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shipping lord RAW novel - Chapter (95)
95화 – 대체 당신은 정체가 뭡니까? (1)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떠오르는 순간부터 많은 이들은 고민에 빠졌을 것이다.
모든 후발 주자들의 겪는 부정적인 이미지와 그에 수반되는 품질 문제. 그걸 뛰어넘는 엄청난 가격 메리트.
면봉이나 나무젓가락이라면 고민할 이유도 없다. 고민의 대상이 수백억 원이 들어가는 선박이라면 다르지.
-생각보다 괜찮던데? 그리고 선박금융도 장난 아니잖아. 그걸 어떻게 참아.
-제날짜에 선박 못 받아서 미치는 줄 알았잖아. 내가 다신 중국에 발주하나 봐라.
-인간적으로 탱커나 컨테이너선은 좀 그런데, 솔직히 벌크선 정도는 괜찮지 않겠어?
뭐, 이런 고민의 연속.
스파이더그룹의 비아 형제가 걱정 타령하며 뜸을 들이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중국 조선업이라는 복병이 아니라면 고민하는 척도 하지 않을 것이다.
무슨 말을 할지 다 아니까, 뭐라 하는지 들어나 보자. 여기까지 자비로 왔는데 그깟 파훼법 하나 없이 왔겠어?
“탱커는 뭐 그렇다고 쳐도, 벌크선은 좀…….”
“우리 벌크선에 무슨 문제라도 있다고 보십니까?”
“품질은 코리아를 따라올 수가 없죠. 다만, 중국하고 가격 차이가 워낙 커서 우리도 고민이 많습니다.”
“중국 조선사들이 아무리 싸게 배를 짓겠다고 한들, 우리와 비교하는 것은 우리를 욕보이는 것입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벌크선은 우리나라랑 일본이 최고입니다. 중국이 우릴 따라오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그렇죠. 코리아와 일본이라면 당연히 코리아를 택할 겁니다. 근데 중국이라면……. 경영인이라면 그 엄청난 가격 차이에 혹하지 않겠습니까?”
의기양양하게 나섰던 본부장이 그저 멍을 때렸다. 아무리 용을 써도 중국에서 제시하는 가격을 맞추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2000년대 들어 중국 조선사가 급속도로 성장하는 중이다. 기술력이 부족해서 만들기 쉬운 벌크선만 건드리고 있지만, 시장점유율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경쟁력의 원천은 엄청나게 싼 가격. 케이프사이즈 벌크선을 일본이나 우리나라는 8000만 달러 전후로 수주하는데 반해 중국은 7000만 달러 밑으로 만들어버리니, 선주들이 혹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가격 때문에 우리한테 발주 안 하겠다고? 이거 또 엄포를 놔야겠구만. 상대가 얘기할 듯 말 듯 뜸을 들일 때는 내가 질러버려야지. 회귀자의 특전 아꼈다 뭐 하나.
“가격 때문에 중국을 선택하겠다 그 말입니까?”
“선택하겠다가 아니라 고민하고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저는 우리 비아 형제님께서 그렇게 무모한 사람인 줄 몰랐습니다.”
“무모하다니요? 케이프사이즈 같으면 척당 1000만 달러나 차이 나는데,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고민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이 시국에 말입니다.”
“무모하죠. 중국 조선사들이 제날짜에 선박 인도했다는 얘기 들어봤습니까? 그리고 중국산 배들 운항 데이터가 제대로 공개된 적이 있습니까? 선주들도 싼 맛에 샀다가 부끄러워서 운항 데이터조차 공개하지 못할 수준인데, 중국 배를 사겠다구요?”
“하하. 그거야 지금 나오는 배들 얘기고, 앞으로는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발주를 계획한 선박은 앞으로 2년 뒤에나 받을 수 있습니다.”
“중국 배가 앞으로 좋아진다구요? 천만에요.”
“무슨 근거로 그런 얘기를 합니까?”
근거가 필요해? 오냐, 지금부터 내가 회귀자의 특전을 활용해서 아주 적나라하게 잘 알려줄게. 귓구멍 벌려, 근거 들어간다.
“역시나 중국에 대해서 잘 모르는군요. 이 시장은 까다로운 주문자의 입맛에 맞춰야 성공할 수 있는 곳입니다. 일본이 뒤처진 이유도 그걸 못 했기 때문이죠. 우리나라는 선주들이 원하는 걸 다 들어줍니다.”
“그거야 익히 다 아는 사실이죠. 그래서 중국은 그게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려는 겁니까?”
“이게 문화의 차이도 큽니다. 일본은 얍삽해서 그리된 것이지만, 중국은 또 다릅니다. 중국 사람들은 자신들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에요.”
“중화가 뭔지는 압니다. 그것과 선박 건조하는 게 얼마나 관련이 있다고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유럽 사람들이 좀 까다롭습니까? 선박이 발주하면 끝이 아니잖아요. 선급 검사관들이 항상 상주하면서 하나하나 다 체크하고 또 체크하고, 보통 까다로운 일이 아니에요. 중국에서 제대로 될까요? 외국 사람이 뭐라고 하면 도리어 화내는 사람들이?”
