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shipping lord RAW novel - Chapter (209)
209화 – 중요한 질문(2)
유연성 일행은 무더운 두바이를 떠나 파리로 향했다.
세계 3위 컨테이너선사인 CMM에 대한 삼고초려. 세 번이나 찾아갔는데도 발주 안 하면 에펠탑에서 번지점프라도 하겠다는 굳은 의지와 각오가 그들과 함께 했다.
유일조선이 맹활약하는 그 시간, 우진조선의 영업본부는 그들 나름의 비장함을 뿜어내고 있었다.
“해양플랜트도 좋지만, 조선소의 기본은 상선이야. 상선 수주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무너진다는 각오로 임해야 해.”
“본부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제 역할을 못 한 잘못입니다.”
“야, 인마. 입질 오는 것마다 다 수주해 버리면 개나 소나 다 조선소하지. 안 그래? 이런 날도 있고 그러는 거야.”
조필성 영업본부장은 사장실에서 대판 깨지고 왔지만 모정길 부장에게 격려의 말을 잊지 않았다.
우진조선의 수주실적은 꾸준히 회복세를 보이며 금융위기 이전 수준에 버금갈 정도로 올라왔다. 그러나 상선 시장에서 계약을 따내지 못한 반쪽짜리 회복이었다.
해양플랜트 시장에서 꽤나 선전하고 있지만, 조 본부장이 보기엔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였다. 김태원 사장이 사상 최초로 사장 3연임을 노리며 수주실적 키우기에 혈안이 되면서, 무리한 영업을 지속했기 때문이었다.
조 본부장은 해양플랜트 몰빵이 우진조선을 위험에 빠트릴 것이라고 봤지만, 김 사장의 야욕을 꺾을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상선 수주를 늘리며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매번 대흥중공업과 유일조선에 한 끗 차이로 밀리기만 했다.
“모 부장아. 내가 영업을 총괄하고 있긴 한데, 난 상선 영업 출신이야. 해양플랜트? 그거 백날 받아와 봐야 죽 쒀서 개 주는 꼴이라고. 결국 상선을 수주해야 해.”
“네, 더 분발하겠습니다.”
“드릴십, 세미리그, FPSO 등등. 다 좋아. 한 척에 6억 불, 7억 불 이러니까 얼마나 대단해 보여? 그거 빛 좋은 개살구야. 설계도 못 하는데 원가를 무슨 수로 파악하겠어? 이러다 2~3년 뒤에 쪽박 찰 수도 있어.”
“제가 상선 쪽에서 실적을 못 낸 탓입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건 없고. 모 부장 네가 조금 더 힘을 써줬으면 좋겠다 이 말이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나마 LNG선 수요가 폭발하면서 체면치레를 하긴 했지만, 진짜 승부는 컨테이너선이라고. 너도 잘 알고 있지?”
조 본부장은 모 부장의 표정이 울상으로 변하는 걸 바로 눈치챘다. 충분히 이해하는 바이다. 모처럼 컨테이너선 발주시장이 호조세로 전환되는 분위기인데, 가는 곳마다 임자가 있어서 뭘 해 볼 수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 대흥이랑 유일 때문에 힘든 거 잘 알아. 그래도 어쩌겠어? 빈틈을 찾아서 계속 쑤셔봐야지.”
“네. 솔직히 유일조선이야 캐파 때문에 큰 건 몇 개 먹고 마니까 상관없는데, 대흥중공업이 문제입니다.”
“그렇지. 대흥중공업 그놈들 진짜 강호의 도리도 없는 놈들이야. 그렇게 작정하고 덤벼들면 우리가 어떻게 해 볼 수가 없긴 하지.”
대흥중공업이 작년부터 말 그대로 미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조선소만 4개인 대흥중공업은 텅텅 비어가는 슬롯을 채우기 위해 선종, 선형 안 가리고 마구잡이로 먹어치우는 중이다. 그 때문에 우진조선이 해양플랜트에 더 집중하는 것도 있다.
조 본부장은 그 흐름을 깨야 한다고 생각했다. 해양플랜트는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느낌이 안 좋았기 때문에.
“자, 컨테이너선사 1위부터 20위까지 명단 뽑아놓고 하나씩 살펴보자고. 자꾸 두들기다 보면 나오는 법이야.”
“그게…….”
“왜? 길이 안 보여?”
“머스트는 유일한테, MSI는 대흥한테 붙었습니다. CMM은 중국으로 갈 것이고, 하팍로이드는 지금 상태가 안 좋아서 발주 여력이 없다고 봐야죠.”
“그리고?”
“차이나쉬핑은 당연히 중국에 발주할 테고, 국제해운은 대흥한테 붙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리고 OOAL은 순양중공업에-”
“넓게 보라고, 넓게. UAMC는 안 보여?”
