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ruid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311)
제311화
제311편 사막의 밤 (11)
1,700 골드라는 말에, 장내는 적막에 휩싸였다. 당연한 일이다. 1,000 골드를 넘긴 1,500 골드의 시작가로도 모자라서, 벌써 1,700 골드를 돌파했으니 말이다.
-두, 두 사람이나 붙었어…….
-저 사람들, 진심인가?
거기다, 이 어마어마한 가격의 투구에 입찰자가 무려 두 명이나 붙었다는 사실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1,700 골드가 어디 개 이름도 아니니…….
‘자, 어떻게 할 거냐.’
물론, 내게 1,700 골드라는 거금 따위가 있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그걸 알고 있는 건 오직 나와 오티스 단둘뿐. 저 가엾은 경쟁자는 이 사실을 모르니까,
“1,800 골드.”
……가격을 올리는 수밖에 없겠지.
이쯤 되면, 얼굴을 확인해도 이상하지 않다. 나는 천천히, 아주 침착하게 고개를 돌렸다. 유리처럼 얇고 가냘픈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서.
“…….”
“…….”
상대 역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두운 보라색의 로샨 전통 복장을 입고 있는 늘씬한 여자. 얼굴은 짙은 베일에 가려져 있어 알아볼 수 없다. 상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 역시 후드를 깊게 뒤집어쓴 터였으니. 그러나 우리 모두 서로의 눈빛만은 알아볼 수 있었다. 아주 선명하게 말이다.
저 여자가, 자밀에게 ‘의뢰’를 맡긴 자일까?
어쩌면 단순한 하수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왠지 그렇지 않을 것 같다는 강한 예감이 든다. 그리고 내 예감은 대부분 맞는 편이지.
나는 다시금 [붉은 투구]가 있는 무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손을 들고 말했다.
“1,900 골드.”
오티스가 빙그레 웃는다. 1,900 골드라는 내 제시가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2,000 골드라는 제시가를 내야만 한다. 별 의미는 없지만, 그래도 굳이 내가 아는 금액대로 환산해보자면……. 무려 20억에 달하는 돈이다. 아무리 큰손이라 한들 쉽게 쓸 수 없는 금액이지.
그러나…….
“2,000 골드.”
유리 같은 목소리가 다시금 장내에 울려 퍼진다. 2,000 골드. 나는 빠르게 오티스와 시선을 나누었다. 그러자, 오티스가 가볍게 박수를 치며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다.
“열기가 대단하군요! 2,000 골드라니, 정말 역대급 가격입니다! 이 투구가 그만큼 훌륭한 물건이라는 방증이겠지요? 자,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200 골드씩 올려보도록 할까요? 어떻습니까?”
-웅성웅성…….
-수군수군…….
“2,000 골드 나왔습니다. 신사분, 2,200 골드는 어떠십니까? 자, 다른 분들도 얼마든지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2,200 골드. 2,200 골드 없으십니까?”
오티스의 활기찬 목소리가 퍼져나갔으나, 답하는 이는 없다. 나 역시 이번에는 손을 들지 않고 조용히 앞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2,000 골드.
적당한 가격이다. [붉은 투구]의 값으로.
그리고, 저 여자가 자밀에게 의뢰를 맡긴 자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지표로도.
‘자밀에게 건넨 착수금 역시 2,000 골드였지.’
나는 저 멀리, 경매장 반대쪽에 서 있는 칼리스토를 바라보았다. 칼리스토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이내 여자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그가 여자를 쫓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이쯤에서 사라져 줘야지. 더 시선을 받기 전에 말이다.
“더 참여하실 분은 없는 것 같군요. 그렇다면, 이 [붉은 투구]는 저쪽의 아름다운 숙녀분께…….”
2,000 골드. 그 경이로운 가격에 여기저기서 감탄이 터진다. 그와 동시에, 여자에게 온갖 시선이 쏠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그 틈을 타 조용히 경매장을 빠져나왔다.
“잠깐…….”
그 가녀린 목소리가 사람들 사이로 나를 부르는 것이 느껴졌지만, 전혀 들리지 않는 척 말이다.
“후우…….”
