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56
056
거인들의 동작이 눈에 띄게 굼뜬 탓에, 이쪽에서 먼저 대응에 나섰다.
“포신을 돌려! 던지기 전에 놈들을 요격한다!”
누군가의 외침에 병사들이 부랴부랴 포신을 돌렸다. 에다리크가 제국의 영향을 받은 도시이니만큼, 방어용 대포가 있긴 했는데 구식인 게 문제였다.
쾨흘링에서 드워프들이 끌고 다니던 물건에 비하면 골동품에 가까워 보였다.
그럼에도 포신이 요란하게 불꽃을 뿜어냈다.
대포알에 얻어맞은 거인이 으르렁거렸다. 비틀거리던 놈은 용케 바위를 놓치지 않고, 다른 거인들과 더불어 힘껏 내던졌다.
토드는 그걸 보자마자 황급히 망루 밑으로 내려갔다. 아니,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
위쪽에서 무시무시한 바람 소리가 들렸다.
나무계단을 폴짝폴짝 내려온 그는 최대한 바닥에 바짝 엎드렸다.
콰앙!!
엄청난 굉음에 귀가 먹먹해질 정도였다. 깨진 돌조각들이 계단 위로 쉴 새 없이 쏟아지고, 연기 탓에 성벽 위가 온통 뿌예졌다.
머리를 감싸고 있던 토드는 가늘게 눈을 떴다.
“하···.”
돌덩어리에 얻어맞은 망루는 흔적도 없이 살아진 뒤였다.
판단이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꼼짝없이 죽었다.
상대방에게 대포가 없으니 전망 좋은 자리에서 전황을 살피겠다는 건 알량한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여길 벗어날 순 없어.’
시야가 닿지 않는 곳에선 소생을 시전할 수 없다. 게다가 앞으로 닷새를 버텨야 하는데, 성벽에서 저지하지 못하면 가망이 없다.
토드는 슬쩍 고개를 내밀어 성벽 밑을 살폈다.
‘돌덩어리가 많은 건 아냐.’
아무리 저만한 바위를 집어 던진다 해도, 거기에 성벽이 무너질 정도로 제국의 축성술이 호락호락하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스라의 활약 덕분에 기껏 회복했던 수비병들의 기세가 무색해졌다.
거인들이 던지는 바위가 정확하거나 살상력이 뛰어난 건 아니었다. 이따금 누군가 재수 없게 돌덩어리에 얻어맞아 산산조각난 채 뒹굴면 주변에 있던 병사들은 굳은 채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두 번째 나팔이 울려 퍼졌다.
저들은 본격적으로 사다리를 짊어지고 성벽으로 접근했다.
병사들은 총안 너머로 시위를 당기거나 화승총을 쐈는데, 아쉽게도 성에 비치된 소화기는 많지 않았다.
게다가 수시로 날아드는 바위 때문에 병사들이 움츠러들어 제대로 된 견제 사격이 쉽지 않았다.
기어코 사다리가 하나둘씩 걸쳐지고, 야만전사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거침없이 그 위를 기어올랐다.
일개 병사들이나 징집된 시민들이 백병전으로 저들을 당해낼 리 만무하다.
토드가 그쪽을 향해 손짓했다.
“막아라.”
여장 뒤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던 망자들이 일제히 몸을 일으킨다.
성벽 위에 안착한 전사가 득달같이 검으로 앞에 있는 자의 가슴팍을 찔러넣었다.
으직-!
확실하게 칼이 들어갔는데,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마치 썩은 호박이라도 찌른 것처럼 살이 물렁했다.
“엉?”
전사가 당혹스러운 신음을 흘린 순간, 병사가 그를 물어뜯었다.
【캬아아악!】
졸지에 목을 뜯긴 전사는 허우적대다가 바닥에 엎어졌다. 황급히 다른 전사가 망자를 떼어냈으나, 칼이 꽂힌 상태로도 발버둥 치는 모습에 기겁했다.
“이런, 제길!”