“UAMC는 발주해봐야 1만TEU급이 최대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은 메가 컨테이너선 수주에 집중해야 할 때라-”
“모 부장아. 발상의 전환을 하란 말이야. 다들 그렇게 생각할 때 우리가 달려가서 메가 컨테이너선 발주하자고 바람을 불어넣어야지! 수동적으로 입질 오는 것만 찾아서는 길이 안 보여. 무슨 말인지 알겠어?”
“아, 네.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당장 두바이로 달려가겠습니다.”
“그래, 그래. 꼭 명심해. 이런들 저런들 우리 회사를 먹여 살릴 건 상선이야. 그만큼 책임감을 가지고 임하자고.”
조 본부장은 모 부장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옛 생각에 빠졌다. 지금은 유일조선으로 자리를 옮긴 태우 형과 전 세계를 누비며 선박영업을 뛰던 그 시절 말이다. 그때의 기분을 잊지 않고 달린다면 우진조선이 다시 비상할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었다.
***
“본부장님…….”
“무슨 일인데, 표정이 그래?”
조 본부장은 모 부장의 표정에서 불길한 기운을 감지했다. 적극적인 영업을 주문하며 UAMC를 뚫어보라고 지시한 지 이틀이 지난 날이었다.
“유일조선이 UAMC와 접촉했다고 합니다.”
“뭐? 그거 확실해?”
“네. 두바이 현지 브로커한테서 확인한 겁니다.”
“하아. 이 새끼들 진짜. 온갖 곳에다 다 침 바르고 다니는구만. 그래서 UAMC가 뭐 움직였다는 얘기는 없지?”
“네. 컨테이너선 발주하겠다는 얘기는 없다고 합니다.”
“그래. 그럼 아직 모르는 거야. 유일 그놈들이야 캐파 쥐어짜서 1만TEU급 몇 척 받아먹을 생각일지도 몰라. 우리가 가서 메가 컨테이너선 제안하면 얘기가 달라질 것이라고.”
“그럼 바로 두바이로 가겠습니다.”
“이거 꼭 성사시키자. 안 되면 너나 나 사표 쓴다는 각오로 임하자고.”
***
모 부장은 무더운 두바이 날씨 속에서도 청량감을 느꼈다. UAMC의 컨테이너본부장인 알리 빈 하마드 빈 칼리파 알사니와 대화가 술술 풀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바로 2만TEU급 이상을 발주해야 상위권 선사로 발돋움할 수 있다?”
“네, 맞습니다. 메가 컨테이너선을 확보하면 머스트라인과 편을 먹을 수도 있고, MSI-CMM 얼라이언스에도 낄 수 있습니다. UAMC로서는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것이죠.”
“하하. 재미있군요.”
“재미있다니요?”
“하하. 아닙니다. 미스터 모의 제안을 신중하게 검토해 보겠습니다.”
“우리 우진조선이 탱커 잘 만들기로 소문이 났지만, 컨테이너선 실력도 만만치 않습니다. 우진조선을 왜 빅3라고 하는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우진조선이 배 잘 짓는 건 강조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습니다.”
모 부장은 이 기분이라면 UAMC 본사를 나와서도 땀 한 방울 안 흘릴 것 같았다. 예상치 못한 제안에 UAMC 측은 솔깃해하는 것 같았고, 경험상 이런 분위기는 발주로 이어졌다.
머지않아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으리란 기대감에 부푼 모 부장은 의외의 질문을 받았다.
“미스터 모. 축구 좋아하십니까?”
“남자라면 안 좋아할 수가 없죠.”
“그렇군요. 중동에서는 누가 제일 강자라고 생각하십니까?”
“다들 잘 하죠. 그래도 사우디나 이란이 최강자가 아닐까 싶은데요.”
“아, 그렇습니까? 잘 알겠습니다.”
모 부장은 이걸 왜 물어봤는지 알 수 없었다. 사실 그걸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얘기가 너무 잘 풀려 당장이라도 건조 계약하자고 할 것 같았으니.
반년 뒤의 일이지만, 그는 그때 중동의 축구 강자는 카타르라고 얘기해야 했다고 땅을 치고 후회했다.
***
순양그룹 전략기획실. 순양전자 박윤식 부사장은 순양중공업 얘기에 눈살부터 찌푸렸다.
종합엔지니어링사로 전환하겠다며 해양플랜트에 집중한지 올해로 3년 차. 조선과 해양이라는 두 축으로 안정적인 성장을 구가하고 있다는 세간의 평과 달리 순양그룹 고위층들의 속은 썩어 문드러지고 있었다.
순양 사전에 회사채는 없다는 말과 달리, 순양중공업이 1조 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해야 한다는 보고를 올렸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이후 외부에서 끌어온 돈을 생각하면 식도가 쓴물로 범벅이 되는 수준이었다.
“실장님. 좋아진다면서요?”
