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guitarist RAW novel - Chapter 223
230화. 우상을 올려다보는 사람들 (2)
까드득-!
뿌드득-!
이가, 갈려 나간다.
마음이, 깎여나간다.
대체 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를 못하겠다.
완벽하기 그지없었던 계획.
다만 그 계획을 뒤흔드는 몇몇 인물들.
생각보다 반향이 거셌지만, 감내할 수 있었다.
품고 있던 ‘기대’가 조금 축소될 수는 있을지언정, 어그러지지는 않을 터였단 말이다.
근데 …
‘저놈 때문에.’
다 무너져버렸다.
모조리 몽땅.
기대가, 희망이, 보상이,
고심해서 준비했던 계획이,
큰일을 위해 쏟아부었던 돈이 …!
‘미워.’
페데리카는 이를 갈았다.
김수재의 순번부터, 평가받기를 기다리는 지금까지.
페데리카는 이를 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안 좋은 생각이 머릿속을 뒤덮으려 했다.
결선에서 무수한 박수를 받으며, ‘1위’라는 영애를 끌어안고 자애롭게 미소를 짓는 자신의 모습이 … 흐릿해져 간다.
그리고 그 위로,
붉은색 스트라토캐스터를 든 남자의 인영(人影)이 잠식한다.
“[결선 진출자는 총 다섯 명이며, 결선은 매우 짧게 진행됩니다. 심사 평가는 10위까지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럼, 5위부터 발표하겠습니다.]”
참가자들은 숨을 죽였다.
페데리카는 숨을 죽이지는 않았다.
눈을 부릅떴다.
부디… 부디.
누군가 저 인간을, 지적해주기를.
무대에 했던 실수를 찾아내어, 대놓고 떠들어주기를.
본선 1등을 하지 못하더라도, 결선에서 우승한다면 결국 승리는 자신의 것이 되는 게 아닌가.
그리고 그 ‘승리’의 발판을 마련하려면, 상대의 약점을 알아야 하지 않은가.
‘그래, 그런 거야.’
깍-!
갈던 이가 멈추었다.
페데리카의 시선은, 맞은편 가장 오른쪽에 앉은 남자에게 고정되었다.
대머리에 스포츠 선글라스.
마치 외계인과 같은 인상.
‘기타리스트’들에게 있어서 대부 같은 존재.
그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설마 …?’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
누가…?
찌릿-!
선글라스 너머. 보통이라면 볼 수 없는 시선이 느껴진다.
그 시선은, 김수재에게 향해 있었다.
‘설마.’
페데리카는 일순간 감정을 엿보았다.
아주 약간, 불편해 보이는 기색을 말이다.
‘김수재를 불편해하고 있어. 왜…?’
사실 ‘왜?’라고 파고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기타리스트의 취향은 모두 제각각이니까.
그저 ‘취향이 안 맞는 부분’을 지적해주기만 하면 자신은 만사 OK니까.
꿀꺽-.
페데리카는 아주 약간 희망이 돋아나는 것을 느꼈다.
“[5위는 …]”
“히히흐흐.”
그리고, 갑작스럽게 터져 나온 웃음소리에 고개를 돌려버리고 말았다.
배신자 놈이었다.
그는, 자칭 타칭 ‘미국 1위’라는 타이틀에 어울리지 않게, 입꼬리를 억세게 올렸다.
***
“푸핫!”
순위 발표가 시작되었다.
시작되자마자, 아이작이 웃음을 터뜨렸다.
“[무슨 일이십니까…?]”
그리고 심사위원은 미간을 찌푸렸다.
당연하지 않은가.
심사다 심사.
오늘 펼쳤던 연주에 대해 ‘대가’들에게 평가받는 자리란 말이다.
웃음이 나올 상황은 아니었다.
아니, 웃으면 안 됐다.
‘5위’를 한 사람에 대고 웃다니, 그게 과연 가당키나 한 일일까?
아무리 막 나가는 놈이라도, 그게 컨셉이든 진심이든 간에.
해도 될 짓이 있고 안 될 짓이 있다.
그런데 아이작은, 웃었다.
나는 그게 선을 넘은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
아니었다.
“[하하, 죄송합니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군요.]”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제 예상으로는 … 최소 2위, 아니 많이 양보해 3위 정도는 할 줄 알았습니다. 솔직히 실수만 안 한다면 1위는 따놓은 당상이라 생각했죠.]”
