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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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에서는 제니스 타운의 설립 목적이나 활용도에 관해서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하고 있었다.
선정 위치에 관해서는 특별한 이견이 없었다.
유지웅은 자기만의 거점을 위해 넓은 평지를 필요로 했고, 땅 면적으로만 본다면 전남 지역이 유리했으니까. 국가적으로 투자 개발이 많이 이뤄지지 않아 토지 매입도 쉽고, 가격도 싸다.
어디까지나 이미 개발이 많이 이뤄진 다른 지역과 상대적으로 봤을 때 이야기다.
그러나 투자 목적에 관해서는 이견이 다양했다.
먼저 건설사업에 중점을 둔 기업들은 유지웅이 궁극적으로 토지 장사를 노린다고 생각했다.
도시가 서울못지 않게 발전하면 당연히 땅값은 천정부지로 뛰어오를 것이다. 수백배 내지 수천배에 달하는 땅값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
그때 가서 전체 땅의 20%~30%만 팔아치운다 해도 초기 투자 비용은 건지고도 남는다.
여기에 추가로 자기 소유의 토지나 건물 임대료를 올려버리면 대대손손 막대한 연금이 들어온다.
실제로 건설업계는 저런 예상이 현실화될 경우, 제니스 컴퍼니가 임대료로 거둬가는 돈만 월에 수 조 원이라는 계산을 마치고는 혀를 내둘렀다.
1만 제곱킬로미터가 넘는 도시를 오롯이 독점하고, 임대료를 받아챙기는 것이니 그 예상 월세 규모 또한 천문학적이었다.
이와는 다른, 정치 개입설도 있었다.
자기만의 도시를 세우고 인구가 늘어나면 선거구 개편은 필연적이다. 자연히 유지웅이 차지할 수 있는 국회의석 수도 늘어난다.
유지웅의 적극적인 스트리밍 방송 활동 덕분에 이 설도 꽤 많은 지지를 받았다.
또 다른 하나는 정부의 간섭 등 일체의 귀찮은 절차를 피하기 위해서 아예 백지부터 새로 시작하는 거라는 주장이었다.
‘지금 유지웅 의장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말을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초기에는 결정체 광맥설이 제법 유력했지만, 결정체를 재배한다는 것이 알려진 후로는 그 설은 쏙 들어갔다.
다만 결정체가 따뜻한 지역에서 재배가 유리하기 때문에 전남에 자리를 잡은 것은 아닐까 하는 의견도 있었다.
‘가장 많은 사람을 거느린 도시, 그래서 가장 부유한 도시, 때문에 가장 높은 가치를 지닌 도시…….’
오늘 정지운은 다른 재벌들이 몰랐던 진실 한 조각에 도달할 수 있었다.
제니스 타운은 그저 땅 장사나 하려고 그 넓은 땅을 사들여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어 투자하는 게 아님을.
정지운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위치와 접근성 좋고, 유동성도 높고, 그래서 남들이 탐내는 땅을 단지 남보다 먼저 차지했다는 이유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놀고 먹는 사람은 영원히 없겠군요. 적어도 제니스 타운에서는 말입니다.”
토지로 인한 불로소득은 모두 제니스 컴퍼니가 남김없이 흡수하겠다는 것이다.
적어도 제니스 타운에서는 부동산 면에서 모든 이들이 제니스 컴퍼니 아래 공정한 기회를 누릴 수 있다.
“공공재로서의 토지 기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예요. 애초에 우리가 전부 사들여서 도시를 지었으니, 땅이 모두 우리 소유라고 누가 뭐라고 할 수도 없죠.”
토지의 사유재산 기능성을 목놓아 외치는 이들도 제니스 컴퍼니 앞에서는 할 말이 없다.
제니스 컴퍼니는 결국 자가 소유의 토지에 도시를 지어 사람들에게 임대 사업을 펼치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그들의 논리대로 해석하자면.
‘꽤 쓸 만한데, 이 사람?’
정효주는 새삼 다른 눈으로 정지운을 보게 되었다.
재벌 3세라서 선입견이 원래 적지않게 있었지만, 이야기를 나눠볼수록 회유가 먹히는 인물이라는 느낌을 얻을 수 있었다.
적어도 앞뒤 꽉 막혀서 자기 생각을 바꿀 의지가 없는 사람은 아니다. 사고방식에 유연성이 있다.
