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121
겨울 숲의 노래 (7)
원래 작곡이란 게 그렇다.
존나 노가다다.
멜로디를 찍고, 다듬고 다듬고 다듬고의 반복.
편집 프로그램의 진회색 화면만 주구장창 보고 있으면 눈알이 쓰라리고, 모니터 스피커의 둥둥거리는 베이스는 꼭 고막을 두들겨 패는 것 같이 느껴진다.
‘반복해서 듣는’ 작업의 고통이란, 생각보다 대단했다.
물론, 이게 끝이 아니다.
시간이 엄청 빨리 흘러간다는 단점도 남았다.
몸 쓰는 일을 할 때는 시간이 너무 안 가서 무섭지만,
복잡 반복 작업을 할 때는 시간이 너무 빨리 가서 무섭다.
인생이 스킵 당하는 기분이다.
이 곡은, 회귀 전부터 구상을 해뒀기에 빠르게 만들 수 있었다.
인스트루멘탈의 어딜 다듬어야 할지,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할지.
다 알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드럼과 베이스라인은 프로 세션분들이 담당했다.
나머지 악기 파트는 황 프로듀서의 화려한 가상 악기 노가다 솜씨로 이루어졌다.
회귀전에 만들었던 것보다도 퀄리티가 높은 것은 당연지사.
회삿돈이 좀 많이 들어갔다.
직원들의 야근도 들어갔다.
미안해요 …
곡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보니, 순식간에 화요일이 찾아왔다.
기자들도 오고, 영화 관계자들도 오고.
온다는 건 대략 알고 있었지만,
예상보다 더 많이 온단다.
문제는 스튜디오가 그리 넓지 않다는 거다.
수십 명이 들이닥치면 발 디딜 틈도 없을 거다.
그렇다고 댄스 연습실 한구석에서 연주를 들려준다?
… 그건 좀 아니다.
절대 아니다.
간지가 안 나잖아!
내 자존심은, 연습실에서의 공연을 허락지 않았다.
-웅성웅성
그래서 고집을 부린 결과가 이것이다.
다운 엔터테인먼트의 1층 로비.
공간 낭비같이 넓은 로비.
1층을 지키는 직원을 제외하면, 소속 뮤지션의 홍보 포스터나 판넬 같은 것만이 놓여 있는 곳.
조명도 분위기도 참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이곳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꼭 무대 같이 생겼잖아.
무대로 쓰라고 만든 곳은 아닌데… 그렇다고 무대로 쓰지 말라는 법이 있나?
없다!
하고 싶으면, 하는 거다!
“자, 지금부터 빨기좌의 긴급 공연을 시작하겠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던 황 프로듀서가 목소리를 높였다.
“긴급공연?”
“무슨 소리야…?”
나는 앞으로 메고 있던 레스폴의 지판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기자들또한 척척, 능숙한 솜씨로 삼각대를 펼치기 시작했다.
가장 좋은 구도를 잡을 수 있는 자리는 이미 에이트라가 선점한 상태였다.
“나 참 … 기자 생활하면서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네 …”
“그러게 말이에요.”
“좋지 않아요? 전 좋은데?”
“흐흐흐, 나도 사실 그래. 빨기좌 보고 싶었거든.”
기자들의 얼굴에 떠올라 있던 감정이, ‘당혹감’에서 ‘기대감’으로 바뀌어 갔다.
처음부터 영화에 대한 설명이니 곡에 대한 소개니 주절주절거릴 생각은 없었다.
우선 이목을 끌어야 한다.
그러니,
그냥,
들어간다!
나는 황 프로듀서에게 Ok 사인을 보냈다.
Ts808 톤 최대 드라이브 최대
Sd-1 톤 중간 드라이브 최대
앰프는 트레블과 볼륨을 높여 강제로 찌그러뜨린다!
좌아아아앙-!
