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51
51. 뒷정리
나는 브리기트를 천막으로 데려갔다.
몇몇 용병들과 기사들이 음흉한 얼굴을 한다.
그들은 나와 브리기트를 보며 박수를 친다. 파이팅 포즈도 보였다.
“쓰읍!”
놈들을 보며 내가 인상을 쓰자 후다닥 도망간다.
브리기트는 살짝 붉어진 얼굴로 내 손에 이끌려 천막 안으로 순순히 들어갔다.
“오, 오빠!! 그게 무슨 소리야! 공주가 나타났다니?!”
천막 안에 있던 아스카가 이해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내게 물었다.
“!!”
그러다 나와 함께 들어온 브리기트를 보더니 대놓고 정색한다.
“설마, 나를 버리고 저 여자를! 내가 뭐가 어때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은 여인의 모습 그 자체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앞으로 이 여자가…… 응?!”
아스카에게 브리기트를 소개시켜 주려 했는데, 브리기트가 상기된 얼굴로 옷을 벗고 있었다.
“……넌 또 뭐 하는 거야!”
어느덧 속옷 차림의 브리기트의 몸.
속옷 사이사이에 안타까운 학대의 흔적들이 보였다.
특히 배꼽 옆의 흉터가 눈에 띈다.
‘노예 낙인을 억지로 지운 흔적이군.’
그때 문득 뭔가가 생각이 날 듯 말 듯했다.
‘가만? 이 흉터…….’
하지만 나의 상념은 오래가지 못했다.
눈앞에 반라의 몸으로 얼굴을 붉히는 미녀가 있다.
“저를 품으려고 여기로 데려온 거 아닌가요?”
브리기트가 상기된 얼굴로 나머지 옷을 풀려고 한다.
머리가 새하얘진다.
브리기트의 말과 행동에 아스카의 얼굴도 새빨개졌다.
“이렇게 셋이서?! 뭐, 오빠만 괜찮다면야…….”
그리고 가동되는 아스카의 망상의 12차원.
스르륵.
아스카가 부끄러워하면서 마찬가지로 단추를 풀려 한다.
“이 색골들이 진짜!”
나는 양팔로 두 여자의 머리를 각각 감았다.
그리고 헤드록을 걸었다.
“끼에에에엑!!”
“꺄아아악!”
나는 속으로 군가를 부르며 헤드록을 걸었다.
천막 안에서 두 여자의 비명이 들렸다.
“역시 용병왕이군. 정력왕이라 해도 되겠어.”
“재림께서 저렇게 정력적이시니 자손 걱정은 없겠군.”
“크흠! 아한-제르다.”
밖에 있던 모두가 기쁜 얼굴로 한마디씩 했다.
그렇게 소동이 정리됐다.
아스카와 브리키트는 내 앞에 앉았다. 물론 둘 다 옷을 입었다.
“그러니까, 저 여자가 내 대역이라고?”
“저 여자라 하지 말고 지금부터 공주님이라고 해.”
“우리끼리만 있는 건데 왜!”
“넌 안 돼. 괜히 실수할 바엔 지금부터 습관을 들여.”
“치이.”
아스카는 대충 지금 상황을 이해한 듯 보였다.
국왕이나 고위 귀족 중 이렇게 대역을 두는 경우는 흔하거든.
‘안전하게 가자, 안전하게!’
몬스터 웨이브를 해결하고 든 생각은 안전제일! 이거 하나뿐이다.
“그나저나 공주님, 그 돼지랑 어디를 향해 가고 있던 것입니까?”
“나?”
내가 입을 열자 아스카가 말했다.
“……넌 이제부터 내 사촌동생이라니까.”
나는 헤드록으로 산발이 된 아스카의 머리를 다시 헝클어렸다.
“그게…… 이르덴 자작의 양아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어요.”
“……공주님? 저에게 하대를 하셔야지요?”
“아! 죄, 죄송…… 아니, 아니! 알겠다.”
진짜 공주나 가짜 공주나 둘 다 못 미덥다.
“흐음, 그 자작에게 양아들이 있다고요? 자세히 알 수 있을까요?”