야만전사들이 힘 싸움에선 망자들에게 밀리지 않는다. 그들은 숙련된 전사답게 방패로 밀어내고, 망자들의 팔이나 머리를 토막 냈다.
‘음, 확실히 이젠 걸어 다니는 시체들만으론 상대하기 어렵네.’
하지만 빙결이 걸린 상태에서도 저렇게 잘 싸울 수 있을까?
토드는 서리 반지를 쓰다듬었다.
망자들의 손길과 칼끝에 새하얀 한기가 피어오른다.
돌연 자신들의 몸을 감싸는 기운에 야만전사들이 몸서리쳤다.
처음에는 별 이상 없는 듯 잘 싸우던 전사들이 하나둘씩 유효타를 허용하더니, 어느새 자신의 갑옷이나 손에 낀 서리를 보곤 당황했다.
“이놈들, 주문을 쓴다!”
“칼로도 안 긁혀.”
사전에 토드는 아군 오사를 신경 쓰지 말라고 전해뒀기에 수비병들은 성벽 위에 얽힌 망자들과 야만전사들을 향해 가차 없이 사격했다.
뒤통수에 화살을 얻어맞은 전사는 덜컥 고개가 꺾였다가, 이내 몸에서 증기가 끓어올랐다.
“오, 오오! 도나르여! 나를 주시하소서!!”
「광전사의 분노」가 발동된 야만전사는 도끼를 부여잡고 발광했다. 다시 일어선 전사는 순식간에 시체 네 구를 찢어발기며 날뛰었다.
이제 저 전사는 100초 동안 무적이다.
‘근데 상태이상 면역까진 아니잖아.’
여지없이 그를 향해 사령술사의 마수가 뻗쳤다.
‘그대는 죽어야만 하는 존재임을 기억하라.’
노화에 적중한 야만전사는 그토록 덥수룩하던 모발이 희어지더니, 늦가을 나뭇잎처럼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 괴기스러운 광경에 전사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도나르! 맙소사!”
붉게 달아올랐던 안색이 창백해지고, 팽창했던 근육들이 쪼그라든다.
“아, 아···!”
급격히 쇠약해진 몸뚱이를 끌고 움직이던 전사의 몸이 뒤로 기울었다.
그를 향해 토드가 향로를 흔들었다.
“내가 그대를 부르노라.”
쓰러졌던 전사가 비틀대며 다시 일어서자, 다른 전사가 그를 향해 다가갔다.
“몰도프! 이제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 얼른 일어나서 싸우라고! 도나르께서 곧 너를 데려갈 거다!”
도나르? 까마귀 신 정도의 주신이면 모를까.
그 정도의 신은 사령술로 속박된 육신을 거두어갈 수 없다.
적어도 급이 맞아야 상대를 하지.
“죽여라.”
토드의 속삭임에 흐리멍덩하던 전사의 눈동자에 녹색 빛이 어린다.
둘을 지켜보던 전사가 외쳤다.
“아냐. 외스테인! 몰도프한테서 떨어져라. 저놈 눈깔이 이상해!”
그의 외침이 무색하게 되살아난 야만전사가 도끼로 머리통을 내리찍었다. 전사를 쓰러트린 망자는 다른 전사를 향해 달려든다.
바닥에 엎어졌던 외스테인은 핏물이 흐르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 일어섰다.
“몰도프, 저 새끼가 미쳤나. 왜 나를?”
뚝.
핏방울과 더불어 머리카락이 한 움큼 빠졌다.
그는 동료들을 거침없이 찍어 넘기고 있는 몰도프를 보곤 말문이 막혔다.
그러다가 자신의 쪼그라든 손을 본 외스테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어렵지 않게 자신도 몰도프처럼 되리란 걸 알아차렸다.
“아, 안돼.”
전사로서 죽음을 각오했기에, 죽음은 두렵지 않았다.
그러나 죽은 이후에도 저렇게 괴물로서 끌려다니는 건 각오한 바가 아니다.
전사의 눈이 세차게 흔들렸다.