“말이 그렇지, 정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못 믿겠으면 한 번 발주해 보세요. 선박 엉망으로 나와서 보험료 폭탄 맞고 징징 짜지 말구요.”
“하하. 그 정도 패널티는 1000만 달러로 상쇄 가능할 것 같습니다만.”
“중국 배가 싼 이유가 결국 인건비 때문인데, 그게 얼마나 갈 것 같습니까? 길어야 2년입니다. 뱃값은 오르는데, 품질은 여전히 안 좋고, 필요한 날짜에 받지도 못하고, 받아도 사고위험 때문에 보험료 개비싸고. 자신 있으면 중국에 발주해 보라니까요.”
구라 같지? 진짜 2년만 있어 봐. 내 말이 진짜라는 걸 깨달을 테니까.
전생에 진짜 가관이었다.
중국 조선사들은 말 안 듣는 농민공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가 고민일 정도로 인력 관리에 애를 먹었다. 불체자나 다름없어서 임금은 말도 안 되게 쌌지만, 통제가 어려웠거든.
그 말인즉, 선박을 제대로, 제때 건조하지 못했다는 의미였다. 늘 강조하지만, 이 바닥은 제날짜에 선박 대령하는 것이 실력이야. 중국은 늘 그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 왔다니까.
어찌어찌 인력 관리에 성공했다 쳐. 그때부턴 가격경쟁력이 없어지는 거지. 왜냐? 중국 사람들이 그 돈 받고 일할 생각을 하지 않거든. 내가 중국 조선소 사장이었다면, 미쳐버렸을지도 몰라.
진짜 가관은 그다음이었다. 아마 내년부터 중국 배가 쏟아질 것이다. 온갖 기상천외한 일이 다 벌어졌다.
인도식 한다고 손님 다 불러놨는데 난데없이 배가 가라앉지 않나, 아무리 못 해도 20년은 끄떡없어야 할 배가 운항 2년 만에 퍼져서 해체되질 않나, 계약서상 스펙이 실제 운항 데이터랑 하나도 안 맞질 않나 등등.
마! 이게 현실이다. 알았냐?
진실을 담은 내 엄포에 동생 비아도 눈만 껌뻑거렸다. 쫄리제? 그러니까 내 말대로 우리 회사에 몽땅 발주하면 되는 거야.
“하하. 미스터 유! 여기까지 와서 중국 얘기할 이유가 있습니까? 오늘 이 자리에서는 스파이더그룹과 유일조선의 희망찬 미래만 얘기합시다.”
형 비아가 화제 전환에 나섰다. 좋다, 좋아. 우리 미래를 얘기해 보자고. 주둥이가 풀렸으니까 좀 더 털어봐야겠구만.
“우리의 미래. 아주 아름다울 것입니다. 말 나온 김에 몇 마디 더 드려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당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언제나 우리를 즐겁게 했지요. 동생 녀석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흠흠. 뭐 개의치 않아도 됩니다. 저놈은 저러다 알아서 풀립니다. 하하.”
“스파이더그룹이 비상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셨죠?”
“5년을 준비했습니다. 실로 인고의 세월이었죠.”
“그 비상이라는 것이 무엇일지 생각해봤습니다. 우리 같은 조선사는 캐파를 늘려서 더 많은 배를 만들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일 테고, 해운사는 경쟁력 있는 선박을 많이 확보하는 것이겠죠.”
“뭐 그거야 당연한 얘기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 당연한 걸 못 하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돈 때문이죠. 한두 푼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수천, 수조 원이 들어가는 일이라 알면서도 못 하는 것이죠.”
“혹시 우리의 자금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겁니까?”
“설마요. 전 한 번도 스파이더그룹의 재정에 대해서 걱정한 적이 없습니다. 돈 마련할 준비가 다 돼 있는데, 무슨 걱정이 필요하겠습니까?”
“뭔가 알고 있다는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하하. 아마 알면 진짜 깜짝 놀랄 겁니다. 뭐 그건 차차-”
“발주자금 확보를 위해 뉴욕과 오슬로 증시에 상장할 계획인 걸 다 알고 있습니다. 3년 정도 보고 계시겠지만, 굳이 이것저것 잴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자, 표정관리 해 보시라. 3년 뒤에 일어날 일을 꺼내 들었으니, 어떤 표정을 짓나 좀 보자꾸나. 5년이나 준비했다고 했으니, 3년 뒤 일도 당연히 계획에 들어있겠지.
“아니! 그걸 어떻게-”
“아, 물론! 상장에 성공하려면 우리가 건조 중인 선박이 기대한 만큼의 성능이 나와야겠죠. 우리 비아 브라더도 그걸 기다리고 있을 테구요. 그래서 자신 있게 말씀드립니다. 우리가 만들 선박의 성능은 확실합니다. 그러니까 바로 상장 준비 들어가셔도 됩니다.”
“미스터 유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냐구요.”