“저도, 아! 나도 자세히는 모른다. 그저 수도 인근에서 양아들과 만나기로 했고 그 양아들과 나를 결혼시킬 거라고…….”
“양아들은 공주님에 대해서 어디까지 알고 있고요?”
“내 기억으론 보안을 지키느라 양아들에게까지도 비밀을 지켰던 거 같다. 아예 내가 공주라고 믿게 만들려고.”
그 비단 돼지가 생긴 것과 달리 잔머리는 잘 굴리는 듯싶었다.
“수도 인근이라.”
최종 목적지 방향이다. 자세한 위치는 알려 주지 않은 듯했다.
부디 그 양아들이란 놈과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괜히 복수라고 귀찮게 달라붙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불안한 예감은 대체로 맞아떨어지지.
‘과거는 대충 견적이 나오니 쓸데없이 물어볼 필요는 없겠지. 상처만 줄 테니.’
브리기트의 언행부터 시작해서 아까 봤던 학대의 흔적을 보면 바보라도 알 수 있다.
뭐, 확인할 건 대충 확인했다. 할 일도 많으니 일어나야지.
“그럼 저는 전장 정리를 해야 해서 가 보겠습니다. 저 없는 동안 서로 알아 가도록 하세요.”
여자끼리의 대화가 어떤 식인지 모르겠지만, 서로 친해지면 나쁠 게 없지.
“우리 진짜 공주님께서는 내가 없을 때도 가짜 공주님께 예를 갖춰 봐.”
나가기 전에 아스카에게 다시 한번 경고를 날렸다.
“가짜 공주에게 시녀 노릇 시키다가 걸리면 엉덩이에 불날 줄 알아!”
‘어, 엉덩이? 불?!’
내 말에 브리기트의 얼굴이 붉어진다.
“내가 그렇게 생각이 없는 줄 아냐!”
아스카도 창피한지 발끈했다.
“만약 저 말괄량이가 이상한 짓 시키면 절대 하지 말고 내게 말하세요, 공.주.님.”
“아, 알겠다.”
브리기트의 대답을 들은 로니아드는 바쁜지 휙 하니 밖으로 나갔다.
“잉, 벌써?!”
“왜 이리 빨리 끝났습니까?”
“분명 소리는 컸는데?”
“재림이시여! 렌슬렛의 영약이 좋다는데 구해 올까요?”
“아한-제르다.”
그가 나가자마자 밖에서 이런 말들이 들렸다.
퍼억, 퍽!!
곧이어 찰진 구타 소리가 들렸다.
살벌한 구타 소리를 무시하고, 브리기트는 아스카를 힐끔 봤다.
그녀가 모시던 이르덴 자작보다 훨씬 높은 신분의 소녀.
나이는 자신과 비슷하거나 한두 살 어려 보인다.
분명 높은 신분이지만, 함께 헤드록을 당해서 그런지, 친근하게 여겨졌다.
그녀가 지금까지 모시던 귀족들처럼 두렵거나 소름 돋지 않았다.
오히려 동생을 보는 듯한 기분.
‘친해질 수 있을 거 같아.’
먼저 말을 걸어 볼까? 브리기트는 조심스레 아스카에게 다가갔다.
“저어…….”
브리기트가 입을 막 열려던 순간.
“야!”
아스카가 먼저 브리기트에게 당돌하게 쏘아붙였다.
“으응?!”
“뭐? 으응?! 참나! 주제도 모르고!”
아스카는 브리기트의 태도에 뭐라 하려다가, 이내 로니아드를 떠올리고는 관뒀다.
“그래, 그 태도는 네가 나를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대가로 눈감아 주마.”
아스카는 대신 다른 부분에 대해 선을 명확히 그으려고 했다.
“다른 건 내가 협조하겠는데! 너 우리 오빠한테 꼬리치면 죽는다.”
“오, 오빠? 누구? 그…… 로니 대장님을 말하는 거야?”
“그래! 아까 보니까 옷을 함부로 막 벗고, 그…… 주제도 모르고 오빠를 유혹하는데! 또다시 그러면 내가 가만 안 둘 거야!”
