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209
209
불사자들의 군대 앞에 패배란 없다.
이제 중앙 권역 수복은 쿠텐슈타드 자유시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토드는 느긋하게 손가락 마디 사이에 엉킨 거미줄을 밀어 올렸다.
“물질계 마실은 어떠신지요.”
―집중 중! 조용히!
검지 위에 올라앉은 거미가 눈알을 치켜뜬다. 신중히 고리를 가늠해보던 거미는 얼키설키 엮인 실을 풀어 마름모꼴로 걸쳤다.
“이런, 제가 또 졌군요.”
―후후, 6연승이다! 이것으로!
―파멸적인 승률! 7승 3패. 부족하다! 한참.
“역시 어머니의 실뜨기 솜씨엔 당해낼 도리가 없네요.”
―당연한 일. 운명을 직조하는 이에겐.
검녹색 등딱지가 씰룩거리는 게 영락없이 으스대는 모양새였다. 기분이 무척 좋아지셨나 보다.
‘원래 무작정 져주기보단 비등한 상황에서 실력으로 이겼다는 생각을 심어주는 게 고수의 접대거든.’
연이어 2판을 지시니 역정을 내던 어머니께선 이내 승리를 거두곤 의기양양 해하시다가, 엎치락뒤치락하더니 ‘깨달았노라!’며 외치시곤 쭉 승기를 점하셨다.
이기기만 하면 플레이어는 싫증을 낸다.
그렇다고 너무 어려우면 포기하기 마련이다.
게임 역시 놀이의 연장선이 아니겠는가.
거기 담긴 교묘한 묘리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자신하는 편이었다.
퍽 만족스러워 보이는 클라이언트의 반응으로 보아 토드의 설계는 성공적이었다.
―재밌었다!
토드가 빙긋 웃었다.
“어머니께서 즐거우셨다니 다행입니다.”
이만 거미줄을 걷어낸 토드는 손등에 거미를 조심스레 내려놨다.
“보이십니까. 어머니?”
유리알 같은 눈동자를 굴린 거미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보인다. 잘.
일사불란하게 행군하는 망자의 군세, 그들을 뒤따르는 추종자들의 행렬이 눈앞에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한때 저뿐이던 흑색 학파가 여기까지 도달했습니다.”
거미가 말했다.
―피 흘리게 만드는 건 쉽다.
―저기 들판을 거니는 양 떼에겐 익숙한 일이거니와.
―하물며 자그마한 벼룩조차 가능한 일이지.
피는 생명의 원천.
이 땅의 피조물은 생을 영위하기 위해선 결국 무언가의 피를 탐해야만 한다. 비단 동물이 흘리는 혈액뿐만 아니라 줄기를 타고 흐르는 물 역시 초목이 품은 활력의 근간이다.
생명은 누군가의 죽음을 곱씹지 않고선 살아갈 수 없다.
―일찍이 나는 목도하였다.
―무수한 왕국과 피조물들의 몰락을.
―오랜 물결을 거슬러 올라도.
―너는 단연 빼어난 재목을 품었느니라.
짐짓 거만하게 기침한 토드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내심 알고는 있었습니다. 당연히 제가 지닌 재능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면 신자라곤 한 명밖에 없는 몰락한 교단의 생존자로서 핍박받으며 15년의 모멸에 가까운 세월을 감내했겠···”
존버도 믿는 구석이 있어야 할 수 있는 법.
어머니가 다리를 들어 연신 손가락을 때리셨다.
―조금만 치하해줘도 기어오르려 하다니! 오만불손한 놈 같으니라고!
화신체가 앙증맞은 크기라 간지럽기만 했다. 별다른 타격이 없으니 아예 이빨을 꺼내 물려고 하시기에 토드가 얼버무렸다.
“당연히 농담이었습니다. 어머니. 아직도 충복의 신앙을 의심하나이까? 당연히 제 마음속엔 어머니뿐이지요.”
신앙 고백을 가장한 아부로 달래드리고 나서야 거미가 다시 말을 이었다.
―네가 피로 군림하고자 했다면, 대계가 수월했을 것이다.
8개의 눈동자가 사이한 빛을 발했다.
―네 재간은 내 첫 번째 신자였던 마르칼에 버금간다.
어이쿠, 사령술의 시조님께 견주어 말씀해주시다니. 오늘 어머니가 너무 금칠을 해주시는걸.
