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bastard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166
166화. Episode. 53 지옥 (3)
원한이 파도가 되어 나를 휩쓸었다.
술을 진탕 퍼마신 다음 날처럼 속이 울렁거렸다.
“…….”
이건 가짜다.
아라헬, 그 악랄한 것이 꾸며 낸 허상에 불과하다.
그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마냥 가짜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는 문제였다.
“……이 또한 얼마든지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겠지.”
차마 저들과 눈을 마주할 수가 없어, 고개를 푹 숙이곤 중얼거렸다.
언제였던가.
그래.
스노우폴에서 나와 메리가 한참 전도를 할 때였을 것이다.
그날, 신에 대해 반감을 내비치던 아론은 내게 이리 물었다.
신은 어째서 세상을 이렇게 만든 겁니까- 라고.
이 세상엔 이렇게나 싸움과 혼란이 가득한데.
죄 없는 피해자들이 이다지도 많은데.
그런데도 정녕 창조주라는 존재가 숭배받아 마땅한 존재냐는 그 물음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었다.
그때부터였다.
이 뜨겁고 무거운 감정이 내 가슴 속에 깊이 파고든 것은.
“당신, 은…… 위, 선자…… 입니다…….”
동료들과 유대를 쌓을수록.
호르교의 위세가 넓어질수록.
나는 겁이 났다.
훗날 모든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의 반응이 지금 이 상황과 같지는 않을까, 불안감에 내 속은 천천히 타들어 갔다.
물론 그들이 현재까지도 아무것도 모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동안 수없이 힌트를 줬으니, 리오 성을 함께 지켜 낸 사내들이라면 내 정체를 은연중에 눈치챘겠지.
그럼에도 변치 않은 그들의 태도가 내 유일한 위안거리라는 것 또한, 그들은 알고 있을까.
고개를 털어 상념을 지워 냈다.
원한 들끓는 시체들에게 검을 겨눴다.
“그딴 눈으로 날 보지 마. 짜증나니까.”
◈ ◈ ◈
한 번 목을 날렸던 리오 성의 시체들이 덤벼들었다.
나 또한 피하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비록 눈앞에 펼쳐진 이 광경이 달갑지는 않지만, 아라헬의 환영에 빠지는 건 의도한 일이었다.
현실 세계와는 달리 이곳은 그녀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나와 좀 더 놀고 싶은 그들에겐 수백 년의 갈증을 원없이 해결할 놀이터와도 같았다.
스그극-!
내가 휘두른 칼날이 망자의 창대를 타고 올랐다.
그 후엔 썩은 팔뚝을, 어깨를, 마지막으론 목을 지났다.
머리통이 허공에 붕 떠올랐다.
퍼걱, 광분한 시체 하나가 그 머리통을 손으로 쳐내며 달려들었다.
까만 핏물이 엉망진창으로 비산했다.
“크르륵……!”
아론이 이빨을 딱딱 부딪치며 아가리를 들이민다.
모리츠가 뒤에서부터 허리를 옥죄였다.
포이르 백작의 매서운 검격이 빈틈을 찔러 들어온다.
“큭!”
손발이 점차 어지러워졌다.
나는 지쳤고, 시체는 지치지 않았다.
나는 혼자고, 시체는 이다지도 많았다.
자연스레 땅 위에 붉은 핏물이 자리를 넓혀만 갔다.
촤르륵-
사슬을 풀어 리오 성의 성벽 위에 그 끝을 감았다.
그리곤 팔을 힘껏 당기며 땅을 박찼다.
난 그렇게 성벽 위에 올라선 채로 숨을 몰아쉬었다.
“더럽게도 많군.”
고개를 바짝 치켜든 놈들이 성벽에 붙어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아무리 그 목을 베어 내도 시체들은 어느 순간 되살아났다.
불리해도 너무 불리한 싸움.
다만 딱 한 가지 공정한 것이 있었다.
‘죽지 않는건 저들뿐만이 아니다.’
싸움을 거듭하며 창칼에 급소를 수십 번이나 찔렸다.
저 시체들의 이빨에 수도 없이 짓씹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렇게 살아서 싸우는 중이었다.
“크아아악-!!”
잠시 숨을 돌리는 순간, 포이르 백작이 단숨에 성벽을 뛰어넘어왔다.
동시에 이어진 벼락같은 종베기.
채앵!
맞부딪친 칼날 사이로 불똥이 튀었다.