“….”
한마디로 김칫국을 사발로 드링킹 하고 있었다는 소리다.
우우우우우우우-!
장난스러운 말투와 자기애 강해 보이는 면상에 대고, 관중석에서 비하 섞인 말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아이작은 양손을 내밀며 어깨를 으쓱였다.
“[확신했습니다. 여기서 호명이 안 된다면, 저는 탈락입니다.]”
손을 척 내미는 아이작을 보며 심사위원은 아주 난처하다는 듯이 …
“[… 투시 능력이라도 있으신가 봅니다. 5위. 아이작 웨스트우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결국 결선에 올라오긴 올라오는구나.”
솔직히 저놈이 떨어질 거란 생각은 못 했다.
이런저런 일이 있긴 했어도, 지 장르에 한해 매우 뛰어난 업적을 이뤄냈던 놈이니까.
런던에 오기 전까지, 이번 대회에서 가장 신경 써야 할 대상으로 나도 여기고 있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저놈이 5위라는 건, 나름 좀 신선하다고나 할까.
“흐흐.”
아이작은 웃었다.
크게 기뻐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나빠 보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후우….”
소이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 지금 상황이 어떤지.
아주 잘 알 것 같았다.
“소이야.”
결선에 진출하는 사람은 5명으로 아주 적다.
그리고 방금 한 명이 확정되었다.
“응.”
뿐만 아니라, 객관적으로 오늘 ‘잘한 사람’은 많다.
자만하는 건 아니지만, 나는 아마 상위권을 차지할 것이다.
그러므로 소이가 뽑힐 확률은, 조금 전 호명으로 인해 크게 낮아진 상태였다.
“그 ….”
뭘 말해야 좋을까.
위로?
아직 결과가 다 나오지도 않았는데 그건 좀 오바 같고.
응원?
힘내라고 해봤자, 놀리는 것 같이 느껴질 수도 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
소이는 운을 띄워놓고 정작 아무 말도 잇지 않는 나를 바라보며.
“프흡….”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작게 웃었다.
“수재야….”
“어… 응?”
“난 … 오늘 최선을 다했어. 그러니까, 떨어져도 아무렇지 않을 거야.”
“그런 거야?”
“아니 … 사실은 떨어지면 슬플 것 같아…. 그래도… 수재가 1등 하는 걸 보면 … 내가 결선에 오르는 것만큼 기쁠 거야.”
소이의 똘망똘망한 눈동자가, 나를 응시한다.
뭐랄까 …
되게 … 되게…
착하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선할 수 있지?
감동의 쓰나미가 몰려와, 가슴이 무한히 웅장해지는 느낌이다.
“고마워.”
나는 그리 대답한 후, 서류를 잡고 호흡을 가다듬는 심사위원을 응시하였다.
“[아이작 웨스트우드 씨, 인상적인 연주였습니다. 네오 소울 장르의 자작곡… 1년 전에 발표된 본인의 곡을 연주하셨지요. 테크닉적으로 큰 어려움이 있는 곡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평가절하될 정도로 쉬운 곡 또한 아니었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이미 북미에서 인지도를 보유하고 있으신 만큼, 실력은 확실했습니다. 다만,]”
척-!
평가는 진지하며, 길었다.
“[연주에 소리가 못 따라오는 느낌이었습니다. 어울리느냐 어울리지 않냐 묻는다면, 어울립니다. 어울리면서 급조된 느낌이 있었습니다. 이것보다 더 나을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군요.]”
“[사정이 있었습니다.]”
뼈를 때리기도 했다.
“[그래서 5위에 선정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짝짝짝짝짝-!
평가가 끝나자, 관객들이 박수를 보냈다.
좀 전에 뻘짓을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박수도 안 쳐줄 정도로 여기 모인 사람들이 박하지는 않았다.
“[이어서 발표하겠습니다. 4위는 ….]”
꿀꺽.
긴장감이, 흐른다.
자신이 최상위권을 차지할 거라 생각하는 이는 극소수였다.
그러므로, ‘4위’ 타이틀은 치열한 게 당연했다.
소이의 눈에 광채가 감돌기 시작했다.
“[안도 사토시 씨.]”
귀에 익숙한 이름이 날아와 박혔다.
광기 섞인 함성 또한 같이.
“아싸아아아악!”
쟤 일본인 아닌가?
‘요시!’ 같은 거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얏따아아아아악!”
일본어도 튀어나왔다.
