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shipping lord RAW novel - Chapter (21)
21화 – 조선소를 확장하라 (3)
창업주 아들이라는 대형 낙하산으로 유일조선에 들어온 지 2달째.
여전히 잡무에 시달리고 있지만, 회사를 살리기 위한 준비 작업은 차근차근 이뤄지고 있다. 물론, 내 생각일 뿐이지만.
사실상 선무당이나 다름없는 내가 냥냥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아버지가 모를 리가 없지만, 어째서인지 아무 말이 없다-는 내 착각이었군. 역시 가만있을 분이 아니지.
“그래. 일해 보니까 어떻더냐?”
나를 호출한 아버지의 첫 마디는 무난했다. 그러나 대답 뒤에 돌아올 말은 무난하지 않을 것이다.
할 만하다고 하면, 그래서 그렇게 나대는 것이냐고 할 것이고, 모른 것이 많아서 열심히 배우고 있다고 하면, 그걸 아는 녀석이 그렇게 나내는 것이냐고 할 것이다.
결론은 나대지 말고 조용히 공부하라는 거룩한 뜻일 것이야.
“재미있습니다. 할 일이 많긴 한데, 이게 다 회사를 발전시키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재미있어? 허허.”
이제 그 특유의 살살 갈굼이 시작되겠구만. 온화한 표정으로 ‘밥은 먹고 다니냐’고 얘기하면, ‘죄송합니다. 앞으로 삼시세끼 꼬박 챙겨 먹겠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풀려나는 이 분위기.
“아들아. 우리 회사가 먹여 살리는 사람이 만 명이야. 알고 있지? 협력사, 기자재 업체에 그 가족들까지 생각하면 몇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이 유일조선만 바라보고 있는 거야.”
“잘 알고 있습니다.”
“그걸 아는 녀석이 회사 일을 재미있다고 하면 되겠어? 사람 목줄이 달린 일이야. 강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그럼요, 아주 잘 알고 있지요. 그래서 내가 강한 책임감으로 회사도 살리고, 조선업계 악습도 없앨 생각이거든요.
“틈나는 대로 협력업체 찾아가서 고충을 듣고 있습니다.”
“협력업체? 너 또 직영 비중을 늘리자는 소리 하려고 그러는 것이냐?”
“저도 우리 회사 사정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저 상생하자고 하면서 그쪽 얘기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회사에 큰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 바닥 저승사자인 공정거래위원회가 심심한데 조선업계나 들쑤셔볼까 하면 항상 걸려드는 것이 불법 하도급과 하도급 대금 깎기이다. 남들 다 하는데 우리 회사라고 안 하겠나.
지금처럼 호황인 시기에는 군소리 없지만, 상황이 안 좋다 싶으면 투서가 김미영 팀장 문자 날아오듯 쏟아진다.
전생에선 돈 없어서 직원들 월급도 못 주는 판에 하도급 대금 지급명령과 과징금으로 기백억원 얻어맞았지. 정신을 차릴래야 차릴 수 없는 그 시절. 또 흥분하게 되네.
이번 생에는 내가 다 막아내겠어. 아주 할 일이 4열 종대 앉아 번호로 연병장 두 바퀴네.
“그래, 뭐. 잘 알고 있다니 다행이구나. 그리고 요즘 수주실적이 아주 좋더구나. 몇 번 좋은 가격으로 받았다고 자만하지 말고, 항상 겸손해야 해. 이 바닥은 소문 잘못 나면 끝이야, 끝.”
“명심하겠습니다.”
내가 아버지한테 저런 고농축 칭찬을 다 받다니!
저건 거의 ‘아름다움 밤이에요, 쌩큐 소 마치’ 수준이다. 순혈 경상도 아재인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일 것이다.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구만. 다음엔 ‘우리 아들 유 실장 말대로 했더니 부자가 됐구나. 하하호호허허.’라는 소리를 들어야지. 후후.
“그래, 그건 그렇고. 이번에 제2야드 세우기로 한 건 알고 있지?”
“네. 안 그래도 그것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아마 내년일 것이다. 유일조선의 새로운 도약이라는 유치한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대대적인 투자를 결정한 시점 말이다.
사업장 옆에 조성 중인 너른 황야에 제 2의 조선소를 만들고, 돈 더 벌면 3조선소까지 세우기로 했다. 그것도 모자라서 저 멀리 마산에 있는 조선소 부지까지 사겠다는 원대한 투자계획이었다.
빅3를 따라잡겠다는 그 계획을 위해 여기저기서 돈 빌리기 바빴다. 그 막대한 투자가 악수가 될 줄이야.
그 미친 키코 때문에 2조원이 날아갔는데, 은행에서는 조선소 짓는다고 빌려 간 돈 빨리 갚으라고 난리였고. 에휴, 씁.
막을 건 막되, 투자할 것은 제대로 해야지. 그것이 회귀한 내가 할 일이다.
“회장님. 투자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대로? 지금은 뭐 주먹구구식으로 하고 있다는 소리냐?”
