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301)
00301 금수저를 물고 =========================================================================
성탄절을 맞아 유지웅 커플은 학과 동기들을 자택에 초대해 파티를 열기로 했다. 초대를 받은 학생들은 전원 빠짐없이 기꺼이 참석하기로 했다. 연인과 데이트하기로 계획한 이들도 있었지만 특별히 날을 비웠다.
다른 이도 아니고 이 나라 정치와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인물이 주관하는 파티다. 특히 한국에서 가장 호화로운 저택이자 기네스북에도 오른 흑석동 저택을 방문할 기회는 흔치 않다. 겨우 연인과의 데이트로 날려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기회였다. 전공을 살려 결정체 관련 산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은 결정체학과 학생이라면 더욱 그렇다.
교수들 및 선배들도 참가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으나 유지웅은 정효주와 자신의 동기에 한정해서 초대했다. 아무래도 어린 애들이라서 편하게 놀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지위가 있다 보니 그가 참관하는 모임은 다분히 정치성을 띨 수밖에 없다. 사회에서 하나씩 자리를 잡은 나이 많은 선배들이 앞 다투어 차마하고 싶어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이번 성탄절 파티만큼은 그런 정치성을 배제한, 편안한 파티가 될 수 있도록 둘은 나름대로 신경을 많이 썼다.
오후가 되자 학생들이 하나둘씩 들어왔다. 유지웅은 드레스코드까지 미리 정해주었다. OT 때처럼 편안한 옷을 입고 오라고 딱 주문을 한 것이다.
흑석동 저택을 처음 와보는 학생들은 두근거리며, 혹은 위축이 되어 정문을 통과했다. 넓은 정원과 곳곳에서 솟구치는 분수대, 잘 다듬어진 멋진 정원수 사이로 고운 자갈로 잘 포장된 길이 나 있었다.
말 그대로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그림 같은 저택이었다. 과연 여기가 한국이 맞는가 싶을 정도다. 여자들은 꿈꾸는 듯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멋있다.”
“효주 언니, 이런 곳에서 사는구나.”
“이건 뭐 엄청난 격차가 느껴지네.”
개인으로서는 세계 제일의 부자라는 말은 지겹도록 들었다. 또 나중에는 가문으로서도 세계 제일의 부자 가문이 될 거라고 했다. 하지만 자신들과 같이 공부하고 수업을 듣고 하다 보니, 그것을 실감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학교에 타고 오는 페라리나 람보르기니, 부가티 등 고급 수퍼카를 볼 때도 그저 돈이 많다 정도로만 인식했다. 머리는 세계 제일의 부자라는 걸 아는데 가슴만 그것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한 것이다. 그 격차를 오늘 흑석동 저택의 으리으리한 규모에서 선명히 실감했다.
“어서들 와라.”
편안한 복장을 한 유지웅이 1층 로비에서 학생들을 맞아들였다. 쭈뼛거리며, ‘내가 이런 데를 와도 되나?’하고 위축되어 있었던 학생들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유지웅의 안색에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
“형, 집 너무 멋져요. 와, 저도 진짜 나중에 이런 데서 살아보고 싶다.”
“오빠, 집 너무 멋있어요. 꼭 영화 같아요.”
“효주랑 아이 키우면서 살려고 지은 집이거든. 집 괜찮다니까 나도 기쁘다.”
“멋있다……. 나도 이런 집에서 아이 키워보고 싶어요.”
이거 괜히 멀쩡한 여학생들의 가슴에 불만 질러 놓은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음식은 다 준비 됐거든? 편히 집어들 먹어.”
파티장으로 사용할 공용 홀로 정효주가 안내했다. 웬만한 호텔 홀을 능가하는 넓이와 화려함을 자랑하는 공간이었다. 천장에는 아름답게 조각된 커다란 샹들리에가 달려 있고, 벽 곳곳에는 가치를 잴 수 없는 명화가 걸려 있다.
무엇보다 학생들의 입을 벌어지게 한 건 산더미처럼 차려진 요리들이었다. 한식, 양식, 일식, 중식 등으로 가지런히 분류된 요리는 수와 종류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이거 설마 다 효주 언니가 장만한 거예요?”