“예상대로 실적이 바닥을 치고 다시 회복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지금 장난하십니까? 현금흐름을 보란 말이에요. 순차입금이 다시 늘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러다가 1조도 넘게 생겼습니다. 아, 그래서 회사채 발행으로 메우면 된다? 그 자체가 부끄러운 일인 걸 아셔야죠!”
이상면 전략기획실장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순양그룹의 아픈 손가락인 순양중공업만 생각하면 짜증이 나는데, 박 부사장의 집중공격까지 받고 있으니, 정신이 혼미할 정도였다.
“꿀 먹었습니까? 입이 있으면 말을 해 보세요.”
“아, 네. 올해는 기름유출 보상금 충당 이슈가 있지만, 내년에는 드릴십 인도가 많아서 영업이익 1조 돌파가 확실합니다. 내년부터는 현금흐름이 크게 개선될-”
“아휴, 또 그 얘기입니까? 그 얘기 다신 꺼내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 실장은 아차 싶었다.
순양중공업의 크레인이 유조선과 충돌하면서 태안 앞바다를 기름 범벅으로 만들었던 그 사건. 박 부사장은 그 얘기만 나오면 순양그룹의 망신이라며 경기를 일으켰다. 그러고 보니, 순양중공업에 대한 홀대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잔뜩 짜증을 낸 박 부사장은 다시 맹공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업이익 1조 얘기하는데, 그래 봐야 영업이익률이 겨우 5%를 넘는 수준이에요.”
“원래 중공업 쪽은 영업이익률이 높지 않습니다.”
“아, 그래서 중공업은 뭐 봉사단체라도 됩니까? 1등도 못해, 실적도 비리비리해, 빚은 계속 늘어나. 대체 잘 하는 게 뭡니까?”
“그래도 해양플랜트 명가라고-”
“해양플랜트 그거 진짜 돈 버는 것 맞습니까? 앞으로 벌고 뒤로 다 빠지는 구조 아닙니까?”
박 부사장의 날카로운 지적에 이 실장은 또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 자신이 그리 생각하고 있었으니, 뭐라고 대꾸를 할 수 없었다.
이 실장은 박 부사장에게 보고하러 오기 전에 이상혁 차장으로부터 관련 사안을 전달받고 온 터였다.
***
“드릴십은 건조 경험이 풍부해서 제때 인도만 하면 아주 괜찮습니다.”
“그거 말고 요새 다른 것도 계속 수주하고 있잖아?”
“네. FPSO니 CPF니 여러 해양플랜트들이 있는데, 아무래도 드릴십 만큼의 수익을 내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왜 그런 건데?”
“순양중공업 측 설명으로는 로컬룰 때문에 현지에서 생산해야 하는 것도 있고, 기자재 대부분을 수입해야 하기 때문이랍니다. 그래도 건조 경험만 쌓는다면 차후에는 높은 수익을 낼 것이라고 합니다.”
“말로는 다 장밋빛이지. 그래서 고생은 우리가 하고 돈은 유럽 애들이 벌어가는 구조란 말이지?”
“아무래도 우리가 설계기술이 없다 보니까 불가피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안으로 턴키로 수주하는데 집중하겠다고 하는군요.”
“턴키? 허허. 설계도 못 한다면서 턴키로 수주해? 그러다 뭐 잘못되기라도 하면? 아, 진짜, 하는 짓을 보니까 답답하구만.”
***
그렇게 혀를 끌끌 찼던 이 실장이기에 박 부사장의 지적에 또다시 꿀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실장님도 딱히 할 말이 없죠?”
“아무래도 중공업 쪽이 중국의 추격도 있고……. 전망이 밝지는 않습니다.”
“진즉 정리했어야 해요. 사람들이 왜 순양전자 발목 잡는 문제아라고 하겠습니까? 더 긴 말 안 하겠습니다. 딱 3년. 그때까지도 변변치 않으면 단호하게 정리 들어갈 겁니다. 지분정리 미리미리 해 두세요.”
“지분정리는 차근차근 이뤄지고 있습니다.”
“중공업뿐만이 아니에요. 플랜트, 석유화학, 방산 등등. 굴뚝들도 딱 3년 내로 성적 안 나오면 가차 없습니다. 알겠습니까?”
“네.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미리 준비해 놓겠습니다.”
이 실장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박 부사장의 지시로 1년 넘게 사업구조 재편작업을 진행 중이지만, 순양중공업 처리는 딱히 답이 보이지 않았다. 자산 15조짜리 공룡을 누가 인수할 수 있을까 싶다.
그 고민은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았다. 해외매각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국내자본에 매각하는 길밖에 없는데, 과연 누가?
그 순간 하나의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러나 이 실장은 속으로 웃겨 넘기고 말았다.
유일조선? 요새 좀 잘 나간다고 하지만, 촌동네 구멍가게로 시작한 유일조선 따위를 생각한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라고 자책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