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133
나는 작가다 133화
133화
-예, 지금 하시는 작품 끝나고 따로 계약하신 게 없다면 저희가 계약해 드리겠습니다. 대신 전작을 제가 이야기해도 되겠습니까?
“너무 망해서…….”
내가 자신의 전작인 박도무사를 알고 있단 사실에 대해 창피해하는 제로 작가.
그에게 난 기회를 주기로 했다.
자신이 정말 원하던 걸 할 수 있는 기회.
-전 계약한다면 제로 작가님께서 무협을 쓰게 해드릴 겁니다.
“무협…….”
그토록 자신이 쓰고 싶었던 무협을 써준다고 하자 아련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제로…… 아니, 백정 작가.
마치 첫사랑을 놓쳤던 한 사내의 눈빛.
지금 시기의 백정 작가에겐 무협이란 그런 것이었다.
첫사랑과 같이 이루어질 수도 없으며 추억으로만 남겨야 하는.
전자책 시장이 오면서 좀 더 작품의 다양화가 가능해지면서 첫사랑을 떠올리며 쓴 광룡제가 대박났지만, 지금의 백정 작가에겐 무협이란 여인은 이미 한참 멀리 떠나버린 것과 같았다.
근데 내가 도와주겠다고 했다.
백정 작가의 무협을.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아련함으로 가득 찼던 백정 작가의 눈빛이 결심으로 바뀌었다.
결심에 찬 눈빛으로 백정 작가가 답했다.
“좋습니다.”
내 손을 잡은 백정 작가.
그에게 씨익 웃어줬다.
-알겠습니다.
백정 작가가 아닌 헤카림 작가를 쳐다봤다.
-헤카림 작가님이시죠?
-맞습니다. 절 아시는군요?
보통 아더만 작가와 비슷한 성향을 지녔다면 자기보다 어려 보이는 데다가 후배니까 말부터 놓고 보는 인간군상 중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카림 작가는 내게 존댓말을 썼다.
저런 유형들이 지닌 특징 중 하나다.
흔히 ‘강약약강’이라고 불렀다.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인간……. 아더만 작가가 당한 걸 보고 나한텐 함부로 하면 안 된단 걸 깨달았겠지.’
정말 혐오스럽다.
근데 어찌 보면 당연한 인간의 섭리일 수도 있다.
자신의 이득을 취하기 위해선 강한 자에게 도전하는 건 용기가 아니라 만용이라 여기며 설설 기고, 상대가 약하면 빼앗기 쉬우니 강해진다는 건.
하지만 인간의 도리란 게 있지 않은가?
그래, 강한 자에게 도전하는 만용이라고 치자.
반면 자신이 약한 자보다 강하면 도와줘야지.
하지만 세상에는 약한 자를 돕기보단 그들의 것을 빼앗아 자기 배만 불리던 인간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리고 공통점이 하나 더 있었다.
자기보다 약한 자에겐 오만하다는 것.
헤카림 작가 역시 백정 작가가 자기보다 어리고 후배란 생각에 오만하게 굴었다.
자신에게 두 손으로 마이크를 건네야지, 어째서 한 손으로 건네냐면서.
그런 헤카림 작가에게 난 물었다.
-알다마다요. 이 년 전에 데뷔하셨죠?
-맞습니다.
자신의 데뷔 연도가 2년 전이라고 확잡해 주는 헤카림 작가.
자기가 무슨 짓을 저지른 지도 모른 채 얼마 안 되는 경력 가지고 뿌듯해하는 표정이다.
데뷔 2년차도 안 되는 작가들은 자신에게 알아서 기란 듯한 느낌이랄까?
지금부터 누가 기어야 될지도 모른 채.
난 데뷔 2년차를 자랑스레 여기는 헤카림 작가에게 말했다.
백정 작가를 가리키며.
-그럼 다시 제로 작가님에게 마이크 공손히 양손으로 돌려드리고 다시 정중히 받으시죠.
-예?
일순간 헤카림 작가가 당황했다.
갑자기 자신보다 후배인 작가에게 공손히 굴라니 황당하리라.
방금 전 내가 한 말의 의미가 뭔지 밝혔다.
-제로 작가님의 데뷔작은 삼 년 전 박도무사입니다. 무려 일 년이나 더 선배시죠. 아까 헤카림 작가님께서 뭐라고 하셨죠?
-그, 그게…….
말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기억 못할 리가 없다.
단지 자신이 깔보던 백정 작가가 선배란 걸 알게 되지 말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자기가 후배라면 상황이 뒤바뀌니까.
결국 뭐라 말을 못하는 헤카림 작가.
그를 보며 난 잠시 눈을 감았다.
감정을 잡기 위해서.
방금 전 헤카림 작가를 배역이라 생각하고 연기할 생각이었다.
감았던 눈을 뜬 채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싸가지가 없네.
“…….”
좌중이 침묵했다.
모두가 내게 이목을 집중시켰다.
사람들이 말했던 내 연기를 볼 때의 반응이다.
침묵하며 집중하게 되는 매력.
