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interpreter RAW novel - Chapter (100)
*
짝짝짝-
다비드 발랑탱 대사는 진심을 담아 박수를 쳤다.
‘쉽지 않은 통역이었을 텐데.’
그는 내심 한 가닥 불안을 떨치지 못했던 터였다.
아무리 알리샤의 부탁이라고는 하나 이런 식으로 지명 통역을 요청해도 괜찮은 걸까 싶어서.
‘아직 1학년 재학 중인 학생이라고 했지.’
이번 일을 해낼 만큼의 실력이 되지 않는 통역사라면 어떡하나.
그러한 불안감은, 연단 앞에 선 박찬영이 첫 마디를 시작하자마자 곧바로 사그라들었다.
「Je me souviens de l’année 2009, lorsque la Cité m’a proposé de tenir une exposition.」
사실 다비드 대사는 한국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아는 터였다.
권상만 화백의 말을 100퍼센트 이해하지는 못했어도, 그의 연설이 미리 준비된 게 아니라 즉흥적인 멘트임을 알아차리기는 충분할 정도로.
‘게다가 상당히 중언부언하는 것 같던데.’
그래서 더더욱 걱정이 되었던 것이었지만, 저 앞에 선 박찬영은 첫 마디부터 몹시 깔끔하기 그지없었으니.
「Super(근사하군).」
대사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는데, 옆에 앉은 프레데릭 마르탱 원장이 한마디했다.
「Qu’est ce que je vous ai dit(그러게 내가 뭐라고 했습니까)?」
잘할 거라고 말하지 않았냐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웃어 보이는 프랑스 문화원장.
「En plus, Monsieur Park est(게다가 무슈 박은)···.」
‘오타쿠’라고 속삭이는 문화원장의 말에, 다비드 대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하고 말았다.
역시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고 열정을 지닌 분야에서 최상의 실력을 발휘하기 마련이니 말이다.
‘오늘 영상도 나중에 올라가면 알리샤가 좋아하겠네.’
평소에는 방문자가 거의 없는 프랑스대사관 채널이지만, 오늘 이 영상이 업로드되고 나면 조금이나마 화제가 되지 않을까.
신임 프랑스 대사는 그런 기대를 해보는 터였다.
한편.
그 자리에서 박찬영의 AB통역을 듣고 감탄한 것은 비단 프랑스 대사관 관계자들뿐이 아니었는데.
‘보면 볼수록 엄청나군.’
이번 문화훈장 수훈과정에서 오갔던 각종 공문서의 번역을 화경외대 센터에서 담당했던 터.
그 같은 인연으로 오늘 이 자리에 초청받은 서장석 교수는 박찬영의 통역을 보며 턱을 쓰다듬었다.
훈장 서훈식에 자주 와본 만큼, 그는 수훈자의 인사말이 대부분 2분 이내로 짧게 진행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보아하니 사전에 계획되지 않은 연설이 분명한데.’
오늘 박찬영은 사전 원고도, 미리 논의된 바도 없이 즉석에서 통역을 해낸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야말로 담대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닐 수 없었다.
저 상황에서 당황한 티를 내지 않고 흔들림 없이 통역을 진행하는 건, 웬만큼 현장 경력이 상당한 베테랑들이라 해도 쉽지 않은 일이니까.
‘게다가 오늘 이 자리에서 통역의 인풋과 아웃풋을 비교해볼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인 듯한데.’
한국어와 프랑스어 양쪽 모두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서 그는 통역의 아웃풋이 현지인들에게도 ‘맛깔스럽게’ 느껴질 만큼의 퀄리티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것은 애초 현지생활을 오래한 경우에도 쉽지 않다.
무엇보다 그는, 박찬영이 한국어 원문에 부재하던 논리를 골조부터 세워가며 프랑스어로 통역하고 있음을 진작에 알아차린 터였다.
“이거, 진짜로 탐나는데.”
서 교수는 박찬영의 모습을 시야 한구석에 담은 채 혀를 내둘렀다.
*
서훈식은 금세 끝났다.
무슨 정신으로 연단 아래로 내려갔는지 모르겠다.
“어이쿠, 권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교수님! 훈장 타신 것 축하드려요!”
“권상만 작가님이···.”
권상만 화백의 지인 혹은 업계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그를 둘러쌌다.
그 틈을 타 나는 잠시 자리에 앉아 탈진할 것 같은 몸을 추슬렀다.
“후우···.”
그렇게 한 몇 분이나 앉아 있었을까.
피로한 기색을 애써 숨기고 있는데, 권 화백에게 프랑스인 인사들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이렇게 앉아 있을 때가 아니네.’
수행통역을 위해 얼른 일어나 그쪽으로 다가서자, 화백이 나를 돌아보았다.
“아, 박 선생님! 통역하시느라 정말 고생많으셨습니다. 이 늙은이가 갑자기 계획에도 없던 소릴 해서 당황스러우셨을 것 같은데.”
권 화백은 허허 웃으며 말하고 나서야 내가 통역해야 한다는 것에 뒤늦게 생각이 미쳤다며, 미안해하는 기색이었다.
