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genius interpreter RAW novel - Chapter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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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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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저녁에 기숙사로 돌아와 그날 밤까지 검토서를 다 작성했다.
쿠엘벡이 이번에는 공쿠르상을 탈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강력하게 어필하되.
‘그의 수상 가능성을 점치는 프랑스 기사라든가, 전문가들의 견해를 간단히 정리해서 그 근거로 덧붙여주었지.’
한 번 더 퇴고한 뒤 함영사의 윤주하 팀장에게 메일을 보내고 나자.
일을 하나 끝냈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졌다.
‘이제는 통역 준비를 해볼까.’
방학이라 여유가 있을 줄 알았더니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바람에 어째 더 빡빡한 느낌이지만.
그래도 일이 많아서 바쁜 건 기분이 좋다.
“K-파운데이션 2010 자료가··· 여기 있네.”
2학년은 절반 정도, 우리 1학년은 거의 전원이 참가 신청을 한 상황.
행사 개요와 타임테이블이 담긴 배부자료는 물론이고, K-홍보재단 사이트에 들어가 행사 관련 내용은 전부 살펴보았다.
‘물론 나는 한 번 경험해본 행사이기도 하지만.’
그러니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개별적으로 맡은 통역 준비를 철저히 해내는 것.
이번에는 수행통역이라 할 만한 것은 별로 없으며, 프랑스인 VIP가 소통을 힘들어할 경우에만 잠깐 도와주면 된다고 들었다.
그러니 핵심은 행사 초반부에 진행될 ‘게스트 스피치’를 준비하는 것.
K-파운데이션 행사에서 매년 빠짐없이 등장해온 것으로, 전 세계에서 초청한 각계의 게스트들이 자신의 경험담이나 생각을 3~5분간 가볍게 이야기하듯 들려주는 코너다.
‘1부와 2부에 각각 다섯 명씩 스피치를 하게 된다고 했던가.’
현장에 배치된 영어과 동시통역사들이 연사들의 말을 영어 또는 한국어로 통역하면, 현장의 초대객들이 그 내용을 리시버로 듣는 형태다.
연사는 대부분이 한국인 혹은 영어 구사자이며, 조르디 라부안처럼 드물게 프랑스인도 있는데.
‘프랑스인인 경우, 나를 비롯한 불어과 학생들이 한국어로 순차통역을 하면, 그걸 동시통역사들이 다시 영어로 옮긴다고 했지.’
그런 만큼 통역을 실수없이 해내는 게 중요하며, 내가 맡은 조르디 라부안이 첫 번째 스피치를 맡았음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잘해내야 해.’
나는 그런 마음으로 조르디 라부안에 관한 모든 자료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가 ‘아기 가수’로 활동했을 때 냈던 곡, 공연 영상, 각종 인터뷰나 기사들은 물론이고.
가수 활동을 못하게 된 후에는 어떻게 지냈는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아마존 프랑스에서 판매 중인 그의 자서전까지 찾아서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그렇게 통역 준비로 분주하게 한 주를 보내다 보니.
어느덧 ‘K-파운데이션 2010’ 행사일이 눈앞으로 훌쩍 다가왔다.
*
다음 날 토요일 오전, 삼성동의 서울컨티넨탈호텔의 그랜드볼룸.
– 곧 VIP 입장이 시작되니, 통역사 및 진행요원들은 각자 맡은 구역으로 이동해···.
안내멘트가 흘러나오자 진행요원들의 발걸음이 한층 더 분주해졌다.
통역 현장에 도착하면 늘 그렇듯, 나 역시 기분 좋은 고양감이 전신을 감도는 게 느껴진다.
화려하게 차려입은 VIP들이 행사장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하자, 우리 불어과 42기생들을 포함한 이십여 명의 통역 요원들이 그들의 등록을 시작했다.
「Hello, sir.」
“안녕하십니까, 잠깐 명함 확인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Bonjour, monsieur.」
게스트들이 각자의 소속 혹은 국적에 따라 정해진 데스크에서 등록 절차를 착착 밟던 중.
그때, 저 멀리서 곱상한 외모의 서양인 청년 한 명이 수용이 형의 등록데스크로 다가왔다.
‘어쩐지 낯이 익은데.’
내가 그에게서 눈을 못 떼던 찰나, 청년이 수용이 형에게 영어로 물었다.
「Hello, my name is Jordy Lavoine···.」
···괜히 눈에 익은 게 아니었다.
나는 그의 등록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자연스럽게 다가가 말을 붙였다.
「Excusez-moi(실례합니다).」
청년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돌아보았지만.
「Je m’appelle Park Chan-young, votre interprète pour aujourd’hui(오늘 당신의 통역을 맡은 박찬영이라고 합니다).」
내 이름을 사전에 전달받았는지 이내 환하게 웃으며 대꾸한다.