강력하기 그지없는 메탈 사운드가, 트위드로 덮인 앰프에서 뿜어져 나왔다.
블랙 사바스의 paranoid.
‘메탈’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명곡이었다.
좡 – 좡 좡-!
직접 만든 간단한 mr과 함께 아주 기초적인 파워코드 리프가 시작됐다.
-지이잉 -! 좌아앙!
“카메라, 카메라 돌려!”
“아, 네!”
“마이크는 왜 안 붙여요? 빨리!”
영화 곡 발표한다고 불러모았는데 갑자기 분위기 메탈이다.
게다가 보컬 곡에 보컬은 없고, 보컬을 대신하는 기타만이 존재한다.
편곡 퀄리티가 아주 높지는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이게 메인이 아니기에.
“와우 …”
“무슨 곡이에요?”
“… 블랙사바스 곡이잖아요.”
“영화에 메탈이 들어가요?”
“아닐 텐데요 …”
기자들은 의문을 표하면서도 집중을 풀지는 않았다.
기타로 노래를 하는 것.
메인 곡에 들어가기 전에 힌트를 퍼뜨리는 것.
이것이 관객들을 ‘집중’시키기 위한 내 계획이었다.
“ … 민서도 저거 칠 줄 알아?”
“아니 난… 저런 건 잘 안 들어봐서 …”
“락페스티벌 온 거 같다…”
“좡~ 좡~”
쥬우웅-!
나는 딜레이 페달을 밟고, 힘차게 비브라토를 넣으며 솔로에 들어갔다.
매력적인 리프와 파괴적인 톤.
70년대에 들어 메탈의 스타트를 끊은 블랙사바스의 명곡 중 명곡.
쥬와아아아앙-!
떠드는 이들은 없었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나에게 몰렸다.
‘관객’으로서 모이지 않은 관객들은, 육중한 비트에 맞춰 까딱, 까딱,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곡이 순식간에 끝났다.
“후우 …”
나는 기타의 볼륨을 줄이고, 영화 감독과 제작사 대표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
어리둥절한 표정이 나를 맞았다.
‘나’를 찍으러 온 기자들은, 지금과 같은 상황에 불만을 가지지는 않을 것이다.
미친 짓 하면 꺄르르 좋아하는 양반들이니까.
특이한 이벤트를 양팔 벌리며 환영하는 사람들이니까.
근데 솔직히 영화 제작사 직원들은 그냥 어이만 없을 거다.
영화에 들어가는 곡 다 만들었다고 왔는데 갑자기 메탈이나 연주하고 자빠졌으니까 말이다.
“아,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인ㅈ…”
“어떠셨습니까?”
나는 말을 더듬던 영화 ‘감독’에게 반문했다.
신경질적인 회사원 인상의 남성이었다.
“이게 영화 쓰일 곡… 은 아니죠?”
“아니죠. 근데 좋지 않나요?”
“… 아 … 네. 잘 치시는데….”
그는 계속해서 내게 의심스러운 듯한 시선을 보냈다.
“… 잘 치시는데… 이 곡이 영화랑 무슨 상관입니까?”
“상관이 없지 않습니다.”
나는 살살, 고개를 저었다.
주목은 이미 다 모았다.
이제 의미를 부여할 차례였다.
“이번에 발표한 곡은, 당연하게도 연주곡입니다. 나숙호 선생님의 ‘사막을 걷는 노래’나, 에릭 존슨의 cliffs of dover이랑 똑같죠.”
“…네.”
“그리고 재차 말씀드리자면 영화에 삽입되는 곡이면서도 영화를 위해 제작된 곡은 아닙니다.”
지이잉-!
기자들은 흥미가 끓어오르는 듯, 내 얼굴을 향해 줌을 당겨댔다.
모공까지 찍으려는 건가?
그만 당겨요.
“… 그건 전해 들었습니다.”
“그렇군요.”
연주곡은 태생적으로 불리함을 가진다.