나는 두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그게 제 일인걸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내가 프랑스어는 전혀 모르지만, 박 선생님이 통역을 잘해주셨다는 것만큼은 알겠습니다.”
권 화백은 자신이 영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아니, 이제부터는 굳이 통역해줄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러니 가서 파티도 즐기시고, 좀 쉬고 그러세요.”
“네? 아니, 하지만···.”
당신을 수행통역하는 것까지가 내 일이다, 라고 설명했지만 권 화백은 막무가내였다.
“괜찮아요, 사실은 내가 영어로 이야기하는 걸 좋아해서, 허허.”
결국.
나는 잠시 그 곁에 어색하게 서 있다가, 간단한 음식들이 케이터링된 테이블로 향했다.
‘···사실 배가 고프기도 하고 말이지.’
짧은 시간 내에 두뇌를 극도로 혹사시켜서 그런지 배도 고프고 단 음식이 당겼다.
테이블에는 정통 프렌치 스타일로 조리된 다양한 핑거푸드들이 놓여 있었는데.
근사하게 데코레이션된 형형색색의 음식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거워지는 기분이었다.
‘저건 푸아그라인가?’
푸아그라. 화이트와인을 넣은 젤리.
훈제연어에 크림치즈, 케이퍼까지 올린 타르틴.
프랑스 정통햄인 장봉을 넣은 샌드위치 등등.
기껏해야 내 손바닥만도 못한 크기의 핑거푸드를 몇 개 집은 뒤, 디저트 코너에 놓인 마카롱, 케이크, 치즈 따위도 몇 개 가져왔다.
“···음, 맛있네.”
한 입에 쏙 들어가서 핑거푸드라고 하는 건가.
한 손에는 와인을, 다른 한 손에는 핑거푸드가 담긴 접시를 들고서 아쉬운 대로 배를 채우던 그때.
손발을 다 써가며 열정적으로 외국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권상만 화백의 모습이 들어왔다.
‘권상만 작가님이 영어를 꽤 잘하시네.’
조금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오늘처럼 VIP가 수행통역을 사양하는 경우가 드물지만 있기는 하다.
본인이 직접 외국인들과 부대끼며 소통하는 경험을 즐기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니까.
‘그거야 그렇고, 저분이 내년 앙굴렘 페스티벌에 초청되셨다고 했나.’
그럼 아마 포럼이나 컨퍼런스에 참석해서 발표나 기조발언을 할 텐데, 오늘 통역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의 분량일 거다.
저 권상만 화백 같은 스타일의 연사야말로 통역하기에는 난이도가 가장 높은 만큼···.
‘누가 통역을 맡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 꽤나 고생하겠네.’
그런 생각을 하던 그때, 누군가 내게 말을 걸었다.
“통역사 선생님 맞으시죠?”
그쪽을 돌아보자 어쩐지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중키에 보통 체구, 어딘가 곰을 연상케 하는 지극히 평범한 인상인데···.
‘내가 이 사람을 어디서 봤을까.’
고개를 갸웃하며 기억을 되짚어보는데, 곰 같은 인상의 사내가 웃으며 말했다.
“권상만 선생님은 원래 그러신 분이니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네?”
그는 저쪽에 프랑스인들과 열띤 대화를 나누는 중인 권 화백을 가리켜 보였다.
“전에도 늘 그러셨거든요. 늦은 나이에 배운 영어가 너무 재밌다며, 그걸 실전에서 최대한 써먹어보고 싶다고.”
그러니 딱히 통역사로서 나를 신뢰하지 않아서 본인이 영어를 쓰겠다고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사내.
나는 그의 명찰을 가만히 들여다보다 깜짝 놀라 외쳤다.
“어? 설마··· 강호석 작가님?”
사내의 목에 걸린 명찰에는 ‘출판 관계자|강호석 작가’라고 적혀 있었다.
강호석이 머리를 긁적이며 대꾸했다.
“어, 절 아시나요?”
“그럼요, 당연히 알죠! 다옴웹툰에서 연재하신···.”
아 맞다.
이 시점에는 아직 이 안 나왔지.
“작가님의 웹툰 를 엄청 재밌게 봤거든요.”
“아, 보셨구나.”
강호석 작가가 와하하 웃으며 반가워했다.
“제 작품 중에는 제일 히트친 거긴 한데, 프랑스어 통역하시는 분이 그걸 보셨을 줄은 생각도 못 했네요.”
영광이라며 농담처럼 말하는 강 작가.
···지금은 대중적인 인기작이 하나뿐이지만, 앞으로 작품이 줄줄이 흥행하며.
‘몇 년 뒤 탄생하는 이 어마어마한 히트를 치지.’
개인적으로 이분의 작품은 대부분 좋아했던 만큼, 나는 완전한 팬의 심정으로 노트테이킹용 수첩을 내밀었다.
“저, 괜찮으시다면 사인 한 번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럼요. 아, 성함이?”
“박찬영입니다.”
그는 ‘박찬영 통역사에게, 강호석’이라고 기분 좋게 사인한 뒤 수첩을 돌려주었다.