「Ah, vous êtes monsieur Park! Je suis heureux de vous voir.(당신이 무슈 박이군요! 만나서 반가워요.)」
「편하게 찬, 이라고 불러주시죠.」
「그럼 사양 않고 그렇게 부를게요.」
청년은 내 손을 붙잡고 가볍게 흔들다 놓아주었다.
조르디 라부안.
만 4세에 내한했던 ‘아기 가수’가 어느덧 20대의 활달한 청년이 되어 내 앞에 서 있었다.
*
등록 절차가 끝난 뒤, 대부분의 게스트가 착석을 마쳤다.
행사는 사실 이제부터 시작이었는데.
총 30여분 진행되는 게스트스피치로 1부가 시작된 후, 한국의 전통문화에 관련된 짤막한 공연 한두 개가 상연되고.
중간에는 오찬 행사가 화려하게 진행되며.
2부 또한 게스트스피치와 다양한 공연으로 이뤄지는데, 마지막 순서가 바로 대망의 시상식이라고 들었다.
‘내가 맡은 조르디 라부안은 1부 첫머리 순서.’
나와 레아 신, 서이준, 황은새.
이 네 명은 진행요원이 아니라 통역사 자격으로 이 자리에 있는 만큼, 담당 통역을 마친 후에는 자유롭게 행사를 관람해도 된다고 들었다.
– 지금부터 K-파운데이션 2010 행사를 시작하겠습니다···.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 뒤,
오늘의 호스트이자 K-홍보재단 이사장 이미애 교수가 연단으로 올라갔다.
“안녕하십니까, 이 자리에 와주신 내외귀빈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와 거의 동시에, 귀에 낀 통역 리시버에서 동시통역사들의 통역이 들려왔다.
「Hello, I sincerely thank all of the distinguished guests from home and abroad···.」
10년차의 영어과 전문 통역사들이 자리하고 있을 통역 부스는 행사장 앞쪽 가장자리에 자리한 터.
‘게스트 스피치. 준비할 만큼 준비했으니, 그렇게 어렵진 않을 거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오늘의 연사인 조르디 라부안과도 잠깐 이야기를 나눠본 터였다.
‘아, 게스트 스피치요? 굳이 대단하게 준비하실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
그는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밝고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였는데.
‘그냥 제가 어떻게 지냈는지, 어떤 일들을 겪으며 나이를 먹었는지 간단히 얘기해주면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냥 편안하게 자기 일상을 얘기할 거니까, 부담없이 통역할 수 있을 거라는 조르디.
그는 농담을 섞어가며 묻지도 않은 것까지 자세하게 얘기해주었는데, 워낙 파리 본토 발음이라 알아듣기는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오늘 통역은 기껏해야 3분이 전부이니까.’
두세 번만 오가며 통역한다고 쳐도 한 번에 1~2분 정도 이야기할 터.
이런 자리에서는 노트테이킹을 하는 것 자체가 더 불편하고 어색할지도 모른다.
‘지난번 레아 데주 통역할 때도 노트 없이 통역했잖아.’
그렇게 이번에도 노트테이킹 없이 통역을 하기로 마음먹은 순간.
개회사를 맡은 프랑스 대사가 연단에 올라간 것이 보였다.
그의 통역을 맡은 것은 2학년의 김지혜 선배.
“···본 행사가 한국과 프랑스 사이에 가교 역할을 해줄 뿐 아니라, 전 세계에 한국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알리는 데에 크게 기여하기를···.”
연사가 프랑스어로 1~2분 정도 말하고 나면 그녀가 노트 없이 바로 통역하고.
그다음에 또다시 연사가 비슷한 길이로 말하면, 김지혜 선배가 통역을 하는 식으로 진행되는 모습이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
리시버의 내용에 귀를 기울이자, 김지혜 선배의 통역을 릴레이로 받아서 영어로 통역하는 것이 들려왔다.
「We hope that this event will not only serve as a bridge between Korea and France, but also contribute···.」
부담없는 길이의 담백한 개회사.
거기에 정확하고도 고급스러운 통역까지.
그렇게 행사의 첫 코너가 완벽하게 마무리되기 직전, K-홍보재단 측 직원이 내게 다가와 속삭였다.
‘조르디 라부안 담당 통역사 맞으시죠? 바로 무대에 올라갈 준비 할게요.’
그를 따라 무대 뒤편에 가서 대기하자, 미리 와 있던 조르디가 나를 보며 반갑게 웃었다.
「찬! 긴장하지 말고, 편안하게 해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 또한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조르디, 당신도요.」
내 말에 청년이 씩 웃어 보였다.
“그럼 이것으로 개회사를 마치겠습니다. 다음으로는···.”
행사를 진행하는 이미애 교수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만 4세의 나이에 슈퍼스타가 된 ‘아기 가수 조르디’, 조르디 라부안 씨를 모시겠습니다.”
‘아기 가수 조르디’라는 말에 장내 여기저기서 다양한 반응이 쏟아졌는데, 특히 어느 정도 연배가 있는 게스트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짝짝짝.
