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210
210
쿠텐슈타드는 불그스름한 비단에 휩싸인 듯 이따금 회백색 등골을 내비쳤다.
“요사스러운 경치군요.”
“네 눈엔 저게 어떻게 보여?”
카리나의 물음에 토드는 어깨를 으쓱였다.
“시체꽃 같네요. 혹은 장미로 염습한 송장이겠죠.”
사령술사답게 음산한 비유에도 불구하고 마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 저 꼴을 보고도 영원한 환희를 찾겠다며 들어간 놈들이 있었거든.”
“저런 뻔히 보이는 함정에 걸어 들어간 분들이 계신다고요?”
“지난달만 하더라도 빗장을 꼭꼭 걸어 잠근 채 마귀들이 지나가기만을 빌던 작자들이 많았는데 말이야······.”
말꼬리를 흐린 카리나는 토드를 돌아보며 슬쩍 삐딱한 미소를 흘렸다.
“요즘 제국에서 ‘백골의 성자’라며, 악마 학살자로 칭송받는 분이 계시잖아? 그걸 못내 시기한 놈들이 사람들을 이끌고 여기저기 들쑤셨거든.”
연일 악마들을 때려잡으니 어떤 이들의 눈엔 그게 뒷산 노루 사냥쯤으로 보였나 보다.
토드가 쓴웃음을 흘렸다.
“저런. 그게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라던데요.”
“누가 하느냐에 따라선 쉬운 일이지. 세상이 이 지경이 되어서도 그걸 깨닫지 못하는 놈들은 많더라고. 대체 그렇게까지 명성에 목을 매는 이유가 뭘까?”
도무지 제후들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카리나는 이를 갈았다.
“파경에 다다른 작금의 상황이 언젠간 회복되리란 희망이 있어서겠죠. 악마들을 소탕한 뒤엔, 다시 이 땅을 다스릴 질서와 우두머리들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사람들이 결사해서 위협에 대응하는 건 나쁘지 않다고 봐. 근데 멍청한 우두머리 때문에 애먼 다수가 사지로 끌려들어 가는 건 도저히 못 보겠더라고.”
카리나가 걸친 붉은 케이프는 이곳저곳 헤진 자국이 두드러졌다.
“그래서 여길 지키고 계셨던 겁니까?”
마법사는 줄곧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을 사수하고 있었다.
“어. 저기서 튀어나오려는 것들뿐만 아니라, 여기 오려는 이들도.”
“당신 성격이라면 틀어막는데 그치지 않고, 원천적으로 걸어 잠그려 했을 것 같은데요.”
쓴웃음을 지은 카리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나 말고도 해체를 시도했던 마법사들이 있었어. 일대를 뒤트는 권능이라 일찌감치 위험성을 인지했거든.”
슬쩍 주변을 둘러본 토드가 중얼거렸다.
“다른 마법사분들이 보이지 않는 거로 보아, 대강 어떻게들 되셨는진 알만 하군요.”
“남아있던 사람들이 겨우 알아낸 바에 따르면, 저걸 만든 장본인은 ‘신기루 비추는 퀴셍-달’이라고 해.”
내가 죽여봤거나, 한 번이라도 마주친 놈이었나?
원작에서 언급된 악마들의 인명사전을 열거해봐도 마땅히 떠오르는 바가 없다.
“흠··· 사실 그리 대단한 놈인진 잘 모르겠는데요.”
“이름을 알아내려는 시도만으로 마법사 다섯 명이 미쳐버렸다는 것만 알아둬.”
이에 대해선 전직 흑마법사 출신이었던 클라우스가 덧붙였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악마일수록 도리어 권세가 약합죠. 그만큼 불러내기도 쉽고, 무저갱에서 지위가 미약하니 피조물들의 영혼을 탐식하려 합니다요.】
리치의 공허한 안광이 도시를 감싼 적운을 훑었다.
【하지만 마경의 심부에서 비롯된 존재들이라면··· 필멸자의 이해론 쉽게 재단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요. 의도도 불분명하고, 구가하는 권능도 모호합죠.】
악마들은 부정한 사념을 먹고 자라는 만큼 제각기 테마가 뚜렷하다.