“저 같은 참새가 대붕의 뜻을 어찌 알겠냐 만은, 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면 알지 못할 것도 없습니다. 스파이더그룹의 발주가 이번이 끝이 아닌 시작이라고 생각해서 슬롯을 넉넉하게 남겨놨습니다. 언제든 찾아만 주시죠.”
“하하. 미스터 유! 저번엔 에코십으로 나를 놀라게 하더니, 이번엔 우리의 탑 시크릿으로 또 한 방 먹이는군요. 뭐 상장뿐이겠습니까! 상장만 성공한다면 증자로 시드머니를 계속 늘릴 생각입니다.”
“저기, 회장님. 그 얘기는…….”
“뭐 어때! 어차피 우리와 함께할 곳은 유일조선이잖아! 중국 따위가 우리의 원대한 포부를 이해라도 하겠어? 파트너끼리는 서로 솔직하게 대화하는 거라고. 하하.”
꿍한 동생 비아를 화끈한 형 비아가 제압했다. 그래, 사업은 그렇게 대국적으로 하는 거라고. 조금 더 밀어붙여 보자고.
“가을경에 에코십이 인도되면 저희도 스파이더그룹 행보에 맞춰 대대적인 홍보를 할 생각입니다.”
“홍보요?”
“왜요, 홍보 안 할 생각이었습니까?”
“아니, 그건 또 어떻게 알고 있나 해서 말입니다.”
“척하면 딱이죠 뭐. 홍보할 내용도 다 생각해 놨습니다. 기존보다 연비가 30% 개선된 경제적인 선박, 오염물질 배출량을 극도로 줄인 친환경적인 선박! 그쪽에서 실제 운항 데이터만 보내주시죠.”
“하하. 미스터 유는 우리를 너무 잘 알고 있군요.”
“스파이더그룹의 사생팬이라고 생각해주시죠.”
“아이돌이 된 기분이네요.”
순간 움찔했다. 아이돌 된 기분이라고 해서 춤추고 노래 부르면 어쩌나 걱정했다니까. 정말 다행히도 형 비아는 말만 할 생각이었나 보다.
“뭐, 남들은 그럽니다. 지금은 선박 발주를 할 때가 아니라구요. 소나기는 피하고 봐야 한데나?”
“어떤 바보가 그런 소리를 합니까!”
“바보 맞습니다. 당연히 제 생각은 다릅니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발주를 합니까? 시중에 그 많은 배들을 고철로 만들 배가 있는데요!”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거액을 들여서 대규모 시설 투자에 나선 이유가 뭐겠습니까? 이게 다 스파이더그룹을 위한 성의 표시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하하하.”
분위기 좋다. 상견례도 잘 끝났고, 예식장과 스드메 예약까지 끝내고 신혼집 알아보러 다니는 기분이다.
그런데 왠지 이쯤에서 노래가 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이유는 뭘까? 잠자코 있던 본부장이 안경을 매만지고 있기 때문일까?
“이거 기분도 좋은데, 제가 노래 한 곡조 올려도 되겠습니까? 우리가 지금 뭐 계약하자고 모인 것도 아니고, 서로 친목을 다지자고 있는 것 아닙니까? 이럴 땐 노래가 제격이지요.”
“노래 좋지요! 한국인들이 흥이 많다고 하지만, 우리 이탈리아노도 만만치 않죠. 자, 기대됩니다.”
두둥. 결국…….
“베싸메, 베싸메무쵸.”
또 시작이네. 그래도 칸초네라 다행이다. 이걸로는 나를 춤추게 할 수 없지.
“솔 마레 루치카, 라스트로 다르젠토……산타 루치아아아.”
대체 몇 곡을 부르려고 저러나. 적당히 하고 저녁이나 먹으러 갑시다.
짝짝짝.
“아, 정말 감미로운 노래였습니다. 2002월드컵 16강 패배의 억울함이 싹 가시는 기분입니다. 그 정도로 훌륭한 노래였습니다!”
이 새끼가 또 시작이네. 아휴, 저 징글징글한 새끼. 그거 실력으로 이긴 거라고!
너 이 새끼, 이번에 제대로 팩트를 알려주겠어.
“저기, 우리 비아 브라더! 할 얘기가 있습니다.”
“하하. 또 무슨 얘기로 내 기분을 기쁘게 해 줄 생각입니까?”
“16강 패배가 여전히 억울하다고 생각할 수 있죠. 우리도 그렇습니다. 피파에 항의하면 경기 무효 된다고 해서 문자도 엄청 보냈어요. 그거 다 정신승리입니다. 16강전 승리는 정당했습니다.”
“뭐라구요!”
“내 말이 맞다니까!”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계속 정신승리하겠다고?”
동생 비아와 김 본부장이 말리고 나서지 않았다면, 이 축제 분위기가 장례식으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결국 화해했다.
“좋습니다. 우리가 독일을 꺾으면 인정하시겠습니까?”
“하하. 농담도 지나치십니다. 월드컵에서 코리아가 독일 꺾으면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하하하.”
이 새끼. 10년만 기다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