가 가능한 곳은 지금까지는 두 곳뿐입니다. 우진조선은 No.96, 대흥과 순양중공업은 마크3 타입에 집중하고 있고, 유일조선은 둘 다 가능합니다.”
“가능한 타입이야 그렇지만, 우리가 No.96 타입으로 결정했을 때 대흥중공업이 못 하겠다고 하겠어? 거기도 준비하겠다고 하겠지. 안 그래?”
“그 말씀도 맞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마크3 타입 전문인 대흥중공업에게는 감점 요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좋아, 배점기준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리고 또?”
“대흥중공업이 강조한 것은 에코십 타입인데, 이게 유일조선한테서 로열티를 지불하고 가져오는 것이라 큰 메리트가 없다고 봅니다. 거기다 유일조선은 추진시스템이 더 업그레이드가 됐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대흥과 유일을 놓고 보자면 유일이 더 낫다?”
짓타 상무는 겐진이 자꾸 유일조선에 힘을 실어주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상형 월드컵을 돌려보면 결국 유일조선만 남기 때문이다.
회장님의 의중도 유일조선에 실려 있다고 확신한 상황에서 겐진까지 저렇게 얘기하니, 자신도 모르게 유일조선에 눈길이 갔다. 그러나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닌 법. 더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짓타 상무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기로 했다.
“얘기하는 걸 들어보니까, No.96 타입 가능한 우진과 유일 중에서 고르겠다는 것 같은데?”
“그렇게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대흥중공업은 고려대상이 아니라는 얘기로 들리는데?”
“저희가 1차로 선별했을 때, 고민 끝에 순양중공업을 탈락시킨 건 제시가격이 너무 높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대흥이나 유일도 우리 예상가보다 높게 들어오긴 했지만, 굳이 선택하자면 대흥보다는 유일입니다.”
“가격은 우진조선이 제일 낫지?”
“그렇습니다. 대흥과 유일이 같고, 우진은 그보다 척당 1000만 달러 낮게 들어왔습니다.”
“1000만 달러라…….”
“척당 1000만 달러면 엄청난 차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가격만 놓고 보면 그렇지만, 선박 주기 전체를 놓고 보자면 오히려 대흥이나 유일이 더 경쟁력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4척이면 4000만 달러인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 자식이 듣자듣자하니까 아예 유일조선으로 답을 내려놓고 있구만.”
“아닙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배점기준에 맞춰 객관적으로 평가했을 뿐입니다.”
“객관이고 나발이고 그만한 가격 차이를 무슨 수로 따라잡는다는 거야? 대흥이랑 유일이 얘기하는 에코십이 그만한 가치가 있어?”
짓타 상무는 괜한 질문을 했다고 생각했다. 말이 나오기 무섭게 확신에 찬 표정을 짓는 겐진의 표정을 보니, 답을 들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에코십의 위력이 그 정도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척당 1000만 달러를 더 지불하더라도 더 이익이 남을 정도입니다. 이건 스파이더탱커스에서 가져온 자료입니다. 이걸 보시면 제가 드린 말씀이 이해가 가실 겁니다.”
“어딜 건방지게 상급자한테 자료 던져 놓고 보라는 소리야? 학교 선생이야? 나 보고 뭐 자습이라도 하라는 소리야?”
“죄, 죄송합니다!”
“이게 무슨 자료인지 설명해.”
“하잇. 이건 스파이더탱커스가 세계 최초라고 강조하는 에코십의 운항결과 보고서입니다. 기존 선박과 연비, 오염물질 배출량 등을 비교한 데이터가 있는데, 연비만 놓고 보면 35%가 향상됐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 선박을 유일조선이 건조했습니다.”
“흐음. 35빠센토라……. 20년, 25년 잡으면 천만 달러 차이는 아무것도 아니지.”
“그래서 저는 유일조선이 최적임자라고 생각합니다.”
끄덕끄덕.
이렇게 쉽게 결론이 날 리가 없었다. 이세돈 우치무라가 바로 반기를 들었다.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손을 들고 발언을 신청한 우치무라에게 짓타 상무는 관심을 보였다.
“그래, 우치무라 상. 자네도 이것저것 조사를 많이 했지. 혼자만 알고 있지 말고 다 털어나 봐.”
“하잇. 겐진 상의 주장엔 포함되지 않은 결정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그건 바로 LNG선 건조 경험입니다. 유일조선이 경쟁력 있는 조건을 제시했다고 하지만, 건조 경험이 없습니다. 그건 꽤나 큰 리스크입니다.”