그 집중 속에서 난 헤카림 작가가 이어서 했던 말을 그대로 내뱉었다.
-누가 봐도 내가 선배고, 윗사람인데 물건을 한 손으로 주나?
이 대사가 끝나고 3초간 모임 자리는 고요했다.
그 침묵을 깬 건 헤카림 작가였다.
-그것이…….
어떻게든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변명거리를 준비한 것 같았다.
그런 기회조차 주지 않을 생각이다.
난 헤카림 작가의 말을 끊고 말했다.
-방금 헤카림 작가님께서 하셨던 말씀이셨죠? 그러니까 본인보다 선배인 제로…… 아니, 백정 작가님에게 마이크 다시 공손히 드리고 다시 받으세요.
백정 작가를 가리키던 손을 흔들며 선배 대접하라고 하자 헤카림 작가가 반박하길.
-이미 받았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이미 자신이 마이크를 쥐고 있는 걸로 상황을 모면하려고 한다.
턱도 없는 짓거리.
난 강경하게 나왔다.
-있습니다. 방금 전 백정 작가님을 책임지기로 했습니다. 제 작가가 무시당하는 건 못 봅니다. 헤카림 작가님 본인 입으로 말했던 것처럼 선배에 대한 예의를 차리시지 않는다면 이 모임에서 나가주셔야겠습니다.
분명히 난 방금 좌중 앞에서 약속했다.
백정 작가를 책임지겠다고.
헤카림이 무시한 것 이상으로 백정 작가가 선배 대접을 받도록 해줄 거다.
못 받더라도 내 작가가 될 백정 작가를 무시한 놈을 가만히 두진 않으리라.
만약 백정 작가에게 제대로 선배 대접을 안 한다면 이 자리에서 쫓아낼 작정이다.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내가 강경하게 나오자 헤카림 작가는 당혹스러워했다.
-그게 무슨…….
-정하시죠.
계속 내가 말을 끊고 백정 작가에게 선배 대접하길 요구하자 갑자기 헤카림 작가는 이마를 찌푸렸다.
-하, 어린놈의 새끼들이……. 더러워서 간다, 가!
화가 났단 듯이 지껄이더니 들고 있던 마이크를 내던졌다.
콰아앙!
그렇게 마이크를 내던진 헤카림 작가는 모임 장소에서 떠났다.
‘유유상종이라더니 누가 아더만 작가와 친한 작가 아니랄까 봐 성질머리 한번 더럽군.’
괜히 또 백정 작가 덕분에 풀렸던 분위기가 헤카림 작가로 인해서 무거워졌다.
거기서 난 분위기를 풀기 위한 농담을 던졌다.
-괜찮습니다. 저희가 마이크 여분 준비할 능력은 충분하거든요. 지인 씨, 마이크 하나만 더 준비해 주세요.
“네? 넵!”
작가들뿐만 아니라 직원들 모두 아더만 작가에 이어 헤카림 작가의 일로 인해 벙쪄 있었는데, 그중 하나인 최지인 씨가 내 말에 정신을 차리며 마이크를 준비하러 갔다.
그러나 여전히 좌중은 시간이라도 멈춘 것마냥 가만히 있었다.
생각보다 분위기가 많이 살벌해졌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래, 차라리 잘됐다.
이미 본보기를 두 명이나 보여줬다.
어느 작가도 이제 내 작가들에게 함부로 하면 안 된단 걸 깨달았으리라.
반대로 내 작가가 된다면 무조건 챙겨줄 거란 것 또한 알게 됐으리라.
그리고 내 작가가 곧 K E&M의 작가인 걸 알게 되리라.
그걸 알려주기 위해 마이크를 잡고 밝혔다.
내 실체를.
-다시 인사하겠습니다. K E&M의 실질적인 주인인 ‘이준경’이라고 합니다.
* * *
KN월드 정모가 끝난 후 일주일이 지났다.
정모 때 대부분 작가들과 연락처를 교환했고, 특히 난 십 대와 이십 대 작가들에게 큰 지지를 얻어냈다.
K E&M을 가면 절대 나이로 짓누르는 갑질에 대한 일 없단 인식까지 생기며.
반대로 삼십 대 이상 작가들 중에서 아더만 작가와 헤카림 작가와 비슷한 분류의 이들에겐 불만을 샀다.
하지만 그들 역시 날 지지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하다.
헤카림 작가가 정모에서 떠난 이후 난 남아 있는 이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면서 K E&M이 어떤 출판사보다 조건도 좋고, 미래가 밝다는 걸 알려줬다.
비록 어린놈이 싸가지가 없단 인식을 갖더라도 자기들 미래를 생각하면 날 적으로 돌려선 안 된단 걸 잘 알았다.
그렇다고 나이 많은 작가라고 다들 아더만 작가나 헤카림 작가 같은 인간들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 중에서도 자기랑 비슷한 나이대의 작가들이 애들한테 갑질하는 걸 좋지 않게 보던 이들이 많았다.
특히 그런 개념 있는 나이 많은 작가들은 대개 자기 작품만으로 승부해서 성공한 이들이었다.