제니스 타운의 설립 의의와 취지를 이 정도만큼이라도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것 자체가, 그가 다른 재벌 후계자들과 차이가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정도까지 대화가 통한다면…… 그럼 이야기가 많이 달라지지.’
정효주는 손을 뻗어 테이블에 놓인 종이를 쥐었다.
종이에는 그들이 맺은 대합의 정리 조항들이 적혀 있었다.
효진배터리 51%를 팔고, 경영권을 보장하고, 배터리 생산을 허락하고, 마진은 3%로 하고, 기타 등등 그런 내용들이다.
그녀는 그 종이를 보란듯이 과감하게 찢어버렸다.
하지만 정지운은 놀라지 않았다.
그녀가 종이를 찢은 게 협상 결렬이나 모욕감을 주기 위해서가 아님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그녀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남자의 마음을 사정없이 후벼파는 미소에 정지운은 순간적으로 가슴이 철렁했다.
막내딸보다 어린 바이어이자 투자자한테 순간이나마 그런 설렘을 받았다는 것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창피했다.
“다시 처음부터 이야기를 해볼 필요가 있겠는데요. 물론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요.”
“혹시 이 자리에서 지금 제 상상을 넘어서는 빅딜이 이뤄지게 되는 겁니까?”
“물론이죠. 그리고 대표님이 이 자리에서 직접 판단하고 결정하셔야 합니다. 정현수 회장님에게 보고하고 허락받고, 그렇게 할 성질이 아니에요.”
부친의 허락을 받을 일이 아니다?
정지운은 가슴이 새카맣게 타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기분좋은 작열감이었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걷잡을 수 없는 흥분에, 손끝이 기분 좋게 벌벌 떨린다. 이 전율에 거듭해서 취해있고 싶었다.
정효주는 다리를 바꿔 꼬았다.
매끄러운 각선미에 저도 모르게 그만 잠시 시선을 빼앗긴 것을 자책하는 찰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왜 그렇게 미래자동차그룹에 집착을 하세요? 시야가 너무 좁으신 거 같은데.”
“……?”
정지운은 무슨 뜻인지 언뜻 이해를 못했다. 순간적으로 사고방식이 마비된 느낌이었다.
지금 무슨 말을 한 거지?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거지?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을 해야 하는 거지?
정효주가 다시 말했다.
“효진배터리가 미래자동차그룹 자회사로 남아야 하는 이유가 도대체 뭐죠?”
“……!”
벼락이 정수리에 내리꽂히는 느낌이었다.
그제야 정효주의 일침이 품은 의미를 알아차린 정지운은 주먹을 불끈 쥔 채,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의 반응에 정효주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효진배터리 독점생산권 보장? 당연히 못 해줘요. 아니, 안 해주죠. 해줄 이유가 전혀 없으니까요. 겨우 우리가 51% 갖고 있는 생산 공장에 뭐하러?”
당장 생산라인을 갖추되, 경험과 노하우가 쌓이면 따로 더 크고 더 좋은 생산라인을 만들면 그만이다. 그때가 되면 효진배터리는 버려도 된다.
정지운과 정현수는 그런 미래를 막기 위해 3%의 마진 제한, 경영 현황 감사, 그룹 지분 30% 보장 등 다양하고 화려한 무기들을 준비했다.
‘다 쓸데없는 짓이었다.’
정지운은 그렇게 자기 자신에게 말했다.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뜬 기분이 바로 이럴까. 설명하기 힘든 흥분감이 기분 좋게 몸을 죄어 온다.
“효진배터리를 전부 드리겠습니다. 회사 이름도 제니스 배터리로 바꾸겠습니다.”
덤덤한 말에 정효주는 옅은 미소를 물었다. 정지운의 말은 아직 끝난 게 아니라, 이제 시작이었다.
“효진배터리의 마진 3%는 물론 없던 것으로 하겠습니다. 이제는 의미가 없으니까요. 대신 미래자동차그룹의 마진을 3% 밑으로 고정하고, 아까 말씀드린 미래자동차 전체 지분 30%를 ‘제니스 배터리’가 보유하도록 조치하겠습니다.”