둘 중 하나만 하면 좋았을 텐데.
두 개 다 하니까 좀 개씹덕 같네.
“[안도 사토시 씨는 이미 프로시죠. 극동 지역에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는 것을 익히 전해 들었습니다. 유명세에 걸맞은 무대였습니다. 제 소감을 말씀드리자면 …]”
안태식이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평가를 경청했다.
그리고…
“….”
나는 조금 마음이 아렸다.
쟤도 미운 놈은 아닌데,
개인적으로는 소이나 김태현 둘 다 결선에 올라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 자리.
앞으로 한 자리 남았다.
둘 다 올라가는 건, 이젠 불가능하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안도의 평가가 끝났다.
중2병 감성이 좀 오글거리던데. 서양인들 귀에는 다르게 들리는 건가?
지적하는 사람이 없네.
어쩌면 내가 반 씹덕이라 이런 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걸 수도 있다.
외눈박이의 세상에선, 쌍눈박이가 비정상이니 말이다.
안도는 2위라는 목표를 천명했음에도, 그것을 이루지 못했음에도, 존나 좋아했다.
갈대 같은 남자다.
“[그럼 다음은… 3위입니다.]”
꿀꺽.
침을 삼키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나는 고개를 천천히 돌려, 참가자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다들 결사의 각오를 다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소이와 같이, 다른 참가자들도 지금 이게 마지막 기회이자 희망인 셈이다.
“….”
나는 벌벌 떨고 있는 소이의 어깨를 잡았다.
동시에,
“[백소이 씨입니다.]”
기적을, 체험했다.
“어 …?”
으허어어어어!
아아아아아아아-!
벙찐 얼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참가자들의 절망 묻은 탄성들.
나는 귀를 팠다.
그리고, 소이와 눈을 마주쳤다.
“3등 …!”
“3위!”
마치,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표정. 눈가에는 벌써 수분이 그렁그렁하다.
소이는 애써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필사적으로 치켜들었다.
소용없었다.
또르르 –
“[축하드립니다, 백소이 씨. 이번 본선에서 세 번째로 잘하셨습니다. 백소이 씨의 곡은 정말 사람들의 감정을 넘어 감각을 움직이는 무기 그 자체였습니다. ‘간지러움’이라고 할까요 …. 이러한 곡은 드물었고, ‘잘 연주된 곡은’ 더욱 듣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감사 드립니다. 좋은 음악을 들려주셨습니다.]”
나는 다시금 소이의 무대를 떠올렸다.
… 파괴력이 엄청났던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사실이다.
손발이 오글거리는 멜로디.
통통 튀면서도, 감미로우면서도.
사람의 감정을 들었다 놨다 하는 곡.
“[… 감사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사운드 이펙팅 또한 대단했습니다. 프로 디자이너가 직접 자신에게 맞는 옷을 만들어 입은 느낌이랄까요. 확언할 수 있습니다. 이대로만 간다면, 세계에서 손꼽히는 프로뮤지션이 될 겁니다. 다만 그 전에 ….]”
“[….]”
“[자신의 약점을 잘 알고, 잘 극복해야 할 것입니다. 곡은 부드러웠고, 말랑말랑했습니다. 그럼에도 알 수 있었습니다. 백소이 씨는 강한 쪽의 다이나믹 레인지가 좁습니다. 부드러운 쪽으로는 넓습니다. 오늘은 약점을 감추며 강점을 내세웠지만, 영원히는 그럴 수는 없을 겁니다.]”
“[… 감사합니다!]”
약점 극복은 쉽지 않다.
말로는 쉽게 극복했다 떠들어대도, 평생 안고 가야 할 숙제인 것이다.
소이는 힘이 약하다.
아니 뭐 저 체형에 힘이 센 게 이상하겠지.
현실은 판타지가 아니니까.
하지만 …
“잘했어!”
“응 …!”
소이와 처음 만났을 때와 비교해본다면, 정말 일취월장이라 표현해도 좋을 정도이다.
대견스럽다.
나까지 너무 좋다.
기뻐 죽겠다!
“고마워 … 수재야.”
“에이, 내가 한 게 뭐가 있다고.”
“아니야. 수재가 있어서 … 나도 여기 있는 거야.”
… 그걸 굳이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만약… 만약.
내가 그때 소이 집에 가지 않았더라면, 소이는 여기 없었을 테니까.
실제 전생에 그랬으니까.
