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208
208
산드로를 비롯하여 새로이 입교한 23인의 수습 사령술사들. 토드는 그들에게 원대한 첫 번째 과업을 내렸으니. 다름 아닌 개울물에 용지를 세척하는 작업이었다.
악마들이 지상에 강림할 때만 하더라도 저들 세상이 온 것마냥 날뛰던 흑마법사들은 쭈그려 앉아 종이를 빡빡 씻어내는 데 열중했다.
【···스승님. 저는 심히 우려스럽습니다요.】
“어떤 부분이요?”
클라우스는 멋쩍게 두개골을 긁적였다.
【흑마법에 입문한 자들치고 멀쩡한 놈이 없습죠.】
토드가 키득거렸다.
“당신이 할 소리는 아니지 않나요?”
【물론 저도 다르다곤 못하겠습니다만, 권능의 비전을 독차지하던 데믈러한테 불만도 많았고, 내심 죽음의 지식에 대한 호기심도 있지 않았습니까.】
수습생들을 살핀 클라우스가 나직이 속삭였다.
【반면 저 녀석들은 처지가 조금 다릅니다. 저와 달리 집단으로 투신한 데다, 스승님의 지도에 계속 순종할지도 의문입니다.】
토드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공포는 어떤 정서보다도 강력하게 인간을 묶어놓지만, 그마저도 언젠가 휘발되기 마련이지요.”
【장차 무저갱의 마귀들과 더불어 성전사단과도 일전을 치러야 할 텐데, 굳이 내부의 불안 요소를 늘릴 필요가 있겠습니까? 싹수가 보이는 놈들만 추려내고, 나머지는 하수인으로 들이는 게 효율적이지 않겠습니까요.】
토드가 침묵하자 눈치를 살피던 클라우스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주, 주제넘은 참견이었습니다. 스승님의 고견을 의심하려는 게 아닙니다요. 가뜩이나 신경 쓰실 구석이 산더미같이 많은데, 괜히 파락호들에게 심력을 쏟으시는 것 같아서···】
“당신이 갓 흑색 학파에 입교했을 때, 제가 시켰던 일거리들을 기억합니까?”
눈동자를 굴리던 클라우스가 재빨리 답했다.
【스승님께서 지시하신 과업이라면 묫자리 파기, 시체에서 살점 발라내기, 붕대 감는 법과 구더기 크기로 부패도 가늠하기였습죠.】
토드가 가늘게 웃었다.
“그땐 왜 이따위 성가시고, 쓸모없어 보이는 잔업들만 시키는 건가 싶었죠?”
리치의 안광이 세차게 깜빡였다. 기도는 오래전 도려냈는데, 어째서인지 목뼈 사이로 흐르는 바람이 턱턱 막히는 것 같다.
스승님께선 독심술까지 익히셨나?
턱뼈를 달달 부딪친 클라우스가 부정했다.
【당치도 않습니다요! 당연히 스승님께서 안배한 뜻이 있으리라 생각했습죠.】
토드는 눈꼬리를 올리며 소곤거렸다.
“정말로요?”
비록 스승님은 망자가 아니셨지만, 이따금 눈에 아른거리는 광채는 리치로 거듭난 클라우스조차 형언할 수 없는 웅혼함을 띠고 있었다.
늪지에 가라앉은 퇴적물들이 끈적끈적하게 달라 붙어오는 기분이다.
예리한 추궁에 제자가 백기를 들었다.
【···아뇨. 일주일 동안 뼈만 깎아보니 다른 것도 깎아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죠.】
진솔한 답변에 토드가 낄낄거렸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요!】
토드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저도 수습생 시절엔 삽 쥐는 법부터 배웠답니다. 정말 흙만 파서 흑색 학파인지, 내가 누울 묫자리부터 장만해야 해서 그런 건지, 의문이 들더군요.”
송장 썩은 내에 헛구역질하던 애송이와 그걸 보며 낄낄거리던 괴팍한 노인네.
이젠 한참 빛바랜 잔상처럼 남아있으나 절대 돌아가고 싶지도 않고, 추억으로라도 도저히 미화되지 않는 기억이다.
그런데 막상 교육자의 처지가 돼보니 이따금 예기치 못하게 불쑥 치고 올라 목청을 간질이곤 한다.
