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127
127
나만의 성을 짓자.
당초엔 슈피어슐로트를 중축할 계획이었지만, 살점 거인의 행동을 보곤 생각이 바뀌었다.
“대작, 당신은 얼마나 큰 돌을 들어 올릴 수 있습니까?”
【우워어!! 대자악, 강하다! 바위도 쉽게 든다!】
검증을 해보니 거인은 0.5톤 정도의 무게까지 거뜬히 들어 올릴 뿐만 아니라, 어깨에 짊어진 채 자유자재로 돌아다닐 수 있었다.
‘거인을 쓰면 따로 기중기를 들여올 필요도 없겠어.’
무거운 자재를 나르려면 기중기는 필수다.
하지만 기중기를 만들려면 도시에서 공학자들을 고용해야 하고, 고정된 위치에서만 운용할 수 있다.
그에 비하면 거인을 운용하는데 드는 비용은 토드의 마력뿐.
“당신에게 할 일이 생길 것 같군요.”
【내가 할 일?】
“네. 오로지 저의 대작품인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토드의 부추김에 거인이 눈자위를 반짝였다.
【우워! 대작만이 할 수 있는 일! 무슨 짓을 벌이려는 거냐! 궁금하다!】
그는 주변의 돌탑을 가리켰다.
“당신이 쌓은 것들보다 더 큰 걸 지을 생각입니다. 돌도 많이 필요하겠죠.”
【더 큰 돌! 많이! 아주 좋다!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다!】
살점 거인은 의욕에 가득 찬 눈치였다.
토드는 즉시 휘하 망자들을 퍼뜨려 대대적으로 슈피어슐로트 성채 인근의 지형을 수색했다.
크뤼거가 자신에게 봉역으로 하사한 땅은 성채를 기준으로 멜다비어 주의 북부다.
‘이리공의 성채는 협곡 사이에 있어 방어에 용이하지만, 근처에 수원이 없어.’
식염수가 아니더라도 사령술사는 많은 물이 필요하다. 방부제를 만드는데 필수적인 데다가, 염습을 행할 때도 시신을 닦으려면 물이 필요하다.
토드가 은거하던 시절, 하수구를 선호했던 건 몸을 숨기기에 적합한 장소인 동시에, 물을 구하기 쉬웠던 탓이다.
그땐 오수를 사용하느라 악취나 부패까지 신경 쓰기 어려웠으나, 이젠 사정이 달라졌다.
토드는 하수인들이 발견한 후보지들을 둘러봤는데, 죽은 자들의 안목이 어디 가진 않는지 온갖 기상천외한 장소들이 튀어나왔다.
산꼭대기나, 트롤이 머물렀던 동굴, 늪지대, 버려진 유적 터 등, 나름 괜찮은 곳도 있었으나, 토드의 성에 차진 못했다.
그렇게 일주일간 드넓은 멜다비어 북부를 헤집고 다닌 끝에, 비로소 토드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오호.”
뒤로는 알레상 강의 지류가 완만하게 굽이치며 지나가고, 앞에는 완만한 능선과 야트막한 산이 감싸는 지형이었다.
어찌 보면 배수임산, 명당의 조건을 완전히 거스르는 곳이었는데, 강의 물기로 피어오른 습기가 고지대에 가로막혀 향시 안개가 짙게 깔려있었다.
사령술사는 흡족한 미소를 흘렸다.
“여기로 합시다.”
토드의 결정에 이스라가 우려를 표했다.
【허나 토드, 기사도 전집에 따르면 여긴 거주하기엔 그리 적합해 보이지 않네.】
“기사도 전집에서 성채의 입지 조건에 대한 내용도 다룹니까?”
간만에 자신의 박식함을 뽐낼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는지, 이스라는 안광을 번뜩이며 외쳤다.
【물론이라네! 무릇 기사라면 성에서 지내야 하는 법! 축성술에 대한 간단한 지침도 실려있는데, 방어용 요새면 모를까, 거주도 겸하는 공간이라면 가급적 볕이 들지 않는 음지는 지양하라고 가르치네! 본인이 보기에 이곳은 흉당일세!】
이것도 어디서 들어본 듯한 내용이다.
