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585)
00585 왕의 귀환 =========================================================================
“최영도.”
“네.”
“유라헬.”
“네.”
“윤찬영.”
“네.”
“정혜주.”
“…….”
“정혜주, 없나?”
“……네.”
출석을 부를 때 눈이 슬쩍 마주쳤다. 금발 소년은 잠시 뭔가를 갸웃거리는 거 같더니 출석을 계속했다.
정혜주는 정신이 없었다. 이게 꿈인가 싶었다. 아니, 왜 저 애가 저기에 서 있는 거야?
‘조교? 설마? 저 나이에?’
차마 교수는 아니겠지, 교수는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믿고 싶었다. 비행기 안의 그 인연이 교수와 제자로까지 이어진다면 세상은 대체 얼마나 잔인하다는 걸까.
출석을 마친 금발 소년이 팔짱을 끼었다.
“첫날이라 결석은 없군. 나는 신결정체물리학 1, 2, 3을 강의할 니트로 체임버 주니어라고 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학생들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지금 잘못 들은 게 아니지? 분명히 자기 입으로 교수라고 했어.
“너희의 졸업은 내게 달렸다. 이해가 가나?”
“…….”
“내 강의 스타일을 말하겠다. 난 억지로 졸업을 시키지도, 억지로 졸업을 막지도 않는다. 모든 건 원칙대로 한다. 실력이 뛰어나고 노력하는 학생에게는 무한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며, 나태하고 노력하지 않는 학생에게는 어떠한 배려도 없다. 결석, 대리출석, 시험 불참, 봐주지 않는다. 단, 교통사고 같은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사유는 고려한다.”
“…….”
“이상. 질문 있나?”
학생들은 모두 눈만 데구루루 굴렸다. 마음 같아서는 쏟아내고 싶은 질문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안 그래도 느닷없이 3학점짜리 전공 필수 과목이 트리플로 생겨버리는 바람에 패닉에 빠진 이들에게 지금의 상황은 너무 가혹했다.
서로 미루고 미루다가 드디어 어느 곱게 생긴 여학생이 용기를 내어 손을 들었다.
“저, 교수님 너무 젊어 보이세요. 피부 관리 비법이 뭐예요?”
차마 교수라는 사람에게 대놓고 몇 살이냐고 물어볼 수는 없고, 몇 살이냐고 우회적으로 돌려 물은 것이다.
“피부 관리? 그런 건 없고, 내 나이가 궁금한 모양인데. 나는…… 16살이다.”
“에엑! 진짜요?”
“어, 어떻게 그 나이에 교수가 되셨어요?”
차마 ‘지금 우리 놀리는 거죠?’하는 말을 꺼낼 만큼 담 큰 용자는 없었다. 드물기는 하지만 이 바닥에서는 뛰어난 영재가 어린 나이에 교수가 되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장난이나 몰래카메라 같은 게 아니라면, 교수한테 그런 실례를 범하고 좋은 학점을 어찌 기대할까. 그것도 전필인데!
“MIT에서는 자주 있는 일이다.”
“와, MIT 출신이세요?”
“대단! 대단! 교수님짱!”
학생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특히 여대생들은 16살이라는 말에 반쯤 혼백이 나갔다. 나이 어려, 머리 좋아, 잘 생겼어, 게다가 교수야! 이보다 근사한 남자를 이 학교 또 어디에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돈만으로 모든 걸 씹어 먹는 남자가 한 명 있긴 했지만 아쉽게도 유부남이고 게다가 올해에는 더 이상 이 학교에 없다.
니트로 교수는 가볍게 보드를 두드렸다. 웅성거림이 일제히 멎었다.
“강의 시작한다.”
* * *
“원자핵물리학은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히 핵분열, 핵융합 반응만을 다루는 저급한 학문이 아니다. 물질의 근원 구조를 해독하는 고급 학문이다. 이 대단한 학문이 안타깝게도 당장 에너지 시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십 년 동안 시장에서 천대를 받아왔다.”
첫날 강의답게 니트로는 강의의 개요에 관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오래 전부터 핵물리학을 통해 결정체학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무시당했다. 특히 MIT의 전전전대 총장을 중심으로 그 압력이 심했다. 그 망할 녀석 때문에 핵물리학이 받아야 했던 천대가 더 심했지.”
이를 바드득 가는 소리가 문득 들린 것 같지만, 일단 그냥 넘어가자.
“다행히 최근 들어 결정체 에너지 구조 연구에 있어 핵물리학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물리학이 받은 천시는 끝나지 않았다. 투자자와 후원자들은 지갑을 여는 것을 두려워했다.”