겐진은 예상했다는 듯이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우치무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로 입을 열었다.
“우치무라 상의 말도 맞습니다만, 제가 우리 회사를 대표해 유일조선을 방문해 확인한 결과 큰 리스크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건조 경험이 없는 것이 왜 리스크가 아닙니까! 그것도 고도의 기술력을 요구하는 LNG선에서 말입니다!”
“제가 실사 보고서에 상세하게 기록했는데, 제대로 읽지 않은 모양이네요.”
“크음.”
“유일조선은 이미 화물창을 자체 제작해 놓은 상태입니다. 모델하우스라고 할까요?”
“모델하우스는 모델하우스일 뿐이죠.”
“그렇게 비싼 모델하우스를 본 적 있습니까? 유일조선은 건조 경험이 없다는 것이 단점으로 작용할 것을 예상해 화물창을 제작해 놨을 정도입니다. 그것도 거액을 들여서 말이죠.”
“그게 실제 건조과정에서 똑같이 이뤄질 것이란 보장이 없지 않습니까!”
“점유율로 세계 1위를 차지한 일본선급이 건조과정에서부터 모든 걸 확인하고 체크할 텐데, 그걸 모른 체 넘어가 주기라도 한다는 말입니까?”
“일본선급이 당연히 꼼꼼히 점검을 하겠죠. 그렇다고 해도 그 큰 선박의 모든 것을 다 확인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우리는 허수아비가 아니죠. 우리도 일반적인 상황에 비해 몇 배 더 강도 높은 검사를 할 것입니다.”
“허 참. 아니, 유일조선을 너무 대놓고 빨아주는 거 아닙니까? 뭐 거기 가서 접대라도 받은 겁니까?”
겐진은 우치무라의 공격에 뚜껑이 확 열려 버렸다.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밤늦게까지 귀가 아플 정도로 설명을 들었던 실사 경험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기껏 출장 가서 샌드위치로 때웠을 정돈데 뭐가 어쩌고 어째?
“이봐요. 우치무라 상. 거 말이 지나친 거 아닙니까? 접대를 받았다니요! 이런 인격 모독적인 발언이 어디 있습니까!”
“아니, 그렇지 않고서야 쟁쟁한 조선사 놔두고 유일만 그렇게 빠는 이유가 없잖아요.”
짓타 상무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하기 무섭게 바로 제어에 들어갔다. 이 쪽발이 놈들은 여전하다는 생각을 품으며.
“그만들 해! 회의하자고 앉혀놨더니, 쓸데없는 소리로 쌈박질할 생각이야!”
“죄송합니다.”
“그딴 소리 지껄이지 말고 결론을 내라고!”
“하잇.”
유일조선이 최적이라는 겐진의 주장에 우치무라는 그건 아니라는 소리뿐이었다. 우치무라 자신도 우진조선이나 대흥중공업이 더 낫다고 얘기하질 못했다. 그만큼 유일조선의 경쟁력은 월등했다. 논박이 한참 이어졌지만, 결론은 이미 나온 상태였다.
우치무라는 논리가 막히자 금단의 행위를 하기 시작했다. 억지 논리로 우기기 시전. 짓타 상무는 골이 지끈거렸지만, 어디까지 까부는지 보겠다며 잠자코 있었다.
“솔직히 전 우리나라 조선사들 다 놔두고 왜 한국 애들한테 이 물량을 줘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아…….”
“왜요? 제 말이 틀렸습니까? 겐진 상. 말 해보세요. 우리나라는 상부상조하는 유구한 전통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나라 조선소도 배 잘 짓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우치무라 상. 그 얘기는 이미 끝난 얘기 아닙니까? 멤브레인형을 선택했으니 4척으로 끝나지, 모스형으로 했으면 6척으로 늘어납니다.”
“아, 그래요. 우리나라 조선사가 멤브레인형 LNG선 건조 못 하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기회를 주면 되잖아요? 지금부터 당장 멤브레인형 인증 따서 준비해 놓으라고 말이죠.”
“유일조선이 건조 경험 없으니 안 된다고 주장한 것이 우치무라 상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조선사에 발주를 주자니요.”
“어차피 같은 조건이면 꿩 먹고 알 먹기가 낫다 이 말이죠.”
“그게 어떻게 같은 조건입니까? 모든 부문에서 다 부족하다는 걸 알면서 그러는 겁니까?”