뿔이 위협적으로 돋아난 개체들은 표정만 봐도 화가 많은 놈이구나 싶고, 임푸트레카처럼 거짓 영생으로 꼬드기는 녀석들은 종기나 버섯에 뒤덮인 살집을, 변용에 특화된 아볼루온은 적응력이 뛰어난 미물의 형상을 띠고 있다.
‘괜히 그놈들이 다채롭게 못생긴 게 아니지. 룩도 성능이라고.’
외형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건 그만큼 위험성도 내포한다는 것. 당연하지만 토드는 이를 마다할 위인이 아니었다.
카리나가 한숨을 흘렸다.
“악마가 뿌리내린 영지가 자라나는 걸 막는 게 최선이었어. ···적어도 네가 도착하기 전까진 말이야.”
히죽 웃은 토드는 용골 지팡이를 들어 도시를 가리켰다.
“그럼 망설일 것도 없군요. 모든 자유시는 제 주군이신 카이저의 자산인바, 당장 불법점유자를 퇴거시키고, 그 손아귀에 떨어진 영혼들을 구제합시다.”
그러자 당황한 카리나가 법봉을 들곤 토드를 막아 세웠다.
“여태껏 한 설명 못 들었어? 저기 있는 놈은 쉽사리 상대할 만한 놈이 아냐! 게다가 저 안쪽의 공간은 놈의 권능으로 왜곡된 곳이라, 군대가 들어가도 소용없었어.”
도시 주변에 선연하게 번들거리는 광채나 신기루라는 이명만 보더라도 대강 환영에 특화된 놈이라는 건 알겠다.
‘내부가 미로처럼 얽혀 있어서 소수정예로 공략이 강요되는 구조네.’
토드는 미소를 흘리며 답했다.
“산 자들이라면 모를까 죽은 자들에게 미혹은 통하지 않을 겁니다.”
이미 머릿속에서 공략에 동반할 인원은 선별해놨다.
“게다가 그토록 놈이 강대하다면 저렇게 소굴을 짓고 틀어박힌 채로 들어오라 꼬드길 게 아니라, 무력시위를 했겠죠.”
“저 안에서 놈이 얼마나 강할지 가늠조차 안 되는데? 저게 물질계에서 활개 치기 위한 양분을 모으는 과정이라면?”
“그럼 누군간 그걸 막아야지요.”
무슨 근거로 사지에 들어가느냐 따지려던 차였다.
사령술사는 단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그의 흐릿한 눈동자를 보곤 말문이 막혔다가, 이내 헛웃음을 삼켰다.
“···그래. 넌 여전하구나. 쾨흘링 때나, 지금이나.”
토드가 너스레를 떨며 답했다.
“개인적으로 저만큼 동심을 지키는 사람도 없다고 자부하는 편이지요.”
으스대는 모습이 눈꼴 시렸는지, 카리나가 눈썹을 치켜세웠다.
“사령술사한테 동심은 얼어 죽을··· 그놈의 동심을 유지하는 건 좋은데, 꼬질꼬질한 망토는 새로 장만하지그래?”
“에헴. 수선된 망토는 폼이 안 산단 말입니다.”
“어휴.”
자기 제자랍시고 거느린 놈들도 하나같이 거적때기나 다름없는 의복을 걸친 것으로 보아 대강 사정이 짐작됐다. 설득을 포기한 카리나는 그의 측근들을 살폈다.
―비유하자면 염소와 정을 통한 것이느니라! 이 정도면 인간들 사이에선 극도로 지탄받는 행위 아니더냐!
여전히 아즈트룽엔은 역정을 누그러뜨리지 못하고 자신의 정당한 분노에 대해 설파하고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네크로폴리스에서 성난 유해룡을 막을 만한 강자는 파멸의 기사뿐.
【지탄받는다고? 그것참 괴상하군.】
이스라가 고개를 기울였다.
【본인이 아는 지인이 말하길, 어린 전사가 염소를 범하는 건 오랜 전통이라 들었다만!】
유해룡의 동공이 흔들렸다.
―뭣!
‘그 대머리가 또 이상한 상식을 주입했나 보네.’
