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bastard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32
32화. Episode. 12 거, 눈총 쏘지 말고 (1)
리하르트는 걸음을 옮기는 와중에도 계속 뒤를 돌아보았다.
명백히 미련이 남은 표정이었다.
“아이들을 신도로 만들지 못해서 그래?”
그의 손을 꼬옥 붙잡은 아델이 물었다.
리하르트는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초의 계획에서 가장 고대하던 것 중 하나가 엘프들을 감화시켜 신도로 만드는 것이었으니, 그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그 아이들에겐 휴식이 필요해서…….”
“괜찮아. 어차피 네 힘만 회복되면 해결될 일이라며. 그래서 이렇게 같이 가는 거고.”
“으응. 아빠 옆이 제일 정기 넘치니까.”
아델은 리하르트를 올려다보았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거룩하고 고결했던 신격은 온데간데없고, 인간의 육신에 갇혀 버린 가엾은 아버지.
‘아버지한테 도움이 돼야 해.’
안 그러면 또 떠날지도 모른다.
아델은 어떻게든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빠가 말한 기드라는 사람, 내가 수백 번은 더 살릴 수 있어. 그러니까 나만 믿어!”
물론 기력을 충분히 되찾았을 때의 이야기지만, 아델은 그 말은 꼬옥 삼켜 냈다.
“그래그래. 네 머리에서 세계수의 열매가 맺힌다고 했지?”
세계수의 특기 중 정수와 생명을 조합해 만들어 내는 것.
그게 바로 리하르트가 원하던 열매를 뜻하는 것이었다.
리하르트는 가만히 그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저 작고 둥그런 머리통에서 열매가 맺힌다니. 조금 웃겼다.
리하르트의 입꼬리가 올라가서일까. 아델도 덩달아 웃었다.
그 와중에 웃지 못하는 사람도 한 명 있었다.
“도련님? 저에게도 이 상황을 설명해 주시지요.”
한참 전부터 혼란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아론이었다.
그는 리하르트와 아델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세계수와 이야기를 나누겠다더니, 대뜸 꼬마애를 데리고 왔다.
근데 그 애가 세계수라더라.
그리고 앞으로 동행하게 되었다고.
아론이 파악한 사실은 이 정도였다.
“잘 파악했네. 그게 맞아.”
“아니,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뭐가 이렇게 얼렁뚱땅입니까!”
그때 아델이 끼어들었다.
“머슴아. 나는 아빠의 딸이니라.”
“머, 머스음?”
아무래도 여행길이 조금 북적거리게 되었다.
◈ ◈ ◈
“운이 좋았네.”
나는 말에 박차를 가하며 중얼거렸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운이 좋았다.
마경의 초입에 달했을 무렵, 우리의 눈에 들어온 것은 수 마리의 말과 그 말들을 지키는 일개 병사, 왈슨이었다.
귀신이라도 본 양 어버버 하는 그에게 양해를 구하곤 말 두 필을 얻어 냈다.
마경에 들어오기 전, 그에게 똑같이 말 두 필을 맡겼으니 거기서 거기 아닌가.
‘그나저나 조금 미안하긴 하네.’
보르헴 왕국의 병력이 마경을 들쑤시는 이유는 성배의 영향 때문이겠지.
마경에서 난리가 났으니까.
그나마 아델이 숲을 조종해 그들을 무사히 돌려보낼 수 있다고 한 덕에 걱정은 덜었다.
그렇게 내 품에 감싸여 가만히 눈을 감고 있던 아델이 문득 고개를 치켜들었다.
“아빠! 인간들은 무사히 마경을 벗어났어!”
“오, 잘했어.”
아델의 능력은 여러 모로 대단했다.
그것도 아주 매우.
콰드드득-!
집채만 한 나무가 흙바닥에서 솟구치더니, 달려들던 마물을 꿰뚫었다.
아델의 특기 중 하나인 ‘위대한 나무’였다.
식물을 자기 뜻대로 다루는 능력으로, 우리를 정원으로 인도한 것도, 왕국의 병력을 마경에서 내보낸 것도 그 능력 덕분이었다.
