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432)
00432 사냥은 끝났다. 그러나… =========================================================================
“네, 종신이요. 종신직으로 계약하시죠.”
“하지만 종신은 좀…….”
“괜찮아요.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어떤 곳보다도 좋은 대우를 해드리겠어요.”
“아니, 제 말은 그게 아니라…….”
레지나는 황당했다. 자신은 불순한 동기로 이곳에 왔다. 오래 있을수록 부담이 된다. 이미 이곳에서 이제 볼 일은 다 봤으니 사라지려고 하는데, 대뜸 종신 영입을 제안 받으니 황당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고 종신 고용이라니? 요즘 세상에 그런 개념이 어디 있나. 근로기준법이 새파랗게 눈을 뜨고 있을 텐데, 그런 게 가능한가?
“후후, 저는 그렇게 불법적이고 착취적인 형태로 사람을 고용하지 않습니다. 한 번 읽어 보시죠.”
종신 고용. 자세히 읽어보니 고용 기간이 종신, 즉 은퇴할 때까지로 정해져 있다. 중간에 일을 그만둔다고 따로 배상금을 지불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잃는 게 있다.
“고용인의 항거불능이 아닌 이유로 사직하게 되면 남아 있는 근무적립금을 받지 못한다? 이게 뭐죠?”
최윤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연봉 1억의 종신 연구원은 매달 833만 원의 월급을 받습니다. 하지만 별개로 833만 원의 근무적립금이 회사에 쌓이게 되는데요. 근무 기간이 일 년이 채워질 때마다 그때까지 쌓인 근무적립금 총액의 50%를 받게 됩니다.”
급여와 적립금은 완전히 별개의 개념이다. 서로 따로 논다.
연구원은 약속한 연봉 1억 외에, 일 년이 지나면 그때까지 적립된 적립금 1억 중 50%인 5,000만 원을 추가로 받는다. 이년차가 되면 이번에는 1억 5,000만 원이 쌓이게 되므로 그 중 7,500만 원을 받는다. 삼년차가 되면 8,750만 원을 받는다.
“근무적립금은 근무기간이 늘어날수록 눈덩이처럼 계속 불어납니다. 종신 연구원은 은퇴할 때 남은 근무적립금 전부를 수령할 수 있지만, 그 전에 자의로 그만두면 남은 근무적립금을 받지 못합니다.”
강제로 종신 근무하게 하는 게 아니라, 그만 두고 싶어도 근무적립금이 아까워서 그만두지 못하게 유도하는 식이다. 조항을 자세히 보니 근무적립금은 급여, 상여금, 퇴직금 등등 그런 것들과는 전혀 별개로 운용된다고 한다. 쉽게 말해 정퇴할 때 퇴직금이랑 근무적립금까지 몽땅 다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결정체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가렌 박사도 오래 전에 종신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고 들었다. 레지나는 비로소 그가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종신 계약에 수락했는지 알 수 있었다.
중간에 그만 둬도 다른 패널티는 없다. 단지 근무적립금이 날아갈 뿐이다.
“하지만 저는…….”
“물론 바로 결정하시기는 어려울 겁니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생각해 보세요.”
“그 전에 잠시 갈 데가…….”
“무슨 말씀입니까. 먼저 결정을 하시면 연구 투입 전에 충분한 휴가를 보내드릴 텐데요. 염려 마세요. 자, 어서 다시 들어가시죠. 근무 환경에 대해서 최 박사님이 좋은 말씀 많이 해주실 겁니다.”
레지나는 정문 앞에서 짐을 싸들고 다시 돌아서야 했다.
* * *
새학기가 시작되었다.
학교를 가려고 준비하는데 정효주가 함께 갈 준비를 하지 않아 뭔가 어색한 느낌이 든다. 맞다, 졸업했지.
“너 학교 안 와?”
“졸업했는데 뭐 하러.”
“졸업했다고 안 오는 게 어딨어. 오늘 개강 첫날인데 와서 얼굴도 비추고 하면 좋지.”
“오전에 일이 좀 있어서. 오후에 갈게.”
“일? 무슨 일?”
“……있어. 그런 거. 나도 사생활 있거든?”
“바람피면 안 돼?”
“너야말로 신입생한테 잘해주지 마. 오해받아.”
“잘해준 적 없는데?”
유지웅은 그게 이상했다. 별로 잘해준 적도 없는데 다들 잘해준다고 그런다. 물론 그럭저럭 먹을 만한 곳에서 단체 회식 몇 번 시켜준 적은 있지만, 여후배 중 특별히 편애하는 인물은 없다. 굳이 편애한다면 남자인 장권재 정도가 다다.
그런데 작년에는 신입생들 사이에서 이상한 오해를 사기도 했다. 그의 눈에 잘 들면 팔자 고치는 건 시간 문제라나?
“자기는 이제 뭘 해도 오해 사는 위치잖니. 조심해.”
“나도 그럴까 봐 밥 사줄 때도 몇 십 명씩 한꺼번에 사줬는데? 따로 소수 만나서 사준 적은 없어. 그런 것도 오해할 소지가 있나?”