경매장을 빠져나온 나는 그때까지 깊게 뒤집어쓰고 있던 후드를 벗고 빠르게 자리를 떴다. 저 신원 미상의 여자는 칼리스토가 쫓을 것이다. 칼리스토라면 확실히 뒤를 밟을 수 있겠지. 그동안, 내게는 다른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자밀을 만나야 해.’
* * *
붉은 곰 용병단은 아르만 중심지가 아닌, 살짝 외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사실, 지금의 붉은 곰 용병단이라면 아르만 중심지로 얼마든지 거처를 옮길 수 있겠지만……. 그러지 않는, 아니 그러지 못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 누구도 붉은 곰 용병단에게 아르만의 땅을 팔지 않은 것이다.
아르만의 상인들 중 가장 강한 권력을 가진 노예 상인들이 붉은 곰 용병단에게 땅을 팔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경고를 했다나, 뭐라나. 뭐, 납득할 만한 이야기이긴 하다. 노예 상인들의 눈에는 자밀과 붉은 곰 용병단이 결코 곱게 보이지 않을 테니 말이다.
“단장님은 안쪽에서 기다리고 계신다.”
“고마워요, 노먼.”
나는 노먼의 안내를 받아 자밀이 있는 집무실로 향했다. 형편이 넉넉할 텐데도, 붉은 곰 용병단의 건물은 화려함이라고는 없이 투박함 그 자체를 자랑하고 있었다. 딱, 건물로서의 기능에만 집중한 느낌이랄까? 그게 자밀답긴 하다만…….
“테오도르.”
“바쁜 데 방해한 건 아니지?”
“그럴 리가. 너라면 언제든지 환영이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작은 책상에 앉아 서류 같은 것들을 읽고 있던 자밀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반겼다. 글자와는 친분이라고는 없을 것 같은 녀석이 의뢰서를 꼼꼼히 읽고 있는 모습이, 어쩐지 우스꽝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자밀 역시 그 사실을 아는지 민망한 듯 뒤통수를 긁으며 씩 웃었다.
“안 어울리는 거 나도 알아. 하지만, 내 확인이 필요한 일들이 있어서 말이야.”
“누가 뭐래? 난 아무 말도 안 했어.”
나는 손사래를 친 뒤, 한쪽에 마련된 낡은 소파에 앉았다. 나 참, 단장씩이나 돼서는 어디서 주워 온 것처럼 낡은 소파를 쓰고 있다니. 이건 소박한 수준이 아닌 것 같은데. 나는 테이블에 놓여 있는 대추야자 과자를 집어 먹으며 말했다.
“모시턴으로 가기 전에 처리해야 할 일들이야?”
“응. 제3부대와 훈련생들은 이곳에 남을 거거든. 녀석들이 해야 할 일을 미리 손보고 있는 중이야.”
“단장 일도 쉽지 않네.”
“그렇다니까! 내 용병단이 생기면 뭐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정 반대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없어.”
“그걸 이제야 알았어?”
“알고 있으면 좀 말려주지 그랬어.”
“네가 말린다고 듣냐.”
우리는 잠시 가벼운 잡담을 나누며 킬킬거렸다. 마치 예전처럼 말이다. 그리고, 대추야자 과자를 다 먹어갈 즈음…….
“그래서, 테오도르.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가 있을 텐데.”
“빨리도 물어본다.”
자밀이 먼저 운을 띄웠다. 지난번 여관에 찾아왔을 때도, 이렇다 할 깊은 이야기를 나눈 것은 아니었으니 녀석 역시 입이 근질거리는 모양이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는…….”
“…….”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을 거야.”
내 말에, 자밀이 다시금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겠지, 테오도르. 너는 재미 없는 걸로 유명했으니까!”
“……그건 다 옛날이야기고.”
함께 칼의 용병단에 있을 땐, 그랬다. 내 별명은 ‘재미없는 녀석’이었으니까. 그땐 하루하루가 고될뿐더러, 매일을 긴장 속에 살아가다 보니 재미고 뭐고 따질 수가 없었다고. 주변에는 나를 이용해 먹으려는 놈들밖에 없지, 까딱하면 죽을 위기투성이지……. 그래도 지금은 꽤 재미있어졌다고. 농담할 여유도 생기고.