‘이게 뭐 그리 대단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세계수쯤 되면 스케일이 달라진다.
“이거 완전 고속도로인데?”
마경을 벗어나 또 다른 숲에 진입한 우리는 달리는 말의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그야, 눈앞의 모든 나무와 식물들이 길을 터 줬으니까.
원래라면 빙 둘러서 가야 할 길을 쭉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허어…….”
아론이 멍하니 아델을 바라보았다. 어지간히 놀랐는지, 동공이 잘게 흔들리는 모습이었다.
나는 아델의 머리통을 쓰다듬어 줬다.
“아델이 아주 효심이 가득하구나? 이렇게 편하게 해 주고.”
“히히…… 더 쓰다듬어 줘!”
오냐.
정했다.
이제부터 아델은 내 딸이다.
처음의 경계심은 허물어진 지 오래.
내 눈에 아델은 영락없는 복덩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한참을 달렸다.
숲이 있으면 그대로 가로질러 통과하고, 강이 있으면 나무를 타고 건너니, 이동 속도는 예상했던 것보다 수배는 빨라졌다.
“이 상태라면 홉슨 산맥에 순식간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음.”
마경을 떠난 지 어느덧 몇 날 며칠이 지났다.
예상보다 훨씬 빨리 홉슨 산맥의 근처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드래곤의 영향인지, 마물들의 격도 한층 상승했다.
“트윈 헤드 오우거입니다!”
쿠웅!
산중 제왕이라 불리는 마물.
거기서도 한층 더 강력해진 머리 두 개의 오우거가 진로를 떡하니 가로막고 있었다.
“맡겨 줘!”
이번에도 나선 것은 아델이었다. 그녀가 손가락을 튕겼다.
콰드드득!
트윈 헤드 오우거의 양측에서 거대한 나무줄기가 쇄도했다.
-크그극?!
힘으로 따지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괴력을 지닌 오우거가 잇새로 비명을 토했다.
양팔로 힘껏 막아 보지만, 고작 버티는 것이 한계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놈의 발밑으로 또 하나의 나무가 솟구쳤다.
콰직!
가랑이를 뚫고 위로 나아간 나무줄기는 오우거의 두 머리통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는 허무히 스러지는 트윈 헤드 오우거를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아빠, 나 배고파…….”
그와 동시에 아델이 힘없이 등을 기댔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게 무리를 한 것이 틀림없었다.
『아델가르텐에게 1,000의 신앙을 부여합니다.』
그녀가 식사로 삼는 것은 신앙이었다.
하루에 한 번, 일천씩.
상당히 부담스러운 양이었지만 나는 아무 말하지 않고 신앙을 밀어 넣었다.
“그렇게 무리하지 마. 아직 몸 상태가 나쁘다며.”
그간 지켜본 아델은 심각한 애정 결핍이었다.
어떻게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보이려 애쓰는 모습이 딱했다.
몇 번이고 무리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아델은 그것만큼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했다.
“미안…… 내가 힘을 온전히 회복하면, 백 배는 더 잘할 수 있어…….”
내 말을 알아듣기는 한 건지.
아델은 끝까지 더 잘하겠다고 중얼거리다가 잠들었다.
나와 아론은 말없이 쭉 트인 길을 내달렸다.
조금의 시간이 지난 후, 아론이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 아이가 저보다 강한 것 같습니다.”
얜 또 왜 이러는 거람.
덤덤한 듯 말하지만 나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론은 의기소침해 있었다.
“제가 도련님의 직속 기사인데…….”
살다 살다 세계수한테 열등감 느끼는 기사는 처음 본다.
하지만 이대로 놔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앞으로 쭉 함께할 사이인데, 고작 이런 걸로 심마에 빠지면 큰일이었다.
오글거리지만, 격려 좀 해 줄까.
“내가 원하는 기사는, 내가 원하는 적을 꿰뚫는 수족 같은 기사야.”
슬쩍 아론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넌 그런 기사고. ……잘하고 있어.”
우직한 아론의 눈이 크게 뜨였다.