―굳이 제국에 닥친 도탄이 아니었더라도, 네가 암실의 배후자를 꾀했다면 대적자들의 피와 뼈 위로 죽음의 교단이 중흥했을 터.
본래 네크로맨서의 원형은 상서롭지 못하다.
원작이 아닌 여타 매체에서 묘사되는 모습들만 하더라도 대개 지배하고, 착취하는 수확자들이다.
과거 양례 교단의 태동과 역사 또한 그러했다.
―그럼에도 너는 기꺼이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다.
―길 잃은 이들의 하소연에 귀 기울이고.
―잊지 못한 자들의 눈물을 외면하지 않았느니라.
토드는 말없이 미소지었다.
―너는 세간의 평판을 신경 쓰지 않는다고 일렀었지.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정녕 균형의 길을 택한 사유가 선의 때문이느냐.
겹눈 너머로 피조물을 관조하는 아득한 시선이 느껴진다. 어머니께선 장막 너머 만물의 운명을 직조하시는 분.
―이제 나는 네가 세속에서 일컫는 선심이나 대의를 추종하는 자가 아니란 걸 잘 안다.
―네 진의를 고해다오.
확답을 독촉하시는 까닭은 상념으로만 존재하던 것을 육성으로 풀어냈을 때 비로소 구속으로 작용하기 때문이겠지.
일종의 확인 절차인 셈이다.
“··· 이미 남들이 지나간 길이지 않습니까.”
은밀히 시체들을 파밍하고, 교단이나 제후들의 감시가 닿지 않는 오지에서 체계적으로 피의 업을 축적했다면 군사를 일으켜 제국을 무너뜨리는 것도 가능했으리라.
토드가 히죽 웃었다.
“그건 재미가 없거든요.”
피의 길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
그걸 시도했던 선배님들은 뼈도 못 추리고 영면하지 않았던가.
물론 죄다 실패했기에 꺼렸다기보단 이미 누군가의 발자취가 남았다는 게 불쾌하다.
왜 똥캐만 고집했겠어.
모니터 밖의 인생이 주류와 동떨어져 있으니 가상 세계에서만큼은 내 생각이 옳다는 걸 증명받고 싶으니 더욱 매달리는 거지. 아마 온갖 걸 분석하기 좋아하던 그 상담사 아줌마였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문명인으로서 자신은 죽일 수 있어도, 이놈의 힙스터 기질은 때려죽여도 고쳐지질 않더라고.
―유, 유희가 아닌 현실이 되었음에도 이 모든 걸 감내한 거니?
막상 전말을 시인하니 어머니도 말투가 조금 조심스러워지셨다.
어깨를 들썩인 토드는 복슬복슬한 배를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답했다.
“예. 어머니. 제게 있어 별반 달라지는 건 없었습니다.”
변한 건 없다.
“저는 모두 재밌었습니다. 얼어 죽지 않으려 쥐똥 가득한 하수구에서 겨우 잠을 청하던 시절이 아직도 눈에 선하지요. 아직 제 레벨이나 어머니의 영향력 모두 미미했을 때 정신줄을 놓지 않으려 백골을 부여잡고 말을 걸던 때도 그렇고. 지역 유지가 묻힌 토굴을 파내다가 사냥개들한테 쫓겼던 날. 기껏 죽음의 기사를 개방했는데, 정작 마력이 부족해서 써먹지도 못하고 통곡했던 순간도.”
게임이었다면 어떻게든 강제로 종료시켜 자동 저장되는 걸 막고, 잘못된 선택지를 고른 시점으로 회귀했을지 모른다. 혹은 시스템의 결점을 파고드는 꼼수로 실패를 만회하려 시도하거나. 어쩌면 캐릭터를 아예 삭제했을 수도 있다.
토드는 거미 앞에서 선명하게 웃어 보였다.
“감사하게도 이곳이 실재화된 덕분에 나약해지려는 저를 다잡아놓을 수 있었습니다.”
모호한 저편으로 기꺼이 몸을 내던지는 것이야말로 진정 재미다.
성전사를 플레이하면서 느낀 바였지만, 효율만 추구하다간 컨텐츠 소모가 지나치게 가팔라진다. 아는 게 많아질수록 도리어 조금의 손해도 용납할 수 없다는 집착으로 작용하기 마련.
종래에 플레이 경험을 돌이켜보면 썩 좋은 기억으로 남지 못했다.
“어쩌면 그래서 아버지의 투사가 그리되었고, 교단이 타락한 것일지도 모르지요.”