아스카는 그렇게 말하곤 가죽옷에 가려진 자신의 가슴을 본다.
그리고는 “오늘부터 우유를 매일 마시자!”라고 중얼거린다.
브리기트는 그런 아스카에게 용기를 내서 물었다.
“저기…… 로니 대장님이 오빠라는 거면, 혹시 로니 님도 왕족이시니?”
“당연하지! 오빠의 외모와 실력을 보렴. 비록 나와 배다른 남매지만, 나처럼 보통 고귀한 신분이 아니라는 거다!”
아스카는 그렇게 말하곤 자기만의 세계에 빠졌다.
“물론 언행은 좀 거칠기는 하지만, 오히려 그게 매력이기도 하고…….”
혼자서 붉어진 얼굴로 침을 질질 흘린다.
보아하니 하루의 대부분을 저렇게 망상하며 보내는 모양이다.
‘그렇구나. 하긴, 그런 분이 고귀하지 않을 리가 없지.’
그것도 일반 귀족이 아닌 왕족에 준하는 귀족이라고 한다.
‘나는 그분의 첩도 되지 못하려나?’
정실부인은 바라지도 않았다. 원래 대역 일을 잘하게 된다면, 보상으로 그의 첩이라도 되고 싶었다.
로니아드가 일반 귀족이면 조심스레 부탁해 볼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왕족이라면 힘들 것이다.
왕족의 후궁은 귀족에게서, 시녀와 첩은 평민 이상만 받으니까.
‘하다못해 시녀라도 되었음 좋을 텐데.’
자신 같은 여성의 삶 중에 가장 잘 풀린 것이 바로 자애로운 귀족의 시녀가 되거나, 아니면 첩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아스카가 말한 진실로 괜히 씁쓸해지는 브리기트였다.
* * *
샹타페 도시 사방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몬스터의 사체가 쌓여 있었다.
도시의 시민들을 전부 동원해도 치우기 힘들 정도다.
하지만 사람들의 얼굴은 밝다.
몬스터는 살아 있을 때는 큰 재앙이지만, 죽으면 값진 자원이 되니까.
그리고 그 자원의 최종 결정권자는 자연스레 내가 되었다.
성벽에 올라 전투가 끝난 전장을 둘러보았다.
모두 나의 눈치만 본다.
“후딱 결정하지. 샹타페에 전리품의 5할을 분배한다.”
“감사합니다!”
샹타페 도시의 피해가 컸다.
또 기여도도 높았다. 징집된 사내 중 대부분이 전사했고, 무엇보다 마법 포를 충전해야 한다.
따라서 절반 정도는 받아야 적자가 안 날 것이다.
“용병대에 2할을 분배한다. 수고 많았다.”
“감사합니다, 용병왕!”
살아남은 용병대에 2할을 분배했다.
도시가 아닌 일개 용병들이기 때문에, 2할만으로도 은퇴 자금이 될 것이다.
“1할은 제르다께 바친다. 팔라딘 아고르가 잘 관리해 주시오.”
“아한-제르다.”
교단에 1할을 분배했다.
크게 불만이 없어 보였다.
“나머지 2할은 나와 레인저 용병대가 가진다.”
“당연합니다.”
“용병왕께서 너무 욕심이 없으십니다, 하하하!”
“저희 교단에서 더 가져가셔도 됩니다.”
재림인지 화신인지 모르지만, 이럴 때만큼은 도움이 되는 게 사실이다.
다들 어떤 불만도, 시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논공행상이 끝났다.
성벽 아래서 다들 자신들이 받은 비율대로 몬스터의 시신을 나누고 있었다.
“도대체 저 많은 몬스터가 어디서 튀어나온 것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오스카에는 대륙의 8대 마경 같은 것도 없다.
내 물음에 옆에 있던 루키엘이 말했다.
“마법사들은 대규모 몬스터 웨이브를 악마 문과 같은 게이트 현상으로 추측합니다.”
“게이트?”
“네, 대륙의 각 마경에서 생성된 게이트를 타고 몬스터들이 한곳으로 집결하는 것이죠.”