“……네!”
곧바로 사기충천하여 외치는 그 모습에 내심 안도했다.
‘단순해서 다행이군.’
기합이 잔뜩 들어간 그를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 ◈ ◈
저 멀리 홉슨 산맥의 웅장한 풍경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 아래, 상당한 규모의 무리가 주둔지를 이루고 있었다.
기드가 참가한 바텐가의 제3기사단이었다.
몇몇 얼굴은 낯이 익었다.
“멈춰라! 이곳은 바텐베르크의 제3기사단이 주둔하…….”
정교하게 지어진 목책 위에 올라선 기사가 떠들어 대던 입을 멈췄다.
부릅떠진 두 눈은 정확히 나를 향해 있었다.
“리, 리하르트 도련님?”
“들어가도 되지?”
주변의 기사들이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주둔지에는 수많은 기사들이 있었다.
각자 제 할 일을 하고 있을 이들까지 합하면 이백여 명은 될까.
이 사내들이 바로 드래곤을 잡기 위해 몇 달간 개고생을 하고 있는 인재들이었다.
“리하르트 도련님. 여긴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상급 기사 하나가 나서서 말을 걸어왔다.
제가 모시는 가문의 자제에게 보이는 태도라기엔 너무나 불퉁한 말투였다.
애초에 이중에 합당한 예를 갖춘 기사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나마 바텐가에선 내게 호감을 표하는 기사가 많이 생겼다지만…….
‘이들한텐 나는 아직 몇 달 전의 망나니일 뿐이지.’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시선들이었다.
딱히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어쨌거나 나를 위해 고생하고 있는 사내들이었으니까.
그런데 잠에서 깨어난 아델의 생각은 다른가 보다.
그녀는 나를 향한 적대감에 몹시 심기가 불편한 모양이었다.
“감히 누구 앞에서 그딴 태도를…… 읍읍!”
“야야, 그만.”
생긴 것과는 다르게 걸쭉한 욕을 구사하려는 아델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자 이번엔 아론의 눈이 치켜뜨였다.
쿵!
아론이 창을 내리찍었다.
어찌나 힘을 줬는지 흙바닥인데도 굉음이 일었다.
“경들은 제 주군의 핏줄을 알아보지 못하는가!”
마나까지 실은 아론의 음성이 주둔지를 가득 메웠다.
나는 이마를 부여잡았다.
‘이렇게까지 할 건 없는데.’
“이분은 찬란한 바텐베르크의 정당한 후손, 리하르트 바텐베르크 도련님이시다! 바텐베르크를 모시는 자라면 합당한 예를 취하라!”
잠시간의 정적.
그 후에 기사들이 일제히 태도를 바로 했다.
“리하르트 도련님을 뵙습니다!”
두 눈에 나와 아론에 대한 불만이 어려 있을지언정, 심하게 엇나간 자는 없는 듯했다.
나는 아론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엔 직속 기사로서 해야 할 일을 했다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기합이 단단히 들었나 본데.
절레절레 고개를 젓다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던 상급 기사를 향해 물었다.
“기드는, 담금질 중인가?”
“……그렇습니다. 앞으로 스무 날 뒤에 끝마치실 예정입니다.”
그가 무언가를 억누르는 기색으로 대답했다.
왜 그런가 했더니, 기드가 제3 기사단의 전(前) 단장이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기드 이야기를 꺼내자 사내들의 눈총이 한층 더 짙어졌다.
나는 애써 한숨을 삼켜 냈다.
어쩌면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
스무 날이면 시간은 충분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길 봐도 기사, 저길 봐도 기사 천지다.
“아무래도 내가 너희들한테 썩 좋은 이미지는 아닌 것 같은데.”
차게 식은 분위기 속, 더더욱 싸늘한 한기가 머리에 감돌았다.
“고추 달린 놈들이 그렇게 눈총만 쏘아 대지 말고, 어디 자웅이나 한번 겨뤄 보자.”
같이 큰 전투를 헤쳐 나갈 동료들이다. 불화는 불필요했다.
그리고 이럴 때는 대련만 한 게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