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94)
00094 나는 백수다 =========================================================================
한성산업은 유지웅의 투자 및 후원을 받아 눈부시게 성장했다. 후원이라고 해봐야 별 거 아니다. 충전 장비 임상 사용을 할 수 있게끔 해준 게 다였다. 하지만 그 덕분에 충전 장비 허가가 빠르게 떨어졌고, 한성산업은 충전 장비를 팔아 엄청난 이득을 거둬들였다.
규모는 작지만 알짜배기 회사. 당연히 돈 많은 투자자들이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고, 여기저기서 인수 제안이 와서 한성산업 경영진은 돈의 유혹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중 가장 탐이 난 것은 일성투자의 제안. 6,000억 원에 회사를 인수하고 싶다는 제안이었다. 지금 회사를 팔면 6,000억 원의 돈이 생기는 것이니, 경영진이 흔들리는 것은 당연했다.
“근데 좀 더 장기적으로 보면 6,000억 이상의 돈을 벌어들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지금 회사를 파는 건 좀 아까운 거 같은데.”
「그렇긴 합니다만 언제 경쟁자가 생길지도 모르고, 회사가 마냥 지금처럼 잘 나간다는 보장도 없어서요. 차라리 지금 큰돈에 팔아버리고 정리하는 게 낫지 않느냐는 말도 분분합니다.」
한성산업은 가난한 대학원생들이 모여서 만든 연구 회사였다. 사회에 대한 면역력이 적은 그들은 6,000억 원이란 큰돈에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 당장 팔면 6,000억 원을 받는다. 그 유혹 앞에 모두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지?’
유지웅은 고민했다. 한성산업에 500억을 투자한 건 레이드계가 좀 더 잘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한 행위였다. 일종의 사회 환원이랄까? 투자해서 이익을 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애초에 돈 벌려고 투자한 게 아니었다.
“근데 이재형이면, 그룹 회장이랑 같은 성씨네요.”
「이형준 회장 손자입니다. 재벌 3세이자 그룹 실세죠. 그래서 저희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빈말은 하지 않을 테니까요.」
“아하.”
유지웅이 한성산업에 500억을 투자한 건 공표되지 않았다. 지분 투자도 아니었기에, 아마 이형준은 모를 것이다.
‘단순히 장비 산업 진출이랑 겹친 거겠지?’
유지웅은 그렇게 생각하고 선선히 말했다.
“매각하기로 결정이 된 거지요?”
「유 사장님이 반대하지만 않으신다면…….」
“전 상관없어요. 그럼 제 투자금은 정산해서 주세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유 사장님도 저희 창립 멤버와 동등하게 6,000억을 나눠드리겠습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아닙니다. 유 사장님이 아니었으면 저희가 이렇게 성공하지 못했을 겁니다. 투자자로서 당연한 권리십니다.」
6,000억을 다섯이서 나누면 두당 1,200억이었다. 여섯이서 나누면 두 당 1,000억이 된다. 유지웅은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지웅이 형!”
웬 곰 한 마리가 달려들자 유지웅은 화들짝 놀랐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키가 못해도 190cm는 될 것처럼 보였다.
“누, 누구세요?”
“형! 그새 잊었어? 나 철희잖아! 김철희!”
“아, 그 코찔찔이 김철희? 와, 너 뭐 먹고 이렇게 큰 거냐?”
분명히 마지막으로 봤을 때만 해도 자신보다 훨씬 작았던 녀석이 완전히 거한이 돼버렸다. 이 녀석, 지금 아마 17살일 텐데 무슨 몸이 저래도 되는 건가?
“어? 효주 누나 아냐? 맞지? 효주 누나?”
“아, 안녕?”
정효주도 얼떨떨한 웃음을 지으며 인사했다. 희미하게 어린 시절 모습이 남아 있긴 한데, 키가 120cm도 안 되던 녀석이 190cm가 넘어서 나타나니 적응이 안 됐다.
