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128
128
성채 하나를 짓는 데 들어가는 금화는 1166닢 정도. 그것도 인건비는 제외하고 공사 기간을 3년 정도로 산정했을 때의 비용이다.
가뜩이나 제국의 혼란스러운 정국으로 인해 화폐 가치가 급락했는데, 토드의 수중에 있는 재산으론 빠듯한 상황.
‘최대한 하수인들을 활용해야 해.’
살점 거인은 하위 망자들이 들지 못하는 육중한 자재들을 옮겼다.
쿵!
【우워어! 여기다 쌓으면 되냐!】
“역시 제 대작입니다! 엄청난 힘이군요! 강가에 쌓인 것도 믿고 부탁드리겠습니다.”
신이 난 거인은 어깨를 거들먹거렸다.
【알았다! 대작한테 맡겨라!】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느니, 몸을 움직이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걸까.
거인을 부리는 데엔 큰 리액션과 약간의 마력이면 충분하다.
여러모로 아이러니한 광경이었다. 병기로 활용하기 위해 만들었던 피조물이 창조에 쓰이고 있으니.
“루데신트.”
토드의 부름에 해골이 되어버린 전격 마법사는 바위를 향해 창을 치켜들었다.
콰쾅!!
벼락이 번뜩이고, 대기하고 있던 망자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하나씩 돌조각을 짊어진 시체들은 특유의 굼뜬 걸음걸이로 내성의 기초를 쌓아 올렸다.
유틸성이 높은 전격 마법사의 특성상 요긴하게 써먹을 구석이 많았다.
이따금 애매한 크기의 자재는 점멸로 옮긴다던가, 발을 헛디뎌 구덩이에 떨어진 망자들을 순간이동으로 끄집어내는 등, 매번 전격 마법사의 섬광이 번쩍였다.
토드의 조율 하에 성채의 기반이 될 토대는 착실하게 쌓고 있지만, 어딘가 어설픈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래도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하겠는걸.’
견고한 것만으론 부족하다. 토드가 생각하기에 네크로폴리스는 사령술사들의 도시에 걸맞는 위엄도 필요했다.
이에 따라 토드는 판가우로 서신을 작성해 라즐에게 신뢰할 만한 기술자들을 요청했다.
이튿날 마차가 도착했는데, 토드가 익히 아는 얼굴들이었다.
“흠, 여기에 성채를 짓겠다고?”
일찍이 판가우에서 이스라의 갑옷을 수선해줬던 드워프 대장장이, 가우트리트와 그의 조수, 파스티다였다.
“그렇습니다. 일단 토대는 마무리가 되었는데, 그 위로 쌓아 올릴 세부 사항에선 장인의 심도 있는 식견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미간을 좁힌 가우트리트는 그간 망자들이 작업한 토대를 훑어내렸다.
“나름 기반은 튼튼하게 다져놓았구만! 그에 비하면 쌓아둔 흉벽은 형편없어. 누가 저걸 설계한 거야?”
“흉벽은 제 기사가 제안한 것을 재현한 것입니다만···.”
가우트리트는 가차 없이 혹평했다.
“너무 낡았어! 요즘 누가 저런 각진 형태로 벽을 짓나? 마법사의 주문이나 포격을 견디지도 못하는 건 둘째치고, 수성 측에서 사격을 가할 총안도 부족해!”
드워프 대장장이는 공사 현장을 돌아보며 조목조목 부족한 구석들을 지적했다. 토드로선 미처 생각지도 못한 디테일이었다.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것만 고려할 게 아니라, 마법이나 열병기에 대응해서 지어야 하는구나.’
성채의 근간이 될 설계 자체를 통째로 갈아엎어야 할 만큼 중대한 문제였다. 그나마 기초 공사를 막 진행하던 참이라 다행이었다.
임시로 마련된 지휘소에 앉은 가우트리트는 한숨을 흘렸다.
“라즐이 또 성가신 일을 시키는구만··· 설마 내가 사령술사의 성을 지을 줄은.”
빙긋 웃은 토드가 손짓하자, 망자들이 금화가 가득 담긴 자루를 내려놓았다.
“보수는 섭섭지 않게 챙겨드리겠습니다. 거기 든 건 모두 아젠툼 표준에 해당하는 금화입니다.”
