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158
158
“사람들은 자네의 권능만을 보고 천시하지만, 과인이 보기에 자네는 진정 의인일세! 자네가 내게 힘을 실어준다면─”
신이 나서 떠들던 베르나드는 급격히 말을 더듬었다.
“과, 과인이 잘못 들었나?”
토드는 빙긋 웃었다.
“전하께서 소인을 이리 높게 평가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울상을 지은 공왕은 설마 단칼에 거절하리라곤 예상 못 했는지, 발을 동동 굴렀다.
아이단이 입을 열었다.
“의외군. 특히 자네는 콘라트의 수하들이 벌여놓은 모의에 훼방을 놓지 않았나.”
“예, 전하께서도 알다시피 콘라트 대공은 휘하에 다수의 흑마법사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그들이 지상에서 벌이는 의식은 저로선 용납할 수 없는 해악이기에 저지한 것입니다.”
그가 팔짱을 낀 채 되물었다.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은. 사령술사와 흑마법사 간의 이권 다툼 때문인가?”
아이단의 추궁에 베르나드가 나섰다.
“바인만 대공! 셰우드는 그런 사람이 아니오. 그의 행적만 놓고 보더라도, 사익을 추구했다면 차라리 음지에서 영향력을 늘렸을 테지! 굳이 그런 수고스러운 고난을 자처할 필요가 있겠소?”
조금 열렬한 비호에 괜히 토드가 민망해질 정도였다.
베르나드의 뒤에 서 있던 엘프 시종, 메팔라가 말했다.
“전하. 바인만 공께서도 셰우드의 행보를 전해 들으셨으니 그를 의심하는 건 아니실 겁니다. 허나 전하께선 황제 선거를 앞두고 계십니다. 인사에 있어 신중하셔야 하지 않습니까.”
나름 의젓한 티를 내려곤 하지만 미숙한 면모가 엿보인다.
“그렇지···. 실례했소. 바인만 공.”
토드에 대해 열변을 토해내던 베르나드는 급격히 어깨를 움츠렸다.
헛기침한 아이단이 재차 말을 이었다.
“본인의 무지를 이해해주게.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보기엔 사령술사나 흑마법사나 매한가지 아닌가. 내가 궁금한 것은 그들의 배후에 콘라트가 있음에도, 자네가 맞서려는 저의일세.”
“흑마법사들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무저갱의 악마들을 지상에 불러내, 격의 상승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악마들은 명계의 틈새를 통로로 이용하여 강림합니다.”
장황한 설명이 와닿도록, 토드는 비유를 들어 풀이했다.
“말하자면 순리대로 흐르던 강물을 억지로 역류시키는 걸로도 모자라, 오물을 끼얹고, 모독하는 꼴이지요. 반면 흑색 학파의 강령은 망자들의 염원을 달래고, 영가들을 전송하는 것입니다.”
표정을 일그러트린 사령술사는 경멸을 담아 읊조렸다.
“저로선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번 뫼를렌푸르트의 참극도 마찬가지였지요.”
베르나드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럴 줄 알았소! 진정 그대는 숭고한 뜻에 따라 행동하는 영웅이었군!”
“올렌부르크 공, 조금 진정해보시오. 그토록 자네가 의로운 자라면, 어째서 교회가 자네를 비롯한 사령술사들을 이제까지 박해했단 말인가?”
토드는 쓴웃음을 흘리며 대꾸했다.
“아무래도 제 선대의 죄가 깊은 탓입니다. 과거 흑색 학파의 일부 지파는 흑마법사들과 동조하여 이 땅에 죽음을 초래하고자 하였습니다. 그에 따라 태양교단은 사령술을 엄히 금지하고, 관련된 지식을 말소했지요.”
아이단은 수염을 매만지며 깊게 시름했다.
“메팔라의 말마따나, 내가 자네의 의도를 의심하는 건 아니라네. 자네는 이미 에다리크 뿐만 아니라, 뫼를렌푸르트마저 구했으니. 그럼 자네의 고행은 그러한 사령술사들의 원죄를 대속하려는 일환이라 봐도 무방한 건가?”
“그렇습니다.”
베르나드가 불쑥 끼어들었다.
“허면 셰우드! 어째서 내 제의를 거절한 거요? 그대가 콘라트와 맞서고자 한다면, 과인이 몸소 도와주겠소! 그자는 만민들에게서 본 모습을 음험하게 감추고 있으나, 우린 콘라트의 실체를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콘라트와 황권을 두고 직접적으로 경쟁하는 것 외에, 아무래도 베르나드의 열정적인 성향상 콘라트의 행적을 용납하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어린 공왕은 강렬한 적의를 숨기지 않았다.
