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760)
00760 나는 귀족이다 =========================================================================
‘돌아보면 안 돼.’
유지웅은 자꾸만 뒤돌아서려는 자신을 억눌렀다. 돌아보면 안 된다. 지금 돌아봤다가는 기껏 잡은 결심이 무너질지도 몰랐다.
‘돌아보면 안 돼.’
아이들이 눈에 밟힌다. 커가는 모습을 봐줄 수 없다는 게 너무 미안했고, 가슴 아팠다.
‘엄마, 아빠……. 죄송해요.’
마침내 거대한 크레이터가 드러났다.
지름이 수km에 달하는 크레이터는 땅속 깊은 곳까지 파여 있었다. 그것은 운석이 충돌해 만들어진 듯이 보였다. 그 중심의 가장 깊은 곳에서, 검은 뒤틀림이 악마처럼 입을 벌린 채 암흑의 빛을 토해내고 있었다.
바로 균열이었다.
‘효주야…….’
발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중 정효주의 모습이 유독 강하게 비치고 있었다.
다시는 그녀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살아 돌아가지 못하리란 두려움보다는 그리운 마음이 훨씬 컸다.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그냥 세상이 없어지든 말든 최후의 최후까지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낼까?
머리는 그런 번뇌에 시달렸다. 그러나 그의 발은 주저하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균열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휘이이잉!
검은 힘을 머금은 바람이 강하게 그를 때렸다. 그의 몸을 감싼 두터운 보호막이 일어나 막아냈다. 어찌나 강한 위력인지 저릿한 느낌마저 전해질 정도였다.
카아아앙!
바람과 바람이 부딪치고, 섞이고, 그를 밀어내려고 안간힘을 다했다. 대류가 충돌하며 만들어진 굉음이 울렸다. 그건 마치 무엇도 균열에 접근시킬 수 없다는 포효처럼 들렸다.
휘이이잉! 휘이잉!
균열이 토해내는 바람이 더욱 거세진다. 단단히 박힌 바위가 뽑히고, 날아가고, 부서진다. 집채만 한 암석이 민들레꽃처럼 가볍게 구르며 밀려난다.
그 보이지 않는 항거에 맞선 채, 유지웅은 굳게 버텼다. 오른손에 쥔 묠니르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힘차게 쥐었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다가갔다.
안간힘을 쓰며, 바람의 저항을 뚫고 검은 포식자를 향해 발을 내딛었다.
“아아악!”
돌풍이 그를 강하게 밀어냈다. 보호막은 돌풍에 담긴 파괴력은 무효화했으나 그가 나가떨어지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일어났다. 묠니르를 단단히 쥔 채 균열을 향해 다가갔다. 악을 쓰며 기었다.
이제 지척이다. 손만 뻗으면 닿을 것만 같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모, 몸이…….’
팔이 들리지 않는다.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마치 자신의 주변으로만 중력이 수배, 수십 배 이상 증가한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든 압박감 속에서, 유지웅은 입술을 깨물며 어떻게든 팔을 뻗으려 했다.
‘움직여! 움직이란 말이야! 이제 다 왔는데!’
악착같이 힘을 쥐어 짜냈다. 겨우 눈동자를 굴려 눈앞의 균열을 올려다봤다. 수십 미터가 넘어가는 차원의 틈새는 마치 지옥에서 피어난 꽃처럼 검은 아지랑이를 흔들고 있었다.
심연의 저편에서 흘러넘치는 힘은 그의 항거 따위 가소롭다는 듯이 커다란 위압감을 자랑했다. 그의 반항은 공룡에 맞서는 개미만도 못했다.
몸이 점점 무거워진다. 눈동자를 굴릴 힘조차 낼 수 없을 정도였다. 유지웅은 서서히 바닥에 쓰러졌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쳤다. 안 되는데. 이렇게 아무 것도 못하고 무너지면 안 되는데. 적어도 그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미래만큼은 물려줄 수 있어야 하는데…….
‘움직여! 움직이란 말이야! 제발! 제발!’
그때였다. 오른손에서부터 뜨거운 기운이 용암처럼 솟구쳤다. 전신의 혈맥을 타고 힘이 흘러 넘쳤다.
