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126
김치 기타의 매운맛 (4)
– 곧 발표회가 시작되므로 학생 여러분은 모두 자리에 앉아주시고…
스피커를 통해 홀에 왕왕 울려 퍼지는 교사의 목소리.
우리는 공연을 구경할 새도 없이 쪽문으로 빠져나가 복도를 걸었다.
바로 준비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준비라 …
준비…
“음 ….”
“흠 ….”
혁오, 도현이가 턱을 괬다.
나도 괬다.
한국인 평균 아이큐가 106이라고 하니까 셋이 합치면 318이다.
당장 도합 318의 지능으로 수를 짜내야 한다.
“수재 … 괜찮아?”
“무리하는 거 아니에요?”
“리허설도 없잖아.”
“….”
여자애들이 걱정스러운 듯한 표정을 짓는다.
두 사람이 공연하는 거 응원하러 왔는데.
이젠 걱정을 받는 처지가 됐다.
근데 뭐.
어떻게든 될 거다.
우리는 고민 끝에, 각자의 의견을 내었다.
“그린데이.”
“레드핫칠ㄹ.”
“레드제 … 에이 시바.”
하나도 안 맞잖아!
엿까지 먹었는데 의견 통일이 안 된다고?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나는 다시 하여금 머리를 굴렸다.
셋이서 가장 많이 합주 했던 곡이 뭐였더라…
“그거 어헝어헝 하는 거 하면 되지 않아?”
최유진이 물었다.
“프리티 플라이 … 는 이미 한 번 우려먹었는데.”
“흠 ….”
프리티 플라이를 해도 되긴 한다.
문제는 없을 거다.
같은 학교가 아니니까.
다만, 비슷한 장소에서 같은 곡을 한다면 ‘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뭔가 육중하면서도 파괴적인 걸 하고 싶은데 …
아무래도 오프스프링 곡이 좋을 거 같긴 한데 …
“… 그거 하지 뭐.”
“그래.”
“2절 내가 바꿔 부를게.”
“이열~ 김수재~”
“열~”
우리는 텔레파시로 의견을 합치했다.
그 곡이라면, ‘성악’과 확연한 대비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 뭘 한다는 거야?”
“몰라…”
“쟤네 이상해 ….”
나는 때마침 도착한 대기실의 문을 활짝- 열어재꼈다.
쏟아지는 시선들.
‘나’에게, 쏟아지는 시선들.
중3 성악과 학생들은 우리 셋의 표정을 확인하자마자 흠칫 몸을 떨었다.
그리고 곧바로,
“우와 … 빨기좌다…”
“안녕하세요!”
“유, 윤서야아아!”
힘차게 달려들었다!
“….”
와우.
중학생들도 날 알긴 아는구나.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남녀 학생들의 눈을 보고 있자니, 데자뷰가 느껴졌다.
분식집에서 30만 원 털렸던 기억 때문에 말이다.
“저 사람이 누군데?”
“너 인기 뮤직 안 봤어?”
“그걸 왜 봐?”
나를 모르는 애들이 조금 더 많아 보였다.
한국 대중가요를 안 듣는다고 뭐라 할 생각은 없는데.
그렇다고 듣는 사람한테 왜 듣냐고 그러는 건 좀 그렇네.
“저, 전 채진솔이라고 해요! 윤서 친구예요!”
“너 왜 말 안 했어? 우리 사이가 이것밖에 안 돼!?”
“… 하아….”
“사인 해주세요! 사인!”
“저 어제 올라온 영상 봤어요!”
좋아하는 애들은 되게 좋아한다.
그렇지 않은 애들은 묵묵히 상황을 지켜보기만 할 뿐.
시선이 딱히 곱지는 않았다.
교복을 입고 있어서 그런가?
동네 형 차림이긴 하지.
“우와 …”
“사인이당~”
“오빠한테 자랑해야지! 흐흐!”
“뺏기면 어떡해? 너 저번에도…”
“아 ….”
대화가 귀엽네.
존나 흐뭇하다.
“와 김수재 표정 봐.”
“와 ….”
“….”
뭐 이새끼들아.
나는 핸드폰으로 기타프로를 실행시켜서 드럼 비트를 추출해냈다.
저번에는 손수 노트를 찍어서 사용했었는데.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다.
최신 프로그램이라 비트가 ‘아주’ 어색하진 않은데, 그래도 일일이 만져 놓은 것보다는 퀄리티가 떨어졌다.
“우선 드럼은 해결됐고 … 다음에는 …”
나는 소이를 지긋이 쳐다보았다.
백윤서는 무수히 많은 질문공세를 받고 있는 상태라 대답할 여력이 없어 보였다.
“소이.”
“응?”
“톤 열심히 만들었어? 앰프는?”
“응! 아, 이번에 앰프 새로 사왔거든 … 어제 옮겨 뒀는데 …”
소이는 척-
손가락으로, 대기실의 구석을 가리켰다.