김철희. 저 아랫집에 살던 녀석으로 둘과는 3살 차이이며, 어린 시절 졸졸졸 따라다니며 같이 뛰어놀던 사이였다. 매번 하는 말이 자기는 커서 효주한테 장가들 거라고 해서 유지웅한테 항상 혼났다. 효주를 너한테는 못 준다고.
그랬던 녀석이 거한이 돼서 나타나자 적응이 안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감개가 무량했다.
“형! 고향 왔으면 나 보러 와야 되는 거 아냐?”
“너야말로 형이 오랜만에 왔으면 먼저 제깍 찾아뵙고 인사해야 하는 거 아니냐? 어떻게 형 온지 3일차에 어슬렁어슬렁 얼굴 들이밀 수 있냐?”
“레이드 팀 짜느라 바빴거든.”
“레이드? 이런 시골에서도 레이드 가? 아니, 너도 초능력자로 각성했어?”
“형, 시골이라고 공격대가 없는 줄 알아? 있을 건 다 있어.”
레이드를 하는데 장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래도 사람이 많은 쪽이 유리하다. 능력자 비율은 1% 이하이기에, 시골 같은 경우에는 레이드팀을 짠다는 게 매우 힘들다. 머릿수가 모자라기 때문이다.
“우리 마을만 해도 나까지 3명이나 돼. 다른 마을까지 싹 긁어모으니까 20명 되더라. 어때, 많지?”
“와, 생각보다 많네.”
“내가 공격대 짜려고 우리 군 전체를 돌아다녔다고.”
아무리 시골이라 해도 군 하나를 이 잡듯이 뒤지면 공격대를 구성하는 것이 불가능하진 않다. 문제는…….
“너네 레이드 경험 있는 사람 있어?”
“없어. 그래서 문제야.”
“힐러는 있어?”
“힐러도 4명이나 있어. 근데 힐러도 경험 없어.”
“…….”
전부 다 초짜라는 소리. 이러면 문제가 좀 있다. 힐러야 도시로 나가서 경험을 좀 쌓으면 된다지만 딜러나 탱커는 그런 게 어렵다.
“너네 말고 다른 공격대도 있을 거 아냐? 그 사람들한테 부탁은 해 봤어?”
“다들 경험 쌓으면 도시로 나가. 그래서 부탁할 만한 사람이 없어. 형, 그러니까 형이 좀 도와 줘. 형 딜러로 레이드 해서 돈 많이 벌었다며?”
왜 레이드를 하냐고 묻는 건 바보짓이다. 돈을 벌려고 일을 하는 건데 왜 일을 하냐고 묻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초능력자로 각성했다면 레이드만큼 확실한 생산 활동은 없다.
‘많이 컸네.’
딴에는 자기도 크게 성공해보자 마음먹고 열심히 이리 뛰고 저리 뛰어서 레이드 팀을 짠 모양이다. 정규 공격대나 막공 그런 건 아니겠고, 아마 친한 사람 등을 통해서 끌어 모은 팀이리라. 힐러를 4명이나 용케 모은 것이 가상하기도 했다.
“레이드 룰이나 시작 절차 같은 건 알아?”
“대강은 아는데 해본 적이 없어서 떨려. 형이 그런 것 좀 가르쳐주면 안 돼?”
“알았어. 사람 모아 봐. 참, 생각해둔 대상은 있어?”
“응. 저기 뒷산에 한 마리 봐둔 놈이 있어. 그놈 때문에 농사 망친 거 생각하면, 으휴! 반드시 때려잡고 말 거야!”
“……그놈 잡으려고 레이드 팀을 짠 건 아니겠지?”
김철희는 바로 친구들을 불렀다. 대부분 스무 살이 안 된 어린 아이들이었다. 레이드 제한 연령(15세)를 아슬아슬하게 통과한, 다들 새파란 애송이들이었다. 힐러의 텃새라든가 귀족으로서의 지위, 불가촉천민 신세인 딜러, 뭐 그런 레이드계의 어른의 사정이 뭔지도 모르는 애들이었다.