“크게 2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 아직 황제 선거가 남아있지 않습니까. 전하께서 소인을 등용하신다면 대외적인 평판에 악영향을 미칠까 우려됩니다.”
“하지만··· 뫼를렌푸르트의 군중들이 보내는 지지를 보지 않았소. 장차 그대의 행보가 널리 알려진다면, 이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거요.”
토드의 견해에 동의한다는 듯, 아이단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이 옳소. 셰우드의 행보와 별개로, 여전히 제국 내에서 사령술사에 대한 악명은 여전하지. 그의 명성이 널리 알려지려면 꽤 오랜 시일이 걸릴 거요. 시도우 대주교가 라이히슈타크 재소집을 선언한 만큼, 그의 등용은 시기상조라고 보오.”
이미 선대 황제가 오랫동안 병석에 앓아누웠던 만큼, 광대한 제국을 아우르는 통치자의 부재는 너무나 뼈아픈 일이다.
제국의 혼란을 종결짓기 위해 황금 옥좌엔 주인이 있어야만 한다.
“둘째로, 저는 흑색 학파가 제국의 일곱 마탑과 마찬가지로 독립적인 인가를 받기를 희망합니다.”
아이단이 딱 잘라 말했다.
“쉽지 않은 요구로군.”
토드가 히죽 웃으며 속삭였다.
“지금의 전하껜 다소 무리한 요청이지요.”
하지만 황제 자리에 앉은 뒤라면 어떨까?
그 속내를 알아들은 아이단이 신음했다.
베르나드가 작게 감탄하며 되물었다.
“셰우드. 그대는 나의 인가를 받아 흑색 마탑을 세우고자 하는 것이오?”
토드는 고개를 조아리며 답했다.
“그렇습니다. 전하. 사제들은 아버지 솔마르의 빛이 미치는 양지에서. 사령술사들은 볕이 들지 않는 그늘에서 어머니 오르카사의 뜻을 받드는 것. 그게 소인이 이 땅에서 이루고자 하는 소망입니다.”
흑색 학파의 중흥.
일찍이 선대 지파들은 정복자로 군림하기 위해 이 땅의 생명들을 적대했다.
하지만 자신은 그 길을 걷지 않기로 천명한 바 있다.
‘전부 시체로 만들어 노예로 부린다면, 거기에 무슨 재미가 있을까.’
생각해보면 그것도 나름의 재미는 있겠지만, 적어도 토드는 이 세상이 마음에 든다.
그렇다면 이곳의 생태를 어느 정도 보전함과 동시에, 자신의 업적이 공존할 수 있는 방향을 추구한다.
“셰우드, 설령 올렌부르크 공이 황제에 선출되더라도, 새로운 마탑의 창건은 건국 이래 유례가 없는 일이네. 더욱이 사령술사들의 마탑은!”
“쉽지 않으리란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 제국이 사령술사들을 필요로 하는 때가 오리란 걸 확신합니다.”
아이단이 재차 되물었다.
“그걸 자네가 어찌 확신하나.”
토드는 눈웃음을 그리며 속삭였다.
“바인만 전하를 비롯하여 올렌부르크 전하께서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콘라트가 순순히 선거에 승복할 인간이 아니라는 걸요.”
평판작을 하려고 악마 소환을 모의할 정도의 정신 나간 인간이다. 그만한 야심으로 가득한 사내가 황금 옥좌를 포기할 리 만무했다.
사색에 잠겨 있던 베르나드가 뇌까렸다.
“허면, 셰우드. 어찌 보면 그대는 과인의 제안을 거절한 것이 아니라, 보류한 것이라 봐도 되겠군.”
“그렇습니다. 전하. 제 의사를 확실히 표명하기 위함이었으니, 너무 노여워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소년왕은 주먹을 불끈 쥔 채 말했다.
“그대는 가진바 힘을 대의에 쓰는 의로움 뿐만 아니라, 신중한 이지마저 겸비했구려! 과인으로선 다시금 확신이 섰소!”
그는 토드를 가리키며 외쳤다.
“그대를 반드시 등용하리란 걸!”
베르나드는 망자가 아님에도, 안광이 맺힌 것처럼 눈빛에 정열이 끓어 넘쳤다.
그간 토드의 행선지들은 철저히 목적성을 띠고 다녀갔던 곳들인데, 그 파장이 차기 황제 후보에게 미칠 줄은 몰랐다.