쏟아지는 박수 속에서 조르디 라부안이 무대 위로 올라갔고, 나도 뒤따라 그의 옆에 자리했다.
“안녕하세요, 오늘 첫 번째 게스트인 조르디 라부안이라고 합니다.”
그의 인사말을 바로 통역하자, 객석의 시선이 한층 더 조르디에게 집중되었다.
「어릴 때 한국에 왔던 기억이 아주 어렴풋하게 나네요, 그때가 분명···.」
시작은 아주 괜찮았다.
분명 그랬는데.
···그의 스피치는 내 예상과 좀 많이 다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
바로 그 시각.
예상치 못한 전개에 당황한 것은 찬영뿐이 아니었다.
‘이런.’
행사 시작 몇 시간 전부터 몸소 현장을 지휘해왔으며, 지금 이 순간까지 누구보다도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는 이미애 교수.
그녀는 지금 입술을 지그시 깨문 채 무대 위의 상황을 주시하는 중이었다.
쉼없이 이야기를 쏟아내는 조르디, 그리고 그 옆에 멀뚱하니 서 있는 박찬영.
어느새 스피치를 시작한 지 3분째이지만···.
‘통역사에게 배턴을 넘겨야 한다는 것을 연사가 완전히 잊고 있잖아.’
통역사에게 말할 틈을 주지 않는 연사.
드물기는 하지만, 아주 없는 경우는 아니다.
지금 무대에 올라간 조르디 라부안은 이제 고작해야 20대 청년.
예능, 드라마, 음악 활동 등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통역사를 대동하는 경험은 처음일 터.
‘본인이 긴장해서 그 사실을 아예 잊고 있는 것도 있지만···.’
오늘 객석에는 프랑스인 게스트가 유독 많았는데, 조르디가 하는 프랑스어를 알아들으며 호응을 해주다 보니 더더욱 그 사실을 잊은 듯했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다.
‘분명 사전에 얘기가 오갈 때 3~5분 내외라고 해두었을 텐데.’
그때, 직원 하나가 다가와 조심스레 말을 붙였다.
“저, 이사장님.”
설명을 다 들은 이미애 교수가 끙, 하며 관자놀이를 짚었다.
“우리 측 실수라는 거예요, 결국은?”
영문메일로 논의가 오가는 과정에서, 이제 불과 3개월 차인 수습 직원이 내용 전달을 잘못했다는 것.
“원하는 주제로 자유롭게 얘기해도 된다는 걸, 원하는 만큼 얘기해도 된다고 전달했다네요.”
“하아···.”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교수는 잠시 고민했다.
객석을 둘러보자, 생각했던 것보다 게스트들은 조용히 잘 기다리는 중이었다.
‘비록 못 알아듣는 언어로 스피치가 계속되는 중이지만.’
이런 자리에 자주 참석해본 경험이 많은 이들인 만큼, 주최 측에서 함부로 연사의 연설을 끊지 못한다는 걸 이해할 터였다.
말하자면 이런 상황을 그러려니, 하고 이해해주는 분위기라고 할까.
하지만 유일한 문제가 있다면.
‘저기 저 자리에 서 있는 통역사만큼 힘든 사람도 없으니까.’
무대 위, 박찬영 통역사에게 향하는 그녀의 시선을 눈치챈 직원이 빠르게 물었다.
“이사장님, 어떻게 할까요. 지금이라도···.”
스피치를 중단시킬까요, 라는 뒷말이 생략된 질문에 이미애는 잠시 고민했다.
그렇게 한다면야 지금 이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만···.
「Alors je lui ai dit, c’est pas possible!(그래서 제가 그쪽에게 말했죠, 그건 불가능하다고요!)」
하하하.
프랑스어를 알아듣는 게스트들 사이에서 기분 좋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제야 제법 입이 풀린 것인지, 처음만 해도 딱딱하게 굳어 있던 조르디가 물 만난 고기처럼 자유롭게 토크를 이어가고 있었다.
‘확실히 연예인이 다르긴 다르네.’
지금 와 어설프게 중단했다간 저 흐름이 끊길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박찬영 학생이라면 뭔가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이미애 교수는 그런 기대를 담아 무대 가장자리에 선 그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방금 전만 해도 당황한 듯 보이던 그였지만.
“···.”
지금의 박찬영은 사뭇 달랐다.
연사 ‘조르디 라부안’의 스피치에 완전히 집중한 채, 형형한 안광을 그에게 고정하고 있었으니.
‘백 퍼센트 몰입했네.’
어쩌면.
자신이 괜한 우려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며 미소를 짓는데.
“중단···시킬까요?”
한 번 더 물어오는 직원을 향해 그녀는 고개를 저어 보였다.
“아뇨, 그대로 가죠.”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저기 서 있는 박찬영이라면, 그 이상을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으니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