시작한 게 나라면, 마땅히 맺음을 짓는 것도 내가 돼야 하지 않을까.
“혹여 실망하셨습니까?”
여신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고통마저 기꺼이 즐거움으로 승화하여 받아들였나니.
―토드, 너는 오롯이 너다.
다리를 까딱이자 절로 토드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폴짝 앞섬에 뛰어든 거미는 목에 걸린 줄을 끄집어냈다.
―장차 교단을 이끌어갈 양치기로선 가장 어울리는구나.
은실을 자아낸 어머니께선 조각난 영혼 목걸이의 파편을 유려하게 직조하셨다.
닫힌 브로치에 가까웠던 과거와 달리, 이젠 다리를 펼친 거미가 고풍스럽게 장식되었다.
작지만 신의 손길이 직접 닿은 성물함이다.
“이거 참, 굳이 이렇게 귀한 선물까지 주시면서 치하해주실 필요는 없는데.”
거미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럼 회수해주랴.
잽싸게 고개를 치켜든 토드는 성물함을 갈무리했다.
“어머니께선 지상의 물정을 모르시겠지만, 피조물 간엔 한 번쯤 사양해주는 게 예의란 말입니다.”
―나는 그런 풍습을 들어본 적 없는 것 같은데. 네가 비롯된 세계의 관습이 아니더냐.
어깨를 으쓱인 토드가 방긋거렸다.
“여러모로 어머니 역시 저만큼이나 뒤틀린 기호를 지닌 분이시군요. 보통 제가 이런 소신을 밝히면 남들이나 제 분신들조차 광인이라며 치를 떨던데 말입니다.”
거미는 코웃음 치며 대꾸했다.
―구도자라면 응당 범인과 궤를 달리하는 법이니라. 하등 이상할 것 없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힙스터 신자 못지않게 비주류 취향이 다분하신 여신님이시다.
하긴, 애당초 코드가 맞으니 따랐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네게 부여된 사명은 학파의 재건이나, 존속이 유지될 때야말로 진정한 중흥임을 명심하거라.
교세는 공고하지만, 여전히 흑색 학파를 향한 위협은 남아있다. 토드가 낮게 속삭였다.
“학파를 위협하는 불안 요소들은 반드시 배제하겠습니다.”
안톤의 추종자들. 그리고 침공을 주도하는 잉걸불 대의회의 수장들.
“아직 다 재미를 보지도 못했는데, 억지로 판을 물리려는 놈이나. 엎으려는 놈들이나. 싹 다 쳐내야지요.”
힘껏 고개를 끄덕인 거미가 거들었다.
―모조리 엄벌하거라. 교단의 안녕을 위해서. 이번엔 못해도 천 년의 교세를 이어나갈 것이니라.
천 년씩이나? 낄낄거린 토드는 거미의 배를 간질였다.
“어머님. 언젠가 당신께선 숭배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던가요? 그렇게 오래도록 피조물들의 흠숭을 받고 싶으신 겁니까?”
토드의 지적에 거미가 발끈했다.
―죽음은 만물이 지닌 숙명이니라! 난 숭배 따위 필요 없다!
“오호, 그럼 학파원도 아니면서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들겠답시고 설치는 놈팽이들은 전부 숨을 거둬들일까요?”
행렬 끝자락의 추종자들을 응시하던 거미는 이내 다리를 꼼지락거렸다.
―아, 안 되노라! 비록 내게 숭배는 무의미하나, 오랜만에 피조물들이 내 이름을 부르짖으니 처소가 적막하지도 않고 좋단 말이다···.
내심 수 세기 동안 소수의 목소리만 들으며 적적하셨던 모양이다. 대개 사령술사들은 심성이 음침해서 그런지 과묵하기 마련인 데다, 평소엔 정체를 숨겨야 하니 기도도 잘 올리지 않고.
자신이야 수다스럽긴 해도 채널이 돌아가지 않는 지방 방송이나 다름없으니 지겨우셨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외로운 사람들이 일부러 라디오나 TV를 틀어놓듯, 어머니께서도 취미 삼아 신자들의 목소리를 들으시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한편으론 안쓰러웠다.
놀리는 건 이쯤에서 그치기로 했다.
“농담이었습니다. 프흡, 어머니께서 이토록 피조물들을 향한 연민과 애정이 풍부하신 분이라는 걸 저들이 안다면 지금보다도 더 열렬히 숭배가 이어질 텐ㄷ··· 악!”