정효주는 피식 거리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 몇 개는 내가 한 것도 있긴 한데 요리사 분들이 다 하셨지. 다들 솜씨가 좋으신 분들이거든.”
“진짜 대단하다. 언니, 너무 부러워요.”
돈이 좀 많은 동기가 이랬다면 잘난 체를 하는 거라고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세상에서 돈일 제일 많은 사람이다. 평범한 대학 동기들에게 그런 잘난 체를 할 이유도 없다. 순수한 호의라는 걸 알기에 학생들도 편안하고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부란 하늘과 땅 만큼 격차가 벌어지면 오히려 동경하고 흠모하는 마음이 생기게 된다. 그 부자가 땀 흘려 힘들게 번 재산이라면 더욱 그렇다. 학생들은 흑석동 저택의 으리으리함과 파티의 화려한 규모를 통해, 결정체 산업의 중요성을 오히려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희소 능력자인 덕도 있지만, 레이드 종사자가 불과 2년 안에 이런 거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런 중요한 시장을 다루는 학문이 바로 결정체학이라는 것도.
학생들은 편안하게 음식과 술을 집어먹으며 즐겁게 떠들었다. 오래 전에 졸업한 선배들이나 교수들이 없는 순수한 동기 모임이니 훨씬 편했다. 전부 1학년 아니면 2학년, 한창 순수하고 혈기 왕성할 나이다.
“지웅이 형은 진짜 좋겠다.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돈 많아, 젊어, 건강해, 부인은 예뻐, 대체 부족한 게 뭐야? 와, 진짜 부럽다.”
“야, 근데 너네 그거 아냐?”
“뭐가?”
“탱커가 원래 잘 안 늙는대. 내가 전에 우연히 현역으로 25년째 활동하는 탱커를 본 적 있거든. 김태희 씨라고.”
“아, 그 분? 나도 봤어. 진짜 직접 보고 깜짝 놀랐는데. 그 얼굴로 마흔 다섯이라는 게 말이 돼? 난 여고생인 줄 알았다니까.”
“여고생 때부터 계속 그런 외모였다더라고. 근데 탱커들이 원래 다 그렇대. 효주 누나도 딱 보면 여고생처럼 앳되어 보이잖아.”
“와, 그럼 계속 저 외모 유지하는 거야? 진짜 지웅이 형 좋겠다…….”
“그럼 줄리엣도 나이 들어도 계속 그 얼굴 유지하는 거네?”
줄리엣은 현재 한창 인기 가도를 달리는 아이돌 가수를 말한다. 그녀는 본래 탱커였는데, 취미 삼아 시작한 가수 활동으로 인한 수입이 레이드 수입을 능가하자 아예 레이드를 접고 가수에 종사하고 있었다. 아직 파릇파릇한 이십 대였으며, 모든 한국 젊은이들의 우상이기도 했다.
날이 깊어가며 파티는 더욱 흥겨워졌다. 다들 술이 얼큰하게 취해서 얼굴이 붉게 변해 있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마신 술이 한 병에 수백에서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고급 술이라는 것도 모른 채 마구 마셔댔다.
“형! 약속하신 거예요? 이번 방학 때 저 제니스 사무실에 알바로 써주시는 거?”
“알았어, 알았어. 나오기나 해.”
“형! 저 일 진짜 열심히 잘할 수 있어요!”
벌써부터 혀가 꼬부라지는 소리를 해대는 애들이 나왔다. 그에 비례해서 온갖 청탁도 나왔다. 그런데 1, 2학년들이라 그런지 청탁도 무슨 알바 자리 같은 애교 수준이었다. 그것도 술이 들어가서 맨 정신이 아니라면 아예 꺼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유지웅도 모처럼 편안한 자리라서 술을 주는 대로 마시다 보니 얼큰하게 취했다. 정효주는 여자애들과 놀아주면서도 임신한 몸이라 술은 입에 대지도 않았다.
원래 탱커는 임신 중에 술을 먹어도 태아에 아무 지장이 없긴 하다. 그만큼 신체 능력이 뛰어난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술이나 약물 같은 것은 철저히 조심했다. 아예 입에 대지도 않았다.
“언니, 그럼 지금 7개월 된 거예요?”
“응. 내년 3월이 예정일.”