유지웅은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온몸 가득 힘이 넘치고 있었다. 그는 오른손을 보았다. 단단히 쥔 묠니르가 눈부신 황금빛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그건 마치 균열의 과잉 에너지로부터 주인을 지키려 애쓰는 듯이 보였다.
그 순간 알 수 있었다.
‘오리나. 너구나.’
그의 마음에 동조하듯이 묠니르가 웅웅거리며 떨린다. 보이지 않아도, 들리지 않아도, 속삭이지 않아도 녀석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듣고, 느낄 수 있었다.
눈물이 날 만큼 고마웠다. 마지막에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왜 그렇게 힘이 났는지 몰랐다.
‘그래. 같이 가자.’
유지웅은 완전히 일어섰다. 두 손으로 묠니르를 꼭 붙잡은 채 균열을 노려봤다. 차원의 포식자가 쏟아내는 암흑의 힘은 더욱 짙어져 있었다.
오리나가 함께 하고 있어서일까. 그 거대한 압박감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마치 균열이 당황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저 거대한, 생명 없는 포식자가 놀란 듯이 보였다.
찬란한 황금빛이 그의 온몸을 휘감았다. 빛이 완전히 둘러싸며 더 이상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건 거대한 황금 갑옷을 입은 기사였다.
암흑의 힘이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황금의 빛을 몰아내려는 듯이, 암흑은 더욱 거세게 부딪쳐 왔다.
그러나 황금의 빛은 물러서지 않았다. 더욱 강하게, 더욱 단단하게 암흑의 항거에 맞섰다.
암흑과 황금, 두 빛이 온힘을 다해 서로 부딪쳤다.
소리 없는 굉음이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 삼켰다. 그리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 * *
우주에서도 관측된 대폭발이었다.
수십 메가톤의 핵이 터진 듯 강렬했던 폭발은 다행스럽게도 대부분의 에너지를 우주로 날려 버렸다. 충격파가 수직으로 솟구쳤기에 지표면에는 거의 피해가 없었다.
“균열 반응이 사라졌습니다.”
모니터링을 하던 최윤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정효주는 미친 듯이 뛰어나갔다. 김철희 등 여러 사람이 그녀를 불렀지만 듣지 않았다.
직접 헬기 조종간을 쥐고 그녀는 균열이 있던 지점에 도착했다. 폭심지에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끝없는 땅덩어리는 거인이 삽으로 도려낸 것처럼, 말 그대로 움푹 파여 있을 따름이었다.
그 어떤 생명도, 균열도, 흔적도, 아무 것도 없었다.
“지웅아! 지웅아!”
그녀는 미친 듯이 남편을 부르며 돌아다녔다. 균열이 남긴 폐허를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아무리 뒤져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았다.
애타게 불러도, 대답은 없었다.
“진정해. 진정해, 누나.”
누군가 그녀를 부축했다. 어느덧 해와 달은 서로 위치를 바꾸고 난 뒤였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느껴지는 건 눈물이 말라붙은 뺨의 감촉뿐.
암흑이 걷히듯 서서히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언제 투입됐는지 수많은 미군들이 사방을 수색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저들이 온 줄도 몰랐다.
“사모님……. 일단 돌아가시지요. 수색은 저희가 미국측과 협조해서 하겠어요.”
레지나였다. 정효주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녀를 돌아봤다.
“어떤가요?”
“…….”
“알려주세요. 있는 그대로, 사실 그대로…….”
레지나는 한참을 망설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지금 정효주는 상태가 안 좋아 보였다. 사실을 말해주는 게 진정 그녀를 위한 것일까?
결국 레지나는 입을 열었다.
“균열의 반응은 완전히 사라졌어요. 균열이 있던 좌표를 직접 육안으로 수색하기까지 했어요. 이제 어디에도 균열은 없어요.”
“그럼, 그이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죄송해요.”
가슴이 천천히 무너진다. 정효주는 아무 말도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소리 없이 오열했다.
레지나는 자신이 그녀에게 큰 죄를 지은 것 마냥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게 어떤 기분인지 너무 잘 알기에 섣부르게 거짓말을 할 수도, 위로를 할 수도, 입을 열 수도 없었다.
