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104
104
가뜩이나 제국백과의 분쟁은 현재 진행 중이다. 지금 토드는 전투가 어떻게 끝났는지도 모르고, 기절한 상태.
깨어나 보면 어떤 상황일지도 모르는데, 자신이 직접 육성했던 암살자 캐릭터가 추격해오고 있다니.
“여러모로 골치 아픈 상황이군요.”
“그렇다네.”
더욱이 암살자는 누구보다도 유리몸인 마법사를 사냥하는데 특화된 클래스. 그중에서 일신의 무력이라곤 최악이고, 기동성마저 전무한 사령술사로선 도저히 상대하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아마 입을 뻥긋하기 전에 목이 달아나겠지.
“그나마 영혼 목걸이를 활용한 낚시가 생각해볼 만한 수단이었는데요.”
“절대로 안 되네. 그믐달마다 사용 횟수가 돌아온다고 했었나? 최소한 반년은 사용하지 말게.”
“그럼 꼼짝없이 죽어야 할 텐데요.”
“날 믿게. 적어도 전문가의 손에 깔끔하게 죽는 편이 나을 거야. 채무를 잔뜩 진 채 맞는 결말은 썩 좋진 않을 걸세.”
“경험자로서 하시는 말씀입니까?”
오드람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서 기분이 어떤가. 토드. 최악의 난관에 봉착하게 된 셈인데.”
“기분이 어떻냐고요?”
가만히 지금 상황을 헤아려보던 토드는 히죽 웃었다.
“점점 재밌어지네요.”
“재밌다고?”
사령술사가 입술을 훑으며 답했다.
“예, 뭐···. 일이 좀 수월하게 풀리는가 싶더니, 역시 쉽게 가봤자 재미가 없죠. 중간에 이런 변수가 있어야 흥미진진하지 않습니까.”
쉬운 건 재미없다.
토드의 표정을 읽은 오드람이 혀를 내둘렀다.
“새삼 이런 말 하기도 뭐하지만, 자네는 정말 제대로 정신이 나갔네.”
“제정신이었다면 아마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겁니다.”
이에 대해선 오드람도 동의했다.
“그랬을 테지.”
“이 세상은 재미있습니다. 저는 누구보다도 이 세상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었지만, 매번 알지 못했던 것들이 나타나고,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제 발목을 잡기도 하더군요.”
“그 모든 역경마저 자네는 재미로 승화한다는 건가? 비틀린 사고방식이로군.”
토드가 웃었다.
“전 그걸 모두 극복했을 때 진정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이 맛을 끊을 수가 없어요. 그건 쉬운 길로 돌아갔을 때 의미가 없습니다.”
빛이 꺼진 목걸이를 움켜쥔 채로 사령술사는 속삭였다.
“더 어렵고, 남들이 꺼리는 길일수록. 의미가 있는 법이죠. 오롯이 나만 이뤄낼 수 있다는 독보적인 성취!”
오드람은 기이한 광채가 어린 토드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그래서 저는 제게 주어진 역할에 누구보다도 만족합니다. 이 세상에 떨어지기 전의 제게, 세상은 아무런 역할도 주지 않았어요. 제겐 오히려 이 세상이 훨씬 합리적인 난이도입니다. 이게 제 소감입니다.”
대개 어려운 길을 자처해서 돌아가는 광인들은 그들의 뒤틀린 신념을 이해받지 못한다.
하지만 눈앞의 상대는 어찌 보면 또 다른 자신.
앞서나간 발자취, 혹은 재만 남은 잔재.
생각이 다를 수는 있더라도, 이해할 순 있을 것이다.
“그런가.”
오드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는 그 마음가짐을 잊지 말게.”
토드는 부유감을 느꼈다. 오드람의 목소리가 희미해진다.
“비록 나는 여기서 열의를 잃었으나, 자네라면 더 나아갈 수 있을지도.”
주변의 세상이 무너진다. 덩달아 오드람의 몸이 조금씩 무너지면서, 까마귀로 변해 날아갔다.
“···나는 될 수 있는 한, 자네를 도울 테니.”
의식이 부유한다. 그림 리퍼가 무심하게 손을 휙휙 내저으며 배웅하는 모습을 끝으로, 토드는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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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드디어 깨어났군!! 사령술사!】
머리가 울릴 정도로 요란한 이스라의 목소리. 새삼 현실로 돌아왔다는 체감이 확실하게 된다.
