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shipping lord RAW novel - Chapter (71)
71화 – 위기는 기회 (3)
전당포에 맡긴 내 돈도 잘 찾아왔으니, 다음 일정을 향해 또 부지런히 움직여야지.
서울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올라올 때는 아따 힘들다, 아이고 삭신이야 소리가 절로 나오지만, 늘 성과가 좋단 말이지.
기분 좋은 마음으로 박한철 대표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염치 불고하지만, 앞으로 많은 도움 부탁드리겠습니다.”
“염치 불고하긴. 나는 너한테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뿐이다. 부담 가질 필요 없어.”
받은 것보다 덜 돌려주는 것 같지만……. 뭐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박 대표의 지지 선언으로 난 회사 1등 만들기 미션에서 아주 중요한 업적을 달성했다. 금융계에서 든든한 조력자를 얻는 것 말이다.
이건 아주 중요한 일이야.
왜? 이제 해운·조선업 죽이기가 시작될 것이거든.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미명 아래 대기업은 살려주고 중소, 중견기업들은 피 말려 죽일 것이다.
누가? 당연히 정부지.
정부가 왜! 해운·조선업에서 일어나는 경쟁이 국가라는 울타리가 아니라 글로벌 시장을 무대로 한다는 것을 모르니까. 그저 짜바리들 굶겨 죽이면 대기업이 잘 나갈 것이라고 생각할 거야.
실상은 그게 아니거든. 각자 활동영역이 달라서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 많단 말이지. 그렇게 양놈, 떼놈, 왜놈 등등을 물리쳐야 하는데, 다 죽이고 대기업만 남으면 어찌 되겠어?
어떻게? 이제 정부의 명을 받든 금융기관들이 행동대원으로 나설 것이야.
나중에야 흐려지긴 했지만, 이때만 해도 관치금융이 디폴트였다. 경제 쪽 고위관료 말 한마디면 은행들이 벌벌 떠는 시절이라 이 말이지.
대출은 당연히 막을 것이고, RG로 불리는 선수금 환급보증 발급도 안 해 줘서 아무것도 못 하게 만들 거다.
우리 회사는 그 구조조정 광풍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어렵게 수주했는데 RG 발급 안 해줘? 그럼 방법이 있지.
“삼촌. 이 금융위기라는 게, 말 그대로 금융에서 발생한 문제잖아요.”
“그렇지. 솔직히 몇 년 동안 너무 과하긴 했어. 금융이 이리 미쳐버리기 전에 누군가가 경고를 해야 했는데, 뭐 다들 약에 취한 듯 살았으니. 뭐 이미 벌어진 일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할 건 아니고…….”
“그래서 말인데요. 금융이 이리되면 건설도 그렇지만, 우리 조선도 죽어날 수밖에 없거든요.”
“조선에서 금융이 아주 중요하다는 얘기는 들었다. 그래서 앞으로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 얘기해. 말이 도와준다는 거지, 나도 거저 해 줄 생각은 아니야. 하하.”
“도와주기로 마음먹은 김에 RG 좀 맡아주시죠?”
“RG? RG라……. 그 선수금환급보증 말하는 것이냐?”
“네, 맞습니다. 지금이야 문제없지만, 앞으로 구조조정이다 뭐다 시끄러울 텐데, 은행들이 쉽게 내주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죠. 아시다시피, 은행에서 RG 안 해주면 저희는 아무것도 못 하거든요.”
딱 내년부터일 것이다.
정부의 조선업 구조조정 계획에 발맞춰 은행들이 RG 발급에 신중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말이 좋아 신중한 것이지, 사실상 빅3 정도를 빼고는 RG 발급 안 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었지.
그것이 조선업 죽이기의 시작이었다. 지금까지 수주한 것들만 인정해 줄 테니까, 그거 다 털고 나면 문 닫으라는 선언.
내가 그런 새끼들한테 눈물, 콧물 흘려가며 사정할 필요가 뭐 있어? 여기 훌륭한 솔루션이 앉아있는데!
“RG라……. 그럼 쓸만한 저축은행 하나 인수하면 되겠니?”
“하하. 역시 삼촌은 척하면 척이시군요. 이왕이면 은행 인수하면 좋겠지만, 겸손하게 저축은행으로 할까요?”
“그쪽으로도 진출할 생각을 하긴 했다만……. 뭐 네 덕분에 좀 서두르지. 하하.”
“자금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시죠? 저 이번에-”
“너 돈 많은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하.”
역시 돈이 많고 봐야 해. 돈이 많으니까 어려움 따위가 없잖아. 전생에 그깟 몇 푼이 없어서 생을 마감하던 것에 비하면 지금은 이리 팔자가 좋을 수가 있나!
기술도 어느 정도 잡았고, 돈은 확실히 잡았다. 이제 동료이자 경쟁사들 망하는 모습 보면서 잘 버티다가 날이 갰다 싶을 때 날개 펴면 된다.
기다려 이 새끼들아. 금이빨 빼고 다 씹어 먹어줄 테니까.