관상학부터 풍수지리까지. 대체 기사도 전집에 실려있지 않는 내용이 뭘까.
아니, 곰곰이 생각해보려다가 말았다. 어차피 사람 사는 곳이 거기서 거기니, 비슷한 지식이 전래되는 게 그리 이상하지도 않은 걸까.
“흉당이라 함은 음기가 짙게 서린 곳을 일컫는 것이겠지요.”
【그렇다네!】
토드는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당신이 간과한 게 하나 있습니다.”
【본인이 놓친 부분이 있다고!】
“어차피 여기서 지낼 거주민의 대부분은 망자일 겁니다. 볕이 좋으면 망자들이 기거하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지요.”
이스라가 투구를 때렸다.
【아뿔싸! 살아있는 인간의 기준으로 생각했군.】
문득 자신의 실책을 인정하려던 이스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헌데 자네를 비롯해 자네의 제자도 앞으로 여기서 지내지 않겠나? 허면 자네들은 어쩌고.】
토드는 안개가 서린 강기슭을 가리켰다.
“마찬가지로 이렇게 축축하고, 음침한 곳이야말로 사령술을 함양하기에 적합한 터입니다.”
어째 미래에 지낼 곳의 환경이 빤히 그려지는 가운데, 산시아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스승님. 그래도 제 방은 가급적이면 상층부로 부탁드릴게요.”
토드는 빙긋 웃었다.
“아! 잘 공간은 당연히 위층에 마련해야겠죠. 물론 향시 수련이나 염습을 진행할 영안실, 납골당, 화장장은 지하에 짓겠지만요.”
가뜩이나 하얀 산시아의 얼굴이 더 창백해졌다. 그녀로선 정말 이 길을 선택한 게 맞는지, 갈등이 생길 것만 같았다.
마르커스도 의구심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
【지하를 파 내려가겠다고? 가뜩이나 습기를 감당하기 어려울 텐데, 그럼 시신들의 부패는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냐.】
토드는 향로를 흔들어 보였다.
“저에게도 다 생각이 있지요.”
호언장담한 토드는 일행을 이끌고 언덕을 내려갔다. 강기슭의 중심부에 다다라 토드는 하수인들을 부려 작은 돌담을 쌓았다.
간소하게 마련된 제단 위, 향로를 올려둔 사령술사가 나직이 읊조렸다.
“미천한 하인이 그대를 부르나이다. 만물의 어머니, 모든 생명의 종점에서 웅크리고 계신 분.”
강변에 무성히 자라난 갈대들이 천천히 흔들린다.
“그간 당신의 신자들은 오래도록 세간의 박해를 받아왔고, 마땅한 거주지도 없이 고난한 유랑 생활을 전전하며 간신히 흑색 학파의 명맥을 이어왔나이다.”
바람결에 사각거리던 갈댓잎들의 동요가 점점 거세졌다. 희미하게 일렁이던 향로의 불빛이 요사스럽게 타오르며 춤추고, 희미한 소음에 불과하던 바람 소리는 선명한 속삭임이 되어 사방에서 아우성쳤다.
양팔을 벌린 사령술사가 크게 외쳤다.
“허나 기뻐하소서! 오늘날에 이르러, 비로소 흑색 학파는 잔해로부터 일어설 기틀이 바로 섰나이다!”
정말 오래 걸렸다.
관에서 깨어나, 첨단 문명에 살던 현대인이 한 명의 사령술사로 거듭나고.
의지하던 스승마저 심문관들에게 잃고, 길잡이 없이 홀로 남겨졌을 때.
아직 토드의 권능이 미력하여 어머니조차 도움을 줄 수 없었던 막막한 시절.
뒷골목과 하수구를 오가며 겨우 살아남고, 사람들에게 쫓기며 6개월 단위로 지역을 넘나들며.
시대가 자신을 필요로 하는 때가 오기까지 버텼다.
─존버는 성공했다. 인내의 과실은 이토록 달다. 토드의 표정엔 희열이 넘쳐 흘렀다.
