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122
겨울 숲의 노래 (8)
손성민은 영화를 좋아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드라마든 다큐멘터리든 영화든 사진이든.
영상매체라면 다 좋아했다.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의 캠코더를 몰래 학교에 가져와 유치하기 그지없는 대사를 날리며 찍은 것이 그의 인생 첫 영상이었다.
친구들끼리 돌려보다 담임한테 결려서 ‘쓸데없는 짓 한다’며 빠따 좀 맞은 건 뭐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냥 다 추억이었다.
원래 시작은 다 평범하다.
하늘이 점찍어 직업을 내려주지는 않는다.
새, 거리, 야경.
닥치는 대로 찍었고, 닥치는 대로 의미를 부여했다.
취미로 투고한 영상으로 교육청 공모전 준우승을 차지했을 때의 기분은 아직까지도 생생했다.
‘이거 진짜 될 거 같다’는 근거 없는 확신감은 그때 생겨났던 것 같다.
그리고 손성민은,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
고난이었다.
엄청난 고난의 연속이었다.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걸 현실로 끄집어내고 싶었지만, 여건이 되지 않았다.
다 돈이니까.
그럴듯한 실내 세트장 하나 만드는 데만 해도 수백에서 수천이 깨지니까.
장면을 타협하다 보면 생각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물이 만들어지곤 했다.
자신의 눈에만 성에 안 찬다면 모를까,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성에 차지 않았다.
개인 투자를 몇 번 말아먹고 나니 빈털터리가 됐다.
돈은 그렇다 쳐도 사람이 다 떠나간 게 문제였다.
포기하려던 찰나,
어느 기업의 자본가와 연이 닿아 마지막으로 영화를 만들 기회가 주어졌다.
투자만으로는 제작비가 충족되지 않아 개인 사업을 하고 있던 누나의 돈까지 빌렸다.
결과는 중박.
독립영화로서의 중박이 아닌, 상업영화로서의 중박.
개인적으론 대박이었다.
결과가 나오자, 확신도 같이 생겼다.
자신은, 머릿속에 있는 장면을 그대로 끄집어내야 성공한다.
‘타협’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기준선을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손성민은 자신이 괴짜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다.
뭐, 그래도.
완벽주의를 항상 입에 담고 사는 누나보다는 낫다고 여전히 생각하지만.
치이잉-!
연예 기획사 1층 로비에 울려 퍼지는, 매서운 기타 소리.
같은 공간 속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한곳에 향해 있었다.
빨간 기타 소년.
혜성같이 등장하여, 순식간에 주목을 끌어모은 기타리스트.
손성민은 이미 그에 대한 조사를 마쳐둔 상태였다.
3월에 처음 올라온 동영상을 기점으로, 그는 사람들의 입에서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동영상 하나가 빵 뜨고서 인지도를 얻는 경우는 꽤 되지 않는가.
그리고서 잊혀지는 경우도 많지 않은가.
하지만 그는, 금세 꺼져버릴 것 같던 고점을 딛고, 다시 하여금 고점을 향해 수 없이 발을 내디뎠다.
김수재는 원 히트 원더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김수재 학생’을 응원하면서, ‘빨간기타 소년’의 팬이 되고, ‘빨기좌’에게 빠져들었다.
무엇이 그리 팬들을 열광시키도록 하는 것일까.
일렉기타에 대한 지식이 없었기에, 손성민은 그냥 ‘괴상한’ 일이라고 치부해버렸다.
방금 전까지 말이다.
하지만,
슉-!
여행용 티슈를 뽑아 눈에 가져다 댄다.
흐르는 눈물을 닦는다.
이제는 잘 알 것 같았다.
아주 잘 알 것 같았다.
그는 기타리스트다.
솔로도 하고, 반주도 하는.
그냥 기타리스트다.
또한, ‘진심’을 담아 연주하는 음악인이다.
손성민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겨울 숲의 노래’라는 제목에 어울리는, 숲의 광경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두려움, 매서움, 공허함, 고통.
기분 좋은 풍경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그저 차디찼다.
자신의 영화의 주인공처럼.
IMF를 맞아 실직하고, 아픈 어머니를 골방에 누인 채, 목적 없이 거리를 떠돌 때의 감정처럼.
자신이 찍은 하이라이트와 기타의 소리가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합쳐진다.
눈물은 감독으로서의 눈물이기도 했지만,
관객으로서의 눈물이기도 했다.
“… 괜찮으세요?”
“괜찮습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자기 멋대로 곡을 만들어 온다고 해서 반신반의했는데.
이렇게나 … 이렇게나 어울리다니.