“국제중공업 마산조선소 부지 매입하실 생각인 것 알고 있습니다. 그것보다는 제 2조선소에 더 신경을 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부지 크기로만 따지면 빅3 부럽지 않을 야드를 만들 수 있습니다.”
“마…마산조선소? 넌 그걸 어떻게 알고 있냐? 그거 네 엄마한테도 얘기 안 한 건데.”
아버지가 극도로 놀란 표정을 짓는다. 어? 아직 그 계획 세우기 전인가? 이럼 나가린데.
“어, 그러니까. 국제중공업에서 매물로 내놓았으니까 조선사들 중 한 곳에서 살 것 아닙니까? 그럼 당연히 우리 회사가 되지 않겠습니까?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하하.”
“그래? 난 또, 소문날까 봐 아무한테도 얘기 안 했는데, 어디서 얘기가 퍼졌나 했지. 허허.”
“저도 그 정도쯤은 생각할 줄 압니다. 이래봬도 서당개 아니겠습니까? 하하.”
호탕한 웃음과 어색한 웃음. 대충 둘러댔더니 그냥저냥 넘어갔다.
앞으로 미래지식 활용할 때는 조심해야지 원. 자칫 충무공이 점지한 통영 거북 도사라도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그건 그렇고, 마산조선소를 사지 말라니,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냐?”
당연하지! 그 땅 사고 설비투자까지 2000억 넘게 들어갔는데, 정작 배는 한 척도 못 만들었으니까! 그 900톤짜리 골리앗 크레인이 단돈 1달러에 팔릴 때, 너도 울고 나도 울고 그냥 다 광광 울었다고.
“그러니까 지금 야드에 추가로 확장할 부지까지 더하면 150만평에 달합니다. 부지는 충분합니다.”
“부지가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야. 마산조선소 매입을 막을 생각이면, 왜 그걸 사려고 하는지부터 알았어야 하는 것 아니냐?”
“블록 건조할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산조선소라고 해서 바로 작업에 들어갈 수 있는 여건은 안 되지 않습니까? 폐부지라 아무것도 없습니다. 시간 들어가는 건 똑같습니다.”
“허허. 거긴 또 언제 가 봤더냐.”
“물류비용 문제도 있고, 자칫 잘못하면 공기가 지연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바엔 지금 야드 확장계획을 제대로 손볼 필요가 있습니다. 투자 제대로 해서 도크도 파고 안벽도 길게 뽑고, 해상 크레인도 하나 들여오고. 어떻습니까?”
“뭐? 도크를 파자고? 너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나 하는 소리냐? 우리가 육상건조 전문 야드로 성장하고 있는데, 도크라니!”
도크 하나 만들자고 하는 소리에 저래 흥분할 것까지야. 어째 과하게 연기하는 느낌이 드는 건 느낌적인 느낌이겠지?
정 상무한테 얘기했을 때는 물개박수 치면서 좋아했는데, 아버지는 왜 이리 학을 떼는지 원. 대화 몇 번에 죽이 척척 맞은 정 상무 마렵다.
아버지가 더 데시벨을 높였다. 이 바닥 35년 차 전문가가 겉멋만 들어서 허세 부리는 초짜 한 번 데쳐보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명.
“도크? 빅3 가보면 도크도 있고 아주 좋아 보이지? 이 녀석아. 황새 따라하다가 가랑이 찢어지는 줄도 모르고. 뭐? 도크? 도오크?”
“도크가 돈 먹는 하마인 건 잘 알고 있습니다.”
“그걸 아는 녀석이 도크 파자는 소리를 해!”
슬슬 반격할 때가 됐다 싶다. 김중배의 다이아반지가 좋다고 해도 바지끄댕이를 잡아끌어야 할 때이다.
“회장님. 국제중공업, WBT조선이 그 많은 돈 들여서 해외에 조선소 짓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대형선 건조해서 빅3 따라잡겠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도 야드 확장하겠다는 것 아니냐. 우리 기술력이면 육상에서도 대형선 건조가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는데, 네가 철부지 같은 소리나 하고 있으니 원.”
아버지, 대형선의 기준이 너무 다른 것 아닙니까?
제가 얘기하는 대형선은 ‘와따 배 한 번 크네’ 수준이 아닌 ‘저게 배여 섬이여’ 정도란 말입니다. 우리는 그런 배를 만들어야 한다고요.
나중 일이지만, 수식어를 놓고 설왕설래가 꽤 있었다. 지금의 대형선보다 더 큰 배가 나오자, 초대형선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런데 얼마 안 지나서 더 큰 배가 나오자 그때부터 혼선이 생겼다.
초대형선보다 더 크니 극초대형선이라고 하자, 그러지 말고 울트라를 붙이자, 울트라는 유치하니까 메가를 붙이자 등등. 결론은? 그냥 꼴리는 대로 썼다.
그만큼 해운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뒤바꿀 배들이 줄줄이 나온다는 얘기다.