“두 세력을 동시에 상대하려면 사령술사가 더 필요합니다. 클라우스. 최근 강력한 하수인들을 대거 들이면서 지휘 역량이 한계까지 도달했어요.”
지그시 눈을 감은 클라우스가 낮게 속삭였다.
【부족한 제자의 역량 탓입니다. 스승님.】
“당신과 산시아는 이미 훌륭하게 해내고 있어요. 수재라 칭해도 과언이 아니겠죠. 이 이상 많은 하수인을 조종하는 건 필멸자의 의식 구조상 불가능합니다.”
네크로폴리스의 군세는 6천에 육박했다.
그것도 대다수가 저열한 시체들이 아닌, 유해룡, 죽음의 기사, 살점 거인, 용아병을 비롯한 상급 망자들까지 대거 포진된 정예 병력.
비록 지금은 하나의 깃발 아래 집결한 군단이나, 고삐가 풀리면 산자를 향한 악의를 가감 없이 드러낼 아귀들이다.
단 세 명의 사령술사가 이만한 대군을 통솔한다는 것만으로 각자의 역량은 증명되었다.
그러나 중추 하수인을 늘리더라도 불어나는 규모만큼 정신적 부아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가급적 「노화」나 「백귀야행」같은 고비용 주문은 자제했고, 산시아나 클라우스도 지휘에만 몰두해야만 했다.
결코 바람직한 행태는 아니다.
사령술사에게 하수인은 주 전력이나, 지나치게 의존했다간 다각화된 대응이 어려워진다.
“우리는 필멸자로서 한계를 겸허히 받아들여야겠죠.”
눈을 가늘게 뜬 토드는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허나 불가피하게 문하생들을 들이더라도, 일일이 끄집어내면서 추려내는 건 제 방침에 어긋납니다. 손때를 많이 탄 원석이 자칫 제 색채를 잃어버릴 수도 있어요.”
【개중에 싹수가 노란 놈들이 덩달아 주변의 씨앗들까지 변질시킬 위험이 있는데도 말입니까?】
“어차피 그런 종자들은 채에 거르듯 자연스레 솎아내질 겁니다. 어느 집단이든 말단에 잡일부터 맡기는 건 다 이유가 있지요.”
그런가? 리치의 안광이 모호한 빛으로 일렁였다.
“여기까지 거듭난 당신이 비추어 보기에, 정말 무의미한 과정이었던가요?”
문득 클라우스는 눈 앞에서 윙윙대는 딱정벌레를 목격했다. 그가 조심스레 손을 내밀자 녀석은 뼈만 남은 손가락에 내려앉았다.
시취를 맡고 찾아온 미물이다. 이리저리 지골을 둘러보던 벌레는 이내 흥미를 잃고 안뜰에 쌓인 시신들을 향해 날아간다.
성채엔 여전히 묻히지 못한 주검들이 가득하다. 클라우스는 그 광경에서 오묘한 질서와 더불어, 한편으론 부조화를 발견했다.
텅 빈 머리에 벼락이 내리친 것만 같았다.
【···그렇지 않았습니다요.】
클라우스의 눈동자가 연녹빛으로 세차게 타오른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모두 사령술의 기초와 순환의 이치를 체득시키기 위한 절차였습죠.】
그가 작게 감탄했다.
【그걸 헤아리지 못했다니···! 전 여전히 스승님에 비하면 한없이 아득합니다요!】
뭔가 깨우쳤다는 듯이 구는 클라우스완 달리, 토드의 속내는 혼란으로 가득했다.
‘어? 그걸 그렇게 해석한다고?’
대가리 뻣뻣한 놈들 기강이나 단단히 잡으려고 한 건데.
마침 자신이 수습생이었던 시절의 고생을 설파하려던 토드는 입을 다물었다.
【역시··· 흑색 학파는 유서 깊은 역사만큼이나 후학양성에 대한 강령 역시 마귀들의 애완견 노릇을 자처하는 놈들보다야 세련되고, 우월합니다요!】
근성론을 저렇게 포장해준다니 할 말이 없다.
“흠, 흠. 이제 좀 사자의 서에 담긴 철학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엄밀히 따지면 오랜 세월 존속해온 태양 교단에 비해 간신히 명맥만 이어온 흑색 학파는 철학이고 자시고, 유지를 잇는 데만 급급해했다.