“···제가 얼마나 잠들어 있었나요.”
【사흘 동안 기절해있었네! 가뜩이나 낯빛이 창백한데, 점점 몰골이 주검에 가까워져서 산시아는 자네가 죽는 줄만 알았다네!】
분명 의식이 가라앉았던 건 정말 찰나였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은혜를 수령할 때 의식계로 하강하는 것관 시간 흐름이 다른 모양이다.
“그러니까 전투로부터 3일이나 지났다는 거죠?”
【그렇다네!】
“이젠 4일과 사흘도 잘 구분하고. 훌륭합니다. 이스라.”
【뭣···! 자네는 본인이 바보인 줄 아나!】
분통을 터뜨린 파멸의 기사가 건틀렛을 쥐려 하기에, 토드가 손을 들어 올렸다.
“어어, 저 환자입니다? 방금까지 의식 불명이었어요?”
【자네는 죽어도 다시 살아나지 않았나! 한 대만 때리게 해주게! 분명 괜찮을 거야!】
그녀가 철권으로 병사들의 얼굴을 부여잡고 터뜨리는 장면도 심심치 않게 봐왔는데, 정타로 맞으면 최소한 뇌진탕이다.
“흠흠. 그나저나 주변을 둘러보니 적어도 저나 당신이 제국백의 포로 신세가 된 것 같진 않군요.”
【여긴 크뤼거의 군영일세. 안심해도 좋네.】
“전투는 어떻게 됐습니까?”
투구 속 안광이 사그라든다. 이스라는 한숨을 푹 흘리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자네도 알다시피, 우측에서 보였던 뇌광은 속임수였네. 애초에 요술쟁이는 거기 있지도 않았고, 크뤼거의 지휘가 미치지 않은 좌측에 제국백의 주력 부대가 들이닥쳤네.】
이런.
토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정리하자면 크뤼거 측의 좌익에는 예비대를 비롯한 용병대 400가량, 중앙에는 토드와 이스라, 이스라를 위시한 망자들, 우익에는 크뤼거의 본대와 산시아가 배치되어 있었다.
제국백은 중앙에서 병력을 던져 토드의 시선을 끈 다음, 마법사의 속임수로 이스라는 떼어내어 우익으로 유도해놓곤, 정작 좌익을 공격한 것이다.
‘페이크에 페이크라니. 돌겠네.’
제국백의 병사들은 3주간 토드의 망자들에게 시달리며 지친 상태였고, 죽은 척후병들까지 보내면서 지휘 체계까지 흔들어놓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양측 병력의 수적 열세를 뒤집어 놓기엔 부족했다.
【예상은 했지만, 다른 지역에서 징집한 놈들은 제국백의 본대를 상대로 얼마 버티지 못하고 패주했다네. 우리가 제국백의 중앙 대열을 상대하는 사이, 이미 다른 예비대가 우익에 있는 크뤼거의 병력을 공격하고 있는 상태였고.】
낮게 신음한 토드가 물었다.
“크뤼거는 살아있습니까?”
【그의 목숨은 어떻게든 건졌네. 본인이 도달했을 때엔, 이미 그의 병력은 거의 궤멸된 상태였네만.】
“제국백의 신변은요?”
【제국백 역시 꼬리를 말고 뒤벵겐이라는 곳으로 물러났다네. 가능하다면 본인도 놈을 쫓고 싶었으나, 크뤼거가 그의 친위대와 더불어 정말 간신히 버티고 있더군. 그래서 추격을 포기했네.】
아마 군공에 집착하는 이스라의 성격상, 제국백이라는 사냥감을 포기하고 크뤼거를 구하러 가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스라는 토드를 내려다보며 읊조렸다.
【자네가 내린 지시이니 말이네.】
“···잘 했습니다. 제국백이 죽더라도 분쟁이 끝나진 않겠지만, 크뤼거가 죽으면 저희에겐 이 분쟁을 이어나갈 여지가 없었을 겁니다.”
사뭇 뿌듯한 기분이 들었는지, 이스라의 안광이 한결 밝게 타오른다.