그 전에 할 일 좀 하고. 서울 온 김에 90억짜리 내 회사 구경하러 가야지.
***
90억 주고 인수한 테크트리.
인수하자마자 70억을 더 끌어다 꼴아 박았다. 뭐 시험 하나 받는데 무슨 돈이 그렇게 많이 들어가는지 원.
이를 악물고 돈을 꼴아 박았고, 유연성 코인의 달달함에 취한 테크트리는 결국 세계 최초로 BWTS 형식승인을 받아냈다.
국토해양부가 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보도자료 뿌려서 많이 언짢긴 했지만, 기쁜 일이니까 넘어가 주지 뭐. 하여간 나랏님들 빨대 꽂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니까.
그게 4월 초였다. 후속 마무리 작업한다고 반년 날려 먹었으니, 이제 돈 벌 궁리를 할 때가 됐지.
“실장님! 어서 오시죠! 하하.”
“자주 찾아와야 하는데, 이렇게 잊을 만하면 찾아오게 됩니다. 등기이사로서 제 역할을 못 해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통영에서 여기 오기가 보통 일입니까? 이제 저희가 가까운 데로 내려가야죠. 하하. 안젤라? 여기 차 좀 갖다 줘.”
테크트리 안흥찬 사장은 금융위기가 찾아왔어도 마냥 기분이 좋아 보인다.
세계 최초로 BWTS 개발한 회사 대표라고 인터뷰란 인터뷰는 다 했으니, 어깨에 힘이 잔뜩 벌어갈 법도 하지.
거기다 부담이 하나도 없으니, 얼마나 좋겠어? 오너일 때는 여기저기 돈 구하러 다니기 바빴겠지만, 지금은 호구 노릇 해 주는 내가 꽂아주는 돈만 빨아먹으면 그만이니까.
너무 좋아하지 마셔. 몇 년 후엔 회사 헐값에 팔았다고 땅을 치고 후회할 테니.
“저번 IMO MEPC 57차 결과 보니까 형식승인 떨어진 업체도 있더군요. 우리가 최초이자 유일하게 최종승인 받아서 얼마나 기쁘고 다행인 줄 모릅니다.”
“하하. 실장님께서 든든하게 지원해 주지 않으셨다면 이번에 승인받기 힘들었을 겁니다. IMO 위원들 엄청 깐깐하게 보더라구요. 그 쟁쟁한 독일업체들이 2곳이나 떨어지는데, 저도 아찔하더라니까요. 하하.”
“이제 IMO 승인은 받았고, 미국 연안경비대 승인절차도 바로 밟으셔야죠?”
“그럼요. 기자재연구원에서 USGC 형식승인 인증시험 대행기관 신청한다고 하니까 그거 선정되면 바로 시험 들어갈 겁니다. 우리가 일빠니까 당연히 처음으로 시험 받게 됩니다.”
“그거 잘 됐군요. 이제 BWTS 개발에 뛰어들 업체들 많아질 텐데, 나중에는 인증시험 때문에 골치 좀 아플 겁니다. 잘 해야 1년에 2~3개 제품 정도 밖에 못 할 것 아닙니까?”
“그렇죠, 그렇죠. 역시 일찍 일어난 새가 벌레를 빨리 잡는 법이죠. 그나저나 저는요, 처음에 실장님께서 미국 얘기할 때 무슨 소리인가 했다니까요. 근데 와! 진짜 대단하십니다. 하하.”
아부 한번 좋네. 커피 안주로는 딱이야 아주.
솔직히 나도 미국이 이렇게 빨리 움직일 줄은 몰랐어.
한참 뒤에 있을 일인 줄 알았는데, 미국에서 선박평형수 처리에 대한 독자 규제를 논의한다는 얘기가 나왔지 뭐야. 또 본의 아니게 미래를 예측하는 현인이 됐지 뭐.
“미국이 어떤 나랍니까? 이번에 금융위기로 체면을 구겼으니 환경 쪽으로 더 박차를 가할지도 모릅니다. 열심히 잘 준비해 주시구요. 기술원이랑 계약 관계는 잘 정리됐죠?”
“네네. 전에 전화로 말씀드린 것처럼 서로 아름다운 이별 했습니다. 우리가 거기 도움을 받긴 했지만, 우리 제품이 KIST 기술과 상관없이 개발한 것이니까요. 이별금 5억 원으로 서로 만족했습니다. 하하.”
“기술과 특허에 관한 건 미리미리 정리해 두는 것이 좋죠. 혹시 압니까? 나중에 테크트리가 엄청 대박이 났는데, KIST가 특허이용료 내놓으라고 소송 걸고 그럴지요.”
혹시가 사람 잡는 법이야. 나중에 한국과학기술원이 기술료 90억 내놓으라고 소송 걸었단 말이야.
내가 이렇게 소소한 것까지 다 챙기고 있다. 두 번의 실패를 겪지 않으려는 나의 이런 개고생을 누가 알아주리오.
챙길 것이 또 있지.
