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ruid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94)
제194화
제194편 코린의 그림자 (10)
도시에는 사 먹을 요깃거리가 많기도 하고, 여관 주인의 음식 솜씨가 워낙 훌륭한 덕분에 직접 요리를 할 일이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늦은 시간에는 음식을 따로 사 먹을 곳도, 요리를 부탁할 곳도 없으니 직접 요리를 하는 수밖에.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밤, 보다는 새벽에 가까웠으므로 식당은 어두컴컴했다.
“레기온.”
나는 촛대 하나를 들었다. 레기온이 촛대를 향해 불꽃을 탁 쏘아내자, 촛불이 밝혀지며 주변이 환해졌다. 나는 식당 벽에 달린 촛대마다 촛불을 옮겨 붙이고 주방에 들어갔다.
여관 주인의 실력을 보여주듯, 주방에는 다양한 도구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나는 가지런히 놓인 식도 중 가장 잘 다듬어져 있는 것에 손을 댔다.
“누구요?”
그때였다. 식당 너머에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낸다. 익숙한 목소리다. 잠에서 막 깨어난 듯 보이는 여관 주인이 눈을 비비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다른 손에는 튼튼한 망치 하나가 들려 있었다.
“접니다. 저. 테오도르.”
“드, 드루이드 양반?”
“네. 맞습니다.”
“이 늦은 시간에 대체 무슨…….”
휴우. 여관 주인은 한숨을 내리며 가슴을 쓸어내리더니, 테이블에 쿵, 하고 망치를 내려놓았다. 꽤 살벌한 소리가 울렸다.
“죄송합니다. 제 동료가 많이 허기진 상태라서…….”
“동료라면……. 아, 그 잘생긴 양반?”
잘생긴……. 그래, 솔직히 로이드가 잘생기긴 잘생겼지. 나는 드루이드 양반, 로이드는 잘생긴 양반……. 나는 떨떠름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내내 육포와 비스킷만 먹었다고 하지 뭡니까.”
“아니, 그러면 안 되지!”
“그러니까 말입니다.”
“잘 챙겨 먹어야 그 몸이 유지가 될 텐데!”
……언제 몸까지 보셨대. 나는 또 한 번, 떨떠름한 얼굴로 여관 주인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큼, 큼. 왜 헛기침이 나오지?
“제 말이 그 말입니다. 그래서…….”
“그래서?”
“괜찮으시다면…….”
“아유, 이 시간에 요리를 하는 건 어려운데.”
여관 주인이 손사래를 친다. 나는 황급히 끼어들었다.
“물론이지요. 요리를 부탁하는 몰염치한 짓을 하려는 건 아닙니다. 다만, 식당을 조금 빌리고 싶어서요. 재료도요. 물론, 값은 제대로 치르겠습니다.”
“……으음.”
여관 주인은 고민하는 듯 고개를 양쪽으로 갸웃, 갸웃, 기울였다.
“물건은 아주 조심해서 쓰겠습니다. 재료도, 당장 내일 장사에 쓰일 것들을 받으려는 건 아닙니다.”
“그으럼……. 으음. 생선이 있기는 한데.”
“생선, 좋지요.”
“그런데, 외지인들이 먹을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여관 주인은 으으음, 하고 또 한참 고민하는 소리를 내다가, 나를 제치고 주방으로 들어와 이곳저곳을 뒤적이더니 나무 상자 하나를 꺼냈다. 냉기 마법이 걸려 있는 상자의 안쪽에는 얼음이 수북하게 깔려 있었고, 그 위에는 평범한 생선들과…….
“저건…….”
“뭔지 알아요?”
여관 주인이 가리킨 것은 보통의 생선들과 모양이 꽤 달랐다. 일단 검고, 길쭉했으며 미끈하다. 보통은 징그럽다고 생각할 만한 모양새였다. 요리가 다 된 상태라면 모를까.
‘장어네. 장어.’
그렇다. 장어. 몸보신에 그렇게 좋다는 그 장어! 말이다. 여기서는 뭐라고 부르더라……?
“롱블랙피쉬. 가을마다 이쪽 강에서 잡히는 놈이에요. 여기 사람이 아니면 모르는데.”
“하하. 언젠가 본 적이 있어서요.”
“용병 생활을 오래 하셨다더니! 정말인가 보네!”
“정말이죠.”
장어는 가끔 먹었다. 가아끔. 누구 대접할 일이 있을 때나, 아버지 생신이라거나. 그럴 때 말이다.
“이건 당장 먹을 게 아니라 사용해도 괜찮기는 한데…….”
“감사합니다.”
“어머. 먹을 줄도 알아요? 정말 의외네!”
“하하하. 장……. 아니, 롱블랙피쉬가 별미인 걸 모르는 사람들이 손해죠.”
“맞지, 맞아!”