“와, 얼마 안 남으셨구나.”
“근데 진짜 티 안 나요. 배만 살짝 가리면 임신한 줄도 모르겠어요.”
안 그래도 정효주는 태아 크기가 정상적인 7개월보다 조금 작은 편이라는 진단 때문에 근심이 있었다. 체내에 흡수된 녹서스의 돌이 영 마음에 걸렸다.
“어머, 정말요? 그럼 아까 우리가 지나온 그 정원에서 결혼식 올리신 거예요?”
“낭만적이다. 그럼 두고두고 결혼식 장면 회상하면서 추억도 곱씹고…… 좋겠다.”
“지웅 선배가 안 그런 것 같으면서도 진짜 매너가 있네요. 돈도 많고, 자상하고, 언니만 생각하고. 어쩜 그런 남편감이 다 있을 수 있어요?”
“아, 내 남자친구랑 너무 비교 돼.”
추켜 세워주는 게 정효주도 영 싫지는 않았다. 빈말이 아니라 그녀는 정말 행복하다. 신랑은 세상에서 돈이 제일 많지만, 다른 여자한테 한눈을 팔지도 않고 자신만 바라본다.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가정이 화목하고, 밤일도 원만하다. 육체적, 정서적, 물질적으로 모든 게 풍요로우니 누가 물어봐도 자신 있게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다소 아이처럼 구는 면이 있지만 그건 단점이 아니라 귀엽게만 보인다. 아직 둘 다 젊으니 그런 면모가 더욱 맛깔스러운 신혼을 만끽하게 해준다. 가끔 보이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한테 보이는 가벼운 질투는 그만큼 자신을 사랑한다는 반증이기에 흐뭇하고 즐겁다.
“술 안 마셔?”
어느새 다가온 유지웅이 살짝 비틀거리며 어깨에 기댔다. 그는 한 손에 아예 반쯤 담긴 술병을 쥐고 있었다.
“응. 안 마실 거야.”
“아이 때문에? 탱커는 근데 술 마셔도 상관없다며?”
“그래도 안 마실래. 조심해야지.”
“빨리 낳고 같이 술 마시자. 우리 술 먹고 해본지도 너무 오래 됐어.”
“……넌 이런 순간에도 그런 생각뿐이니?”
그녀는 가볍게 힐난했다. 하지만 얼굴에는 싫은 기색이 전혀 없었다. 신랑이 여색을 밝힌다는 게, 그리고 그 성욕이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건 젊은 신부에게는 행복한 일이다.
“……고마워.”
“응? 뭐가?”
술에 취한 신랑이 꼬부라진 발음으로 되물었다. 정효주는 얼굴을 살짝 붉힌 채 말했다. 아무리 스스럼없는 사이라지만, 이런 때가 아니면 이 말은 꺼내기가 어렵다.
“날 사랑해줘서 고마워.”
“나도 고마워.”
“널 사랑하니까?”
“아니. 탱커라서 고마워.”
“……?”
“너 십 년 뒤에도, 이십 년 뒤에도 지금처럼 이쁠 거 아니야. 난 늙어갈 텐데 넌 계속 이쁠 테니까 그게 너무 고마워. 새장가 안 가도 되잖아.”
“너!”
그녀는 화를 냈다. 아니 화를 내는 척 했다. 술에 취해서 진한 농담을 한다는 게 저렇게 되었다는 걸 그녀도 안다. 그래서 화를 내는 척만 한 것이다.
그렇게 깔깔거리며 장난치고 있을 때였다. 돌연 그녀의 얼굴이 굳어지며 움직임이 멈췄다. 치마가 축축하게 젖어오며, 짜릿한 통증이 아래서부터 올라왔다.
유지웅은 의아해서 움직임을 멈춘 그녀를 바라봤다. 술에 취한 그는 무슨 일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아랫배를 움켜쥐며 주저앉았다. 그것을 목격한 학생들 사이에서 비명이 터졌다. 비교적 멀쩡한 여자애들 몇 몇이 달려왔다. 정효주를 급히 살피던 여학생들 중 한 명이 놀라서 외쳤다.
“양수가 터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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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장 잔고를 생각하니 더 이상 어머니 뱃속에서 잠만 잘 수가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