‘가사’가 없기에, 주제의 직진성이 무뎌진다.
사랑 타령의 멜로디에 사랑 타령 가사를 붙이면 아주 좋은 사랑 타령이 되지만,
악기의 멜로디만으로는, 아무래도 사람 목소리보다 전달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목소리가 있는 노래에 뒤지지 않는 곡은 많다.
평소 관심을 두지 않던 사람에게도 명확히 감정을 전달해 주는 명곡은, 분명히 존재했다.
내가 목표로 하는 건 그런 경지였다.
그리고 이 곡은, 그런 경지에,
발톱 정도는 걸쳤다고.
자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감독님.”
“예.”
“모여주신 기자님들에게 대략적인 씬의 배경설명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
감독은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빛을 지우지 않은 채, 기자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황 프로듀서는 그에게 미니 마이크 하나를 건넸다.
목소리가 mr용으로 사용되던 버스킹 스피커에서 차분하게 흘러나왔다.
“아아. 안녕하십니까. 시사회 이후로 열흘 만에 다시 뵙습니다. 전달 드렸다시피 이번 발표에서는 …”
감독은 또박또박한 말씨로, 현 상황에 대해 풀어냈다.
호평도 있었지만, 지적도 있었던 하이라이트 씬.
그냥 진행해도 문제 될 건 없지만, 더 나은 퀄리티를 위해 ost를 교체하게 되었다는 설명.
그리고 그 ost가 …
나의 1집 앨범의 대표곡이라는 설명.
이미 다 아는 내용이었다.
아는 내용이었기에 …
“… 빨리 좀 들어봅시다!”
“아직인가요!?”
사람들의 기대와 흥미를 더욱 증폭시킬 수 있었다.
감독은 말을 끝마친 다음,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시 하여금 나를 노려보았다.
이용 당한게 느껴졌기 때문일까.
나는 섬세하게 표정관리를 하며, 앰프 앞에 섰다.
펜더 베이스맨 59 리이슈.
‘겨울 숲의 노래’를 위한 파트너였다.
“엄청 낡았네.”
“… 회사에 저런 게 있었어요?”
“빌린 거죠. 아예 스튜디오에 놓아둘까 생각도 했는데 … 국내에는 안 팔더라고요.”
음반 제작부 직원들은 뿌듯하기 그지없다는 표정을 띠었다.
이건 이름 그대로, 베이스 기타를 위한 앰프다.
베이시스트들도 좋아하긴 하지만, 기타리스트들이 훨씬 더 선호하는 앰프다.
펜더 기타 특유의 꺄랑거림을 엄청나게 증폭시켜주는 놈이니까.
앰프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의 tweed 59 나 us tweed라고 적혀있는 게 다 이걸 카피한 소리다.
Eq 노브 네 개에 볼륨 노브 두 개.
매우 단출한 구성이었다.
회귀 전에는 이걸 ‘시뮬레이션’한 소리로밖에 못 들어봤었는데.
이번에 녹음하면서 제대로 들어봤다.
아주 좋더라.
딱이더라.
나는 케이블을 뽑고,
왼쪽 어깨에 손을 가져다 대어,
쭈와아아아악-!
기타를 잽싸게 돌려버렸다.
나만의 스트라토캐스터가 앞으로 왔다.
“우와아아아아아!”
“오오오오오!”
구경하던 다운 엔터의 직원들, 음반 제작부 직원들, 기자들이 한마음으로 함성을 내질렀다.
어느 기자는 주먹을 꽉 쥐며 ‘제대로 찍었다!’라며 소리까지 질러댔다.
지이잉~
수십 개의 노브가 돌아가고,
기타의 소리가 점점 변화해간다.
내가 맞춘 값으로.
나만의 값으로.
쥬우우우웅-!
진공관 앰프의 특성인, 볼륨을 올렸을 때 들리는 크랭크업 크런치톤.