여관 주인은 신이 나서 장어를 꺼냈다. 하나, 둘, 셋. 세 마리. 나는 도마 위에 늘어진 장어 세 마리를 보고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런데, 롱블랙피쉬는 뼈가 많아서 아주 오래 푹~ 삶아야 먹을 수 있는데……. 괜찮겠어요?”
“음, 저는 다른 방법으로 요리하려고 합니다.”
“다른 방법? 다른 방법도 있나? 혹시 로샨풍이에요?”
굳이 따지자면 한국풍이지. 나는 어깨를 으쓱인 뒤 씩 웃으며 대답했다.
“저도 어디서 주워들은 거예요.”
“어머나……. 궁금하네. 시간 나면 나도 나중에 꼭 알려줘요.”
“그러겠습니다.”
“하암, 졸려라. 그럼, 수고해요.”
“들어가세요.”
“그 남자가 참 좋은 친구를 뒀네, 좋은 친구를…….”
여관 주인은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던 망치를 챙겨 다시 돌아갔다.
“…….”
자, 그럼 이제부터는 나와 장어. 둘만의 싸움인가.
나는 도마 위에 올려진 장어를 가만히 노려보다가, 반짝이는 회칼을 집어 들었다.
장어 하면, 역시 그거지.
‘장어구이.’
탕도 있고 찜도 있다지만, 역시 장어 하면 장어구이가 최고 아니겠는가. 원기 회복에 최고니까, 지쳐 있는 로이드에게 먹이면 딱이다.
‘일단은 머리부터…….’
원래 나는 고등어 한 마리도 제대로 굽지 못하는 놈이었으나, 이 유사 중세 랜드에서 지내는 동안 생선 손질 따위는 척척 해낼 수 있게 되었다. 원래 세계로 돌아가게 되면 횟집을 열어도 될 정도로 말이다.
-터억!!!
-터억!!!
-터억!!!
나는 장어의 머리를 떼어내고 능숙하게 살을 갈랐다. 여관 주인의 말대로, 장어에는 뼈가 많다. 특히나 잔가시들이 말이다. 이곳 사람들은 잔가시가 많은 생선은 잡어 취급을 하며 버리거나 여관 주인처럼 형체가 남지 않을 정도로 푹 삶아 먹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장어구이를 위해서는 뼈와 잔가시를 제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야 뭐 한국인답게 잔가시 정도는 우적우적 씹어 먹을 수 있지만……. 오랜만에 먹는 장어인데 정성을 조금 더 들이는 것이 좋겠지!
뼈를 잘 발라낸 뒤 다듬자, 장어는 내가 익히 알고 있는 그 모습으로 변했다. 얇고 길쭉한 생선 포 말이다. 나는 굵은 소금을 꺼내 장어 껍질의 진액을 벗기고, 흐르는 물에 깨끗이 헹군 뒤 헝겊으로 물기를 제거했다.
‘장어 손질에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걸?’
예전에는 그냥 사 먹을 줄만 알았지,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지는 몰랐다. 나는 땀을 슬쩍 닦아내고 잘 손질한 장어에 살짝 칼집을 넣었다. 혹시라도 남아 있을 가시를 제거하고, 고기를 더욱 부드럽게 만들기 위한 작업이었다.
손질만 끝내도 반은 온 거다. 나는 장어를 챙겨 주방 뒤쪽으로 난 작은 문을 열고 나갔다. 그리고 장작을 잘 놓은 뒤.
“레기온. 화력 최대로.”
「테오. 조심해.」
“응.”
-화르르르륵!!!!!
장작 위로 레기온의 흑염이 쏟아진다. 장작은 금방 훌륭한 숯이 되어서, 딱 좋은 열기를 내뿜었다. 나는 그 위로 얇은 철망을 얹고, 장어를 올렸다.
‘장어는 살부터 굽는 거야.’
풍천 장어 집에만 가면, 아버지가 늘 하시던 말씀이다. 껍질부터 구우면, 껍질이 도로록 말리니 낭패라면서. 일단 배를 노릇노릇하게 구운 후에 뒤집으면 일사천리라고.
그러고 보니, 풍천 장어의 ‘풍천’이 지역명이 아니라 ‘바람을 타고 강으로 들어온 장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도 알려 주셨지. 바람 풍風에 내 천川이라고. 아버지의 잡담 덕분에 나도 장어를 먹을 때마다 사람들에게 꼭 이런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있다. 나는 그것들을 떠올리며, 어쩐지 그리운 느낌에 쌉싸름한 웃음을 흘렸다.
장어가 구워지는 동안, 나는 밥과 양념을 만들기 시작했다. 쌀이 없긴 하지만, 쌀 대신 밀과 보리를 섞어서 ‘쪄내면’ 그나마 밥 비슷한 느낌이 날 것이다. 장어구이를 빵과 먹을 수는 없는 일이니. 그리고 양념은 아쉬운 대로 흉내라도 내 볼 생각이었다. 간장, 고추장이 없으니 정말 말 그대로 흉내일 뿐이겠지만 말이다.