“본디 대지는 누구에게도 머물러 있지 않으나, 필멸자들의 세상에 바로 서기 위해선 우리가 내세의 규율을 따르듯이, 필멸자들의 규칙을 따라야 하는 법입니다. 저는 이 일대를 다스리는 군주로부터 권역을 하사받았나이다.”
이제 자신은 변경백으로부터 체포면책권을 부여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세속 봉신인 셰우드 남작이며, 자유도시 판가우와의 협력 관계를 구축했으며, 나아가 서부 대교구와의 관계도 개선했다.
게다가 북부에 뿌리내리고 있던 사령술의 맥도 해방되면서 추후 세상엔 사령술의 재능을 개화할 이들이 늘어날 것이다.
모든 기틀이 갖춰졌다.
향로에서 흘러나온 녹색 향연이 주변의 안개와 뒤섞여 운무를 그려냈다.
그 가운데 토드가 서 있었다.
이제 어엿한 흑색 학파의 수장으로서 그가 선언했다.
“이에 따라 저는 이곳에 흑색 학파가 발흥할 기반을 새로이 세우고자 합니다.”
무릎을 굽힌 사령술사는 자신의 팔목을 저며내어 소리의 서를 꺼냈다. 점점 향로에 맺힌 불길이 거세지고, 서책은 격렬하게 꿈틀거리며 불경한 읊조림을 쏟아냈다.
뒷걸음질 친 토드가 무릎을 꿇었다.
“당신을 경배하나이다.”
주변이 고요해졌다.
전조를 느낀 하수인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숙이고, 토드 곁에 있던 일행들도 덩달아 무릎을 꿇었다. 꿋꿋이 버티던 마르커스조차 권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군다.
“당신의 미천한 하인이 청컨대, 이곳에 당신의 축복을 바라나이다. 내게로 임하소서. 죽음의 여제, 누구보다도 공정하신 분.”
딸깍.
향로가 열렸다.
갈대들이 시들고, 흘러가던 강물마저 멈췄다.
불빛에 이끌려 윙윙대던 작은 미물들이 일제히 추락한다.
“오르카사시여.”
쇠퇴한 것들로부터 손가락들이 일어난다.
뒤얽힌 손가락들은 일제히 토드를 가리켰다.
사방에 흐릿한 연기가 가득해,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가운데,
···8개의 눈이 뜨였다.
─나의 하인이여.
나지막한 미성이 울린다.
“예, 제가 여기 있나이다.”
창백한 손가락이 위로 뻗은 사령술사의 손을 어루만졌다.
─아주 잘해주었다.
손끝에 치미는 한기에 혈관마저 얼어붙을 것만 같다. 그럼에도 사령술사는 한없이 충만한 자애를 느꼈다.
“아닙니다. 어머니. 한낱 피조물에 불과한 저로선, 고귀하신 분의 인도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이르지도 못했을 겁니다.”
아아, 어찌나 어머니는 자비로우신지.
신격이 직접 강림하면 피조물들은 살아남을 수 없다. 짙은 장막을 드리워 자신의 모습을 감추신 건, 피조물을 위한 세심한 배려일지라!
─한때 나를 따르는 추종자들이 이 땅에 융성했던 때도 있었으나, 그들의 폐단이 극에 달하여 나는 직접 파종을 거두었느니라.
토드는 단호하게 답했다.
“이제 제가 학파를 이끄는 이상, 선대의 과오는 없을 것입니다.”
─피가 아닌, 눈물의 길로 나아가겠다는 것이더냐.
어머니 앞에서 사령술사가 고개를 저었다.
“제가 가고자 하는 길은 어느 쪽에도 치우쳐지지 않은 방향이나이다. 약자들에겐 자비를 베푸나, 악인들은 엄정히 징벌할 것입니다.”
대답을 헤아리던 어머니가 속삭였다.
─균형의 길이라. 그 또한 쉽지 않은 역경일 터. 너는 자비를 베푼 적대자들에게 위선자라 불릴지도 모르며, 호의들 베푼 이들로부턴 모멸을 살지도 모른다.