이젠 놀랍지도 않다. 쇠렌 그 인간이야 이 마당에도 어떻게든 살아있을 테니 별로 근황이 궁금하지도 않았고.
―인간들의 도덕적 해이가 어느 이름 모를 동족까지 타락시킨 게 틀림없구나!
【살아있는 인간들의 정욕이야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죽은 몸인 우리는 불멸의 영광만을 추구하니, 이 어찌 명예로운가!】
흐린 빛으로 안광을 일렁이던 스트레이커가 슬그머니 말했다.
【그런 것치곤 이스라 경, 노획 물자 중에 표지가 기묘한 서적들을 유달리 챙기신다는 부관들의 제보가···】
파멸의 기사가 눈자위를 부라리자 그는 황급히 정정했다.
【···당연히 틀린 것 같습니다. 요즘 통 장교진의 보수를 신경 쓰지 못했더니 안와 쪽 부패가 심화된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이스라는 자신의 개인적인 수집욕을 거창한 문학 보존으로 포장하는데 거리낌이 없어 보였다.
【아무렴! 망해가는 세상! 누군가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라도 씹어먹어야 하지 않겠나!】
나사 빠진 인용에 토드도 할 말을 잃었다.
제 동료들을 쓸어버리는 게 첫 만남이었던 클라우스는 은연중에 그녀를 두려워해서인지 열렬한 아첨을 떨었다.
【역씌 문학의 수호자, 이스라 경이십니다요! 무력과 지혜를 동시에 겸비하셨으니, 누가 천재 기사인 경의 상대가 될깝쇼!】
【하, 하! 하. 잉크물 먹은 샌 놈치곤 자네가 뭘 좀 아는군!】
클라우스 저놈은 추후 이스라가 돌려 까기라는 걸 알아차리면 어떤 업보로 돌아올지 모르고 지껄이는 걸까. 시시덕거리는 둘 다 네크로폴리스 중진에 걸맞는 품격이었다.
“···그래서. 저런 놈들을 데리고 저기 들어가겠다고? 이보다 참신한 자살 방식도 없을 거 같은데.”
“흠흠. 그래도 실전에 돌입해서도 저러진 않으니 지금까지 살아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대오를 정비한 토드는 하수인들을 추려냈다.
“이스라, 마르커스, 라노, 당신들은 나와 함께 갑니다.”
지목당한 이들 사이에서도 명암이 엇갈렸다. 당연히 이스라는 환호성을 내질렀고, 마르커스와 라노는 도축장에 끌려가는 듯한 눈빛이었다.
‘저런 왜곡장에 유해룡이나 살점 거인처럼 대형 개체들을 데려가봤자, 덩치 큰 표적지에 불과하지.’
자체 방호력이 튼튼한 이스라와 신성 구절로 무장한 마르커스에게 전위를 담당하고, 흡혈귀인 라노를 은닉시켜 밀착 호위를 맡길 작정이었다.
‘어차피 안에도 시신이나 잠 못 든 영가는 있을 테니.’
베일처럼 넘실거리는 적운 너머론 피의 업이 철철 묻어났다. 이젠 조각난 잔해만 있더라도 써먹을 수 있는 정도였으니.
“산시아, 클라우스. 당신들은 밖에서 학파의 통솔을. 스트레이커는 책임지고 병사들의 통제와 주변 동향을 감시해주세요.”
진입 이후의 대형을 논의하려는데 카리나가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속삭였다.
“···나는?”
단검을 갈던 라노가 입가를 이죽거렸다.
“오랜만이네? 화염술사 아가씨. 그쪽은 따라와봤자 짐만 될 텐데?”
“난 적색 마탑에서 심신을 수양한 마지스터야. 악마의 권역 안이라도 불을 밝히는 길잡이 몫은 해낼 수 있어.”
“내가 나름대로 현혹과 속임수에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하는 편인데 말이야. 저 너머에 도사리고 있는 놈이 대강 어떤 부류의 힘을 부리는지 짐작은 가.”
마법사를 쏘아 내린 암살자가 입술을 훑었다.
“저것도 결국 몽마의 일종이거든. 살아있는 사람의 정신을 홀랑 벗겨 먹는 마귀인데······.”
