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125
김치 기타의 매운맛 (3)
자신을 강사라 소개한 중년 남성의 얼굴이, 일순간 굳어졌다.
일순간이다.
그리 오래 굳어있진 않았단 소리다.
설마 예중 강사 중에 내 팬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 무대 … 말입니까?!”
“옙.”
클래식 기타 강사라고 해서, 꼭 클래식 기타만 다루라는 법은 없다.
원래 기타를 치다 보면 다른 기타도 조금씩 건드리고 그런다.
그러니까, 이 사람이 일렉기타를 좋아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소리다!
“빨기좌의 무대를 코앞에서 볼 수 있다니 …”
“… 서, 선생님?”
학생의 부름에도, 중년 남성은 그저 내 얼굴만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무대라뇨?”
“이 사람들이 우리 학교 발표회에 왜 ….”
“왜라니?”
외국인 삼총사는 어버버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상황 자체가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지금 내가 하는 소리는, ‘이해’의 영역을 벗어났으니까.
이것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느끼는’ 것이다!
“다른 선생님들을 설득해 보겠습니다.”
이름 모를 중년 남성은, 기타 가방을 고쳐 매며 눈을 부릅떴다.
“… 감사합니다!”
나는 그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오 …!”
“감사합니다!”
내 옆에 있던 혁오, 도현이도 같이 숙였다.
“저 … 실례가 안 된다면 기타 좀 구경해도 되겠습니까? 어제 올라온 ‘겨울 숲의 노래’의 소리가 너무 좋았어서…”
“물론입니다.”
나는 기타가방을 바닥에 깔고, 기타를 꺼냈다.
여기저기 까진 도장이 아주 매력적인, 모디를 한 번 거친 나만의 기타.
내 소리가 나는 기타.
기타를 유심히 살펴보던 클래식 기타 강사는 숨을 크게 들이켜며 연신 감탄을 내뱉었다.
“허 … 이건 … 새들 절반이 빈티지네요 … 픽업도 세 개 모두 제각각으로 … 대단합니다. 곡이 진행됨에 따라 ‘따뜻함’이 강조되는 걸 이런 방식으로 ….”
역시 예술학교 강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는 모양이다.
‘클래식’ 기타가 메인인 사람일 텐데.
척 보면 척이구나.
일렉기타에 대한 조예가 아주 깊어 보인다.
“김상철입니다. 임화예술학교 중, 고등부에서 클래식 기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기타리스트 김수재입니다.”
나는 다시 한번 그의 손을 맞잡았다.
학생과 선생으로서가 아닌,
현업 종사자로서 나누는 인사.
친구들은 오~ 하며 추임새를 넣었고,
외국인 삼총사는 …
“… 고등학생 아니에요?”
“선생님, 이 사람 누구예요?”
별꼴이라는 듯이 되물었다.
말을 계속 씹혀서 심술이라도 난 걸까?
“너희 그 … 유튜브 안 보니?”
“유튜브요?”
“이 사람 유튜버예요?”
따지고 보면 유튜버도 맞긴 하지.
“유튜버라 ….”
김상철 강사는 턱을 괴며 곰곰이 고민한 끝에, 고개를 저었다.
“방금 전에 소개 들었잖니? 이 분은, ‘기타리스트’란다.”
“기타리스트 …”
“기타 다루는 사람이란 뜻이야.”
백윤서는 꼬숩다는 뉘앙스로 말을 덧붙였다.
찌릿, 느껴지는 강렬한 시선.
나는
다시,
외국인 삼총사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고?”
“….”
“….”
선생님 앞이라고 아주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
내가 나를 뭐라 소개해야 할까.
얘들한테 뭐라고 말해야 제대로 이해시킬 수가 있을까.
흠 ….
뭔가,
내가 ‘나’에 대해 입을 터는 게 조금 추하다는 걸 깨달아버렸다.
말로 암만 설명을 해봤자 소용이 없을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
보여주는 게 최고다.
“모르면 지금부터 알면 되지.”
친구들은 아주 익숙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김상철 강사는 초롱초롱한 눈빛을,
외국인 삼총사는 여전히 ‘적대적인’ 분위기를 떠올렸다.
“너희 괜찮니?”
“… 네?”
“뭐가요?”
“아니, 사인 안 받아도 괜찮겠냐고 물은 거야.”
김상철 강사는 기타가방에서 공책을 꺼내어 나에게 펜과 같이 내밀었다.
“… 사인이요?”
자신들을 가르치는 강사가 나한테 사인을 받는다는 게 여간 충격적인 걸까.
얼굴이 아주 볼만하다.
쇳물이 팔에 떨어진 거 같은 표정이다.
“필요 없어? 그럼 나만 받지 뭐. 나중에 달라고 하면 안 된다? 사인 좀 부탁드립니다!”
“아, 넵!”
나는 슥슥, 혼신을 담은 사인을 그려서 넘겨주었다.
현대 미술을 방불케 하는 기타추상화는 넣지 않았다.
그것은, ‘특별한’ 사인이니까.
“오오오오!”
하지만, 그럼에도.