옛날 방식 그대로의 소리였다.
그리고 여기에 …
우우웅-!
페달보드에 추가한 던롭 m234 아날로그 코러스를 섞는다.
“와우.”
“걸걸~ 하다.”
“느낌 좋네.”
기자들과 영화사 직원들은 각자 한 마디씩 감상을 말하기 시작했다.
스타트 톤이 완성됐다.
“… 저, 김수재씨.”
“예.”
“여기까지 와서 이런 말씀 드리긴 뭐한데, 저는 저만의 기준이 있습니다. 곡이 영화에 어울리지 않으면 그냥 안 넣을 겁니다. 절대 양보해 드릴 수 없습니다.”
“네. 안 넣으셔도 됩니다.”
“어,어… 네!?”
그는 나의 ‘선포’에 일순간 말을 더듬었다.
“그러니 이왕 온거 우선 들어보십시오.”
“….”
그리고, 마지막 부탁에 묵묵히 고개만 끄덕였다.
둥 – 둥- 둥!
황프로듀서가 타이밍 좋게 인스트루멘탈을 흘린다.
“겨울 숲의 노래입니다.”
나는 제목만 간결하게 말한 후, 4번줄의 7프렛을 짚었다.
A마이너 펜타토닉 스케일이며
A블루스 스케일이기도 하고
C메이저 스케일이기도 한 곡.
머릿속에 곧바로 겨울날의 숲이 그려졌다.
눈을 거침없이 뿌려대는 잿빛 하늘과
새파란 잎 대신 새하얀 눈을 입고 있는 숲.
평소 생각하던 ‘숲’의 이미지와는 달랐다.
아름답지만, 무서운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한여름 오토캠핑장에서의 숲이던, 도심 속 인공 숲이던.
숲은 시원하고 상쾌한 곳이지 않은가.
‘숲’과 차가움을 연결시키기는 어렵다.
애초에, 차가운 숲을 제대로 느껴본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나도 똑같다.
차가운 숲에 들어가는 건 고난이다.
고난.
첫 두 마디는, ‘사막을 걷는 노래’와 같았다.
지이잉-!
기타의 소리는 고난의 시작을 알렸다.
한겨울의 숲속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조난자.
길을 잃은 사람이다.
여행자가 아니다.
원래 숲이란 게 그렇다.
존나 이상하다.
나무를 베어내려고 전기톱을 들이미니 10m 떨어진 다른 나무가 몸을 떠는 걸 본 적 있는가?
난 있다.
나무끼리 다 연결되어있다는 게 구라인 줄 알았는데 진짜더라.
온몸에 소름이 쫙 돋더라.
숲은, 미지는 아니더라도 인간 혼자서 장악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조난자 한 명쯤은 압도할만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지극히 어두운 이미지로, 두려움에 떠는 듯.
매서운 멜로디가 이어진다.
듣고 있으면 손발이 차가워지고, 등에 소름이 돋는 멜로디.
어두움, 절망감.
조난자가 처음 숲에 발을 내디뎠을 때의 감정이었다.
“….”
“…”
꿀꺽-
마른 침을 넘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왜 숲에 버려졌는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눈을 떠보니 숲이 찾아와 있었으니까.
숲은 안식처라고 생각하던 곳이었으며, 내리쬐는 또 다른 고난의 피난처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숲이 고난이었다.
조난자는 걸었다.
두려움에 떨면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얼굴을 때리는 매서운 눈보라가 아프지만,
발이 시렵고, 몸이 무겁지만.
그래도 걸었다.
숲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고난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으리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제자리에 있고 싶지 않았다.
꾸역꾸역 손과 팔로, 수북한 눈 무더기를 헤쳐나간다.
신발에 들어간 눈을 털어내다가 이내 포기한다.
주변에는 방해물밖에 없었다.
몇 시간이나 흘렀을까.
눈이 그쳤을 즈음일까.