사실상 토드 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재건되는 셈이라, 강령이나 운영 방침은 전적으로 그에게 달린 상황.
리치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불초 제자, 한참 모자랍니다! 스승님! 앞으로도 위대한 어머니 오르카사의 가르침을 정진하겠나이다!】
손가락들이 글귀를 적는다.
「신실한 추종자, ‘클라우스’의 믿음이 깊어진다. 영혼의 화로가 한층 환하게 타오르노라.」
‘······.’
악마들을 땔감으로 쓰던 게 장작불 정도라면 이건 숫제 가스버너 수준인걸.
토드는 구태여 제자의 곡해를 정정하지 않고 조용히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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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내가 이따위 짓이나 하려고 잉걸불에 영혼을 맹세한 게 아닌데.”
나흘째 개울가에 쪼그려 앉아 종이만 벅벅 씻고 있자니 수습생의 면면에 불만이 가득했다.
“게다가 이 망할 숯덩이는 냄새도 고약하다고. 말똥을 굳혀 태우기라도 했나?”
건너편에 있던 산드로가 덤덤히 답했다.
“악마의 시체다.”
비교적 손가락의 형태가 온전히 남은 부위를 보여주니 수습생이 기겁했다.
산드로는 이리저리 숯을 돌려보며 중얼거렸다.
“우리가 그토록 우러러보던 것들인데. 죽어서 진흙과 마늘에 구우니 이런 냄새를 풍기는군.”
수습생들은 각기 사색이 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분들의 사해를 숯으로 써먹는다고? 어떻게 되먹은 놈들이야? 사령술사란 것들은.”
“이, 이런 짓을 했다는 걸 들켰다간 절대 용서받지 못할 거야.”
피식 웃은 산드로가 숯덩이를 긁어내며 용지를 적셨다. 까맣게 물든 냇물에 그을린 자국들이 벗겨진다.
“샤가르, 넌 아직도 돌아갈 생각을 하나.”
당장 숯이라고 생각했던 물건을 집어 던지고 싶은 수습생이었으나, 인근을 배회하는 해골 병사들이 시퍼렇게 눈동자를 치켜뜨고 있었다.
“너야말로 진정 저자를 따를 셈이냐? 산드로?”
“아마도.”
“토드 셰우드가 그룸다즈 님까지 쓰러트렸다지만, 아직 잉걸불 대의회의 의원분들은 지상에 현현하지도 않으셨어.”
속삭이는 수습생의 눈동자가 벌벌 떨렸다.
“한 분이라도 발을 들였다간 온 땅이 찢어질 거야. 길은 이미 진작에 완성되었고, 날짜만 기다리고 있는데, 벌레처럼 짓밟힐 놈들한테 가담하겠다고?”
“우린 다들 셰우드의 손에 악마가 죽는 걸 똑똑히 봤잖나.”
하얗게 표백된 종이를 건져낸 산드로는 물기를 탁탁 털어내며 대꾸했다.
“의원 직함이 달려있다고 해서, 거미줄에 안 걸릴까?”
“그건 솔마르의 챔피언조차 해내지 못한 위업이야··· 그놈이 감히 무저갱 원정을 시도했다가 사로잡힌 신세란 걸―”
다른 수습생이 샤가르의 입을 틀어막았다.
달그락, 달그락···.
배회하던 해골 병사는 쓱 수습생들을 돌아보곤 절뚝거리며 멀어졌다.
산도르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정말 그분들께서 영생불멸하는 존재들이었다면, 구태여 지상을 노리지 않고 저들 터전에서 오손도손 잘 살았겠지.”
그룸다즈의 패배는 그의 눈을 트였다.
“옛 조물주들도, 저상의 신들조차,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아. 다 같이 죽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신세다.”
인상을 구긴 샤가르는 굳이 대답하지 않고 자리를 피했다. 말없이 옆에서 용지를 닦던 수습생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대단한 가르침을 줄 것처럼 굴더니, 우리더러 왜 이런 잡일이나 시키는 거래?”
“글쎄다.”
산드로의 눈매가 가늘게 휘었다.
‘짚이는 구석이 없는 건 아니다.’
이보다 고된 노역을 시킬 작정이었다면 무너진 잔해를 옮기거나, 시체들이 실린 수레를 끄는 등의 선택지도 있었을 것이다.