“그렇게 말해 주니까 오늘 기뻐서 잠 못 잘 것 같네.”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응. 고마워. ……아해.”
그리고, 그에 대답하듯,
아니면 혼자서 중얼거리듯.
소이는 입을 꿈뻑이며 정면을 응시했다.
“….”
나는 내가 눈치 100단이라 자부한다.
여기서 못 알아먹을 정도로, 븅신은 아니다.
확실히 알아먹었다.
지금 당장은, 대답할 때가 아닌 것뿐.
“[이어서 진행하겠습니다. 본선 2위는 ….]”
“[자, 잠깐만!]”
꽤액!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찢어지는 듯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들었던 이탈리아 무공과 상당히 흡사한데, 역시나 페데리카였다.
“[무슨 일이십니까 …?]”
“[아니… 잠깐만 기다려 봐요. 이, 이게 말이 되는 거야? 왜 없냐고! 진짜 아무도 없는 거냐고 …!]”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다.
식은땀이 얼굴을 덮은 화장을 흡수해, 허여멀건 오수의 형태로 턱에서 뚝뚝 떨어진다.
뭐랄까. 휴게소를 차로 들이받으려고 하는 급똥 분출 직전의 표정이랄까.
그게 지금 페데리카의 얼굴에 떠올라 있었다.
“[그렇게나 좋은 소리가 … 다 떨어진다고 …?]”
“….”
“[대답 좀 해 봐요!]”
황당한 기색을 표하는 것은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그녀 근처에 분포한 열 명 좀 넘는 참가자들의 표정 또한, 같았다.
단, 똥이 마려운 표정보다는 똥을 씹은 듯한 표정에 가까웠다.
김태현은 …
얼굴이 존나 편안해 보인다.
본선에 진출할 생각을 아예 안 하고 있던 건가 …?
“[그 ….]”
“[대신 대답하겠습니다.]”
제일 오른쪽에 앉아 있던 심사위원이 마이크를 바꿨다.
“[아서 크리스턴입니다.]”
“[… 그래요 아서. 대답을 좀 해줘요 제발. 왜 … 왜 쟤들만 결선에 올라가는 거죠?]”
“[아직 순위는 3위까지 밖에 발표하지 않았습니다만.]”
“[지금 말장난하는 거예요?!]”
“[2위는 페데리카 모레티 씨입니다. 축하합니다.]”
….
페데리카는 인상을 찌푸렸다.
상실감, 적의, 분노.
부정적인 감정이 한데 뒤섞여 뿜어내는 한기.
2위면 높은 건데.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있나?
‘… 아니.’
진작에 나도 알고 있었다.
페데리카는 그런 걸 묻고 있는 게 아니다.
자신이 결선에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것.
다만, 자신이 직접 이끄는 ‘집단’의 인간들이, 단 한 명조차 결선에 진출하지 못한 건 이상하다는 것이다.
“[하아 ….]”
아서 크리스턴은 손바닥으로 눈썹 뼈를 굴렸다.
“[페데리카 씨. 당신의 무대는 정말 정갈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자신의 바람을 곡에 녹여내었고, 프로 화가가 머릿속에 색칠하듯, 아니면 유명 쉐프에게 저녁을 대접받는 듯. 소리로 느낄 수 있는 최상의 자극을 주었습니다.]”
“[평가는 … 됐어요. 제 질문에 대답해 주세요.]”
“[이번 대회에 ‘무리를 짓지 말라’는 규정은 없었습니다.]”
술렁 술렁-
단 한 문장에, 관객석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가능하리라 생각지도 못했고요. 하지만 그걸 해냈더군요. 솔직히 대단합니다.]”
아서 크리스턴의 표정은 평온해 보였다.
뭐랄까, 번뇌에서 해방된 현자의 모습 같달까.
페데리카는 당황한 기색 하나 없이 당당하게 대답했다.
“[… 예. 저는 무리를 지었어요. 오늘 이곳은 ‘대회’지만 ‘무대’이기도 하잖아요? 다 같이 좋은 소리를 내서, 다 같이 멋진 무대를 만드는 게 뭐가 문제죠?]”
“[음 … 규정은 제쳐두고 ‘옳은가 그른가’를 따지는 건 좀 다른 차원의 문제 같습니다만 … 뭐, 인정하겠습니다. 애초에 제가 인정을 안 했다면, 당신이 2위를 하는 건 불가능했겠지요.]”