‘아직 미숙한 소년이라 영웅을 동경하는 심리에서 비롯된 건가. 난 그런 대우를 받을 만큼 좋은 놈은 아닌데.’
적어도 위정자에게 긍정적인 인식으로 남았다면 나쁠 건 없지.
“저는 제 영지로 돌아가, 다가올 전화를 대비하겠나이다. 전하께서도 강녕하시길.”
공왕은 고개 숙인 토드의 어깨를 두드리며 답했다.
“알겠소! 내가 황금 옥좌에 오른다면, 물심양면으로 그대를 돕지! 더불어 그대가 진정 선을 행할수록, 그대의 뜻이 마냥 허황된 공상으로 남진 않을 거요!”
선이라. 토드는 쓴웃음을 삼켰다.
어차피 본질은 밥줄 싸움이다.
제국의 정국이나, 악마를 불러들여서라도 시한부 목숨을 구명하려는 흑마법사들, 콘라트와 베르나드.
흑색 학파가 살아남는 길을 도모하는 것도 모두.
선악을 결정짓는 건 혼란으로 얼룩진 시대를 쟁취한 승자의 권리일 뿐.
“크로이츠부르크에서 개최된다면 한두 달은 걸리겠군. 그때도 참관인 자격으로 방문할 텐가?”
아이단의 물음에 토드가 고개를 저었다.
“콘라트가 술책을 꾸미는 게 아닌 이상, 제가 방문할 일은 없으리라 봅니다.”
“그런가. 어쨌든 말미가 생겼으니 이번에 도착하지 못한 카셀미어 대주교나 헤젤슈마흐 공도 원활히 사절단을 파견할 수 있겠어.”
토드로선 조금 뜨끔했다.
사자공 헤젤슈마흐. 이스라와 엮인 자인만큼, 가급적이면 마주치고 싶지 않은 입장이었다.
“그래도 황제 선거는 넉넉한 일정 하에 개최되지 않습니까. 어찌 나머지 두 선제후분들께선 뫼를렌푸르트에 방문하지 않으신 연유라도 있을까요?”
입맛을 다신 아이단이 수염을 쓸어내렸다.
“뫼를렌푸르트에 악마가 강림했다는 소식은 사절을 통해 신속히 전해졌을 걸세. 다만 듣기로 카셀미어 대주교께선 북동부에 준동한 사교도들의 반란을 진압하느라 방문이 지연되었고, 헤젤슈마흐 공은 거동이 불편하다더군.”
세르지오에 따르면 사자공은 걸출한 무인이라고 하지 않았나? 토드의 눈이 가늘어졌다.
“사자공께서요? 그분은 강건하시지 않습니까? 건강상의 이상이라도 있으신 걸까요.”
아이단은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나도 헤젤슈마흐 공과 그리 막역한 사이는 아니라 자세한 내막은 모르나, 약혼을 앞둔 공녀가 사라졌다는 소문이 무성하더군.”
이런, 미친.
토드의 얼굴은 흙빛이 되었다.
“난들 알겠나. 제아무리 강건한 무인이라 하더라도, 자식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면 속수무책이겠지. 보통 그런 사정은 단단히 단속될 텐데, 민간에 새어나간 걸 보면 하루 이틀 된 일이 아닌 모양이네.”
그나마 잔존하던 긍정적인 구상이 모두 어그러졌다.
‘이스라. 사고를 쳐도 단단히 저지르고 뛰쳐나왔구나.’
내심 토드도 시뮬레이션을 여러 차례 돌려봤다. 어엿한 주체성을 갖춘 기사로 성장한 이스라를 당당히 소개하는 모습으로. 물론 그조차 이 땅의 통속적 관념을 생각해보면 쉽지 않았다.
그런데 마음의 병이 생겨 거동이 불편해질 정도라고?
겨우 잊고 있던 잡념이 실체화되어 악몽처럼 토드를 괴롭혔다.
와우, 친구들! 딸딸이 아부지야!
그토록 아내를 아꼈다면 당연히 자식 사랑도 유별나겠지! 그것도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딸아이만 둘이란다!
그런데 빌어먹을 놈팡이를 마주쳐도 시원찮을 판에, 나쁜 사령술사가 나타났다고?
난 그 쌍놈을 반으로 찢어 죽일 거야!
와! 하! 하!
먹구름처럼 드리운 상념은 거기서 그쳤다.
결심했다.