짓타 상무는 이 정도면 충분히 참았다고 생각했다. 우치무라가 뭐라고 얘기할 찰나에 입을 막고 울화통을 터트렸다.
“이 새끼들아! 뭐 고삐리들이야? 여기 싸우러 왔어? 어쩌나 보자하고 가만있었더니 아주 고삐가 풀렸네? 왜 서로 주먹질도 하지 그래?”
“죄송합니다!”
“월급 받아 처먹으면서 잘 하는 짓이다. 됐어, 그만해. 뭐 더 얘기하고 말 것도 없어.”
짓타 상무는 한숨을 내쉬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이제는 결론을 내려야 할 때. 결론을 얘기할 때는 차분한 목소리여야 했다.
“자, 잘 들어. 우리도 LNG운송시장 진입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어. 우리도 후발주자이면서 유일조선을 놓고 왈가왈부하는 것도 좋은 자세는 아니라고 봐. 이만한 조건을 포기할 정도로 건조 경험이 절대적인 잣대인 것도 아니고.”
“상무님 말씀이 옳습니다.”
“우치무라, 뭐 더 할 말 있어?”
“아닙니다. 상무님 결정에 따르겠습니다.”
짓타 상무는 오랜 회의로 피로함을 느꼈지만, 쉴 수 없었다. 회의 결과를 들고 바로 회장실에 찾아갔다.
“광석이 어서 와. 아니, 얼굴이 아주 퀭해졌구만? 보약 좀 챙겨먹어야겠어. 허허.”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몸은 아주 건강합니다.”
“그래. 우리 광석이가 건강 하나는 끝내주지. 허허. 그래서 뭐 결론이 났어?”
“네, 여기 보고서입니다.”
손혁 회장은 보고서를 한참을 쳐다봤다. 그러나 눈동자를 움직이진 않았다. 유일조선이 최종 후보가 됐다는 글자를 보고 나서는 더 읽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유일조선이라……. 자신 있나?”
“하잇. 신중하게 검토하고 또 검토했습니다.”
“아니, 그거 말고 말이야.”
“그럼 어떤 걸 말씀입니까?”
“이제 협상 들어가야 할 거 아니야. 뱃값 더 떨어트릴 자신 있느냐고.”
“하잇.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선은 당연히 다해야 하고.”
“하잇. 무조건 낮추겠습니다.”
“허허. 그래그래.”
손 회장은 정확하게 방향을 맞춰 결재도장을 찍었다. 그 옆으로는 직급에 맞춰 기울여 찍은 도장들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다.
***
“뭐? 돈을 또 달라고?”
“이런 날을 어찌 그냥 넘어갈 수 있습니까!”
“넌 인마, 투자해서 돈 많이 벌었다면서 어째 회식 얘기만 나오면 내 돈 못 가져가서 안달이냐?”
“우리 회사 역사에 한 획을 그었는데, 이럴 때 회장님의 금일봉이 딱 나오면 직원들 사기가 어마어마하게 치솟죠. 뭐 제 돈으로 하고 회장님이 주신 거라고 하면 되지만, 이왕이면 회장님께서 직접 거액을 쾌척하시는 것이…….”
“하, 이 자식 봐라. 아주 돈 빼먹는 것도 예술의 경지가 다 됐구만. 허허. 그래서 얼마면 돼?”
돈 뺏는 나도, 강탈당하는 아버지도 즐거운 마음 한 가득이다.
도시상선에서 LNG선 4척 건조를 위한 실무협상에 들어가자는 연락을 받았으니, 자다가 벌떡 깨서도 그냥 실없이 웃을 수 있는 상황이다.
그 기쁜 마음으로 아버지 돈을 탈탈 털어냈다.
“당분간 판공비 없을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허허. 이거 뭐 눈 뜨고 있는데 코 베간 느낌이구만. 아들한테 돈도 다 뜯기고, 이제 폐지나 주우러 다녀야겠어.”
“아버지 노후는 국민연금이 책임질 테니 걱정 마시죠.”
“에라이. 오늘 회식 화끈하게 하고, 낼부터 도시상선 건 마무리 잘 해. 알았어?”
“사랑합니다.”
룰루랄라. 기쁘다. 그토록 염원했던 LNG선 수주에 성공해서 기쁘다. 빅3와 맞장 까서 이긴 결과라 또 기쁘다. 이제 우리 유일조선을 제칠 자가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