고통은 갈수록 심해졌지만, 정신적 두려움은 무뎌져 갔다.
그의 마음속에는, 아주 미세하게 ‘도전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숲에 대한 도전감.
작은 도전감.
그리고 해는 거의 저물어가고 있었다.
-쥬우우웅!
나는 약하게 게인을 먹여둔 sd-1을 밟고서 픽업 셀렉터를 미들- 리어의 하프톤으로 바꾸었다.
서로 다른 픽업이 만들어내는, 특이한 하프톤.
찾아다녔던 그 소리가, 관객들 앞에 현현됐다.
“오 ….”
“분위기 바뀌었는데요!?”
“와…”
관객들은 길게 감탄을 내뱉지 않았다.
말소리를 내는 대신, 더더욱 나의 연주에 집중했다.
곡조가 바뀌었다.
펜타토닉에 블루노트가 추가되며,
한 차례 쉬어가듯.
초반을 압박하고 있던 거센 눈보라가 그치듯.
조난자는 해가 지는 것을 느끼자마자 온 힘을 다해 불을 피웠다.
가방에 남아있던 얼마 안 되는 식량을 긁어모으고, 눈을 녹여 커피를 끓였다.
주위에 온갖 위험 요소가 넘쳐나고 있음에도,
눈앞의 불빛을 보고 있으니 안도감이 느껴졌다.
조난자의 안도감.
곡조가 일순간 밝아졌다.
하지만…
키이이잉-!
나는 밴딩과 동시에 암을 들어 올렸다.
날카롭기 그지없는 소리였다.
숲이 매서운 바람을 보내어 조난자에게 경고하듯,
나는 아주 천천히, 날 선 피킹을 지속했다.
미들픽업으로 셀럭터를 옮기자, 픽업 두 개가 만들고 있던 몽환적인 느낌이 사라졌다.
고난은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계속되었다.
조난자는 굶주렸다.
나아갈 길이 도저히 보이지 않아,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손과 코가 새파래진, 쉽게 볼 수 없을 몰골.
그리고 …
희망.
드르르르륵-!
나는 메이저 스케일 속주로 살벌한 분위기 속에 밝은 멜로디를 집어넣었다.
희망은 그를 이끌었으며,
고난의 중화제가 되었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못 걸을 때까지 걷는다는 생각만을 했다.
포기한다는 선택지는 원래부터 없었다.
숲은 무섭고, 차가우며, 상냥하지 않다.
따듯하게 쉬고 싶고, 배부르게 살고 싶은데.
포기하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된다.
그래서 조난자는 포기할 수 없었다.
상냥함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삭막한 풍경 아래서,
실제로 걷는 건지, 꿈속에서 걷는 건지 모르는 상태에서 … 그저 눈을 헤쳐나갔다.
걷다 지치면 불을 피우고, 불이 꺼지면 뜨뜻한 잿더미를 옷에 구겨 넣으며.
참았다.
“허어 …”
“… 대체…”
피식.
음반 제작부 사람들은, 세상 다 가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구상한 곡이지만, 나 혼자만 만든 곡은 아니다.
직원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완성할 수가 있었다.
나는 그들이 느끼는 ‘뿌듯함’을, 마음속으로 깊게 이해했다.
지이이잉-!
나는 힘차게 비브라토를 넣으며 블루스 – 펜타토닉을 번갈아 가며 연주했다.
난해한 멜로디.
혼란스러운 멜로디.
마지막으로 닥친 위기.
차가운 곡조에 맞춰, 차갑고 폭신한 눈바닥 위에 조난자가 드러눕는다.
한계가 찾아왔다.
“저 … 감독님?”
영화 제작사 직원의 목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휴지 드릴까요…?”
직원은 주머니에서 여행용 티슈를 꺼내어 감독에게 내밀었다.
무심코 그것을 받아든,
신경질적인 인상의 감독은,
“… 그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