이전에 맺은 협의는 효진배터리가 미래자동차그룹을 위해 배터리 생산 및 공급을 담당하는 자회사라는 전제 하에서 이뤄진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구조 자체가 달라졌다.
효진배터리가 사명을 바꾸고, 미래자동차그룹을 휘하 자회사로 거느리게 되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미래자동차가 국가와 지역 사회, 근로자와 투자자 모두를 위해 조화롭게 상생하는 기업으로 거듭나도록 잘 관리하겠습니다.”
“자신 있어요?”
“맡겨 주십시오. 자신 있습니다.”
“친아버지를 들이받게 되는 건데, 괜찮아요?”
“아버지는 오히려 반기실 겁니다.”
“주주들의 반대는 어떻게 무마할 생각이죠?”
“좋은 길로 똑바로 가기 위해서는 시끄러운 잔소리쯤은 흘릴 줄도 알아야죠. 그 정도는 문제 없습니다.”
“월급쟁이 사장으로 만족할 수 있겠어요? 주인 집안에서 한순간에 집사로 전락하는 건데?”
“병아리 머리보다는 용의 꼬리…… 아니, 꼬리털 한가닥이 되렵니다.”
정지운의 눈빛이 강하게 빛났다. 정효주는 그의 안에 새로이 똬리를 튼 포부를 엿볼 수 있었다.
‘뜻하지 않게 횡재했네.’
사람을 얻는 것이 곧 힘이다. 사람다운 사람을 얻는 것은 즐거움이다. 뜻하지 않게 우연히 그런 기회를 맞닥뜨렸을 때 더욱 기분이 좋아진다.
“좋아요. 이제부터 사장님이 제니스 배터리 최고경영자입니다.”
“당장 미래자동차그룹에서 회장직부터 없애야겠지만…… 이름만은 남겨놓아도 되겠습니까? 아무래도 평직원들 사기 문제도 있고, 또 여러 가지…….”
“아아, 그런 회사 관리 문제는 당연히 사장님이 ‘알아서’ 처리하세요.”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정지운은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회사 법인카드나 경비는 제한 없이 쓰세요. 회사 경영을 위한 것이라면 금액 상한선에 제한은 안 둘게요. 비즈니스 때문에 중동 바이어 만나느라 하룻밤에 몇 억씩 밥값으로 써도 인정합니다.”
“사적인 용도로는 단 1원도 쓰지 않겠습니다.”
한 번에 척 말귀를 알아듣는 점이 더욱 흡족함을 준다.
어딜 둘러봐도 재벌 3세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마치 오랫동안 남의 밑에서 일하며 눈칫밥을 먹은 사람 같다.
“고용은 무조건 능력과 실적 위주입니다. 인맥으로 비비고 들어와서 텃세 부리는 것은 안 돼요. 유지웅 의장이 가장 싫어하는 거예요.”
“명심하겠습니다.”
“한 번 잘해봐요, 우리.”
정효주가 화사한 미소를 머금고 손을 내밀었고, 정지운은 공손히 두 손으로 악수에 응했다.
“아버지. 협상 잘 마무리하고 왔습니다.”
정지운이 생각보다 빨리 돌아오자 정현수는 기분 좋게 맞이했다. 무엇보다 잘 마무리했다는 말에 가장 안심이 되었다.
“오, 그래? 어려운 건 없었냐?”
“네, 정효주 부의장님은 우리 제안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자동차 지분 30%를 준다고 한 것은 뭐라고 하든?”
정현수는 일말의 기대감을 품고 물었다.
그냥 넙죽 받지 않고 뭔가 반대급부를 준다고 했다면, 정효주 부의장이 더할 나위 없이 만족했다는 의미가 되므로.
“아주 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거래 규모가 커졌습니다. 제 평생 이런 빅딜을 성사시켜본 적이 없습니다. 아마 아버지도 마찬가지이실 겁니다, 하하.”
“인석아, 어디서 이 아비랑 비교하냐. 근데 그 정도로 좋은 걸 받았냐?”
“예, 미래자동차그룹 회장직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쯤에서 정현수의 얼굴에 뭔가 미묘한 기운이 맴돌았다.
그러고 보니 아들의 표정이 너무 들떠 있다. 흡사 약이라도 한 것처럼…….
“아버지, 저 미래화학 사장 그만두겠습니다.”
“뭐? 아니, 갑자기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