냉큼 자루를 낚아챈 두 드워프는 무게를 헤아려보더니, 일일이 동전을 깨물어보곤 누가 훔쳐갈세라 저들이 끌고 온 마차에 넣어버렸다.
어찌 보면 계약자 앞에서 무례한 태도로 볼 수 있지만, 사령술사는 드워프들의 속물적인 모습을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저런 종족이니.
“그 정도면 선수금으로 충분할까요?”
수염을 씨근거리던 가우트리트가 입을 열었다.
“이거 받고, 완수금으로 2배 줘. 이것도 라즐의 인맥을 고려해서 쳐준 값이야? 우린 판가우에서 나름 비싼 몸이라고.”
토드의 눈이 가늘어졌다. 감내할 만한 지출인가?
‘다른 곳에서 이만한 기술자를 돈 주고 데려오기도 쉽진 않겠지.’
가뜩이나 사령술사로서 악명을 감안하면 자신의 의뢰 자체를 거부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거다.
“좋습니다. 대신, 망자들은 야간에도 작업하는 만큼, 여러분이 교대하면서 진척도를 감독해주세요.”
“아니, 저 시체들은 쉬는 시간도 없나?”
토드는 어깨를 으쓱였다.
“망자들이 잠을 청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만큼 공사도 단기간에 완료될 겁니다.”
“공사 기간이 늘어지지 않는 건 좋다만, 그렇다고 꼭두새벽까지 일하라니···.”
난색을 보이는 가우트리트를 향해 토드가 고개를 기울였다.
“제가 듣기로 드워프 분들이 체격이 왜소할지언정, 체력만큼은 야무지다고 들었는데요. 꺽다리 인간들에 비해 튼튼하지 않습니까.”
자존심을 긁는 발언에 가우트리트가 발끈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잠도 안 자고 일을 할 수 있는 건 아냐!”
토드가 깍지를 낀 채 읊조렸다.
“3배. 야간작업 수당까지 통틀어 3배로 얹어드리겠습니다.”
“부족해. 4배는 모를까.”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지출입니다. 3배 반.”
“받아들일 수 없네. 4배!”
사령술사와 대장장이가 팽팽하게 맞섰다.
“여기엔 나와 파스티다 뿐만 아니라, 우리 조합원들도 와 있어. 적어도 이 일을 맡는 동안 우린 판가우에서 지정 의뢰를 받기 어려울 텐데, 노고에 맞는 보수가 필요해.”
일꾼들의 보수는 주마다 지급하는 게 제국의 불문율이다. 공사 기간이 줄어들면 토드가 지출할 금화의 총량도 줄어들겠지만, 가우트리트의 요구를 수용하면 공사 대금의 대부분을 소진한다.
“3배, 거기에 더불어 멜다비어 북부의 채석장과 광산의 채굴권을 절반 보장해드리겠습니다.”
드워프의 눈동자가 탐욕스럽게 번뜩였다.
대게 자기 가문만의 영산이 있는 드워프들과 달리, 도시에 정착한 드워프들은 세력 다툼에서 밀려난 이주민이라, 자기 소유의 광산이 없다.
저들이 대장장이나 보석 세공, 조소, 건축 따위에 종사하는 건 그나마 광물을 만질 수 있기 때문.
드워프들이 재산에 집착하는 것도 언젠가 자신만의 광맥을 보유하기 위함이다. 저들은 제 손으로 직접 흙을 파내지 않고서야 성이 차지 않는 족속들이다.
토드는 게임에서 서술된 드워프들의 욕구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가우트리트가 팔짱을 끼었다.
“자네에게 그럴 권리는 있고?”
토드는 품에서 크뤼거가 내준 서임장을 꺼냈다.
“저는 켄젤슐리텐 변경백에게서 일대의 봉토를 하사받았습니다.”
문서를 살핀 드워프가 중얼거렸다.
“···멜다비어의 광산들은 채산성이 검증되지 않은 곳들인데.”
“채굴권을 10년간 보장해드리지요.”
“10년은 너무 짧아! 우린 인간보다 더 오래 산다고. 통 크게 30년으로 하세!”
이 땅딸보가 후려치기를 시전하네? 그런 식으로 나오겠다라.
“그럼 수당은 2배로 조정합시다.”