“…….”
20명. 탱커 1명에 힐러는 4명. 게다가 딜러 16명은 모두 원거리 딜러였다. 궁색만 겨우 갖춘 것이다. 모두 하나같이 눈빛이 초롱초롱한 게, 첫 레이드에 대한 기대가 장난 아닌 모양이었다.
“근데 너희 부모님 허락은 다 받고 온 거야?”
“네!”
“엄마 아빠가 레이드해서 성공하랬어요!”
하기야 일반인들, 그것도 이런 시골 사람들 눈에 레이드는 성공의 지름길일 테니, 어린 아이들이지만 빠르게 성공하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레이드한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레이드 사망률은 교통사고보다 낮다)
“능력자 판정은 다 받았지?”
“그게 뭐예요?”
“…….”
결국 유지웅은 아이들을 데리고 읍내로 나가서 전원 능력자 등록을 마쳤다. 하는 김에 일일이 부모가 허락을 했는지도 확인했다. 교통편은 김철희 아버지 트럭을 이용했다.
“우리 철희 좀 잘 가르쳐서 크게 성공하게 좀 해주라. 그 은혜 안 잊으마, 지웅아.”
“네…….”
철희 아버지가 어찌나 간절하게 부탁을 하던지, 가슴이 조금 뭉클했다.
“오늘은 좀 늦었으니까 내일 다시 모여. 알았지?”
“네!”
일단 행정적인 절차를 마치고 아이들을 돌려보냈다. 그리고 서울 지원팀에 내려오라고 연락을 했다. 휴가기간이지만 하지만 고용주가 오라면 와야 하는 게 세상 이치. 10명의 지원팀이 레이드 장비를 챙겨들고 다음날 아침 일찍 내려왔다.
“……이러이러하니까 그래서 좀 부탁드려요.”
“알겠습니다. 맡겨 주십시오.”
아무래도 이런 건 전문가 손에 맡기는 게 나을 듯해서 부른 것이다. 아이들은 지원팀이 가져온 고글형 단말기 등 최신 장비를 보고 신기하고 놀라워했다.
“우와, 서울 공격대는 다 이런 거 들고 하는 거야? 대단하다.”
“지웅이 형 진짜 크게 성공했나 봐?”
아이들이 수군거리는 것을 듣고 몇 몇 지원팀원이 쿡쿡거리며 웃기도 했다.
“뱅가군요. 매우 쉬운 녀석이지요.”
김철희가 결정했다는 목표, 사자처럼 생긴 괴수를 쌍안경으로 보며 장태준이 말했다.
“10인으로도 충분히 잡을 수 있는 녀석입니다. 아이들에게는 좋은 연습 상대가 되겠어요. 돈은 얼마 안 되겠지만.”
10인 레이드 몹이면 기껏해야 12억? 12억이라 치면 한 명 당 6,000만 원 밖에 안 돌아간다. 하지만 이런 시골에서, 저런 아이들에게는 어마어마한 큰돈이다. 어린 아이들이지만 레이드 능력자로 빨리 자리 잡기를 바라는 부모 마음이 괜한 게 아니었다.
유지웅과 정효주는 옵저버로 참가하기로 했다.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나서지 않기로.
“처음 레이드를 하는 아이들이니까 확실하게 FM대로 하겠습니다. 전원, 전투 준비!”
「전투 준비!」
아이들이 힘차게 응답했다. 전투 경험 한 번 없는 아이들이지만 20명이 10인 레이드 몹을 잡는 상황이다. 여차하면 개입할 수도 있으니, 유지웅 커플은 마음 편하게 구경했다.
“탱커, 앞으로!”
「앞으로!」
탱커는 김철희였다. 키 190cm가 넘다 보니 탱커로서 매우 잘 어울렸다. 물론 크다고 탱킹 능력이 다 좋은 건 아니지만.