루키엘의 말에 전에 읽어 본 책의 내용이 떠올랐다.
“그 이론이라면 읽어 본 적이 있지. 암흑시대에 마족들이 남긴 잔재였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입니다. 그 게이트가 무작위로 생성되는 것인지, 특정 유적이 있는 것인지도 아직 모릅니다.”
한마디로 눈앞의 만 단위가 넘었던 몬스터는 대륙 각지에서 기어온 몬스터라는 것이다.
실제로 상당수 몬스터는 오스카산 몬스터가 아니다.
열사의 사막이나 야만의 땅에서 볼 수 있는 몬스터였다.
“덕분에 10년간은 대륙 전체적으로 몬스터에 의한 피해는 크게 줄어들 것입니다.”
그 정도로 이번 오스카에서 발생한 몬스터 웨이브는 컸다.
“이번 몬스터 웨이브, 사실상 종말급이었지?”
“네, 고위 비행종이나 언데드류 몬스터만 없었을 뿐이지, 규모 자체는 2,500년 만의 종말급입니다. 정확히는 준종말급이겠군요.”
애초에 절망급 몬스터 웨이브도 100년에 한 번 나타날까 말까다.
몬스터가 그토록 많다는 렌슬렛도 기껏해야 악몽급 웨이브가 1년에 한 번씩 터진다.
그러고도 몬스터 천지라는 별명을 얻는 정도다.
한마디로 이번 몬스터 웨이브는 절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내가 아무리 원작 설정을 대충 넘겼다고 해도, 이 정도 사건을 기억 못 했다는 것은 이상한데?’
솔직히 오스카 왕국이 멸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재해다.
최소한 원작에서 어느 정도 언급이라도 되었어야 했다.
‘뭔가 바뀌고 있는 걸까?’
내가 모르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만큼 불쾌한 일은 없다.
“암흑시대엔 이런 것이 1년에 여러 번씩 있었다는데, 황금시대가 왜 망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루키엘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나도 공감이다.
“제르다가 강림하기 전까지 그나마 용들이 도와줬으니 버틴 거지.”
괜히 제국와 아르미다츠의 시조인 힌미르와 마누스가 고마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나저나 이제부터 바빠지겠어.”
내가 씨익 웃으며 말하자, 루키엘이 괜찮다는 얼굴로 답한다.
“어차피 부산물 분해 같은 것은 제가 속한 학파와 거래 중인 길드에서 할 겁니다. 제조도 대장님과 부사관 정도만 제가 합니다. 나머지는 저희 학파의 하급 마법사들에게 시킬 겁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전리품으로 대가를 많이 줘도 좋으니 최대한 빨리 부탁하지.”
“예! 안 그래도 지금 적염학파의 가용 인원 전부가 샹타페로 오고 있습니다.”
“그래, 그럼 다행이고. 그러면 그동안 내 기사 제복 좀 복구해 줄 수 있을까? 가능하면 업그레이드해 줘도 좋고.”
“알겠습니다.”
용병대장 일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굳이 기사 제복을 입지 않을 필요도 없었다.
이젠 몰래 다니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졌으니까.
내가 아는 원작의 루키엘이라면 믿고 맡겨도 된다.
오히려 기대됐다.
원작에서 그는 화속성 마법뿐만 아니라 아티팩트 제조에도 여러 업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럼 나도 인원 충원을 하러 가 볼까?”
전투로 레인저 용병대원 중 49명이 전사했다. 대부분이 백병전 중 사망한 병력이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괴멸하지 않은 게 기적.
그래도 처음 얻은 제대로 된 내 부하들이었기에 죄책감이 무겁다.
“레인저 용병대에서 곧 인원 충원이 있을 것이오! 관심 있는 용병들은 내일까지 이곳으로 모이시오!”
레인저 용병대 소속인 패가스의 외침에 샹타페에 있던 용병들이 웅성거렸다.
‘드디어! 드디어 좀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겠어!’
그런 용병들 중에는 붉은 머리에 예쁘장한 얼굴을 한, 왜소한 용병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