뭐,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정말로 재미있지 않은 이야기지만 말이다.
“이번 의뢰에 대해, 그리고 그 외의 다른 것들에 대해, 네가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은 것들이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어.”
“…….”
“네 나름대로 판단을 거쳐 그렇게 결정한 거겠지. 섭섭함 같은 건 없다. 네 판단력에 대한 의심도 없어.”
“……고맙다, 테오도르.”
“하지만.”
나는 말을 멈추고,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별다른 기척이나 수상한 낌새는 느껴지지 않는다. 어수선하긴 하지만, 그래도 ‘단장의 집무실’이라고 도청 방지 마법 정도는 걸려 있는 모양이었다.
“이번 의뢰에는, 의심스러운 것들이 있어.”
“테오도르.”
“일단 내 말을 들어 봐. 듣고 나서 결정해도 늦지 않으니까.”
“…….”
“자밀. 모시턴에는 얼마든지 함께 가줄 수 있어. 우리가 함께라면 이번 의뢰를 성공시킬 수 있다는 것도 알아. 그렇지만…….”
“…….”
“네게 의뢰를 맡긴 자의 목적은, 샐러맨더가 아닐 거야.”
자밀은 잠시 눈썹을 찌푸린 채 나를 바라보았다. 그게 아니면 뭔데? 라는 얼굴이구만.
‘그럴 수밖에…….’
자밀은 자신의 운명이 어떤 것인지 전혀 알지 못하니까. 원래대로라면, 자신이 으로서 어떤 재앙을 불러오는 존재인지 말이다.
“……아직까지는 추측일 뿐이지만, 놈들의 목적은 너일 거야.”
“나?”
“그래. 너 말이야, 자밀.”
“…….”
자밀은 진지한, 어떻게 보면 심각해 보이는 얼굴로 잠시 말이 없었다.
“어째서?”
“…….”
“테오도르. 네 말대로라면, 나를 목적으로 하는 이유가 있을 텐데. 내겐 짐작 가는 부분이 없어.”
의뢰를 맡긴 놈들의 모체는 분명히 까마귀들일 텐데, 아직까지는 증거가 없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한담? 네가 대륙을 멸망으로 몰고 갈 재앙의 네 기수 중 하나라서 그래, 라고 말할 수도 없고.
“그건…….”
“…….”
굴러가라, 머리 머리!
“……그건, 네가 죽길 바라서지.”
“흐음.”
“생각해 봐, 자밀. 붉은 곰 용병단이 망하길 바라는 자들이 한둘이야? 네가 죽길 바라는 자들이 한둘이냐고. 로샨은 노예로 먹고사는 나라야. 그런데, 너를 봐. 네가 하는 일들을. 너는 노예들에게 자유를 주고 있잖아.”
“…….”
“나는 이게 거대한 음모라고 생각해. 어쩌면, 너의 의뢰자는 한 명이 아니라 ‘여럿’일 수도 있지. 그렇게 생각하면 2,000 골드라는 착수금도 이상하지 않아. 로샨의 노예 상인들에게 금화를 한 닢씩만 걷어도 2,000 골드는 금방일 테니까.”
“…….”
“그리고 어쩌면, 이건……. 술탄의 입김이 들어간 일일지도 모르지. 너도 알잖아? 샐러맨더의 불꽃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샐러맨더의 가죽이 필요하다는 거. 한마디로, 샐러맨더 토벌은 불가능하다는 뜻이지. 하지만 그게 가능한 자가 로샨에 딱 한 명 있어. 누군지는 너도 잘 알겠지?”
“술탄.”
“그래. 이미 샐러맨더의 가죽을 가지고 있는 자. 그가 널 웃음거리로 만들기 위해 일부러 불가능한 의뢰를 맡긴 것일 수도 있는 일이야.”
“…….”
“물론, 이건 전부 내 추측일 뿐이야. 하지만, 전부 가능성 있는 이야기들이지.”
“…….”
“그러니까, 자밀…….”
이번 의뢰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어, 라고 말하려는 순간.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단장님. ‘그분’께서 찾아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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