성공한 작가들에게 지지를 샀다?
끝났지.
게다가 이 시장이 좁아 터져서 썩어빠질 고인물이 생긴 만큼 소문도 빨랐다.
백 명에 가까운 작가들이 작가 이준경과 K E&M이 어떤 존재인지 알았다.
이제 장르판 전체가 다 알게 됐다고 봐도 무방했다.
심지어 장르문학 갤러리에선 KN월드에서의 내 사이다 썰이 떠돌았다.
몇몇 유동닉들이 싸가지 없다고 욕하긴 했는데, 그거야 아더만 작가나 헤카림 작가 같은 인간들일 터.
무시해도 그만이었다.
오히려 그런 유동닉들의 욕보단 고정닉들의 찬양이 더욱 많았으니까.
뿐만 아니라 불꽃새 촬영이 들어간 이후 기사도 뜨면서 난 ‘작가와 배우 둘 다 잡은 성공한 이십 대’란 타이틀도 얻었다.
덕분에 웬만한 장르작가들에겐 롤모델로 급부상하기까지 했다.
이후 장르 작가 중 태반이 우리 회사와 계약하려고 몰려들었다.
‘성용 형님이 아주 죽으려고 했지.’
갑자기 작가가 백 명도 넘게 계약하겠다며 달려드니 감당하기 어려워했다.
나중에 전자책 시장이 열리고 매니지먼트들 중 잘나가는 곳들이 그렇긴 했는데, 대부분 이럴 경우 작가 수가 너무 많아 케어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욕을 먹곤 했다.
그걸 잘 아는 나였으니 성용 형님에게 한 가지 권한을 더 줬다.
사실 성용 형님이 회사를 운영하면서도 웬만하면 내 인세로 넣어둔 돈은 건들지 않았다.
정말 급하게 필요하면 내 허락을 구했는데, 이번에 한 가지 권한을 더 쥐어줬다.
직원을 뽑는 데 있어선 내 인세 다 털어 써도 되니 계약하려는 작가들 케어할 수 있을 정도로 뽑으라며.
어차피 잘 케어해서 좋은 작품들만 팔아넘긴다면 언제든 메울 수 있는 돈이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다.
열심히 촬영하던 드라마 불꽃새도 방영을 시작했고, 현재 장르 시장은 ‘K천국’이라 불렸다.
이제 장르시장에서 제대로 된 이름값 있는 작가가 되기 위해서 너도, 나도 K E&M과 계약하려고 했다.
하지만 계약한 작가는 기존 작가들과 합쳐서 이백 명도 채 안 됐다.
계약하고 싶단 작가는 기성과 신인을 포함해서 천 명도 넘었는데, 그중 우리가 원하는 기준 이상의 작품을 써줄 수 있는 사람들은 10분의 1도 안 됐던 것이다.
어쨌거나 지금 계약한 작가들로도 종이책뿐만 아니라 KN월드의 유료 연재도 화려하게 성공시켰다.
아주 나중에 스마트폰 시장이 활발해졌을 때보단 덜하긴 했어도 정말 최상위권 작가의 경우 KN월드에서 유료연재로 매달 천만 원 내외로 가져갔다.
이건 해낸 방법이야 간단했다.
불꽃새로 드라마를 성공하면서 방송국들에게도 나와 내 회사의 입김이 세져서 광고도 요구할 수 있었으며, TV뿐만 아니라 나와 계약했던 네버 대표들을 만나서 인터넷 광고까지 때렸다.
심지어 모델은 내가 섰다.
유입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2년간 쉬지 않고 한 번도 떨어지지 않고 K E&M과 난 나날이 승승장구해 나갔다.
* * *
이런 말이 있다.
‘인기가 많아질수록 안티도 늘어난다.’
나와 K E&M이 승승장구하며 커지면서 연재사이트인 KN월드에 꽤 많은 사람들이 유입되고 관심을 보이면서도 욕을 했다.
다들 베스트셀러 작가인 내가 모델로 서서 재밌는 소설들이 많을 거라고 들어와서 봤다가 자기들이 보기엔 수준이 낮은 글들을 보곤.
‘저게 무슨 소설이야? 내가 발로 써도 그것보다 낫겠다.’
언제나 장르 시장에서 빠짐없이 나오던 이야기였다.
이게 생각보다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거기서 난 성용 형님과 미팅을 가졌다.
“이번에 KN월드로 뭘 하자고?”
갑자기 내가 KN월드에서 뭣 좀 하고 싶다며 이야기하자 그러니 물어본 성용 형님.
그에게 난 준비한 게 뭔지 밝혔다.
“장르 소설 욕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공모전 하나 열죠.”
“신인 발굴 공모전 말고?”
신인 발굴 공모전.
이름 그대로 신인들 중에서 괜찮은 작가들을 뽑으려는 공모전이나 기성도 포함해서 할 수 있는 공모전 등 이미 KN월드를 위해서 준비 중인 공모전은 꽤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공모전이다.
난 내가 생각한 공모전의 이름을 밝혔다.
“‘쓰바라마’ 공모전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