우연일까?
아니면 의도적이었던 것일까?
모르겠다.
다만,
지금은.
그저 음악이 가져다주는 풍경을 느끼고 싶었다.
칼바람이 부는 한겨울 도심을 배회하는 주인공.
짊어지고 있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소일거리를 찾아 방황하는 한 명의 가장.
그리고, 곡이 표현해내고 있는 ‘숲’과 조난자.
배경은 달랐지만, 감정선은 비슷했다.
처음 이 멜로디를 들었을 때의 기분이, 다시금 느껴졌다.
살다 보면 ‘이거다’ 싶을 때가 있다.
자신은 유튜브 영상에서 흘러나오던 멜로디를 들으며 ‘이거다’ 싶었다.
그렇기에 누나를 보내어 그와 접촉을 시도한 것이었다.
“감정선이 … 우와…”
“쉿.”
다만, 직감이 꼭 정답이리란 법은 없다.
때때로, 아니면 자주.
직감은 주인의 뒤통수를 때리며 배신하기도 한다.
지이이잉~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던 매서운 멜로디가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밝게.
고난과 고생을 겪은 사람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듯이.
아주 천천히, 바뀌어 간다.
기타 소리는 처음부터 시시각각 달랐다.
공포스러울 때도, 차갑고 매서울 때도, 부드러울 때도 있었다.
탁- 탁탁!
손성민은 그런 ‘빨기좌’의 연주를 보며 피식, 미소를 지었다.
기타는 양손으로 연주하는 악기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한쪽 발도 필요하긴 하구나.
새로운 지식이 머릿속에 채워지고,
새로운 감정이 머릿속에 쑤셔박혔다.
그야말로,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움’이었다.
영화는 시대에 맞춰서 변화해 나가는 법.
감독은 계속해서 변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
손성민은 운명에 따르기로 했다.
이것이 기타구나.
이것이, ‘겨울 숲의 노래’구나.
감동. 그리고, ‘환희’가 온몸에 몰아닥쳤다.
직감은, 자신을 배신하지 않았다.
***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 뿐이다.
누가 한 명언인지는 모르겠는데, 난 저 말을 힘들 때마다 곧잘 떠올리곤 했다.
뭐 사실 저 말이 무조건 들어맞지 않는다는 건 살다 보면 다 알게 된다.
고통은 그냥 존나 고통이다.
고통을 참다가 자살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저 말을 무조건 신뢰할 수는 없다.
다만,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어차피 지나갈 고통이라고 생각하는 게, 참아내기가 조금 더 쉬워지니까.
돈도 안 들고 명언 하나 떠올리는 것뿐인데.
솔직히 가성비 존나 최강이잖아.
고난은 갑작스럽게 찾아오니까 말이다.
이 곡 또한 비슷했다.
갑자기 찾아온 고난을 참아내는 조난자를 그리는 곡.
동시에, 고통 속에서 빠져나가는 인간을 그리는 곡.
탁, 타탁-!
나는,
Sd-1을 끄고, 코러스도 끄고, ts808을 다시 밟았다.
모든 것은 오른발로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그리고 픽업셀렉터를,
‘프론트’로 바꾼다.
지이이잉~
펜더 스트랫 특유의, 푸들푸들하게 드라이브를 먹은 소리가 베이스맨 앰프에서 뿜어져 나왔다.
흔히 일렉기타하면 떠올리는 좡좡 거리는 사운드가 아니다.
그저, 따뜻하고 뭉글푸근한 한 소리였다.
사람들이 왜 5,60년대의 소리에 목을 매며, 거금을 들여 찾는 이유를 잘 알 것 같았다.
이 소리에는,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는 무언가가 서려 있었다.
“오오오오…!”
곡조에 변화를 느낀 기자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영화 제작사 직원들은 여전히 조용했다.
다만, 안 좋은 의미로 조용한 건 아니었다.
그들은 나의 연주에 집중하고 있었다.
소리에, 멜로디에, 집중하고 있었다.
집중도 다 일이라서 그런 걸까?
“….”
저들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그런 의심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그냥, 즐기고 있는 것이다.
고난을 헤쳐나가는 조난자의 끝을 보고 싶은 것이다.
나는 그들의 기대를 배신할 생각이 없었다.
머릿속에, 또다시 겨울 숲의 풍경이 그려졌다.
눈 무더기에 파묻힌 조난자의 심장은, 차갑지만 아직 뛰고 있었다.
선택지는 여전히 두 개였다.
포기하느냐, 아니면 계속 걷는가.