장비가 없는 까닭에 김철희는 주먹과 발을 사용해서 뱅가를 공격했다. 한가로이 낮잠을 즐기고 있던 뱅가는 느닷없는 공격에 깜짝 놀라서 반격했다. 어그로 상태를 확인하던 장태준이 재차 지시했다.
“힐러는 교대로 힐 시전, 원거리 딜러진 딜 시작.”
「딜 시작!」
아이들이 우렁차게 외치며 딜을 시작했다. 전투 상황인데 왠지 소꿉장난 같은 느낌이 나서 웃겼다. 처음 치르는 레이드인데도 전투는 제법 안정적으로 흘러갔다. 데이터를 살펴보던 장태준이 가볍게 감탄사를 냈다.
“호오? 놀라운데요? 아이들, 제법 실력이 있어요.”
“그래요?”
“네. 장비 없이 딜하는 것치고는 딜이 좋아요. 이 정도면 경험 좀 쌓고 바로 정공 들어가도 될 정도인데요? 장비가 아쉽긴 하지만.”
“애들이라 별 기대도 안 했는데.”
“정말 좋아요. 힐러들도 침착한 편이고요. 메인탱커 저 친구도 상당히 어그로가 괜찮아요. 몸도 제법 튼튼한 편이고요.”
고향 동생이 잘한다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레이드는 무탈하게 끝났다. 뱅가가 쿵 하고 쓰러지자 아이들은 뛸 듯이 기뻐하며 서로 얼싸안고 좋아했다.
“와! 쓰러졌다! 쓰러졌어!”
“우리가 잡았어!”
감정기관 사람들이 나서서 시체를 감정했다.
“8억입니다.”
“……에게?”
“와! 8억이래!”
“진짜? 우리가 8억 나눠 갖는 거야? 와!”
‘에게’는 유지웅의 반응, 그 뒤는 아이들의 반응이었다. 16~17세인 아이들에게 8억은 꿈도 꾸지 못한 어마어마한 돈이다.
“형, 1억은 형이 가져.”
“아냐. 난 됐어.”
“그러지 말구 가져. 형이 우리 많이 도와줬는데 돈 계산은 확실하게 해야지.”
생각이 제대로 박혔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지웅은 웃는 얼굴로 한사코 거절했다.
“1억 형한텐 돈도 아니다. 형이 니들 도운 거 선물했다 셈치고 그냥 니들 다 가져.”
“그래도…….”
“어허, 형 화낸다?”
끝내 거절하자 김철희는 미안한 듯 머리를 긁적이면서도 물러났다.
“두 당 4,000만 원이니까 세금 10% 나중에 따로 내야 돼. 집에 다들 컴퓨터 있지? 어떻게 하는지 알아?”
“어떻게 하는지 몰라요.”
“그럼 내일 은행 가서 처리하자. 레이드 세금 납부는 은행에서도 처리 해주니까 나중에 온라인 뱅킹 같은 거 만들어 놓으면 편해.”
“네!”
사천만 원이래, 우와 사천 만원, 이 돈으로 뭐하지? 집에 새 트랙터 사드릴 거야! 아이들은 그렇게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며 돌아갈 채비를 마쳤다.
쿠구구궁!
그때였다. 땅이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진이라도 났나 당황스러워하는 찰나였다. 갑자기 나무가 뽑히며 그 밑에서 뭔가가 불쑥 솟구쳤다. 뱅가를 닮은 사자 형태, 하지만 뱅가보다는 몇 배는 큰 체격의 괴수였다. 시뻘겋게 빛나는 눈동자에 아이들은 오금이 지려서 그만 비명을 질렀다.
장태준의 얼굴도 하얗게 탈색되었다.
“저, 저건 랭가?! 저, 저게 왜 여기에 있지?!”
“아, 아는 몹이에요?”
“레드 몹입니다!”
유지웅 커플의 얼굴도 하얗게 변했다.
============================ 작품 후기 ============================
“차라리 갑질을 해 줘! 백수질이 더 나빠!” 라고 이 회장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