“아까 보니까 프랑스어를 엄청 잘하시던데요.”
“과찬이십니다.”
“과찬은요. 사실은 저도 통역사님을 뵌 적이 있어요, 하하.”
그게 무슨 말인가 싶어 눈을 크게 뜨자, 강호석 작가가 허허 웃으며 핸드폰을 들어 보였다.
“너튜브에서 봤거든요. 또찬영 유니버스.”
“···.”
···내 생각보다 그 영상이 꽤 많이 퍼져나간 모양이었다.
나는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하하, 이거 민망하네요.”
평소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너튜브를 자주 본다는 그는 또찬영 관련 영상을 전부 다 봤다며 열띤 어조로 말했다.
“그거 보니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통역사의 직업 세계를 웹툰으로 그려보면 어떨까?”
“···네?”
강호석 작가의 눈이 돌연 형형하게 빛났다.
“, 뭐 이런 것 말이죠 하하.”
“아···.”
···아니, 그러시면 안 됩니다.
통역사 웹툰에 관한 아이디어를 신나게 쏟아내는 강 작가에게 뭐라 대꾸해야 할지를 모르던 그때.
“여, 박찬영 씨. 오늘 통역 아주 좋았습니다.”
익숙한 목소리에 옆을 돌아보자.
키가 훤칠하고 포스가 어마어마한 것이 악역 보스 급인 서장석 교수가 서 있었다.
···이 사람도 여기 온 줄 몰랐네.
“안녕하세요. 서 교수님을 여기서 뵐 줄 몰랐네요.”
그렇게 간단히 안부만 이야기하고 바로 빠지려 했지만.
“연말에 또 보게 될 겁니다.”
“네···?”
서장석 교수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걸렸다.
“아직은 대외비이긴 하지만, 내가 블레즈 파스칼 한국장학생단의 지도를 맡게 되었거든.”
“···.”
그러니 애로사항이 있으면 언제든 편히 얘기하라는 서장석 교수.
“무엇보다 찬영 씨는 우리 이준이의 절친이지 않습니까, 허허허.”
그 동굴 소리 같은 웃음이 귓전에서 한참이나 맴도는 기분이었다.
*
며칠 뒤 한명외대 통대 교강사회의실.
한두 명을 제외한 불어과 교강사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정화영 교수가 올리비에 교수를 향해 말했다.
「Je vous écoute, Olivier(올리비에 교수님, 얘기해보세요).」
「Oui, tout d’abord, selon la discussion avec l’Institut français(네, 일단 프랑스 문화원 측과 논의한 바로는)···.」
어느새 한 달 반 뒤로 다가온 ‘2010 프랑코포니 컨퍼런스’.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대규모의 행사인 만큼, 교강사 전원이 함께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는 터였다.
「Parfait(완벽하군요). 좋아요, 그럼 오늘은 이렇게 회의를 마치죠.」
교수들이 속속들이 회의실을 나서는데, 마지막까지 자료를 정리하던 올리비에 교수가 정 교수를 돌아보았다.
「그러고 보니 찬영 씨가 훈장 수훈식 통역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요.」
프랑스 문화원장과 행사 준비 논의를 하다가 찬영의 얘기가 나왔다는 그의 말에, 정 교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아주 잘해냈다고 호평이 자자하더군요.」
문화원장뿐이 아니었다.
대사관실의 공보관들은 물론이고, 다비드 대사 본인이 따로 연락해 입에 침이 튈 정도로 칭찬을 했으니.
정화영이 그런 기억을 떠올리는데, 올리비에 교수가 웃는 낯으로 말을 받았다.
「요즘 찬영 씨가 여기저기서 활약하는 걸 보니, 전에 학과장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던 게 기억나네요.」
「어떤?」
「우리 학교에서 스타 통역사를 배출해내는 게 꿈이라고 하셨잖아요.」
스타 통역사, 라는 표현에 정 교수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뱅상 교수님을 모셔온 것도 그 때문이었지.’
우리 한명외대 통대의 이름으로 새로운 스타 통역사를 배출하고 싶다.
애초 그러한 포부로 통대원장을 설득해 여름방학 특강 허가를 받아낸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정 교수가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올리비에 교수의 말이 이어졌다.
「그런 의미에서 찬영 씨의 성장은 정말 비약적이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성장.
실력적인 차원도 물론 그렇지만, 고작 한 학기가 지났을 뿐인데 그의 이름은 이 프랑스어 통번역업계에 어느새 제법 알려진 터였다.
‘찬영 씨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는 법을 본능적으로 체득한 느낌이야.’
그리고 어느새 쌓인 인지도를 슬기롭게 활용하는 법도 말이다.
「맞아요, 올리비에 교수. 나도 찬영 씨에게 거는 기대가 큽니다.」
스타 통역사.
자신의 그러한 포부가 눈앞에서 실현되는 날이 생각보다 멀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정화영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아주 잠깐,‘또찬영 표정 24종 세트’가 눈앞에 어른어른거리기는 했지만 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