“공장 확장계획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네. 일단 부지는 부산 녹산으로 잡아놨습니다. 조선 기자재로는 부산만 한 곳이 없죠. 그런데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뭐 말로야 세계 최초라고 해도 이게 과연 그렇게 많이 팔릴까 싶기도 하고…….”
“영업은 가오와 구라만 있으면 됩니다. 아, 돈이 뒷받침해 주면 더할 나위 없구요. 제가 돈 걱정 안 하게 해 드린다고 약속했죠? 사장님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가오 세우면서 구라 풀면 됩니다. 환경의 수호자라는 가오! 미국이 움직이고 있다는 구라!”
“아, 네. 그래서 지금 일본이랑 중국에 판매대리권 계약을 추진하고는 있긴 합니다. 유럽 쪽은 유일조선에서 맡아주시기로 했으니, 한 번 믿어보겠습니다.”
“우리 직원들도 지금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있으니 믿어보시죠. 참! 이게 기존 선박에 장착하는 수요가 제일 많으니까, 수리조선소 쪽과도 커뮤니케이션 열심히 하셔야 합니다.”
“네, 맞습니다. 조만간에 인도에 한 번 다녀올 생각입니다. 그쪽이 수리로 유명하니까, 인도를 뚫어놓으면 낫지 않겠나 싶네요.”
그래, 잘 하고 있어. 뭐든 열심히 해 보셔.
그래도 지금은 죽어라 뛰어다녀도 힘들 거야. 나도 손해 볼 것 각오하고 달려든 것이니까, 너도 잘 버텨봐. 앞으로 2~3년 동안은 회사 팔길 참 잘 했다고 생각하겠지 뭐.
“영업은 그렇다 치고, 신설 공장은 캐파를 어느 정도로 잡고 있습니까?”
“계획 확정되면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일단은 자금 사정도 있고, 내후년쯤에 착공할 계획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캐파는요?”
“아, 맞다. 일단 계획인데, 연간 300척 정도 대응할 수 있는 규모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많이 무리한 것이 아닌가 싶은데, 그래도 부족한 것보다는 낫겠죠? 하하.”
“300척이요?”
“네. 혹시 너무 크게 잡은 겁니까?”
터지기만 하면 시장규모가 80조 원짜리가 될 텐데, 고작 300척이라니! 나 같이 돈 많은 갑부가 고작 그 푼돈 벌겠다고 회사를 인수한 줄 아나.
난 5년 후를 바라보고 있다고. 그때 가서 공장 확장하니 마니 번잡하게 굴지 말자고.
“300척으로 누구 코에 붙입니까? 연간 1000척에 공급할 정도는 돼야죠!”
“1000척이요? 어휴, 그럼 투자비용이 대충 계산해도 300억은 넘을 텐데요.”
“아, 진짜. 저를 뭐로 보고 그러십니까? 저 돈 많습니다. 그렇게 지어도 나중에 물량이 달릴지 모르는데……. 일단 목표는 크게 크게 잡고 가시죠.”
“뭐, 실장님 말씀처럼 잘 풀리면 좋겠지만요. 지금 금융위기다 뭐다 해서 시장이 냉랭해지고 있는데, 괜찮겠습니까?”
괜찮고말고. 10년 뒤에 매출 5000억 찍을 회산데, 지금 투자 안 하면 언제 투자하겠어?
“내년에 상황이 더 악화될 겁니다. 어려울 때 투자하겠다고 하면 지자체에서 어떻게 보겠습니까? 그만한 효자가 없죠. 부산시장 멱살 잡고 지원받을 수 있는 건 다 받아내세요.”
“아이고, 우리 실장님, 사업 한 번 화끈하게 하시네요. 뭐 오너께서 말씀하시는데 분부대로 따라야죠.”
“테크트리같이 발전 가능성 높은 회사는 마음껏 달리게 해주는 것이 오너의 역할 아니겠습니까? 이제 포시도니아니 SMM이니 조선박람회는 다 참가하세요. 돈 부족하면 자본금 계속 늘리겠습니다.”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실장님 만난 건 참 큰 행운입니다. 하하.”
그럼, 기대에 부응해야지. 어머니가 증여세까지 내주면서 물려준 돈으로 산 회산데. 본전을 몇 곱절로 뽑아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아.
“전 갈 길이 머니, 이만 가보겠습니다. 대표님께서 워낙 잘 해 주고 계시니 걱정할 것도 없겠습니다.”
“아이고, 벌써 가시려구요? 이거 저녁 식사 준비 다 해 놨는데요.”
“저녁까지 먹고 가면 통영 가는 동안에 해 뜨는 걸 볼 것 같네요.”
“그럼 호텔도 바로 준비할까요?”
무슨 산해진미를 대접하려고 이리 바지 끄댕이를 붙잡고 늘어지나.
이러지 마. 나 흔들린단 말이야. 근데 책상에 쌓여있을 결재서류를 생각하니까 안 내려갈 수가 없네. 에휴, 내 팔자야. 돈이 많으면 뭐 해. 몸뚱아리는 하나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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