물렸다. 이건 정말로 아프다!
가뜩이나 화신체로 삼은 껍데기가 독거미라 그런지 손이 화끈거렸다.
―이 건방진 놈! 감히 신을 우롱해!
“하여튼 그놈들 해골은 조만간 올리겠습니다. 이만 영면하소서!”
―누구 맘대로 신접을 끊는다고···
황급히 검지를 붙들고 늘어지는 육신으로부터 마력을 거뒀다. 송곳니를 떼어낸 거미의 사체가 축 늘어진다.
‘독이 완전히 주입됐으면 죽진 않아도 왼손은 썩었겠는걸.’
손가락 여섯 개가 조금 뻣뻣해진 것 같다.
그나마 어지간한 독극물에 내성을 지닌 몸뚱이라 망정이지, 다른 인간이었으면 죽었다.
문득 공기를 가늠하던 토드의 코가 씰룩였다.
지독한 달걀 썩은 내.
악마들에게 점령당한 쿠텐슈타드 시가 가까워졌음을 알리는 징후다. 다만 놈들의 체취를 잘 아는 토드로선 미묘한 차이를 감지했다.
‘이건 좀 바싹 태운 느낌인걸?’
무저갱에서 비롯된 악마들은 태생적으로 엄청난 내열성을 지니고 있다. 하물며 용암의 급류 속에서도 서핑하듯 태연히 헤엄치는 놈들인데, 악마의 탄내라니. 어딘가 어귀가 맞지 않는다.
비슷한 감상을 느꼈던지 공중에서 일대를 감시하던 아즈트룽엔이 토드 곁에 내려앉았다.
―이상하노라. 본녀가 보니 성채 앞에서 연기가 짙게 피어오르고 있는데, 이따금 불기둥이 솟구친다.
“악마들의 유황불 아닙니까?”
유해룡은 고개를 저었다.
―무저갱의 존재들은 저런 식의 화염을 일으키지 않느니라. 하물며 인간 마법사들도 저렇게 연이어 강대한 주문을 구가하진 못하거늘···
안광을 좁히던 유해룡이 번쩍 날개를 펼쳤다.
―설마! 아직도 본녀의 동족이 이 땅에 남아있는 것인가!
토드가 보기에 이 시대까지 아즈트룽엔 외에 드래곤이 살아남은 것 같진 않았다.
‘해츨링을 죽여서 살을 벗기고 박제한 셈인데. 만약 다른 개체가 있었다면 진작 나를 족치러 오지 않았을까.’
악마를 녹일 정도의 고열, 드래곤이 착각할 정도로 고위 주문을 남발할 이라면 대강 누군지 알만도 하다.
과연 군마를 이끌고 자유시로 향하는 교차로에 가보니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토드?”
“잘 지내셨던 것 같네요. 카리나.”
화염 마법사는 태연히 숯덩이로 전락한 악마를 지르밟으며 내려왔다.
각자 재회의 소감을 나누려는데, 아즈트룽엔이 포효했다.
―너, 너, 너!
세로로 찢어진 안광은 명백한 경멸을 내비쳤다.
―도대체, 왜! 어떻게!! 너 같은 흉물 따위가 지상을 활보하고 있는 것이냐!!
갑자기 얜 왜 이러는 거야.
‘화염 마법사나 적색 마탑이 드래곤 계통이랑 관계도 저하가 설정되어있던가?’
그건 딱히 아닌데.
머릿속에서 관련 내용을 아무리 되짚어봐도 마땅히 생각나는 게 없었다. 가물가물한 DB 상의 데이터를 재차 검증하던 토드는 무심코 특정한 클래스의 독특한 요소를 떠올렸다.
‘용혈의 후예. 이걸 골랐던 사람들이 유독 와이번한테 시달린다고 징징대지 않았나?’
심지어 산맥 건너편에 똬리를 튼 와이번이 마을 한복판까지 쫓아왔다며 억까가 지나치다, 이건 버그가 틀림없다는 등, 한때 커뮤니티에서 주요한 떡밥이었다.
원작에선 아룡 외에 제대로 된 드래곤 개체가 등장하지 않으므로 누구도 그 전말을 알아내지 못했지만······.
인상을 구긴 카리나가 물었다.
“야, 저거. 뼈만 남았으니 이제 화장만 시키면 되는 거지?”
간신히 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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