“이봐! 거기 뭐가 묻혔는지도 모르는데, 우리더러 위험 부담을 무릅쓰라는 걸로도 모자라, 보수까지 깎겠다니!”
“100년.”
토드의 제안에 가우트리트가 입을 꾹 다물었다. 사령술사의 속삭임이 이어진다.
“거기에 더불어 앞으로 저는 휘하 망자들을 무장시킬 장비들이 많이 필요합니다. 당신은 광산을 얻을 뿐만 아니라, 정기적으로 의뢰를 수주할 원천도 생기는 겁니다.”
이마를 좁힌 가우트리트가 다부진 손을 만지작댔다.
“좋네. 이 천하의 내가 혹할 만한 제안이었어. 사령술사. 하지만 자네가 죽으면 유명무실해지지 않나?”
“그렇다면 계약을 제 이름이 아니라, 흑색 학파로 명시하고 진행하시지요.”
“···자네가 전쟁을 대비하고 있다는 건, 천치라도 알 거야.”
고집으로 똘똘 뭉친 드워프의 눈동자에는 나름의 통찰력이 깃들어 있었다.
“성채를 짓고, 부하들을 모으는 건 그를 위함이겠지. 본격적으로 세력을 구축해야 앞으로의 전란에서 더 큰 기회를 잡을 테니 말이야.”
사령술사는 미소를 지었다.
“예. 맞습니다. 제게 투자하세요.”
너도 흑색 학파 코인에 탑승해라.
사령술사의 제안에 드워프의 태도가 신중해졌다.
“조만간 몰아닥칠 전쟁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제국의 근간을 뒤흔들어놓을 거야. 자칫 발을 헛디뎠다간, 곧장 파멸일 텐데? 라즐을 비롯하여 판가우 시의회도 가급적이면 발을 떼려 하는 눈치고.”
기관마저 다가올 하락장에 대비하고 있는데, 내가 뭘 믿고 개잡주에 투자하느냐?
“하지만 가우트리트. 당신도 알다시피, 백날 작업장을 차려놓고 의뢰를 받아봤자 그 돈으론 당신 세대에서 광산을 확보할 수 없습니다. 더 대계를 생각해보세요. 제가 아니라면 누가 이런 헐값에 채굴권을 매각하겠습니까.”
정직하게 돈 벌어서 부동산 산다는 건 허상이다. 리스크를 감수해야 리턴이 크다.
“게다가 전 쾨흘링에서 이리공을 상대로 승리했을 뿐만 아니라, 모이텐슈하임 방백과 베벨부르크 제국백을 상대로 압승을 거뒀습니다. 명백히 열세인 전황을, 순수히 저만의 힘으로 뒤집었죠.”
개잡주가 아니다. 이미 검증된 우량주다.
“이마저도 기반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가 거둔 업적입니다. 상상해보시지요. 앞으로 망자들의 도시에서 양성될 죽은 자들의 군대를! 정말 흑색 학파가 전쟁에서 패배할 거라 생각하십니까?”
바위틈처럼 갈라진 드워프의 미간이 잔뜩 구겨졌다.
불현듯 파스티다가 중얼거렸다.
“이거··· 우리가 자칫 막 태동하려는 악의 씨앗을 키워주는 거 아녀?”
토드는 빙긋 웃었다.
“악의 씨앗이라니. 그리 섭섭한 말씀을. 어차피 여러분과 제가 틀어지지 않는 이상, 저희를 적대하는 이들이 얼마나 쓰러지더라도 상관없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긴 하다만···.”
“흑색 학파의 명의로 채굴권 보장 100년. 보수는 2배 반. 거기에 휴식 시간엔 충분한 양의 흑맥주를 제공하도록 하겠습니다.”
수염을 만지작대던 파스티다가 수긍했다.
“그랴. 기왕 일할 거, 빡세게 한탕 하고 크게 법시다!”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지만.
드워프의 것은 더 했다.
결국 가우트리트는 사령술사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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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워프들이 합류한 이후, 본격적으로 네크로폴리스의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마구잡이로 올라가던 성벽과 구조물들에 제법 질서가 깃들더니, 하루가 다르게 그럴싸한 모습으로 쌓여 올라갔다.
‘무엇보다 강가에 자리를 잡은 이점이 상당해.’
강은 단순히 천혜의 방어 환경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건축에 필요한 자재들까지 조달할 수 있었다.