“보통은 없는데, 자기는 특별하니까.”
정효주는 조금 걱정이 되었다. 신랑과 한 번 자려고 벼르는 여학생들이 워낙 넘쳐나야 말이다. 운이 좋으면 입막음조 혹은 위로금으로 빌딩 한 채, 못 해도 대형 아파트 한 채는 떨어질 테니.
“걱정 할 걸 한다. 우리과에 이쁜 애가 어딨다고.”
유지웅은 그렇게 웃어 넘겼다. 주변에 워낙 여자 탱커들이 많다 보니 미적 기준이 지나치게 높아졌다. 아마 국내, 아니 세계 제일 수준이 아닐까?
세스토 엘레멘토를 타고 학교에 도착하니 과 분위기가 상당히 들떠 있었다. 강의실에 처음 보는 얼굴도 다수 끼어 있었다. 제법 예쁘장한, 신입생으로 보이는 여학생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던 장권재가 얼른 일어나 그를 반겼다.
“형, 오셨어요?”
“어. 이쪽은 신입생?”
“네. 인사해, 얘들아. 유지웅 선배님이셔.”
“앗! 안녕하세요!”
여학생들이 깜짝 놀라서 인사를 했다. 이 나라에서 유지웅이란 이름 모르면 간첩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얼굴은 잘 몰라도 이름과 아직 청년이라는 점은 안다.
“반가워요. 유지웅이에요.”
“저는 14학번 신애라예요.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선배님.”
여자애들은 기회를 놓칠 세라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했다. 유지웅은 별 관심 없었기에 대충 인사를 받고는 자리에 앉았다.
장권재가 얼른 옆에 앉으며 물었다.
“형, 저희 다음 주 목요일에 과에서 단체 엠티 가기로 했는데요, 형 리조트 써도 되나요?”
유지웅은 동해에 대규모 휴양 리조트를 갖고 있다. 연주대학교에서는 매년 신입생 오티를 그곳에서 가지는 게 이미 관행이 되었다. 그 외에 과별로 MT를 가려면 유지웅의 허락을 얻어야 한다.
“써. 저번처럼 박 실장한테 내가 쓰라고 했다고 말하면 알아서 해줄 거야.”
“어? 형은 안 가세요?”
“그날 1심 선고 있어. 그거 가봐야 돼.”
“1심 선고요? 선배님, 무슨 재판 중이세요?”
앞자리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던 신애라가 이때라는 듯이 얼른 물었다.
“내 재판은 아니고, CERC 사건 알지?”
“그럼요! 저도 그때 임상 실험 지원했었는걸요! 선배님 아니었으면 범죄자들이 만든 백신 먹고 어떻게 됐을지, 어휴!”
신애라는 다소 과장스럽게 몸서리를 쳤다. 장권재는 그게 귀여워 보였는지 표정이 살짝 풀어졌다. 물론 유지웅은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그거 일부 주모자들 다음 주에 선고 떨어지거든. 지켜보러 가야지.”
“어머, 정말 책임감 넘치시다. 선배님 같은 분이 있어서 우리나라 미래가 참 밝은 거 같아요!”
‘책임감은 무슨, 귀찮아 죽겠는데…….’
유지웅은 절대 꺼내선 안 될 불만을 속으로 삭혔다.
국제 사회에서 현재 한국과 러시아는 CERC와 그를 조종한 자본가들의 음모를 분쇄하고, 세계를 구한 영웅 대접을 받고 있다. 한국과 러시아를 움직인 제니스 공격대장도 당연히 거기서 빼놓을 수 없다.
떠받들어주고 지지해주는 건 좋은데, 세계 군중의 기대에 맞게 처신해야 한다는 불편함이 따른다. CERC와 로스차일드 재산을 압류하는 것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그들이 유죄를 선고받는 과정까지 듬직하게 지켜봐줘야 체면이 선다나?
비서진도 그렇고, 자문단도 그렇게 조언을 했기에 유지웅은 없는 시간을 내서 심급별 종국재판은 참관하기로 했다. 사법부에서도 1심부터 모든 재판 과정을 생방송하는 등 열을 올리고 있었다.
“와, 그럼 저희도 그거 보러 가면 안 돼요?”
“너희도?”
“네! 저희도 보고 싶어요! 아주 나쁜 사람들이라면서요? 얼마나 합당한 처벌을 받는지 꼭 보고 싶어요.”
“뭐, 그럼 같이 가자.”
사랑스러운 신입생들이 유부남한테 끌려가는 듯하자 장권재가 급히 나섰다.
“형, 저도 갈게요.”
“그래? 그럼 권재 네가 스케줄 조정 해.”
* * *
국정원 안가에 갇혀 있을 때만 해도 곧 좋은 소식이 올 것이라고 믿었다.
금융의 힘은 절대적이다. 아무리 뛰어난 재정구조를 가진 기업도 어음 공격 한 번, 대출 회수 한 번에 무너질 수 있는 게 현대 금융 사회다. 그리고 로스차일드는 그 금융계의 절대적인 강자를 차지하고 있었다.