【쯧! 여러모로 아쉬운 전투였네. 적어도 크뤼거가 거느린 병사들이 하나같이 겁쟁이 놈들만 아니었어도, 충분히 승기를 점했을 것을.】
침상에서 일어난 토드는 하마터면 바닥에 고꾸라질 뻔했다. 절그럭대는 소리와 함께 급히 이스라가 토드를 받쳐 들었다.
【이런! 무리하진 말게나!】
건틀렛에 붙잡힌 부위는 옷자락 너머로도 한기가 사무친다. 그래도 지금은 몸에 미열이 조금 있어서 그런지, 아이스팩이라도 갖다 댄 것처럼 기분 좋은 서늘함이다.
“···조금 부축해주시겠습니까? 크뤼거를 만나러 가봐야겠군요.”
【끙, 참으로 손이 많이 가는 자로다. 괜히 이러다가 기껏 깨어났는데 또 쓰러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
이스라는 투덜대면서도 토드를 부여잡곤 막사 밖으로 그를 이끌었다.
주둔지의 분위기는 초상집이 따로 없었다.
대략 눈으로 보이는 숫자만 헤아려봐도 반의 반조차 남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이 정도면 변경백력의 군사가 아니라, 지역 방범대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겠네.’
모닥불에 쪼그려 앉은 병사들의 얼굴엔 하나같이 음울한 빛이 맴돌았다. 당장 야영지에 주둔하는 병사들보다도 목책 너머 쌓아둔 전사자들의 시신이 많았다.
켄젤슐리텐 일가의 깃발이 걸린 군막 앞에는 지키는 보초조차 없었다. 토드가 서슴없이 들어서자, 머리에 붕대를 감은 크뤼거 홀로 지도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 하워드. 일어났나.”
“예. 살아남은 병사들은 저 밖에 있는 게 전부입니까?”
크뤼거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백도 피해를 입고 물러섰지만, 우리에겐 더 이상 분쟁을 지속해나갈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아.”
그가 중얼거렸다.
“나는 패배했네. 나의 과욕이 애먼 자들을 사지로 내몰았군.”
토드는 미소를 흘리며 되물었다.
“왜 패배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말하지 않았나. 그나마 얼마 없는 여력으로 모집한 병사들이 한 줌밖에 남지 않았어. 크리슈토프마저 죽었네. 요코프도. 나를 보좌할 이들마저 없는데, 어찌 이 싸움을 계속한단 말이야.”
멘탈이 완전히 나갔군. 크뤼거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어. 애초에 내겐 이 자리를 떠맡을 자격이 없었던 걸지도.”
그를 향해 토드가 나직이 속삭였다.
“크뤼거. 당신의 부인을 생각하셔야지요.”
사령술사의 시선은 크뤼거의 손가락에 얽힌 은반지를 향했다.
그가 변경백 휘하의 보병대대장이었던 시절에도, 주변의 모든 것이 엉망이었을지언정 반지만큼은 윤이 났다. 변경백의 후계자로 거듭난 지금도 변함없이.
“제국백의 제안을 받아들여, 에베르호펜을 넘겨준다면, 당신에게 남는 건 쾨흘링의 늪지대와 당신의 통치에 불온적인 뵐케입니다. 아마 잠시동안 목숨을 부지할 순 있을 겁니다.”
사령술사의 속삭임이 절박한 사내에게 파고든다.
“하지만 당신도 귀가 있다면, 제국의 수도에서 들려오는 소문을 알고 있을 겁니다. 장차 파란이 사방에 불어닥칠 테죠. 과연 허수아비나 다름없는 영주가, 그 풍파로부터 안전할 수 있을까요? 주변의 탐욕스러운 자들이 당신의 모든 걸 노릴 겁니다.”
얼굴을 찡그린 크뤼거가 응수했다.
“빌어먹을, 그래서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 네놈은 쓰러지면서 귀머거리라도 된 건가? 아니면 머리가 이상해진 건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크뤼거가 으르렁거렸다.
“아니, 원래 머리는 이상한 놈이었지. 시체를 가지고 장난질 치는 놈이 제정신일 리 없지. 애초에 이런 사술을 부리는 놈에게 기대한 내가 등신이었나.”
안광을 좁힌 이스라가 슬그머니 허리춤에 손을 올리려 하자, 토드는 그녀를 제지했다.