“돌아 온댔잖아……. 꼭 돌아 온댔잖아……. 우리 애들 시집장가 보내는 거 꼭 지켜 본댔잖아…….”
꽉 막힌 가슴을 움켜쥐고 그녀는 울먹였다.
“나한테 이러지 마……. 제발…….”
「오늘 우리 인류는 정녕 위대한 영웅의 희생으로 존속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류를 위기에 빠뜨렸던 괴물은 이제 쓰러지고 없습니다!」
“약속 지킨다고…… 했잖아…….”
「존경하는 미국 시민 여러분, 그리고 친애하는 한국 국민 여러분, 세계 시민 여러분. 우리 인류는 제니스의 위대한 투쟁에 힘입어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으아앙! 으아아앙!”
「그러나 저는 지금은 잠시 살아남았다는 기쁨에 취하기보다는, 우리를 위해 희생한 위대한 영웅을 위해 묵념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우리는 앞으로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80억 인류를 위해 젊음을 바친 한 영웅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에게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소중하고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었다는 것을…….」
정효주의 오열 위로 덧없이 내려앉는 미 대통령의 발표 연설은 전 세계에 동시에 퍼져 나가고 있었다.
* * *
2년이 지났다.
균열이 있던 장소는 세계 추모 공원으로 지정되어 UN 및 WCO에서 공동으로 관리하게 되었다. 직경 수 km가 넘는 폐허는 세계 각지에서 보낸 꽃으로 뒤덮여, 처참한 희생의 흔적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공원 중심지에는 높은 기념비가 우뚝 서 있다.
―인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위대한 젊은 영웅, 이곳에 잠들다.
그동안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세계 추모 공원을 찾았다. 그들은 처참한 전투 흔적을 보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상상했으며, 세 아이의 아버지이자 한 여자의 남편인 청년이 어떤 마음으로 자신을 희생했는지를 느끼고 돌아갔다.
공원 관리를 위임받은 미국은 추모객을 통해 벌어들인 모든 수입을 한국 제니스가에 보냈다. 앞으로도 항구적으로 이렇게 할 것이라 한다. 미국이 보내는 존중과 예우, 그리고 감사 표시였다.
균열이 사라지고 인류는 구원받았다. 그러나 혼란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여기는 알파원! 목표가 너무 강력하다! 지원이 필요하다!」
「지금 지원이 가고 있다. 6분만 버텨라.」
「알겠다. 어떻게든 버텨 보겠다.」
균열은 사라졌으나 괴수는 사라지지 않았다. 옐로 몹급의 괴수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으나, 레드 몹 급의 괴수는 상당수가 전 세계에 퍼져 출몰했다.
“아, 돈도 얼마 안 나오는데 레이드라니…….”
“어쩔 수 없지, 뭐. 그래도 실직자 안 된 게 어디야. 진짜 처음에는 눈앞이 캄캄했는데…….”
괴수는 이제 더 이상 결정체를 남기지 않는다.
본래 레드 몹은 죽으면 사체가 사라지며 결정체를 남긴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사체뿐만이 아니라 결정체까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바야흐로 균열이 사라진 직후부터 전 세계 결정체는 완전히 공급이 끊기고 말았다.
최윤, 가렌, 니트로를 비롯한 유수의 과학자들은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결정체까지 사라지는 원인을 밝혀내지는 못했다. 하다못해 결정체가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이런저런 연구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경각심을 느낀 세계 각국은 결정체 물량을 확보하는 한편 결정체가 고갈된 이후를 대비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대체에너지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졌고, 석유 연료가 다시금 각광받기 시작했다.
석유의 재조명으로 중동 및 산유지역은 제2의 부흥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 * *
“엄마. 여긴 또 왜 와?”
“여기 꽃 되게 많아. 엄마, 이 꽃 좀 봐!”
“엄마? 엄마? 왜 울어?”
“엄마? 근데 아빠는 왜 같이 안 와?”
“하연이는 바보. 아빠는 아직 더 많이 자야 온댔어.”
“많이 잤는데 안 오잖아…….”
“엄마? 엄마?”
“울지 마,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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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2.10일까지는 정규 시즌을 마무리 지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