이내 포이르 가문 특유의 매섭고 빠른 검격이 나를 휘몰아쳤다.
예전에는 이 흉흉한 검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었지.
하지만 지금은 어떨까.
“파이어볼.”
백작의 머리 위로 세 개의 고리가 몸집을 부풀렸다.
곧 쩍 벌어진 고리 사이로 하얀 불덩이가 떨어져 내렸다.
까만 투구가 금세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의 몸이 덜컥 멈춘 틈을 노려 사슬 네 가닥이 사지를 포박했다.
『네 자루의 검성 ? 발동.』
별들이 꼬리를 늘어트리며 쏘아졌다.
사지를 결박 당한 포이르 백작은 피할 겨를이 없어, 그 몸에 별들이 틀어박혔다.
나는 손아귀를 움켜쥐었다.
『폭성(爆星) – 발동.』
꾸드득.
크게 부풀었다 삽시간에 압축되는 별들을 따라 포이르 백작의 신형이 일그러진다.
이윽고 네 개의 별이 일시에 터졌다.
장렬한 폭사(爆死).
뼛조각 하나 남지 않은 채, 포이르 백작은 그렇게 죽었다.
‘이래도 다시 살아날까?’
마음 놓고 살펴볼 시간은 없다.
폭성의 여파로 붕괴해 버린 성벽의 잔해, 시체들이 그것을 타고 오르고 있었다.
좁은 성벽 위로 자리를 옮긴 것이 무색하게도 다시금 지독스런 전투가 이어졌다.
죽이고 죽고가 반복되는 와중, 끝도 없이 밀려드는 놈들 사이로 익숙한 데스나이트가 괴성을 질렀다.
포이르 백작이 되살아난 것이다.
그야말로 악몽에 가깝다.
이따위 환영을 보여 주는 아라헬의 시커먼 속내가 훤히 들여다 보였다.
‘하물며 나까지 죽지 않는 건, 오래도록 지옥을 맛봐라…… 이거지.’
이 환영에 갇히고 얼만큼의 시간이 흐른 건지, 나는 도저히 감을 잡지 못했다.
한 달인가, 일 년인가.
그도 아니면 이제 겨우 한 시간이 지난 것일지도 모른다.
갈피를 못잡고 해매는 시간 감각과 더불어 정신이 차츰 마모되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아, 아아아……!”
“죽어, 죽어어-!”
그 와중에도 성마른 원한은 쉴 새 없이 나를 몰아붙였다.
귀를 틀어막고 싶다.
아니, 아예 고막을 터트리고 싶었다.
다만 그래 봤자 금방 재생될 게 뻔했다.
“어두운 한밤중에.”
하여 나는 홀로 성가를 불렀다.
“그분께서 기쁜 소식 전할지니.”
이 성에서, 어둠과 맞서 싸우며.
동료들과 함께 부르짖던 그 노래를 이번엔 나 홀로 불렀다.
구절을 읊을수록 정신이 또렷해졌다.
“……곧 동이 터오른다더라.”
그제서야 난 눈치챌 수 있었다.
『다섯 자루의 검성 – 발동.』
손등에서 밝게 빛나는 성흔을.
지친 몸과 정신에 활력이 차올랐다.
어느 순간 나타난 다섯번째 별이 내 앞에서 예기를 피워 댔다.
여느때보다 그 빛이 밝았다.
증오와 마기가 가득한 성에 태양같은 별이 자리하니, 시체들의 추악한 몸에서 매캐한 탄내가 풍겨 왔다.
검성의 힘은 위기에 몰릴수록 한꺼풀 한꺼풀 진보한다.
다시 말해서.
내 성장을 촉진시키기에 이 지옥만큼 좋은 곳이 없다는 뜻이었다.
“……좋아. 이정도 메리트는 있어야지.”
이제 겨우 한 걸음.
다섯 번째 별에 만족하기엔 이 지옥은 무척 길고 험할 것이 분명했다.
◈ ◈ ◈
리하르트를 사이에 둔 군단장들이 황홀한 미소를 지었다.
환영에 빠진 그의 얼굴은 그들로서는 처음 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늘 자신들을 향하던 적대적인 표정이 아닌, 사무치는 괴로움이 여실히 드러난 얼굴.
그를 유심히 지켜보던 마몬이 해맑게 웃었다.