나는 천으로 싸여있는 앰프를 확인했다.
“홀리…”
“어… 어어.”
“….”
나, 혁오, 최유진은 동시에 입을 쩍 벌렸다.
고1짜리가 ‘새 앰프 사왔어!’라며 가볍게 이야기할 수 있을 만한 가격대의 물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게 뭔데?”
“비싼 거야?”
“이거 살 돈으로 공연용 앰프도 살 수 있음.”
“비싼 거라는 거네?”
역시 소이는 클라스가 다른 부자구나.
270만 원짜리 콤보 메사부기라니.
나는 힐끔, 백윤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슬금슬금 눈을 피한다.
원재선 리사이틀을 똑같이 재현하려고 그러나?
앰프 브랜드도 맞췄네.
“나 먼저 써도 돼?”
“응!”
“땡큐!”
우리는 머리를 맞대며 공연을 위한 토의를 시작했다.
“이게 악보거든? 소이 언니가 알려준 곡을 내가 …”
이런저런 트러블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윤서의 준비는 아주 철저했다.
나는 악보를 받아들고서 쭈욱, 훑었다.
일렉기타 곡을 피아노로 편곡한 모양이다.
중3인데 벌써 편곡까지 할 줄 알다니.
대단하다.
“한번 들어볼래?”
“좋지.”
앰프 예열도 할 겸, 우리는 소이의 연주를 간략하게 들었다.
좋다.
아주 좋다.
“우와 …”
“윤서 사촌 언니 되게 잘한다 …!”
이 정도면 성적은 따놓은 당상이구만.
두 사람의 무대가 아주 기대된다.
아, 그리고 또.
기대되는 게 하나 남았다.
벌컥-!
외국인 ‘여섯’이,
대기실에 들어왔다.
한순간에 공기가 가라앉았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쟤들이 호랑이인지는 모르겠지만.
“….”
“….”
발음이 서투른 검은 머리 여자애가 나를 뚫어지라 훑는다.
스캔이 끝난 뒤에는 가까이 다가와,
“유튜브 조회수 높네요? 이거 진짜예요?”
핸드폰을 내밀며 개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그사이에 유튜브 채널까지 찾아봤나 보다.
“저희 바로 다음이던데 괜찮으시겠어요?”
그나저나 존댓말 패치를 참 잘 먹었네.
쓰려면 진작 쓰지.
“… 괜찮겠냐고?”
“네~”
중3짜리가 아주 자신감이 넘친다.
날 빼놓고 봐도, 여기 있는 애들은 전국 대회에서 순위권을 먹을 정도의 강자인데.
혁오는 1학기 대회에 잘 안 나가긴 했지만, 중3 때 대회상금 맛있게 털어먹던 놈이다.
나는 외국인 학생 여섯의 인상착의를 꼼꼼히 살폈다.
뻐큐 날린 애가 보인다.
곱슬금장발.
똑똑히 기억해 뒀다.
“… 대답 안 하세요?”
찌릿-
질릴 새도 없이 날카로운 시선이 날아왔다.
그리고, 이곳에 있던 애들 또한,
순식간에 적대적인 분위기를 떠올렸다.
“….”
“….”
흐름을 대략 알 것 같았다.
미국 같은 데서는 같은 인종끼리 무리를 짓는 경우가 흔하다던데.
여기도 나름 비슷한 듯하다.
인종이 아니라 한국인 대 외국인으로 갈라진 거지만.
“계속 입 다물고 있네. 도망치지 마세요.”
“락밴드? 한다면서요? 우리 학교에 락 좋아하는 사람 없을 거 같은데.”
도현이와 혁오의 얼굴이 굳었다.
하지만 나는 뭔가.
뭔가 …
얼굴이 굳기는커녕, ‘흥분감’이 솟아올랐다.
도망친다고? 내가?
“내 걱정은 안 해도 돼.”
“….”
“너흰 너희 정신건강이나 걱정하면 된단다. 우리 바로 앞이니까 아마 비교 많이 당할 거야.”
나는 피도 안 마른 철부지들에게,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
“….”
외국인 애들 얼굴에 떠올라 있던 비릿한 표정이 순식간에 지워졌다.
그들은 흥, 콧김을 한번 뿜은 다음, 자리를 벗어났다.
“별꼴이네 진짜.”
나는 최유진의 투덜거림에 공감했다.
“아, 시간 다 됐다! 윤서 다녀올게!”
“갔다 올게~”
“응!”
곧이어 본격적인 성악과 학생들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윤서네 반 애들부터 고딩들까지.
뭐, 예중, 예고생이라 그런지 실력이 다들 한가닥한다.
이건 예고 정벌을 갔을 때에도 똑같이 느꼈었다.
외국인 애들 여섯은 …
괜찮았다.