다행히, 주방에는 데미그라스 소스와 잘 마른 페페론치노가 있었다. 나는 페페론치노를 빻아 가루로 만든 뒤, 데미그라스 소스에 넣고 끓였다. 거기에 후추와 소금까지 넣어 되직하게 졸이면…….
“음, 이 정도면…….”
맛을 보니 꽤 괜찮다. 대충, 매운 간장 소스라고 우길 수는 있을 듯?
「테오. 나도. 나도.」
“이거 매운데?”
「테오. 맵다. 뭐야?」
“아, 너는 아직 맵다는 게 뭔지 모르겠구나.”
「테오. 나. 몰라. 맵다.」
“맵다는 건, 그러니까……. 입에서 불이 나올 것 같다는…….”
「테오. 나. 입. 나와. 불.」
“……맞네. 너는 원래 입에서 불이 나오지?”
이걸 어떻게 설명한다? 한참을 고민해 봤지만, 역시 직접 먹어 봐야 안다는 결론밖에 안 나온다. 결국 나는 새끼손가락으로 양념을 살짝 찍어 레기온에게 먹여 주었다. 그러자…….
「……!」
-화르르르르륵!!!!
레기온은 위로 목을 길게 뻗고 불을 내뿜었다. 그래, 그래. 매우면 저렇게 입에서 불이 나온다니까. 나는 킥킥 웃으며 브레스가 멈추기를 기다렸다. 레기온은 흉곽을 크게 부풀린 채 날개를 퍼덕거리며 꼬리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거 봐, 내가 맵다고 했잖아.”
「테오! 테오!」
“그래, 그래. 조금만 기다려.”
나는 품에서 우유를 꺼내 레기온에게 먹여 주었다. 거의 한 통을 마시고 나서야 레기온은 진정한 듯 움직임을 멈추고 혀를 길게 내뺐다.
그러는 동안, 장어 초벌구이가 끝났다. 나는 얼렁뚱땅 만든 소스를 잘 구워진 장어 위에 꼼꼼하게 바른 뒤, 약한 불에 한 번씩 뒤집어 구웠다. 양념이 잘 배도록 느긋~하게 굽는 동안 군침 도는 냄새가 풍겼다.
‘이 정도면 성공이군!’
나는 장어구이를 한입 크기로 썰어 그릇에 옮겨 담고, 잘게 채 썬 생강을 한쪽에 올렸다. 쪽파 대신 파슬리 가루를 조금 뿌리고……. 완성.
“오오. 모양은 상당히 그럴듯한데!”
살짝 매콤하면서도 달콤한 냄새가 풍기는 게, 기억과는 달라도 꽤 익숙한 비주얼이다. 꿀꺽. 나도 모르게 군침을 삼킨 뒤, 나는 미리 만든 밥을 스튜 그릇에 옮겨 담았다. 쌀이 아니라 찰기는 하나도 없이 부스스하지만…….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도 써야 하는 법. 이 유사 중세 랜드에서 이만큼 흉내 낸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나는 나무로 만들어진 트레이에 요리를 옮기고 이 층으로 올라갔다. 방에는 전과 달리 말끔해진 모습의 로이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건…….”
“롱블랙피쉬 구이입니다. 이건 밥, 아니 곡물 찜이고요.”
“이런 음식은 처음 보는군.”
“제 고향에서 가끔 먹던 건데, 마침 아래에 있길래요. 완벽하진 않지만 그래도 먹을 만할 겁니다.”
“……고맙다.”
우리는 테이블 앞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음…….”
“어떻습니까?”
“맛있군. 처음 맛보는 맛이야.”
다행히도, 로이드의 입맛에 맞는 모양이다. 나는 안심하고 포크를 들었다. 장어구이를 포크로 먹는다는 게 상당히 어색하지만…….
“캬…….”
매콤달콤한 소스를 발라 구운 장어를 입에 넣는 순간, 캬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아, 소주 당기네! 아쉬운 대로 백포도주라도 먹어야지. 나는 아공간 반지에서 백포도주를 꺼내 잔에 따른 뒤 그대로 원샷했다. 죽이는구만~!
“그나저나, 테오도르.”
“네, 네. 왜요?”
“……왜, 꼬리만 먹고 있는 거지?”
컥. 큽. 큼. 큼. 목에 걸릴 뻔했다. 휴우……. 나는 눈을 데구르르 굴리다가, 다시 한번 헛기침을 하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야 당연히…….”
“당연히?”
“몸통은 고생 많이 하신 로이드 씨가 드셔야죠.”
뻔뻔하다고 해도, 꼬리는 양보 못 한다!
「테오. 그럼. 나도.」
“어, 어. 그래, 그래. 아~.”
하지만, 레기온에게는 어쩔 수 없지. 나는 레기온에게 장어 꼬리를 먹여 주고, 입에 묻은 소스를 닦아 주었다. 하여간, 좋은 건 알아서!
“많이 먹어라, 레기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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