가우트리트는 토드가 모르는 건축 기술에 해박했는데, 특히 모르타르를 만드는 데 필요한 모래와 자갈 따위를 건축 현장에서 곧바로 구할 수 있는 건 획기적이었다.
‘알고서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가뜩이나 네크로폴리스는 강을 끼고 있어, 뗏목을 통해 운송비도 절감할 수 있었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주변이 온통 소금기 가득한 저지대인 데다가, 늪이 우거져서 경작은 불가능하다는 것.
하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식료품은 판가우에서 사 오면 되고.’
이곳엔 토드와 산시아, 열댓 명의 드워프를 제외하면 먹일 입이 없다.
인건비, 식비, 운송비가 사실상 중세뿐만 아니라 현대에서도 주요 지출원임을 생각해보면 엄청난 강점.
다만 봄의 중엽에 이르러 온난한 날씨가 이어질 무렵,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스승님. 어젯밤 탑을 짓던 중, 망자들이 추락해서 다섯 구가 파손되었어요.”
“이런, 어쩌다가요?”
“한 구가 발이 미끄러졌는데, 서로 발이 뒤엉켜 동시에 추락한 것 같아요.”
탄식한 토드는 무거운 눈꺼풀을 비비며 간이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유해들을 확인해보니 너무 높은 곳에서 떨어진 탓에, 수복할 여지조차 없이 사지가 산산조각이 난 뒤였다.
토드는 향로를 흔들며 그들의 넋을 애도했다.
‘걸어 다니는 시체들은 너무 반응성이 떨어져.’
아직 건물이 올라가기 전엔 발을 헛디뎌도 경미한 부상에 그쳤으나, 고도가 올라갈수록 망자들이 파손되는 빈도가 늘어났다.
거기에 파스티다가 코를 부여잡은 채 토드를 찾아왔다.
“점점 송장 냄새가 참을 수 없는 지경이오! 헝겊으로 틀어막고 있어도 옷에 다 배니, 머리가 지끈거리는군! 다른 조합원들도 난리가 아니야. 어떻게 해주지 않으면 다 앓아눕게 생겼소.”
방부제로 지연시키던 망자들의 부패가 한계에 달했다. 토드가 보기에도 건설 현장을 돌아다니는 하수인들의 몸에서 썩어 문드러진 국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토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슬슬 하수인들을 보강할 시기가 왔군요.”
그간 미뤄뒀던 은혜를 받기 위해 토드는 의식을 하강시켰다.
우선 레벨이 48로 상승하면서 제시된 대접 중엔 크게 와닿는 선택지가 없었다.
일단 마력 효율을 올려주는 지배력을 받아들인 뒤, 다음으로 49 때 받은 대접을 확인했다.
3개의 대접 중, 세 번째에 놓인 대접이 토드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황토색, 근간이 되는 ‘토대’를 상징하나니.
망자의 뼈로부터 살점을 발라내는 ‘송장 박피기’를 건설할 수 있다. 주의, 살아있는 생물은 넣지 마시오.
대접을 어루만지니, 뼈와 이빨로 만들어진 구조물이 거칠게 요동치며 송장을 갈아넣는 심상이 떠올랐다.
피와 내장이 사방에 튀기는 살벌한 광경이 지나가고, 깔끔하게 뼈만 남은 망자가 걸어나가는 모습이었다.
‘이거다.’
이 은혜를 받으면 일일이 망자의 살점을 바르는 수고를 덜게 된다.
즉각 대접을 들이켠 토드는 마지막으로 레벨 50 보상을 확인했다.
이번에도 검은 잔이 각각 양측에 놓여 있다.
왼쪽에 놓인 것은 ‘환원’.
이 땅을 떠나갈 때, 마땅히 받은 모든 것들을 돌려줘야만 하는 법.
자신이나 하수인이 처치한 시신으로부터 ‘생기 흡수’를 낭송할 수 있노라. 업을 획득하는 대신, 생명력과 마력을 회복할 수 있나니.
···그리고 오른쪽에 놓인 건, ‘ ’.
공란.
잔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당황한 사령술사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어머니, 실수하신 겁니까?”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다시금 확인해보니 글귀가 적혀있지 않은 것이지, 분명 잔은 가득 차 있다.
토드는 혼란스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