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Druid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390)
제390화
제390편 강철 산맥의 지배자 (10)
내가 라이너스에게 내건 조건은 아주 간단했다. 여관 일을 하되, 대장장이 일을 그만두지는 말 것. 라이너스는 이것에 불만을 표했지만, 이내 받아들였다. 갑작스럽게 손님이 늘어나는 일은 없을 테니, 대장장이 일을 병행해도 될 거라는 내 설득이 통한 것이다.
‘심지어 지금은 여관에 머무르는 손님도 우리뿐이니까.’
은 내 예상대로 한때는 발 디딜 틈 없이 손님이 넘쳐나는 인기 여관이었다. 나 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었지만, 일 년 전 라이너스가 여관을 운영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급속도로 손님의 수가 줄어들더니, 이제는 의리로 찾아 주던 단골들마저도 발을 끊게 된 것이다.
그나마 남아있는 손님이라고는 라이너스의 어머니와 아주 친했던 늙은 드워프들뿐이었다. 하지만 그 손님들 역시 숙박을 하거나 요리를 먹는 것이 아니라, 라이너스가 따로 떼 오는 맥주나 한두 잔 마시고 돌아갈 뿐이라 여관 운영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손님이 늘어날 때까지 당분간은 라이너스가 대장장이 일을 해서 번 돈으로 여관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의견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미 한계에 다다른 여관이 완전히 고꾸라지는 건 시간문제였으니까.
낮에는 하던 대로 대장장이 일을 하고, 저녁에는 산맥에서 돌아온 나에게 요리 수업을 받는다. 퀘스트에 적혀있던 대로, 수업 횟수는 총 일곱 번. 일곱 번의 수업으로 충분하지 않다면 몇 가지를 더 보강하는 것으로.
‘일단, 기본적인 요리 지식만 알려줘도 많은 부분이 나아질 거야.’
나는 그간 봐왔던 요리 관련 프로그램들을 떠올렸다. 나 같은 것들. 그런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멋들어진 메뉴 같은 게 아니었다. 뭐니 뭐니 해도 중요한 건 열정과 성실성. 그리고 위생 의식! 이 세 가지만 갖춰져 있어도 문제의 반은 해결한 셈이었는데, 라이너스의 경우에는 이 세 가지가 이미 충족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정말로 기본적인 요리 지식과 몇 가지 레시피만 있으면 라이너스의 실력은 급상승할 것이다.
물론, 내가 라이너스의 어머니와 완벽하게 같은 레시피를 구현해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 세계에서는 나름대로 미식가 소리를 들을 정도니까. 게다가, 라이너스가 내 요리에서 ‘어머니의 손맛’을 느꼈다면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는 셈이다.
지금 당장 나 처럼 손님으로 북적거리게 만들 수는 없겠지만, 서서히 입소문이 퍼지면서 다시 여관에 사람들의 발길이 닿도록 만들어 주겠어!
-똑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 문을 열었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시선을 아래로 슥 내리자, 뭔 보따리를 잔뜩 들고 있는 라이너스가 보였다.
“자네가 말한 건 전부 준비했네!”
이거 참, 보따리가 움직이고 보따리가 말하는 것 같군. 말하면 실례일 것 같은 생각을 하며, 나는 보따리 안을 뒤적여 보았다. 사과, 토마토, 감자, 양파, 당근……. 음, 준비하라고 한 건 전부 사 왔군. 게다가 전부 신선하고 질도 좋아.
“좋습니다. 주방으로 내려갈 테니까, 먼저 가 계세요.”
“알겠네!”
뒤뚱뒤뚱, 보따리……. 아니, 라이너스가 다시 계단을 내려간다. 나는 펼쳐 두었던 낡은 책을 다시 품에 넣고, 방문을 나섰다. 문이 닫히기 전, 잠에서 깬 레기온이 잽싸게 뛰쳐나와 내 어깨를 타고 올라왔다.