중, 고등학생이 섞여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나쁘진 않았다.
검은 머리 여자애는 피아노 전공이구나.
반주자로 나오네.
“… 쟤들 실력은 좋은데 인성이 왜 저 모양이냐?”
“성적 안 나오면 장학금 다 끊겨서 그럴걸. 예고로 못 올라가면 아예 귀국해야 된대.”
“아 … 그래서 너 경계하려고…”
“밀릴 거 같으면 연습을 더 해야지. 태도가 안 좋아 태도가.”
“인정.”
어쨌든,
뭐.
공연은 잘 들었다.
잘하네.
클래식 부심이랑 인성만 고치면 될 텐데.
– 다음 순서는 김수재 기타리스트와 …
“잘해!”
“수, 수재 화이팅…!”
“화이티이이잉!”
우리는 재빨리 무대에 올라가 세팅을 시작했다.
앰프 노브를 이리저리 돌려 톤을 맞추고,
혁오의 이펙터에서 나온 소리는 바로 라인으로 빼버리고,
도현이의 거대 베이스에 마이크도 붙이고.
관리 직원과 함께 후다닥 뛰어다니며 작업하니 불과 1분 만에 준비가 끝났다.
“빨기좌 기대할게요!”
20대 후반의 관리 직원이 나에게 척! 엄지를 들어올린다.
나도 그에게,
척!
엄지를 올리며 드럼비트가 담긴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자, 지금부터 우리 학교를 찾아주신 김수재 기타리스트와 베이스, 일렉기타를 담당하여 밴드공연을 해주실 유산고등학교 학생들 …
웅성웅성-
관중들의 웅성임이 고막을 때린다.
대화를 대충 엿들어 보니, 우리에 대한 인상은 호의 반, 의문 반인 듯하다.
호의롭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락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거 같은데’라는 말이 반쯤은 실감이 갔다.
반쯤이었다. 전부가 아니다.
-빨기좌사랑해애애애액!
저 멀리서, 또래 남자애가 빼액 소리를 지른다.
-우와아아아! 빨기좌!
-예고 트리오다! 나 영상 봤어!
동시에, 곳곳에서 괴성이 터져 나왔다.
나를, 우리를 좋아하는 사람도 확실히 존재하고 있다!
아주 뿌듯하기 그지없다.
나는, ‘클래식’하는 애들을, 락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을.
이 기회에 전부 내 팬으로 돌리고 싶어졌다.
완벽하지 않은 환경에서, 압도하는 공연을 선보이고 싶어졌다!
좌아아아아앙-!
혁오가 파워코드를 긁었다.
sg기타 특유의 날 서 있으면서도 중음이 두드러지는 사운드.
최종출력되는 소리가 메사부기 앰프랑 비슷하다.
멀티이펙터가 사기라니까.
앰프 수십 개가 들어가 있으니까 이런 상황에서도 금방금방 대처하기 좋잖아.
혁오는 양팔로 O를 그렸다.
도현이는 구석에 치워져 있던 간이 의자를 끌고 와,
터억-!
콘트라 베이스를 옆으로 눕혔다.
둥- 띠이잉- 둥!
“우와 …”
“저게 뭐야 …?”
웅성임이 훌쩍 커졌다.
콘트라 베이스로 슬랩 치는 거 유튜브로만 봤었는데.
실제로 가능하네?
– 특별히 모신 손님들입니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접할 기회이니 만큼…
“여러부운!”
나는, 발표회를 진행하던 교사의 말을 끊었다.
굳이 지금 안내방송을 듣고 있을 필요는 없다.
예고 때랑 지금은 완전 다르니까 말이다.
그때의 관중석은 적대감 함유량이 100%였지만,
지금은 한 자릿수밖에 안 된다!
그러니,
이번 공연은 ‘자극’하기 위한 공연일 필요가 없다.
그저 락의 ‘멋짐’만을 강조해도 된다!
“점잖게 앉아계시는군요!”
조용했다.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이래도 과연 반응이 없을까?
“다들 드레스코드를 입으셨으니, 저희도 드레스코드를 갖추겠습니다.”
선생님들은 양복을,
학생들은 교복을.
가지런하게, 방정하게.
우리도 관중석에 앉으면 비슷한 분위기를 풍길 것이다.
존나 마음에 안 든다.
락커에게는 락커의 드레스코드가 있다.
우리는, 다 같이 고개를 끄덕인 다음.
후욱-!
상의를 벗어 던졌다.
“… 헤에에에엑!”
“꺄아아아아악!”
“엄머… 엄머!”
The Offspring의 The Kids Aren’t Alright .
내가 아주아주아주 좋아하는 곡이자,
우리의 의견이 맞아떨어진 곡이자,
시원하게 지르고 싶을 때마다 애용하는 곡.
칙칙- 지지잉-!
우리는,
하나가 되어,
공연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