고유 서사고 뭐고, 가급적 마주치지 않는 게 상책이라고.
아이단이 한숨을 흘렸다.
“문제가 있다면 헤젤슈마흐 공은 어느 쪽에도 명확한 지지 의사를 드러내지 않았네. 아마 콘라트도 그를 포섭하려 공작을 벌이고 있을 텐데, 우리 쪽도 접근이 여의치 않네.”
소중한 한 표가 필요하단다.
‘세르지오, 그 노인의 말이 맞았네.’
빌어먹을 놈의 운명이 결국 대면시키리란 걸.
과연 피로 묶인 숙명이라는 건가.
그렇게 토드는 헤젤슈마흐 일가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듣고 군막을 나섰다.
주변을 살피던 토드는 슬쩍 벌판에 마련된 교수대로 향했다.
이미 형이 모두 집행되었는지, 사형집행인들은 시신을 자루에 옮겨 담고 있었다.
토드가 슬그머니 물었다.
“부탁한 물건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강둑에 옮겨뒀소.”
사령술사는 등 뒤로 은화 자루를 넘겼다. 클라우스는 직접적인 공모자라 집행을 피하긴 어려웠다. 물론 땅에는 시청에서 죽었던 동료 흑마법사의 시신이 대신 묻힐 것이다.
해가 저물 무렵에 이르러 토드는 열심히 강변의 진흙을 퍼냈다.
‘새삼 삽질하는 것도 오랜만이네. 사령술 숙련도가 부족할 땐 곡괭이랑 삽만 들고 다녔었는데.’
지금에 와선 추억이다.
묘지기의 사냥개한테 쫓기던 것까진 썩 즐겁지 않았지만.
자루를 풀어낸 토드는 물씬 올라오는 시취에 히죽 웃었다.
‘부패가 적당히 됐군. 살이 물러져서 칼이 잘 들겠어.’
여태껏 토드가 임시로 부렸던 해골 마법사들과 달리, 리치는 망자의 기초가 되는 육신과 별개로 영혼을 보관하는 성물함을 만들어야만 한다.
시신과 영혼에 대한 조예가 동시에 깊어야 양성할 수 있는 만큼, 죽음의 기사만큼이나 강력한 고위 망자였다.
강제로 죽인 마법사를 리치로 일으켜봤자, 도리어 자신을 공격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에 비하면 클라우스는 생전에 부족했던 마법 경지와 죽음에 대한 지식욕이 있지.’
차라리 갈망에 찬 흑마법사야말로 리치에 적합한 인재다.
“내가 그대를 부르노라. 클라우스. 네 악행으로 말미암은 죄는 죽음으로도 속죄할 수 없나니. 이젠 진정한 스승을 마주하고, 그대의 영혼을 내게 인도하라! 나의 가르침 하에 영속하여라.”
죽은 흑마법사의 눈이 뜨였다.
비척비척 구덩이에서 일어선 망자가 토드를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따르겠습니다···.】
계약은 체결되었다. 한때 흑마법사였던 이의 영혼은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왔다.
“일어나시지요.”
토드의 손짓에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던 클라우스가 환희했다.
【오오, 제가 정말 살아났군요! 이게 망자의 육신···!】
“당신은 여전히 불완전한 상태입니다. 비록 임푸트리케는 추방되었으나, 당신의 몸뚱이엔 놈의 자취가 남아있지요. 거추장스러운 살점을 모두 걷어내야만 합니다.”
【살을 거둔다라! 그럼 뼈만 남게 되는 것입니까?!】
“예. 그런 다음엔 당신은 흑색 학파의 세례를 받아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겠지요.”
그는 썩어버린 손을 쥔 채 연신 고개를 숙였다.
【감사! 감사합니다! 주인님! 미천한 제게 죽음을 탐구할 기회를 주시다니!】
토드가 나직이 읊조렸다.
“클라우스, 호칭이 잘못되었습니다. 비록 당신은 제 하수인이나, 엄연히 제자입니다.”
감격한 망자의 안광이 일렁였다.
【예, 스승님. 당신의 가르침을 따르겠습니다! 이 우둔한 자에게 죽음의 진리를 밝혀주소서!】
토드는 강물을 떠서 그의 머리에 흘려주곤, 챙겨온 망토를 둘러줬다.
“우선 살을 발라내는 작업은 여기서 좀 벗어난 뒤에 합시다.”
【알겠습니다! 스승님!】
오밤중의 어둠이 깊어질 즈음, 4개의 관을 실은 마차가 홀연히 도시를 떠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