누군가 손을 들었다. 니트로 교수는 학생을 지목했다.
“말해 봐.”
16살이라는 한참 어린 나이라 들었지만, 학생 중 누구도 그 점을 아니꼽게 보지 않았다. 훤칠하니 잘생긴 외모와 어린 나이에 MIT 출신 대학 교수라는 점이 반발심 자체를 생기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교수님께서는 처음 신결정체물리학이 핵물리학과 결정체학을 융합시키는 기초 단계를 배우는 과목이라 하셨잖아요.”
“그랬지. 그래서 질문은?”
“후원자들이 연구 분야에 지갑을 안 연다면, 이 학문의 미래도 불투명한 거 아닌가요?”
“그 점은 염려할 것 없다. 효웅산업의 가렌 박사 아는 사람?”
모두 일제히 손을 들었다. 이 공부를 하면서 가렌의 이름을 모른다는 건, 프로 축구를 지망하는 선수가 호날두를 모른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가렌 박사 또한 이 학문에 남은 과학자의 인생을 걸고 정진하고 있다. 그러니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니트로 교수는 무뚝뚝한 눈빛으로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오히려 너희가 걱정해야 하는 게 있다. 이 학문의 잠재적 미래 가치를 못 알아보고 소홀히 해서, 훗날 이 분야에서 뒤쳐지거나 진입을 하지 못하는 점이다. 괜히 학교 재단에서 부랴부랴 전공 필수로 9학점이나 책정을 한 게 아니다. 설마 일부러 너희들 졸업길 막으려고 이런 강행군 일정을 던져 줬겠냐? 등록금도 한 푼 안 내는 녀석들을 위해서?”
니트로 교수는 두 팔로 교탁을 짚었다. 그의 목소리에 더욱 큰 힘이 실렸다.
“허튼 생각하지 말고 내가 끌고 가는 대로 따라오기만 해라. 내가 하라는 대로 해서 못 된 놈 하나 없다. 당장 가렌 녀석만 해도…….”
“네?”
“아니, 실수했다. 아무튼 내가 하라는 대로 해서 손해 볼 일은 없을 거다. 그리고 과대표.”
“예!”
“아까 말한 대로 신결정체물리학 대학원 과정을 희망하는 학생들 조사해서 명단을 제출하도록. 참가 희망생은 아직 3, 4학년이니까 선행 학습 한다 생각하고 부담 없이 참가해라. 오늘 강의는 이것으로 마치겠다.”
니트로 교수는 말을 마치고 강의실을 나섰다. 인사도 없이 그대로 쌩 하니 나가버린다.
학생들이 수군거렸다.
“엄청 빡셀 줄 알았는데, 의외로 수업은 빨리 끝났네?”
“그러게. 첫날부터 세 시간 꽉 채워서 하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이 수업, 엄청 빡셀 거 같지 않아? 나 자신 없어. 갑자기 핵물리학이라니…….”
“뭐 들었어? 학부 수업은 지금까지 해온 거 복습 차원이고, 핵물리학까지 병행하는 건 대학원 과정부터라고 하셨잖아.”
“아, 그랬어?”
“난 신청해야겠다. 저 교수님, 아무리 봐도 가렌 박사님 라인 같아.”
“그치? 그치?”
“라인 잘 타야지. 가렌 박사님 하면 효웅산업 2인자이신데. 최윤 박사님에 비견되는 결정체학자시고. 그 분 라인이면 이 분야 엄청 비전 높아.”
“어쩌면 유지웅 선배님도 뒤에 있을지 몰라.”
“당연하지! 가렌 박사님이 뒤에 있다는 건 유지웅 선배님도 그 뒤에 있다는 거야! 그게 바로 호가호위라는 거고!”
“……뭔가 좀 이상한 게 하나 있는데? 그냥 넘어가자.”
한편 니트로 교수는 교수 연구실로 돌아왔다. 대학에서 특별히 그를 위해 할당한 개인 연구실이었다. 심지어 개인 비서까지 붙여 주었다. 때마침 연구실에는 손님이 와 있었다.
커피를 따라준 비서가 자리를 비켜주자 그제야 니트로 교수는 다리를 턱 하니 꼬고 앉았다.
“언제 왔냐?”
“십 분 전에 왔습니다.”
“바쁜 녀석이 뭐 하러? 이렇게 한가하게 대학이나 오고 가고 그래도 돼?”