지옥에서 올라온 칠면조 구이를 만든 장소치고, 주방은 탄 냄새 하나 없이 깨끗했다. 좁은데도 환기구가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었다. 참 잘 만들어진 주방이란 말이지. 물어보니, 라이너스가 대장장이 일을 시작하면서 직접 이곳저곳을 손보아 완성된 것이라고 한다. 어머니가 불편하게 생각하던 것 하나하나를 고치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나? 효심 깊은 드워프구만.
우리는 재료를 깨끗하게 씻고 손질했다. 어릴 때는 어머니를 자주 도왔다더니, 라이너스의 재료 손질 솜씨는 나쁘지 않았다. 껍질도 깨끗하게 벗기고, 칼질 솜씨도 훌륭하다. 여긴 손댈 것이 없군. 그렇다면, 역시 문제는…… ‘그거’ 겠구나.
“일단, 불부터 조절해 봅시다.”
“불? 불이라면 이미 지펴져 있지 않나?”
바로 이게 문제라니까.
“라이너스.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합니까?”
“그야, 신선한 재료가 가장 기본…….”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건 불입니다.”
“……!”
“신선한 재료도 중요한 건 맞아요. 하지만, 신선하지 않다고 해도, 썩지 않은 이상 맛이라는 건 조리법으로 어느 정도 커버가 가능합니다.”
“하, 하지만…….”
“하지만 같은 건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바로 화력. 대장장이인 당신에게는 익숙한 일일 텐데요?”
“무, 물론 대장간에서도 화력은 중요하지만…….”
“요리도 제련과 같습니다! 정확한 화력 조절이 완벽한 요리를 만들어내는 거라고요!”
“……!”
“같은 화구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칠면조 구이와, 나의 소시지구이는 완벽하게 다릅니다. 그 이유는 바로 화력 차이!”
“오, 오오…….”
“일단 이것부터 확실히 하고 가자고요. 가장 중요한 건 뭐다?”
“화력!”
“좋습니다.”
나는 마른 장작을 아궁이에 넣으며 말했다.
“사실, 센 불을 사용하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중간 불, 약 불. 특히나 약불이 중요해요. 그저 센 화력으로 밀어붙이다가는…….”
지옥에서 올라온 칠면조 구이가 완성되는 거지. 나는 뒷말을 삼킨 채 불붙인 성냥을 아궁이에 던져 넣었다.
“뭐든 천천히 익힌다고 생각하면 돼요. 센 불은 빠르게 볶아야 하는 음식에나 사용하고요.”
“아하.”
“스튜 같은 음식도, 센 불은 처음 끓을 때까지만 사용하세요. 그다음에는 불을 작게 만들고요. 약한 불로 천천히, 오래 끓여야 재료의 맛이 완전히 배어 나오는 겁니다.”
“그, 그래! 어머니도 스튜를 정말 오래 끓이셨지. 맛이 일품이었어. 하지만 내가 끓인 것은 바닥이 전부…….”
“새까맣게 타버렸죠? 센 불 때문입니다.”
“오오오…….”
나는 커다란 냄비를 꺼내 불 위에 올리고, 그 안에 버터를 한 뭉텅이 넣었다. 버터가 사악, 녹아내린 뒤에는 미리 손질해둔 고기를 와르르!
“고기를 먼저 볶고, 그다음에 채소를 볶아요. 이게 가장 기본적인 순서입니다. 고기의 육즙을 먼저 가두고, 채소는 나중에 넣어 모양이 부서지지 않게 하는 거죠.”
내가 재료를 볶는 동안, 라이너스는 내 말을 열심히 받아 적고 있었다.
“에서는 크림 스튜를, 에서는 토마토 스튜를 판다고 했죠?”
“그래. 엘프들은 크림을, 드워프들은 토마토를 선호하거든. 우리 어머니도 토마토 스튜를 만드셨어.”
그러니 당연히 토마토 스튜를 만들 거라고 생각한 것인지, 라이너스는 내게 토마토를 건네주었다. 나는 그 토마토를 석, 석, 잘라 냄비 안에 넣고, 라이너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는 좀 다른 걸 만들어 볼 겁니다.”