죽음을 극복하는 도나르의 권능은 길지 않다.
황급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전사는 성벽 너머를 응시했다.
이만한 높이에서 떨어진다면, 괴물이 되기 전에 몸이 으스러지겠지.
망설임 없이 몸을 내던지려는데 성벽 앞에서 무언가에 그의 몸이 붙들렸다.
발치에 튀긴 핏자국에서 손가락들이 튀어나와 발목과 팔을 잡고 있다.
전사의 눈이 두려움에 물들었다.
정체불명의 존재가 자신을 바라고 있었다.
“안돼. 안돼. 안돼. 난 전사로서 죽어야 한다. 저렇게 괴물로 남고 싶진 않아···.”
중얼거린 전사가 한껏 발버둥 쳤지만, 점점 무력한 느낌이 그의 전신을 집어삼켰다.
지속 시간이 끝나고, 외스테인은 축 늘어졌다.
멀찍이서 지켜보던 사령술사가 중얼거렸다.
“어림도 없지.”
이따금 토드가 아량을 베풀 때도 있지만, 적에게까지 자비로울 필요는 없다.
업의 손아귀를 해제한 토드는 그를 향해 읊조렸다.
“그대가 쌓은 핏값이 그대의 운명을 내게 귀속시켰노라. 이제 내가 부르노니, 일어나라. 전사여.”
야만전사들은 기본적으로 육신이 탄탄한 데다가, 워낙 살아온 생애가 역동적이라 그런지 축적한 업도 일반적인 인간보다 많았다.
사령술사로선 이보다 훌륭한 하수인감이 있겠나.
성벽 위에서의 공방이 늘어질수록, 사상자가 늘어난다. 자신 있게 기어 올라온 야만전사들은 빙결, 노화, 업의 손아귀에 걸려 일점사를 당했다가 망자들의 역공에 도리어 망자로 전락해버렸다.
올비르의 호언장담이 무색하게, 에다리크의 성벽은 굳건히 북부인들의 맹렬한 공세를 받아냈다.
///
성벽 위에서의 처절한 공방은 해가 기울 즈음 잦아들었다.
수성 측의 사망자는 50명 안팎에 그쳤다.
반면 공성 측은 전사만 30명 이상, 병사는 200명 넘게 죽었고, 부상자만 200명 남짓이었다.
변변찮은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성벽에서 패퇴한 전사들이 분통을 터뜨렸다.
“죽은 자를 일으키는 요술사라니! 왜 저런 놈이 여기 있는 거요?”
“난 저것과 비슷한 힘을 부리는 자들을 안다. 너희 점쟁이들과 협력한다는 검은 요술사들. 그놈들과 비슷한 부류가 아닌가?”
전사의 지적에 주술사가 부정했다.
“절대 아니다! 추종자들이 가진 권능은 혼령을 불러내는 것이지, 저렇게 시체를 일으키지 않아! 분명 궤는 비슷하나, 명백히 다르다.”
“협잡꾼들은 괜히 말을 어렵게 해서 주제를 빙빙 돌리려는 경향이 있지. 올비르. 저놈들이 의도적으로 우리 전사들의 피를 뿌리려는 속셈이 분명하다.”
상석에 앉아있던 올비르가 고개를 저었다.
“우리끼리 싸울 필요는 없다. 다만 시체를 부리는 힘이라니. 좀 놀라운데.”
“죽은 전사들이 일어나서 우리를 공격했다. 올비르. 저래선 도나르의 전당으로 돌아가지도 못해. 전사들이 이를 두려워하고 있다.”
반나절 만에 반대의 처지가 돼버린 상황.
미간을 좁힌 올비르가 거니슨을 향해 물었다.
“분명 성안에 남은 사내들의 숫자가 얼마 없다 하지 않았나?”
“내부의 간자가 전한 바에 따르면 저들이 모집한 병력은 어림잡아 천명이 안 될 겁니다.”
턱을 쓰다듬은 올비르가 답했다.
“···밤에도 공세를 지속한다. 사방에서 두들겨. 밥을 먹이는 대로 들여보내.”