세계에 흩어져 있는 친족들이 무슨 조치를 취해줄 거라고, 휴버튼은 참고 기다렸다.
‘제니스도 결국 우리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자신이 오랜 고민 끝에 제니스를 ‘경쟁자’가 아닌 ‘동반자’로 받아들이기로 전향했듯이, 제니스도 그런 선택을 할 것이라고 믿었다. 고래가 서로 싸워봤자 새우만 어부지리를 취할 뿐이다. 상처뿐인 승리보다는 실속 있는 공존을 선택할 거라고, 휴버튼은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국정원 안가에서 갑자기 다른 곳으로 장소가 옮겨졌다. 아무래도 구치소 같았다.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고 느끼는데, 그날 안경을 쓴 젊은이가 찾아왔다.
“저는 당신의 변호를 맡은 국선변호사입니다.”
한국인치고 유창한 영어였다. 휴버튼은 국선이라는 말에 한동안 정신이 멍해졌다.
“국선변호사? 그게 무슨 말이오?”
“당신은 밤 바이러스 제조와 유포를 지시하여 세계 시민은 물론이고 우리나라 국민 전체를 위험에 빠뜨린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법원은 당신이 사선변호사를 고용할 경제력이 없음을 고려하여 국선을 선임했습니다.”
“……변호사를 고용할 능력이 없다고? 이 내가?”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아직 모르실 거라고 들었습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대다수가 밤 바이러스, 투자법 위반, 횡령, 배임 등 수십 가지의 죄목으로 소송 중입니다. 은행, 기업, 부동산과 현물 등 세간에 알려진 가문 재산은 전부 압류되었으며, 은닉 재산도 계속해서 샅샅이 뒤지는 중입니다.”
“뭐라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였다. 휴버튼은 늙은 몸에 견디지 못하고 그만 쓰러질 뻔했다.
변호사한테 자세히 들은 이야기는 기가 막혔다. 그가 아는 것은 많지 않았다. 매스컴, 인터넷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알려진 정보가 전부였다.
하지만 휴버튼은 그 사실들만 끼워 맞춰도 일이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있었다.
‘이 빌어먹을 유럽 놈들! 미국 놈들!’
러시아와 한국의 연합에 겁을 먹은 유럽이 CERC과 로스차일드에 모든 책임을 덮어씌우기로 합의를 보고, 자기들은 발을 뺀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그 많은 정치가들, 로스차일드의 후원을 입고 그 자리에 올라온 이들은 대체 뭘 했단 말인가. 제대로 된 외교적 노력도 없이, 어떻게 이렇게 자신들 가문을 헌신짝처럼 내다버릴 수 있는가.
수많은 은행들이 전부 압류되었다는 소식에 휴버튼은 울분이 터졌다. 프랑크푸르트 본가 대저택이 유지웅에게 넘어갔다는 사실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연방준비은행을 미 정부와 유지웅이 나눠 가졌다는 말에는 가슴을 쥐어뜯다가 그만 혼절하고 말았다.
휠체어 신세를 지는 동안에도 재판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검사는 밤 바이러스를 유포한 것은 국가의 존속을 파괴하려는 행위임을 주장하며 사형을 구형했다. 변호인은 모든 혐의를 인정하면서 선처를 호소했다. 언론은 사형을 선고해야 한다고 매일 같이 열을 올렸다.
휴버튼은 모든 게 끝남을 알았다. 이미 처음부터 결론은 나와 있었다. 지금 하는 것은 일종의 쇼였다. 이른바 국제사회에 힘을 과시하기 위한 광대놀음.
무슨 회유를 받았는지 바이러스 괴수 연구에 참여했던 과학자들이 적극적으로 증인으로 진술했다. 증거, 증인, 모든 것이 넘쳐났다. 누가 봐도 뒤집을 수 없는 싸움, 그나마 가문 내에서 바이러스 괴수 확산 혐의로 기소 받은 것은 자신뿐이라는 것이 희박한 위안이었다.
마침내 종국재판의 날이 다가왔다. 덤덤히 최후변론을 마친 뒤, 판사가 판결문을 낭독했다.
“……비록 피고인이 모든 죄를 시인하고 반성의 기미를 보였다 하나, 칠천만 국민 목숨이 위험에 빠지고 자칫 국가의 존속이 무너질 수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감형의 여지가 없습니다.”
휴버튼은 판결을 들으며 가만히 시선을 돌렸다. 참관석에 팔짱을 끼고 앉아 있는 청년의 모습이 보인다. 지루한 듯 연신 시선이 다른 곳에 가 있다. 자신에게는 일생일대의 순간임에도, 그에게는 한낱 흥미로운 구경거리조차 되지 않는 것일까.
“본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합니다.”
주름진 눈꺼풀이 저도 모르게 꽉 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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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3시 넘었으니 오늘은 안 올라올 거야 라고 생각하신 분에게 땋 하고 반전의 철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