감상철 강사는 아주 만족스러운 듯이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저기 본관 뒤로 이동하시면 됩니다. 윤서 너도 임화 홀로 바로 가지?”
“아, 네!”
“저는 선생님들께 건의 좀 하고 가겠습니다. 이따가 천천히 이야기 나누시죠!”
“옙. 고생하십시오!”
그는 곧바로 본관 쪽을 향해 후다닥 뛰어갔다.
외국인 삼총사도 우리를 게슴츠레 흘긴 뒤, 자리를 벗어났다.
내 팬이 예중 강사라니.
“운이 좋군.”
“너무 좋아.”
“… 개좋아.”
하늘이 나를 도왔다.
“일이 어떻게 이렇게 …하아.”
백윤서가 어이가 없다는 듯, 푸욱 한숨을 내쉰다.
“야.”
“응?”
“쟤들 말고 너한테 시비 거는 애 더 없냐?”
“거의 없어.”
“다행이네.”
“근데 그 … 뭐라 해야 되지 … 우리 학년에 교환학생으로 온 애들이 많아서…”
“교환학생?”
“응. 아예 유학 온 애들도 있고.”
….
그렇구나.
예고 예중은 교환학생 같은 게 있구나.
근처에 외국인 학교도 있던데.
아주 국제화 제대로네.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국 학생과 잘 어울리는 애들도 있는 반면, 자기들끼리만 다니는 애들도 있다고 한다.
아예 외국인 비율이 확 낮으면 모르겠는데, 비율이 높으니 파벌 같은 것도 생기는 듯했다.
“빨리 가자. 나 준비해야 돼!”
“둘이 같이 올라간댔지?”
“응. 곡 다 맞춰 왔어. 우리가 다섯 번째야.”
“오케이. 내가 현장 세팅 봐줄게.”
“… 고마워…!”
백윤서와 소이의 무대는 걱정 없을 듯하다.
하지만,
“너희가 뭘 할 건진 모르겠는데 … 난 드럼 못 쳐준다?”
“쳇.”
“하루 전에 말하던가~”
“어으 … 너희 또 이상한 거 하려고?”
윤수빈은 안된단다.
최유진도 무리란다.
하긴, 연습 없이 쌩라이브를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공연이 가능한 건 나, 도현이, 혁오뿐.
저번과 똑같았다.
셋이 잘해야 한다.
나는 소이가 가져온 앰프 쓰면 될 거 같고 …
혁오는 원래 멀티이펙터 유저니까 앰프, 캐비넷 시뮬 켜서 라인으로 바로 빼면 될 거 같고.
도현이는 …
“…어?”
“왜?”
“왜그럼.”
“야 씨 너 …!”
나는 입을 쩍 벌렸다.
도현이의 등에,
‘기타 가방’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아~ 베이스?”
도현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머리를 가볍게 긁적였다.
“… 왜 이렇게 침착하냐?”
“어따 팔아먹었어?”
“괜찮음. 여기 베이스 많음.”
“뭔 여기에 베이스가 많아?”
“도현이 오빠 여기 실음과 없어요 …”
“아니 진짜 베이스 개많다니까?”
도현이는 답답한 듯이 쿵쿵, 자신의 가슴을 내리쳤다.
“따라와 봐. 다 알게 됨.”
우리는,
그대로.
발표회가 열리는 ‘임화 홀’로 들어갔다.
학교 부지에 이런 장소가 마련되어 있다니.
개쩐다.
좌석 수가 1000개는 넘어 보인다.
홀에는 이미 학생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중, 고등학생이 같이 앉아 있는 것 같긴 한데 …
아주 앳된 애들은 없었다.
“… 1, 2학년들은?”
“저번 주에 따로 했는데?”
“중3이랑 고딩들만 여깄어?”
“응.”
“왜?”
“중3 정도 되면 실력이 다르거든. 엣헴.”
“오~”
완전 꼬맹이들은 없구나.
뭔가, 심리적 최저선이 지켜진 느낌이었다.
교사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아직 안 왔나 보다.
“…”
무대 위를 훑어보니, 음악 전공생들이 준비를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폴짝-!
우리는 주저 없이 무대에 올라갔다.
‘음악과’ 발표라 그런지 바닥이 아주 너저분하기 그지없었다.
정리되지 않은 케이블부터, 옮기기가 힘든 피아노나 스피커, 콘트라베이스까지…
….
가만있어보자,
콘트라베이스?
“어?”
“… 왜?”
“아니 …”
설마.
“… 누구세요?”
콘트라베이스를 잡고 있던 남학생은, 도현이를 보자마자 움찔, 몸을 떨었다.
맹수의 눈빛을 감지한 사냥감 같은 얼굴이었다.
“베이스 그렇게 치는 거 아닌데.”
“…?”
“내놔.”
“네?”
“베이스.”
“… 네?”
“베이스 내놓으라고!”
“으아아아악!”
도현이의 샤우팅에 못 이긴 불쌍한 남학생은, 자신의 악기를 버리고 후다닥 자리를 피했다.
모든 이들의,
수백에 달하는 시선이,
우리에게 날아와 꽂혔다.
둥- 둥둥-!