법봉을 거머쥔 손등의 혈관이 불거지자 라노는 얄밉게 웃었다.
“평생 마탑에서 공부만 해오신 순진한 아가씨가 견뎌낼 수 있을지 잘 모르겠는걸?”
“닥쳐. 천박한 도둑년 주제에···! 권능의 힘으로 뒤덮인 공간이라면 자물쇠나 딸 줄 아는 네 하찮은 재주보단 내 주문과 지식이 더 효과적이야.”
“프흣흣, 이야. 필연적 단말마라는 이름을 못 들어보셨나 보네. 내가 더 열심히 해야 했나?”
눈을 가늘게 뜬 카리나가 라노를 노려봤다.
“넌 황소대공의 충복이잖아. 네가 왜 여기 있는진 몰라도, 뭘 믿고 마경까지 널 데려가는데?”
천연덕스럽게 눈꺼풀을 깜빡인 라노가 되물었다.
“어라. 그간 나랑 사령술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못 들었어?”
토드를 걸고넘어지자 마법사의 눈에서 불똥이 튀긴다.
이것들 봐라···? 교묘한 미소를 삼킨 암살자가 총총걸음으로 다가가 스리슬쩍 팔짱을 꼈다.
“얘가 날 전용 노예로 만들었걸랑. 어찌나 취향도 음습한지, 제 피를 먹지 않고선 살아갈 수 없는 몸으로 만들었다니까?”
하얀 얼굴이 단풍색 머리칼처럼 울긋불긋하게 물든다. 콕 찌르면 달아오르는 토마토 같아서 놀리는 재미가 있었다.
‘계집질이라곤 절대 안 하는 돌부처 또라이가. 왜 끼고 다녔는지 대강 알만도 하네.’
낄낄거리던 라노가 마저 입을 놀리려던 차에, 묵직한 검풍이 둘을 갈랐다.
“아···.”
짧게 탄식한 암살자는 허전해진 왼쪽 옆구리를 더듬었다. 팔이 덩그러니 잘려나갔다.
【파리가 앉았군. 토드.】
우악스럽게 라노를 밀쳐낸 파멸의 기사는 팔에 들러붙은 손목을 아무렇게나 내던졌다.
“파리치곤 조금 크지 않았나요?”
태연히 핏자국을 닦아준 이스라가 덤덤히 읊조렸다.
【원래 쇠파리들은 징그러울 정도로 크네.】
비틀거리며 일어선 라노가 손을 끼워 넣으며 항의했다.
“저기. 기사 아가씨. 흡혈귀라고 해서 안 아픈 건 아니거든? 장난 좀 쳤다고 너무 심한 거 아냐?”
문득 그녀와 시선이 마주친 파멸의 기사가 고개를 까딱였다.
【역겨운 주둥이 다물어라. 똥파리. 네년은 아가리를 열 때마다 격을 떨구고 있다.】
카리나도 저 갑주 속에 든 인물이 여인이란 건 이미 전해 들어 그리 놀랍지 않았으나, 쾨흘링 땐 그토록 부딪치던 자가 지금만큼은 이보다 든든할 수 없었다.
장검을 밀어 넣은 파멸의 기사는 안광을 번뜩였다.
【참고로 다음은 모기다. 본인은 작은 미물에게도 자비를 베푸나, 하등 이로운 바 없는 해충은 목을 날리지.】
“그것참 무서운걸.”
파티원들의 우애가 매우 깊군.
토드는 아즈트룽엔에게 물었다.
“카리나에게서 용의 혈통이 느껴진다는 건 확실한가요?”
유해룡이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틀림없느니라. 피에서 희미하나 동족의 내력이 느껴진다. 반드시 없애야 한다!
용족 보정이 붙는다면 정신계에도 저항치가 있지. 이러면 데려갈 메인 딜러도 결정.
‘딜탱, 힐탱, 네크, 누커, 열쇠따개. 이상적인 조합인걸.’
사실 전혀 아니다.
어쨌거나 저 안에서 딸 만한 궤짝은 없겠지만, 정 급하면 일회용 고기방패로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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