“……그러는 교수님이야말로 이게 뭐 하시는 일이에요? 갑자기 학부생 강의라니요?”
가렌은 그 점이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늙어서 골골거리던 은사가 청춘을 되찾아 연구에 다시 투신하게 된 것은 그도 기뻤다. 어려서는 은사와 낮과 밤이 바뀌는 줄도 모르고 즐겁게 학문에 매달렸다. 은사가 그를 휘버에게 넘긴 이후로는 더 이상 그럴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더욱, 지난 수십 년 간 그때 그 시절을 그리워했다.
그리고 은사가 젊어진 지금, 이제 다시 그 꿈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며 속으로 조용히 기뻐했다. 비록 대다수 연구원들이 니트로 교수가 가렌의 제자인 줄 알고 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그런데, 갑자기 웬 학부생 강의란 말인가! 이것이야말로 용 잡는 칼로 오리 고기 써는 격이 아니고 뭔가. 재능의 낭비도 이 정도면 꼴갑질이다.
니트로 교수는 팔짱을 끼며 태연히 말했다.
“원래 생각하신 대로 연구전문 교수나 하세요. 무슨 강의를 한다고 그러세요.”
“나도 원래는 그러려고 했지. 근데 한국 오다가 생각이 바뀌었다.”
“무슨 일이 있으셨는데요?”
“비행기 안에서 웬 이상한 여학생 하나를 봤어.”
“그 여학생이 왜요?”
“자기가 연주대 결정체학과 장학생이라는데, 세상에 내가 어이가 없어서. 아주 간단한 문제도 못 풀지 뭐냐. 그 나이 먹도록 교수 자격 하나 없다는 것도 충격인데, 석사 애들도 눈 감고도 푸는 문제를 펜으로 풀지 뭐냐. 그것도 5초면 끝날 것을 20분이나 걸리더라고.”
“아니, 그게 정말입니까?”
“연주대 장학생이라는 인재가 그 정도면 지금으로서는 희망이 없다. 결정체학과 핵물리학의 통합? 일이년에 끝날 일이 아니야. 수십 년이 뭐냐, 우리 죽을 때까지 계속 연구하고 개량해야 하는데. 그 뒤를 받쳐줄 후진이 이래서야 사상누각이 될 뿐이다.”
“그 학생도 그럼 수업에서 보셨겠네요?”
“모르겠다. 동양인 얼굴은 아직 구별이 잘 안 가. 창피한 줄 알면 나한테 그 이야기를 못 꺼내겠지.”
니트로 교수는 생각했다. 어차피 당장 실무에 필요한 연구는 가렌 및 100여 명의 핵물리학자들이 수행하면 된다. 물론 자신이 참가하면 더 좋은 결과를 빠르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생각을 달리 했다. 단기적인 이익보다는 초장기적인 이익을 중요시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세종시 연구단지가 아닌 대학 연구소를 선택한 것이다. 연구와 후진 양성, 두 가지 토끼를 다 잡기 위해서.
“그렇다고 학부생 강의까지 맡으실 건 없잖아요?”
“이 바닥 못 봤냐? 아주 그냥 메마른 황무지라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돼. 원생들 데리고 박사로 키우려고 해도, 쓸 만 한 원생도 없다. 일단 4학년 중에 몇 몇은 싹수가 보이니 그 녀석들 지금부터 데려다가 관리하면 1년 안에는 박사 학위 따는 놈들 몇 명 나오겠지. 나중에 네가 그놈들 데려다가 연구에 써먹으면 딱이다.”
니트로 교수는 후진 양성에 더 매달리는 경향이 있었다. 핵물리학이 언제 고사할지 모르는 학문이라 ‘혈통’이 끊어지지 않게 여기저기 뛰어다니던 버릇 때문이다.
“후진 양성도 좋지만, 그래도 세종시에도 내려오고 그러시는 게 어때요? V-23 이용하면 이동도 편한데.”
“조급하게 갈 게 뭐 있냐? 앞으로 130년은 너끈히 살 것 같은데, 나는 다시 시작했다 생각하고 아주 천천히 공들여서 탑을 쌓아나가련다.”
“……젊어진 게 좋긴 좋군요.”
“어, 진짜 좋더라. 시간이 철저히 내 편이더군.”
어려진 자의 여유, 여유.
============================ 작품 후기 ============================
남아도는 게 시간이다 보니 지반 공사부터 철저히 시작하는 16세 니트로 교수님입니다.
PS : 어제 저녁 나귀족 누적 조회수가 3천만을 넘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