‘토드 셰우드의 행각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의도가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불과 3년 전만 하더라도 무명이었던 자다.
쾨흘링 분쟁에서 혜성같이 등장해 황제에게서 백작위까지 수여 받았다. 그는 틀림없이 범인을 뛰어넘는 흉계의 소유자였다.
‘내가 뭘 알아내길 원하는 걸까.’
아무리 축축하게 젖은 용지를 들여다봐도 마땅히 짚이는 구석은 없었다.
시일이 더 지나고 나서야 산드로를 비롯한 수습생들은 용지의 용도를 알 수 있었다.
딸랑···.
“스러진 자들에게 비로소 고요가 잦아들었나니. 그들이 어머니의 자비로 하여금 영혼의 대해로 떠나가게 하소서.”
‘입힐 수의를 덧대기 위함이었나. 죽은 자들이 한둘이 아닌데, 이걸 일일이 준비시키다니.’
얼굴을 찌푸린 산드로는 수습생과 더불어 힘겹게 목관을 내려놓았다. 염습부터 입관까지 모두 도맡아서 수행해야만 했다.
평소 몸 쓰는 일과는 거리가 멀었던 자들인지라, 하나같이 땀에 젖은 얼굴에 짙은 피로가 묻어났다.
제물로 잡혀있던 인간들 외에 볼모 신세였던 생존자들은 안장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보고 있었다.
‘유별나고 쓸데없는 정성이 따로 없군.’
이제 와서 인간의 죽음이 별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키진 못했다.
모든 절차가 마무리된 뒤, 스트레이커가 토드 곁에 따라붙었다.
【주군, 성채에서 확보한 전리품들의 목록입니다.】
양피지에 빼곡하게 들어찬 항목들을 훑어내린 토드는 길게 늘어선 귀퉁이를 두드렸다.
“여기서 이 줄까진 생존자들에게 분배해주세요.”
【예? 식량은 전시 상황에서 주요한 전략 물자입니다. 이미 생존자들에게 필요한 양을 제공했는데, 기껏 획득한 전리품을 넘겨주라고요?】
“어차피 저와 제 제자들이 먹을 양식은 빵과 육포 정도면 충분합니다. 더군다나 망자들은 음식을 섭취할 필요도 없고요.”
히죽 웃은 토드는 묵직하게 실린 수레를 가리켰다.
“저런 쓸모없는 것들을 실을 바에, 차라리 창칼이나 악마의 유해를 더 챙깁시다. 어차피 갈 길은 먼데, 그것들은 썩지도 않잖습니까.”
구휼이 목적이라기보단, 한정된 수송 역량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괜히 썩은 음식에 파리가 꼬이면 하수인들만 물어뜯기지.’
특히 구울 계통은 구더기나 풍뎅이가 붙으면 외형상의 공포는 강렬해지지만, 그 여파로 유통기한이 짧아진다.
그렇게 가뿐히 성채를 떠나려는데 일련의 무리가 행렬의 끄트머리에 따라붙었다.
“저 사람들은 뭡니까?”
【성채에 연고가 없던 외지인들이 우리를 따라오겠다 하더군요.】
학파원도 아니고, 멀쩡히 살아있는 인간들이 망자의 군세를 따라오겠다니. 토드로선 황당한 일이었다.
“음···. 우리의 행선지는 악마들한테 점령 당한 자유시들인데, 불안하더라도 차라리 성채에 남아있는 게 저들의 안전을 보장할 텐데요.”
【상관없다고 합니다.】
위협을 가해 쫓아낼 수도 있겠지만, 그리 많은 인원도 아닌지라 토드는 선뜻 마르커스를 호출했다.
“마르커스, 교전이 없는 동안엔 당신이 저들을 보호해주세요.”
【살아있는 몸으로 죽음의 군세를 따라온다니. 제정신 아닌 놈들이로군.】
그들을 서슴없이 힐난하던 마르커스는 삼일 정도 지켜보더니 다소 얼떨떨한 표정으로 보고했다.
【대다수가 태양 교단의 신실한 신도들이더군. 정녕 세상에 말세가 도래했단 말인가?】
네크로폴리스의 군세는 무저갱의 마수에 떨어졌던 성채들을 거침없이 격파해나갔다.