몸이 잘 움직여지지 않고, 목도 마르고, 눈을 먹자니 체온이 떨어질 것 같고.
졸리고.
남자의 머릿속은 이미 무수히 많은 고뇌로 뒤덮여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이내, 고뇌할 시간조차 많이 남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눈 무더기에서 빠져나와, 다시 걷는다.
숲을 헤치고, 눈보라에 맞서고.
언덕을 오른다.
왜 이런 짓을 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꺾이지 않았다.
그에게는 ‘삶’에 대한 의지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의지를 전부 무너뜨릴 정도로, 숲은 강하지 않았다.
지이이잉~
나는 밴딩 비브라토를 힘차게 넣으며 메이저 스케일을 짚어나갔다.
희망찬 멜로디였다.
마침내, 고난을 버텨낸 조난자에게 불쑥 다가온 …
불 켜진 산장.
창에 비치는, 화기애애한 표정의 사람들.
안도감, 뿌듯함, 대견함.
말로 표현하기 힘든 … 그런 감정들.
내가 찾아다녔던 멜로디였다.
이 멜로디가 나오지 않아서, 이 ‘빈티지’한 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곡을 완성시킬 수가 없었다.
하지만,
보아라.
지이이잉-!
완성됐다.
온몸을 뒤덮고 있던 한기가 따뜻한 바람 한 번에 날아가듯,
하늘을 뒤덮고 있던 잿빛 구름이 걷히듯.
대비되는 ‘희망’이, 기타의 선율로 그려졌다.
“…!”
감독은 눈을 크게 뜨며 입을 벌렸다.
모든 이들이, 같은 표정을 띠었다.
밴딩과 암업, 암 비브라토.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정확한 피치에 맞춰.
멜로디를 폭발시킨다!
“… 오오오오!”
“허어어어어!”
허파에 바람 빠지는 듯한 감탄이 들려왔다.
이 전율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모두의 것이다.
희망차기만 한 멜로디도 나름 좋지만,
고통 속에서 대비되는 희망이 더더욱 빛나는 법이지 않은가.
내가 그리고 싶던 풍경은 이것이었다.
안도감과 희망, 그리고 …
구원.
조난자는 산장의 문을 두들겼다.
몰골을 마주한 ‘여행자’들은, 그를 침대에 눕히고서 구조대를 불렀다.
겨울 숲에 삼켜진 조난자의 이야기.
무수한 시련 앞에 무릎을 꿇다가도, 다시 일어나 걷던 남자의 이야기.
무릎 위에 따듯한 수프가 놓여졌다.
저 멀리서, 구조대가 헬기를 몰고서 날아온다.
잿빛 구름은 그의 의지를 존중하듯, 햇살을 베풀었다.
남자는 참아내고 또 참았기에, 동아줄을 붙잡을 수 있었다.
구조되었다.
그리고, 구원되었다.
지이이잉-!
곡이, 끝났다.
곡이,
세상에 나왔다.
나는 천천히 숨을 고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입을 떡 벌리고 있는 영화 제작사 직원들이나, 기자들이나.
그 누구도 먼저 나서서 말을 걸지는 않았다.
송아린이 달려올까 싶었지만 아니었다.
10초간의 정적이 지난 뒤, 가장 먼저 움직임을 보인 것은 영화감독이었다.
줄곧 의심스러운 듯한 표정을 띠고 있던 그는,
불그스름하게 달아오른 흰자위를 나에게 똑바로 내비치며,
“… 의심해서 죄송합니다.”
사과했다. 그리고,
“… 이 곡을 … 제 영화에 꼭 넣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무언가를 만들어나가는 한 명의 예술인으로서.
나에게 부탁했다.
나는 그가 내민 손을 맞잡으며,
“물론입니다.”
싱긋, 웃어 보였다.
짝짝-
한 명에게서 시작된 박수 소리가,
짝짝짝짝짝짝짝-!
무대가 아니었던 무대에, 울려 퍼진다.
그 어떤 예외 없이,
지나가다가 걸음을 멈춘 사람도 마찬가지로.
귀를 후벼 파는 듯한, 우레같은 박수 소리를 내게 보내주었다.
나는 그들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 대박이다.”
“명반이야 명반. 지금 명반 발표를 찍은 거라고…! 야! 전화 돌려!”
“… 한국에서 이런 곡이 나오다니…”
“마이크 안 붙어 있었어… 아…아아… 에, 에이트라님 오디오 파일 좀 보내주십시오!”
7월 12일 화요일.
‘겨울 숲의 노래’는 시련 끝에 세상에 공개되었으며, 영화 삽입이 확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