그래서 내가! 빅 사이즈 배도 만들고, 가스운반선도 만들고, 마 다 할 거라고! 돈이 없다고? 그래서 내가 돈 벌어온다 아닙니까! 리먼브라더스 보고 있냐!
보라는 리먼브러더스가 안 보고 아버지만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넌 인마. 사업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면 그만인 게야? 그렇게 사업할 거면 누가 못 해!”
“회장님. 일단 제 얘기를 한 번 들어보시죠.”
“들어보나 마나야. 그래, 네 말대로 우리가 빅3 따라잡으려면 육상건조만으로는 한계가 있겠지.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어. 알면서도 내색하지 않는 거야. 왜 줄 알아?”
결국 돈이지.
말로야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을 배불리 먹이겠다고 장담할 수 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겠노라 설파했지만, 아버지 표정이 뜨뜻미지근한 건 결국 돈 때문이다.
월 1만원에 가시는 길 편하게 모시겠다는 상조회사에게 지분 30%를 팔아치웠을 정도로 투자자금 마련에 혈안이 된 사람 앞에서 돈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떠들어봐야 소 앞에서 사서삼경 외는 것일 뿐이다.
정 상무한테야 아무 걱정 말라고 얼렁뚱땅 얘기해도 그만이지만, 아버지한테는 그럴 수 없다. 도장 찍는 사람을 납득시키지 않고서야 한 걸음도 나갈 수 없으니 말이다.
“결국 돈 때문 아니겠습니까?”
“알고는 있구나. 몰랐으면 아주 혼구녕을 낼 생각이었다.”
“제가 그래서 마산조선소 말씀드린 겁니다. 마산조선소 사면 신규 투자까지 2천억 정도 들 텐데, 그 돈으로 초대형 도크 파는 것이 더 이익이라고 봅니다. 저희가 고작 VLCC나 8000TEU짜리 컨테이너선이나 만들자고 투자하겠다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허허. 너 아주 사업을 화투짝 그림 맞추듯이 쉽게 생각하는구나.”
그런 감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인생 2회차라서요. 1회차 때 혹독한 베타테스트를 거쳐서 그런지 본게임이 좀 쉬워 보입니다요.
이렇게 몇 마디면 끝날 얘기를 꺼낼 수 없어서, 아주 구구절절하게 썰을 풀어냈다.
한참을 떠들었더니, 말과 함께 침도 꽤나 쏟아졌다. 아버지가 오만상을 쓰는 것은 침이 많이 튀겨서이겠지? 도크 파자는 소리가 맘에 들지 않아서는 아니겠지? 그렇게 믿고 싶다.
“돈이 문제란 말이다! 사업에서 제일 중요한 건 돈이야, 돈!”
역시나 도크 파자는 소리가 맘에 들지 않았나 보네, 쩝.
이렇게까지 격렬하게 반대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내가 알기론 아버지도 분명히 도크 파는 것을 염두에 뒀을 텐데……. 그러고 보니까 오늘 따라 유독 언성을 높이는 것 같기도 하고.
세상살이가 쉽지 않은 건, 회귀해서도 마찬가지네.
***
유 회장은 가슴이 살짝 아렸다. 내가 이놈을 너무 몰아붙였나?
장차 이 회사를 물려받을 녀석에게 오냐오냐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매콤한 맛만 보여주려고 했는데, 침 튀겨가며 바락바락 대꾸하는 아들의 당돌함에 살짝 흥분해 버렸군.
그래도 마음은 뿌듯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철부지일 줄 알았는데, 다 컸네, 다 컸어. 영업 얘기할 때만 해도 운 좋게 얻어 걸렸다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녀석, 회사 들어온다고 준비를 아주 많이 했어.
대학 최고경영자과정에서 들었던 얘기가 생각났다.
-자, 자식에게 회사 물려줄 때는 3년을 얘기하는 겁니다. 2년? 너무 짧아요. 4년? 너무 길어요. 그래서 3년만 참고 일 배우라고 하는 겁니다. 아셨죠?
우스갯소리였지만, 진짜 3년이면 아들에게 물려줘도 될 것 같다. 3년 동안 아들 녀석이 이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도록 뒷바라지해 준다면, 기나긴 이 바닥 생활을 끝내겠다고 해도 여한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나저나 저놈은 누구 닮아서 저렇게 침을 많이 튀긴다니. 저렇게 말 많은 건 또 누굴 닮은 거고.
“회장님! 제 얘기 듣고 있습니까?”
“그래, 듣고 있다.”
또 얼마나 오랜 시간을 붙잡혀서 강연을 들어야 하는지……. 유 회장은 슬슬 겁이 났다.
그러는 한편, 아쉬움도 한가득 밀려옴을 느꼈다.
자신의 냄새가 강하게 나는 저 녀석을 보고 있자니, 젊은 시절을 왜 그리 보냈나 싶었다. 일만 하느라 하나뿐인 아들놈이 어떻게 크는지 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늙어버린 것 말이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