탈환한 곳에서 토드는 동일한 행각을 되풀이했고, 그때마다 매번 일부 살아있는 이들의 무리가 자발적으로 행군을 뒤따랐다.
‘졸지에 피리 부는 사나이가 된 기분인걸.’
포로로 사로잡은 흑마법사들은 대부분 하수인이 되었지만, 소수가 수습생으로 편입되었다.
어느새 죽은 자들의 군대는 행군할 때마다 먼지구름을 일으킬 정도였고, 이들을 뒤따르며 고행을 자처하는 자들도 변방 영지의 인구에 맞먹었다.
자유시를 4개 정도 수복했을 즈음엔 웃지 못할 일들도 심심찮게 보였다.
“이 행렬은 뭐요?”
“나도 모르오. 메추라기랑 신선한 생선을 준다길래 따라가고 있소.”
“생선은 못 참지! 씨벌, 고기는커녕 쥐새끼 구경도 못 해본 게 반년이야.”
참칭파와의 내전, 지옥의 도래는 제국의 국토 곳곳을 황폐화시켰다. 궁핍한 처지에 제후들의 수탈까지 더해지니 악마들의 침공을 받지 않은 경유지에서조차 이탈 주민들이 생겼다.
“쳐죽일 놈의 백작은 침공에 대비한답시고 곳간을 싹 쓸어갔어! 막상 지난주에 마귀들이 밀밭을 휩쓸었을 땐 성채에 틀어박히더니만!”
“그 등신 같은 놈도 귀족이라고. 여기 남아 풀뿌리만 캐 먹느니, 저것들을 따라가고 말지!”
그러자 먼젓번 도시에서 따라온 농노가 엄숙한 표정으로 엄포를 놓았다.
“저것들이라니. 말조심해라, 신참. 셰우드백 나리의 병사들이시다.”
방부제로 쓰이는 재료들과 수선이 필요한 장비들 외에 소모할 구석이 없으니 전리품들만 차곡차곡 쌓인다.
망해가는 세상이라도 귀금속과 여분의 철판은 수요가 있었다. 사실상 헐값에 후려치는 격이었지만, 토드는 기꺼이 ‘산 자들에게나 필요할법한 잡동사니들’을 넘겨버렸다.
“삶과 죽음은 본래 맞물려 있는 섭리라. 죽음을 경외하나, 두려워하진 말 지어니. 본래 우리는 날 적에 무언가를 가진 것이 없는데···”
수석 제자인 산시아가 수습생들을 위해 사자의 서에 적힌 구절들을 주기적으로 낭독해주는 시간이 있었는데, 학파에 속하지 않은 민간인들도 덩달아 듣곤 했다.
‘산시아가 공작가에서 자란 영애답게 발성이 좋아. 나보다 낭독은 잘 하는걸.’
그러다 보니 학파의 가르침에 감회된 이들이 다른 도시를 수복할 때마다 목청을 높이는 경우도 생겼다.
“어머니 오르카사께선 아버지 솔마르와 더불어 이 땅을 보살피시는 분이다!”
“악마들에게 붙잡히면 죽어서도 영혼이 고통받어. 우리 같이 거미 어머님 믿고 죽은 가족의 안식을 구하세.”
사령술을 익히지 않았으면서 흑색 학파의 교리를 설파하는 기묘한 종자들이다.
산드로는 이런 행태를 흥미롭게 지켜봤다.
‘역시 토드 셰우드는 혹세무민의 대가다. 군대와 빵으로 악마들보다도 빠르게 지상을 정복하는군.’
게다가 개종한 흑마법사들 간에도 우열을 두어 수습 과정을 거친 학파원들이 후세대들을 담당토록 안배했다.
추후 잡혀 온 흑마법사들이 해골 전사들 여럿 거느린 모습을 선망 어린 시선으로 우러러보니 처음에는 떽떽거리던 놈들도 거들먹대며 흑색 학파에 입교하라며 중용하기 일쑤였다.
‘무시무시한 자다. 말세조차 영향력을 퍼뜨릴 기회로 삼다니.’
거미 깃발 아래 죽은 자와 산 자, 가리지 않고 모든 것들이 모여들고 있다.
이쯤 되면 경외심이 이는 한편, 두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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