토드는 미소를 흘렸다.
“설령 저를 위선자라 부를지라도, 세평이 두려워 선의를 행하지 않음은 더한 죄악이나이다.”
연녹색 눈동자가 호선을 그리며 되묻는다.
─뻔히 고난이 보임에도, 정녕 중도를 자처할 셈이라?
“여태껏 제게 역경과 고난이 없었던 적이 있었던가요. 그를 기꺼이 감내하며 극복하는 게 제 즐거움이지요.”
싸늘한 양손이 토드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너는 기꺼이 위험을 극복하고자 하는구나.
자상한 손길이 떠나간다.
─부디 그 고결한 마음을, 계속 견지해나가거라.
향연이 걷혀나가고, 손가락들이 시든다.
─토드. 나의 충복아.
···강물이 다시 흐른다.
어느새 제단 위에 올려져 있던 향로는 어두운 광택이 흐르는 화로의 모습으로 변모해 있었다.
그 앞에 놓인 소리의 서가 저절로 책장을 넘기더니, 공백으로 가득한 면을 보여줬다.
「이곳의 이름을 정하라.」
글귀를 바라보던 토드가 중얼거렸다.
“네크로폴리스. 이곳은 장차 사령술사들의 아늑한 요람이 될 것이며,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기거할 처소가 될 것입니다.”
사각, 사각!
「네크로폴리스」
핵심 시설: 영혼의 화로(1급)
부가 시설: 없음
방어 시설: 없음
총평: ☆
(형편없구나.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노라. 부랑자들조차 드나들 만큼 방어가 취약하며, 망자들이 오래 머물기엔 부적합하고, 배회하던 영가들조차 방문을 꺼린다. 더욱 정진하여라.)
별점 단 반 개.
어머니의 가차 없는 평가였다.
‘쩝··· 그래도 입지를 보곤 칭찬해주실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너무 기고만장해하지 말라는 뜻이시겠지. 아무렴.
그래도 이제부터 시작이니 너무 풀죽을 것도 없었다.
“자, 이제 슬슬 작업을 시작해볼까요?”
토드의 말에 긴장하고 있던 이스라는 급히 주변을 둘러봤다.
【시작이라니. 이게 다인가?】
분명 무시무시한 존재가 일대를 휩쓸고 지나갔는데, 여전히 주변은 소금기 가득한 허허벌판이었다.
“이게 다라뇨. 뭘 기대하신 겁니까?”
이스라의 안광이 흔들렸다.
【아니, 그야···! 무려 신께서 들리셨으니, 막, 땅에서 뼈가 치솟고, 지하의 보화들이 솟구치며 으리으리한 건물들이 단숨에···!】
“하하. 이스라. 너무 동화에서 나올 법한 광경을 기대하신 게 아닙니까. 무릇 흑색 학파라면 기초부터 차근차근 지어 올려야지요.”
낙담한 파멸의 기사가 중얼거렸다.
【젠장, 흙색 학파였나···.】
“어허! 불경한 말은 제가 용납 못 합니다?”
개인적으로 토드는 오픈 월드 게임에서 중요시하는 요소가 3가지 있다.
비선형적 진행, NPC와의 상호 작용,
‘그리고 하우징.’
그런 의미에서 토드는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수레를 지고 온 망자들이 발을 질질 끌며 강기슭에 모여든다.
그래, 기왕 내 집 마련을 실천할 거라면 오롯이 나만의 입맛대로 짓는 게 속 편하지, 남의 성채 위에 쌓아 올리는 건 용납할 수 없다.
게다가 영혼의 화로가 타오르는 지역에선 하수인에 대한 마력 점유량과 사령술 효율이 증폭된다.
“토대 공사부터 시작합시다.”
현재 토드의 수중엔 먹이거나, 재우거나, 월급을 줄 필요도 없는 인부들만 200구가 넘는다.
인력을 기부해준 제국백과 방백에겐 고마울 따름.
사령술사의 지휘하에 네크로폴리스 준공의 장엄한 첫날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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