“[그래서 …!]”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심사위원들의 시선이, 페데리카의 주변을 훑었다.
“[당신은 실력이 뛰어납니다. 그 나이 때의 저는, 당신 같은 실력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천재라 자부하셔도 좋습니다.]”
“….”
“[다만 문제는, 천재성으로 타인을 짓눌렀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의 개성이 무너졌습니다.]”
평온한 표정.
단정한 말투.
다만, 날 서 있는 단어.
“[본선에 진출한 참가자들은 실력이 좋습니다. 다 잘 칩니다. 잘 치는 만큼, 각자 자신의 소리를 표현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렇지만 부족함을 느꼈고, 도움을 바랐겠죠. 페데리카 씨. 아마 당신은 자타의 능력을 동원해 다른 참가자의 ‘소리’를 건드렸을 겁니다.]”
“[맞아요. 그게 도움이 됐을 ….]”
“[연주법은 건드리지 못했겠지요. 그럴만한 시간이 없었으니까요.]”
“….”
페데리카는 입을 다물었다.
반박하지 못했다.
당연하다.
남의 ‘톤’을 지적하고 고쳐주는 건 쉽지만,
‘연주법’을 고치는 데에는 엄청난 고뇌와 시간이 들어간다.
그리고 그것을, 저 ‘교수’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결과, 만든 소리와 연주가 미묘하게 어긋났습니다.]”
“[듣기에 안 좋았단 건가요?]”
“[아뇨. 듣기엔 좋은데, 분명 예쁜 소리인데.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미묘했습니다. 근데 … 당신의 차례가 되자마자 직감이 들었습니다. 당신의 차례를 넘어, 빨기좌의 차례가 되자 확신이 들었습니다.]”
꿀꺽-
나는 침을 삼켰다.
나한테 하는 말이 아님에도, 내가 다 긴장된다.
그러나저러나, 크리스턴 교수는 페트병에 든 물로 목을 축일만큼 여유로웠다.
“[제가 좋다고 느꼈던 소리는, 예쁘다고 생각했던 연주는, 그걸 만들어냈던 참가자들은. 당신의 잔상일 뿐이었습니다.]”
“….”
잔상.
한 인간의 잔상.
페데리카는 사람들을 모았다.
그리고, 이끌었다.
그 과정이 강압적이었는지 아닌지는 난 모르지만, 어쨌든 그들은 페데리카를 따랐다.
소리에 반해서.
그녀 소리를, 자신들 또한 가지기 위해서.
“[대체 왜 그랬던 거죠?]”
심사가 길어진다.
아니, 내가 느끼는 체감시간만 그런 걸 수도 있다.
1초가 영원처럼 느껴졌다.
“[만약 당신이 … 단 한 명에게만 톤을 만들어 줬다면, 눈치채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을 끌어들인 겁니까 …?]”
약하면 무리를 짓는다는 말이 있다.
다만 정작 페데리카는 약하지 않다.
강하다.
그럼에도 그녀는 무리를 지었다.
나도 그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 그게 내 이상향이었으니까.]”
목소리가 끓는다.
한껏 머금어 있었던 독기가, 끓어 증발해 간다.
“[내가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소리로, 사람들한테 환호를 받고, 그리고 ….]”
척-
페데리카의 손가락이, 이쪽을 가리켰다.
“[저 녀석을 짓누르고 싶었으니까.]”
엄지손가락 끄트머리에서 뿜어진 분노가, 내게 닿지 못하고 지워졌다.
“[당신은 도전정신이 충만하고, 실행력 또한 갖췄습니다. 하지만 실패했죠. 능력 부족이었습니다. 아니,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지식을 전달하고, 경험을 가르칠 수는 있어도, 예쁜 틀에 집어넣고 완벽한 모양이 되길 바라는 것은 제 의견으론 인간으로서 주제 넘은 일입니다. 당신의 이상향은 이곳에 없었습니다.] ”
페데리카에 대한 평가는 유난히 길었다.
“[부디 이 시간 이후부터, 재능을 올바른 방향으로 사용해 주시길.]”
그리고 그것에 대해 불만을 품는 사람은 없었다.
“….”
과연 그녀는 자신이 잘못됐음을 뉘우치고, 재능을 십분 활용하게 될까?
아니면 고집을 꺾지 않을까?
모르겠다.
나는 그것을 섣불리 예측할 수 없었다.