『좋은 꿈을 꾸시나 보군요.』
푹-
마몬의 뼈 검이 리하르트의 복부 한복판을 꿰뚫었다.
다만 리하르트는 아무런 미동도 없이 서 있을 뿐이었다.
저 하늘보다도 높던 아버지가 완전히 환영에 잠긴 모습이란.
『아아…….』
『아버지, 그거 아십니까?』
『당신께서 잠에 드신 지 겨우 5분이 지났습니다.』
발갛게 홍조를 띤 아라헬이 리하르트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밖에서는 연신 폭음이 울렸다.
인간들의 고함이 빗발치고, 시체들의 괴성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당연했다.
리하르트가 마몬과 아라헬을 마주한 지 삼십 분도 채 되지 않았으니, 그사이에 전투가 마무리 될 리 만무했다.
아라헬이 선 채로 잠에 빠진 리하르트의 몸을 바닥에 뉘었다.
그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정성이 깃들어 있었다.
『이 사랑스러운 자식들도 아버지와 같은 꿈을 꾸겠습니다.』
『부디 오래오래 놀아 주시길.』
아라헬이 그의 왼팔을 베고 누웠다.
마몬은 오른팔을 차지했다.
사아아-
새까만 기생충들이 두 군단장을 뒤덮고 난 후엔, 뼈의 성엔 적막만 맴돌았다.
밖에서부터 쩌렁거리는 폭음과는 너무도 다른 풍경이었다.
그 순간, 바닥을 나뒹굴던 악연의 날에 두 인영이 비춰졌다.
[……저 악독한 놈들도 잠들었나?]하얀 날에 비춰진 사내가 물었다.
아라헬과 마몬을 담은 그 눈에 살기가 폭풍처럼 휘몰아치고 있었다.
감히.
감히 호르 님을 이 지경으로-
차마 억누르지 못한 분노가 하얀 검날 밖으로 표출되기 직전이었다.
『기운을 갈무리해라.』
『아버지의 수고를 물거품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끄흐, 나는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만.』
새까만 날 쪽의 붉은 거인이 말했다.
우웅-
이내 악연의 검신이 허공 위에 떠올랐다.
혹여 아라헬과 마몬이 깰까, 무척 은밀한 움직임이었다.
[호르께서도 정말 무모하신 감이 있군.] [저들이 조금이라도 예상을 벗어나는 행동을 했다면…….]알버트가 몸서리를 쳤다.
조금 전 마몬이 리하르트의 배를 쑤실 때 어찌나 놀랐던지.
이미 죽어 멈춰 버린 심장이 아예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의 하소연에 칼고스가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적어도 아버지에 관해서만큼은 저 둘은 예상을 벗어날 수가 없다.』
벌집을 건드리면 벌이 보복하려들기 마련이고, 언데드 앞에 멀뚱히 서 있으면 삽시간에 물어뜯기기 마련이다.
당연할 수밖에 없는 이치.
그건 마몬과 아라헬에게도 통용되는 것이어서, 모든 건 리하르트의 계획대로 되어 가는 중이었다.
수천 년을 고매하던 만남이니, 이 순간 주어진 찰나의 시간을 영원토록 즐기고 싶었을 테지.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고.
칼고스가 묘한 기색 어린 눈길로 제 동생들을 바라볼 때였다.
[그럼, 네놈의 경우는 어떻지?]돌연 알버트가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네가 동족들을 배반한 것도 스스로 예상 가능한 범위였나?]배반이라.
칼고스의 비틀린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곧 그의 의지에 따라 악연의 검신이 한 곳을 향해 나아갔다.
『그저 보고 싶었을 뿐이다.』
『아버지께서 정하신 결말이 어떤 것인지.』
『내 호기심이 허무히 끝나는 건 원하지 않아.』
악연이 멈춘 곳은 균열을 열기 위해 응집된 마법진의 앞이었다.
바닥과 벽면을 수놓은 기하학적인 도형과 룬 문자들이 불길한 기운을 흘려 대고 있었다.
이제와 이것을 지워 내기란 요원했다.
설령 가능하다 한들, 이 세계의 근간에 치명적인 상처를 줄 터였다.
다만 한 번에 활짝 열릴 것을 서서히 열리도록 ‘조정’하는 건 가능했다.
『끄흐!』
『이거 왕께는 죄송하게 되었군.』
악연이 마법진의 한가운데에 꽂혔다.
이내, 룬 문자의 배열이 조금씩 뒤틀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