“다, 다른 걸?! 하지만 어머니는!”
“알아요. 당신 어머니도 토마토 스튜를 만들었다는 거. 하지만, 우리는 다른 걸 만들 거예요. 이미 여관의 평판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이상, 평범한 토마토 스튜로는 이미 떠나간 사람들을 잡을 수 없어요.”
“그럼…….”
크림 한 통, 우유 한 통을 번쩍 들어 올린 나는, 냄비 위에 그대로 크림과 우유를 쏟아부었다. 콸콸콸!
“자, 이제 다시 끓을 때까지 불을 키워요.”
라이너스는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은 채 열심히 부채질을 하기 시작했다. 화르륵! 커진 불이 냄비를 데우기 시작하고, 얼마 안 가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손을 들어 올리자, 신호를 확인한 라이너스는 부채질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냄비에 몇 가지 허브와 향신료를 뿌린 뒤 뚜껑을 덮었다.
“자, 이제 푹 끓여주면 됩니다.”
“그, 그게 다라고?”
“네. 가끔 뚜껑 열고 휘저어주면 좋고요.”
탁탁, 나는 손을 털어낸 뒤 어깨를 으쓱였다. 라이너스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토마토와 크림을 합치다니, 이런 건…….”
“제 고향에서는 자주 먹었어요.”
로제 파스타라고 아시나? 이게 엄청 유행이었다고.
“인기도 많았죠. 크림과 토마토. 필승 조합입니다. 혹시라도 실패하면, 뭐. 그땐 원하는 걸 알려드릴게요. 토마토 스튜든, 크림 스튜든.”
내가 워낙에 자신만만하게 말하자, 라이너스는 긴가민가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마저 노트에 무언가를 적었다. 아마도 내가 마지막에 추가한 허브와 향신료들을 적는 모양이다.
“한 시간만 끓여도 완성이긴 한데, 스튜는 오래 끓일수록 부드럽고 맛있어져요. 이 정도 양이면, 아주 약한 불로 세 시간 정도?”
“다, 다 타버리면 어쩌지?”
“그러니까, 불과 냄비를 자주 확인하세요. 너무 졸았다 싶으면 우유를 더 넣어 주고.”
“우유를 더…….”
“일단 오늘은 두 시간만 끓여 봅시다.”
“아, 알겠네!”
“저는 스튜랑 먹을 빵이랑 맥주를 사러 다녀올게요. 그동안 스튜를 잘 지켜봐요.”
나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라이너스를 뒤로하고 좁은 주방을 빠져나왔다. 스튜가 맛있을 건 뻔한 일이니, 잘 어울리는 빵과 술을 사러 가야지. 에르긴의 명물은 ‘흑맥주’였다. 그냥 맥주가 아닌 흑맥주! 이게 또 별미거든. 컵 위에 레몬즙을 바르고, 설탕과 시나몬 가루를 섞어서 묻힌 뒤 흑맥주를 따라 마시면……. 캬, 이거 생각만 해도 침이 넘어가네.
‘괜찮은 흑맥주 집이 어디려나…….’
찾기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드워프들이 몰려 있는 곳을 찾으면 될 테니 말이다. 나는 상점가에서 적당히 폭신한 흰 빵 몇 덩이를 사고, 양조장이 몰려 있는 구간으로 향했다. 음, 구수한 냄새……. 죽이는구만. 드워프들은 워낙에 종족 전체가 주당으로 유명하다 보니, 맥주 맛이 기대될 수밖에 없었다.
-웅성웅성.
저쪽인가. 나는 유난히 드워프들이 몰려들어 있는 가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퍽!
-퍼억!!
싸움이라도 난 것일까? 북적이는 가게 앞에서는, 험악한 고성이 오가고 있었다. 술을 파는 가게 앞이니, 싸움판이 벌어지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무시하고 맥주나 사기 위해 걸음을 옮긴 순간,
“이 더러운 코볼트 도둑놈!”
……잠깐, ‘코볼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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