가슴을 쿵쿵 때리는 콘트라베이스의 저음.
“존나 좋군.”
아니 저게 원래 베이스긴 한데.
베이스 기타도 저기서 나온 거긴 한데.
“… 개 미친놈이네 진짜.”
“원래 저래요 …?”
“셋 다 저래.”
“….”
왜 나까지 같은 취급을 당하는 건지 모르겠네.
나는 무대 위에서 관객석을 스윽, 훑어보았다.
시선이 아주 짜릿하다.
호의 넘치는 시선을 받는 것은 참 좋지만,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도 참 좋았다.
“빨기좌 아니야 …?”
“저 사람이 빨기좌야?”
“우와 ….”
“유, 윤서 아는 사람이었어?! 뭐야!?”
나를 알아보는 학생도 있는 듯하다.
광대가 승천할 것 같지만, 필사적으로 감내했다.
“흐음 …”
근데, 이거 …
우리가 중간에 끼어들 틈이 있긴 할까?
소중한 팬한테 괜히 무리한 부탁을 드린 거 같은데…
“수재씨!”
저 멀리서, 김상철 강사가 뛰어온다.
그의 옆에는 …
“모셔왔습니다.”
둥글둥글한 인상의 아저씨와 깐깐한 얼굴의 아줌마도 같이 껴 있었다.
“이 사람… 이에요? 학생인데요? 뮤지션은?”
“아니, 교감 선생님, 학생이긴 하지만…”
“요즘 되게 유명한 뮤지션이십니다.”
“….”
임화 예중예고의 음악과는 다 클래식 쪽이다.
이 사람은 클래식‘만’ 하는 사람일까,
아니면 다른 분야도 건드리는 사람일까.
후자의 경우 나를 알고 있을 확률이 높을 테지만, 전자의 경우에는 모를 확률이 높다.
내가 클래식 쪽 유명인을 잘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보아하니, 중년 여성은 전자인 듯했다.
“아니 … 갑자기 그렇게 말씀하셔도…”
“교감 선생님!”
둥글둥글한 인상의 중년 남성이 꽥 소리를 질렀다.
“네… 네!?”
“잘 생각해보셔야 합니다. 이런 기회가 흔치 않아요.”
바톤은 김상철 강사가 이어받았다.
“기회요? 흔치 않다고요?”
“아시다시피 빨기ㅈ… 김수재 기타리스트 공연은 보기가 참 힘듭니다.”
“아 … 네.”
“그런데 지금! 우리 학교에 직접 찾아와 주셨습니다. 눈앞에 있단 말입니다! 이게 기회가 아니면 뭐겠습니까? 학생들에게 다양한 음악을 접하게 해주는 게 가르치는 사람으로서의 도리 아닙니까?”
감상철 강사의 입에서 청산유수 같은 꼬드김이 쏟아져 나왔다.
동시에, 옆에 있던 둥글둥글한 인상의 아재 또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 그렇게 대단하신 분이세요?”
“기타 업계의 초신성입니다.”
“아 ….”
이 학교는 교감의 권위가 약한 것일까,
아니면 한 남자의 진지한 태도에 감화가 되고 있는 것일까.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기, 기타연주라면 …”
거의 넘어온 듯했다.
나는 타이밍을 맞춰 툭, 대화에 끼어들었다.
“연주가 아니라 밴드곡입니다. 유명한 밴드곡이죠.”
“밴드 … 곡이요?”
“조회수 1억이 넘는 곡입니다.”
“호오 …”
1억 넘는 곡이 뭐가 있더라?
있겠지 뭐.
나는 업계에서 반짝 올라있는 ‘유명세’와, 숫자를 들이밀었다.
그리고 그 효과는 …
“성악과 끝나고 하시는 거라면 …. 성악과가 오프닝으로 잡혀 있어서….”
아주 대단했다!
“감사합니다.”
곧이어 들어온 다른 교사분들 또한 나에게 말을 붙여주셨다.
“얘기 잘 됐어요?”
“이야 … 저번에 TV로 봤는데! 진짜 왔네?”
뭔가, 예고 때와는 다르다.
그때는 진짜 가시방석 분위기를 제대로 느꼈었는데.
지금은 호의 반 수상함 반 같은 느낌이랄까.
“기대할게요~”
나는 흐읍, 심호흡을 하며,
준비가 끝난 홀의 내부를, 샅샅이 훑었다.
외국인의 비율이 은근 높은 학교.
교환학생과 유학생이 많은 학교.
파벌이 있는 학교.
찌릿-
외국인 3총사의 숫자가 늘었다.
한 30총사는 된다.
인원이 열 배 늘어난 것뿐인데, 적대감은 한 30배는 되는 거 같다.
뭐,
근데 뭐.
어쩌라고?
도현이, 혁오가 내 옆에 나란히 섰다.
우리는, 셋이서.
이름 모를 외국인 30명과,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눈싸움을 했다.
“근데 우리 곡 뭐하냐.”
“그러게?”
곡은 정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 뭔가.
뭔가.
저 멀리서 올라가고 있는 ‘중지’를 보고 있자니,
정해진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