“[이어서 발표하겠습니다만 … 다들 아시죠?]”
분위기가, 전환되었다.
무겁고 칙칙했던 공기가, 급격하게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김수재 씨. 당신이 본선의 1위입니다.]”
와아아아아아악-!
다시 한번, 머리칼이 떨렸다.
끼에에에에에에엑-!
저러다 성대 나가는 거 아니야? 라는 걱정이 들 정도로.
엄청난 성량이, 이 널찍한 공간을 메운다!
“[김수재 씨, 당신은 오늘 새로운 역사를 썼습니다. 당신이 오늘 보여준 퍼포먼스, 연주는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보여지고, 들릴 것입니다. 100개의 기타를 매달아 연달아 사용하는 화려한 퍼포먼스와, 퍼포먼스가 퍼포먼스로 끝나지 않는 연주기법 …! 그것은 이미 하나의 패러다임이 시작됐다고 봐도 될 정도로…]”
턱- 마이크가 옆 심사위원에게 옮겨갔다.
아니, 뺏어갔다.
“[하… 하하하. 이때만을 기다렸네요. 입이 근질근질합니다. 대체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할지 …!]”
“[거 마이크 이리 돌려주세요!]”
“[김수재 씨, 아니 sir! 나중에 초청장 보내드릴 테니 우리 대학에 한번 들러주시면 ….]”
“[지금 뭐 하자는 거야 나이도 많은 양반이!]”
“[뭐?! 누가 나이 많아? 내가 너보다 두 살밖에 안 많아!]”
“[두 살은 무슨! 이십 살은 많아 보이는구만!]”
“[보자 보자 하니까 이게 …!]”
그렇다.
개판이 펼쳐졌다.
그리고, 아재들 싸움은 한국이나 영국이나 거기서 거기라는 새롭고 신비한 상식이, 머릿속에 추가되었다.
‘영어 공부를 해둬서 다행이군.’
정말 다행이었다.
“[김수재 씨.]”
언제 끝나나 싶었던 개판이, 순식간에 일단락되었다.
심사위원석과 미묘하게 떨어져 있는 ‘조언자’석.
그중 한 명이 입을 열었기 때문이었다.
대머리 조였다.
“[당신의 연주가, 어린 시절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해주었습니다.]”
… 저 사람들이 입을 열 줄은 몰랐는데.
지금까지 계속 묵묵했잖아.
그저 앉아 있는 것만으로 존재감을 뿜어냈잖아.
하지만 입을 뗐다.
나를 향해.
“[정신이 멍합니다. 짧지만 긴 영화를 본 느낌입니다. 한 음악인의 성장, 그리고, 끝을 느꼈습니다.]”
… 그는 내 곡을 경청했고, 이해하고 있었다.
그저 감사하다, 영광이다.
뭔가 느껴지는 건 많은데, 머릿속이 하얘져서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 끝이 김수재 씨가 목표로 하는 곳입니까?]”
선글라스에 가려져 있어 눈빛은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저 물음에 장난기가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므로, 진솔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
나는 끓어오르던 감정을 억누르고 입을 열었다.
“[글쎄요. 아니, 아마 그럴 겁니다.]”
“….”
“[끝이 어딘진 저도 잘 모릅니다. 그런데요, 팬들한테 실망을 안겨줄 생각은 없습니다. 이제까지와 같이 말이죠.]”
“[하하하. 좋습니다.]”
조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충분합니다.]”
스티브 또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같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앞으로 천천히 나아가,
척-!
아까 했던 중2병 갬성 넘치는 자세와 포즈를,
어색한 내색 하나 없이 선보였다.
“[아, 아직 심사 평가가 안 끝났…!]”
–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나만큼 격앙된 인파의 목소리가, 심사위원들의 비통한 외침을 지워버린다.
– 빨기좌! 빨기좌!
– 빨기좌아아아아아아악!
김수재의 ‘김’ 자도 들리지 않지만, 상관없다.
생각해보면 김수재보다 ‘빨기좌’ 발음 난이도가 훨씬 높을 텐데.
그럼에도 굳이 불러주는 것 아닌가?
“Who I am!”
– 빨기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2016년 11월 17일, 이젠 저녁.
길고 길었던 하루를 보상하듯,
굉음과 백색의 스포트라이트가 나를 비추며,
그렇게 본선은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이어, 결선에 대한 정보를 듣고 벙찔 수밖에 없었다.
“…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