“나를 조롱하려는 의도였다면 성공적이었다고 말해주마. 사령술사. 내게 더는 나를 위해 싸워줄 병사는 남아 있지 않다. 나는 패배했다.”
사령술사가 웃었다.
“흐흐. 싸워줄 병사가 없다니요? 아, 물론 ‘살아있는’ 병사는 남아 있지 않겠군요.”
넌지시 탁자 위에 향로를 올린다. 홀연히 불어온 바람이 위태롭게 일렁이던 촛농의 잔불을 꺼트리고, 향로에 맺힌 녹색 불빛만이 군막을 밝혔다.
“아직 병사는 많습니다. 크뤼거. 그리고 그들은 뼈마디가 바스러질 때까지 당신을 위해 싸울 겁니다.”
스스스···.
향로에서 흘러나온 연무가 탁자의 의자들을 채운다. 인지를 초월한 광경에 크뤼거의 동공이 확장됐다.
“그들은 산 자들과 달리, 목숨에 미련이 없습니다. 도중에 도망치지도 않을 거고, 사기가 꺾여 전의를 잃거나, 배신하지도 않겠죠.”
어느새 군막 안은 이전처럼 빈자리 없이, 모두가 착석했다. 흐릿한 형체들은 또렷이 눈을 뜨고 크뤼거를 응시했다.
유령들을 목격한 크뤼거는 자신의 얼굴을 부여잡았다.
“아, 아아···!”
“게다가 크리슈토프는 영가가 되어서도 싸울 의지가 강해 보이는군요. 그만큼 자신이 지킬 고향 땅에 대한 미련이 짙은 것 같습니다.”
휘청이던 크뤼거는 의자에 앉지도 못하고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토드가 그에게 다가서자, 크뤼거는 몸서리쳤다.
“크뤼거. 당초에 크리슈토프를 보내, 슈피어슐로트의 성채를 내어준다고 했었죠.”
토드가 미소를 흘렸다.
“계약을 갱신합시다. 제게 작위를 하사하세요. 성채뿐만 아니라, 그 일대 토지의 권리까지도 위임하는 겁니다.”
망령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크뤼거는 경기를 일으켰다.
“그렇다면 형체 없는 자들과, 육신만 남은 이들. 모두가 당신을 섬길 겁니다. 싸울 병사는 충분합니다.”
대신 이들의 눈물과 피의 무게는 오롯이 토드가 감당해야 할 것이다. 그에 대해선 구태여 부연 설명을 하진 않았다. 어차피 크뤼거는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나한테, 나한테 굳이 이들을 보여주는 이유가 뭔가? 허락을 구할 필요도 없지 않나? 네가, 그냥 내키는 대로 불러내면 될 것을···!”
“오, 그러면 안 되죠. 도장은 의례적으로 찍어대는 문서에만 필요한 게 아닙니다. 하물며 목숨을 쥔 약속이라면, 적법한 절차가 동반되죠.”
토드는 품에서 계약서와 단검을 꺼내 들었다. 향로에 칼날을 달군 토드는 크뤼거에게 날을 내밀었다.
“피로 맹세하세요. 죽은 아군뿐만 아니라, 죽은 적들의 육신조차 일으키는 것에 대해 승인하겠노라고.”
“그 대가로 성채와 작위를 받아내겠다는 건가.”
“세속의 지위는 제국에 뿌리내리는 이상, 필요한 형식이니 갖추는 겁니다. 그 땅은 망자들의 넋을 달래기 위한 위령소로 봉헌할 생각입니다.”
한때 이리공이 다스리던 성채는 죽은 자들의 추도가 지속되는 공간으로 거듭날 것이다.
흑색 학파의 재건.
자신에게 부여된 사명.
토드는 언제고 잊지 않았다. 여태까지의 여정은 이를 본격화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
‘네크로폴리스. 사령술사들의 거처를 다시 세운다.’
돌이켜보면 아부지가 세 가지를 강조하셨더랬지.
내 하는 일은 하지 말아라. 공부해라. 때려죽여도 보증은 서지 마라.
이를 어쩌나. 그중 두 가지는 글러 먹었고, 이제는 자기가 보증을 강요하는 입장이니.
‘죄송합니다. 아부지. 아무래도 이번 생에 효자 되긴 글러 먹었나 봐요.’
피로 물든 크뤼거의 손가락이 계약서에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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