거니슨이 조심스레 되물었다.
“올비르. 지금이라도 공성 병기를 만들라고 지시할까요? 어쩌면 사다리만으론 성벽을 넘는 게 여의치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마를 문지른 올비르가 중얼거렸다.
“흐, 체면이 말이 아니군. 전사들이면 충분할 거라 생각했는데.”
오판은 아니었다. 그는 젊은 시절 전사 20명만으로 500명 넘게 지키는 성채를 약탈한 적도 있었다.
그만큼 야만전사의 기량은 일반적인 장정을 아득히 초월했음에도, 사령술사 한 명의 존재 때문에 모든 것이 수틀렸다.
주술사가 말했다.
“거인들을 내보내는 게 어떤가. 아예 그들을 전면에 내세워, 성벽을 부숴버리는 게 나을지도.”
“내 사촌들은 태양이 없으면 약해지네. 지금은 저들을 쉬게 할 때다. 게다가 적에게 마법사가 있다면, 섣불리 그들을 위험에 노출시킬 순 없어.”
올비르의 대꾸에 주술사가 뼈로 된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그들에게 우리가 보호의 술법들을 걸어주겠다. 사악한 주문으로부터 몸과 정신을 방어해줄 테지.”
올비르는 영 미덥지 않은 눈치였다.
그렇다고 계속 이대로 전사들을 투입하면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 도리어 적의 숫자만 불려주는 꼴이었다.
“일단 내일 해가 뜰 때까지 결판이 나지 않으면 생각해보지. 적들도 지칠 수밖에 없다. 쉬지 않고 두드리면 분명 뚫리는 곳이 나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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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토드는 모든 성벽 구역에 나누어 야만전사 망자와 해골 병사, 걸어 다니는 시체들을 분대 단위로 배치했다.
그러곤 경비대장에게 태연히 말했다.
“저는 이만 자러 들어가 보겠습니다. 온종일 집중했더니 마력도 부족하고, 피곤하군요.”
“음··· 사령술사. 정말 당신이 없어도 이들이 원활하게 움직입니까?”
토드가 산시아를 가리켰다.
“만약 기동을 멈추는 녀석이 있다면 제 제자에게 부탁하면 될 겁니다.”
이번에 새로 획득한 망자들은 죄다 피의 업으로 일으켰다. 그렇지 않아도 산시아는 피의 업이 과도하게 넘치는 만큼, 유지 보수에는 문제가 없을 거다.
“항상 화살이 닿지 않도록 신경 써주시고, 직접적으로 적과 대면하지 않도록 하고요.”
토드는 신신당부하고 나서야, 겨우 무거운 눈꺼풀을 비볐다.
“그럼 이만 눈 좀 붙이고 오겠습니다. 산시아. 동트는 대로 깨워주세요.”
“네. 스승님.”
그렇게 겨우 병영 구석에 마련된 야전침상에 누웠던 토드는 잠시 눈을 깜빡였다.
분명 아까 전만 해도 주변이 깜깜했는데, 어느새 햇살이 들어온다.
‘뭐야. 벌써 동이 텄다고?’
시간이 삭제된다는 게 이런 건가.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지만, 황급히 병영을 뛰쳐나온 토드는 바깥의 상황을 확인했다.
산시아는 덤덤히 성벽을 거닐면서 죽은 야만전사들의 시신을 안뜰에 착실히 모아놓고 있었다.
“아, 스승님. 일어나셨나요.”
“이게 다 뭡니까?”
“간밤에 성벽에서 죽은 전사들이요.”
수레로 쌓아둔 숫자만 50구가 넘어갔다.
가만히 내면을 헤아려보니, 어느새 레벨도 33까지 올라 있었다.
축적된 피의 업만으로도 이 정도인데, 공성전이 끝나고, 모든 전사자들의 장례까지 치러준다면 눈물의 업까지 얼마나 챙길 수 있을까.
아침도 먹지 않았는데 사령술사는 벌써부터 배가 부른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