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98
098
보병의 일일 급료는 동화 8닢이다.
대부분의 끼니는 딱딱하게 굳힌 밀 반죽이지만, 사기 증진을 위해 염장 고기와 콩, 순무, 부추를 보급해주는데, 보통은 이를 전부 으깨 솥으로 스튜를 끓여 먹곤 했다.
병사 한 명의 한 끼 식사에 지불하는 비용은 동화 4닢 반.
이마저도 갓 입대한 알보병임을 감안한 값이다. 보직에 따라 급료가 달라지고, 보급품도 달라진다.
병사 한 명만 데리고 전장에 나설 순 없는 노릇이므로 병력이 늘어날수록 제후의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게다가 제국 내 긴장이 만연하면서 식자재의 값도 점차 오르는 상황.
‘그에 비하면 망자는 급료를 요구하지도 않고, 먹일 곡식도 필요 없지.’
죽은 자들의 군대에 비용이 든다면 기껏해야 썩은 살을 감쌀 아마포나 밀랍 정도. 살아있는 병사보단 싸게 먹힌다.
호흡을 갈무리한 토드의 의식이 내려앉는다.
올라선 층계는 46층.
곧바로 어머니가 하사한 은혜를 확인했다.
군청색. ‘황혼’을 상징하는 색이노라. 어스름 너머에는 필멸자들이 두려워하는 존재들이 기거하노니.
망자들의 귀곡성으로 인한 공포가 1초 증가한다.
‘군중제어기 강화는 언제나 나쁘지 않지.’
이걸 고르면 망자가 유발하는 공포가 무려 4초.
충분히 고려해볼 만한 옵션이었다.
담갈색. ‘체액’의 변형.
엑토플라즘의 유독성 담즙을 접목하여 망자의 혈액이 독성을 띠게 된다. 상처가 쉽게 낫지 않게 되며, 종기와 전염성을 보유하노라. 그러나 망자 또한 부패의 영향을 받는다.
‘독성···. 적어도 이걸 고르면 망자들과 맞붙은 군대는 전력 손실이 어마어마하겠는데.’
부상자는 짐이다. 적어도 용병 무리나 약탈자들이 아닌 이상, 징집병들을 모은 군대는 필연적으로 부상자를 돌볼 필요가 있다.
사실상 망자들을 시한폭탄처럼 운용할 수 있게 되는 셈인데, 가뜩이나 머릿수가 아쉬운 상황이다.
진청색. ‘재현’.
망자들의 동작이 섬세해지고, 생전의 행동 양식을 곧잘 모방할 수 있게 된다. 단, 보유한 기억에 비례하여 마력 소모량이 증가한다.
이전에 고르지 않고 지나쳤던 재현이다.
‘마력 소모가 늘어나는 페널티도 거슬리긴 하지.’
평소의 토드였다면 당연히 리스크가 없는 황혼을 골랐을 것이다.
그러나 토드가 망설임 없이 집어 든 건 진청색 대접, ‘재현’이었다.
“당신을 찬미합니다. 드높으신 분. 오늘도 당신의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이젠 나름 요령이 생긴 토드였다. 대뜸 원샷을 때리는 게 아니라, 충분히 여유를 갖고 대접을 비운다.
머리가 하얘지는 끔찍한 맛도, 목을 긁어대는 질감조차 이젠 청량감처럼 느껴진다.
“흐으.”
겨우 대접을 내려놓은 토드는 입가를 훔쳤다.
‘망자들을 말에 태우려면 재현이 필요해. 마력을 조금 투자하더라도, 우리에겐 기동성이 있는 전력이 필요하다.’
어차피 다음 상대는 제국백.
그와 순순히 정면으로 맞붙을 생각은 없었다.
토드는 어깨를 으쓱이며 히죽거렸다.
“흐흐. 어머니. 이젠 제법 약발이 먹히는 것 같습니다. 기왕 내주시는 김에 더 쎈 건 없으신지요. 이 하인은 이제 더한 은혜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차 없이 내쫓겼다.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의 막사였다. 산시아는 수시로 뼈 무더기를 일으켰다가 허물어트리며 마력 분배를 훈련하고 있었고, 어김없이 이스라는 기사도 문학을 읽으며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그녀를 바라보던 토드의 눈이 가늘어진다.
‘표지가 좀 다른 것 같은데. 원래 책장에 저리 삽화가 많았나?’
의심도 잠시, 전령이 들어섰다.
“하워드 님. 크뤼거 님께서 회의를 소집하셨습니다.”
“바로 가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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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백의 주둔지에 남아있던 물자는 일주일 치였습니다.”
크뤼거는 침통한 표정으로 읊조렸다.
“고작 그것뿐이었나.”
노획품으로 아군의 물자를 충당하겠다는 행복 회로는 어그러졌다.
“제국백이 당도할 테니 보급을 의존할 작정이었나 봅니다.”
방백의 군대는 선봉격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으로 저들이 군공을 탐내고 무리하게 출정한 정황은 자명했다.
부관들이 작성한 목록을 들여다보며 크리슈토프가 말했다.
“병사들에게 배급하는 양을 아낀다면 이주는 버틸 여력이 있을 겁니다.”
크뤼거는 이마를 감싸 쥔 채 시름했다.
“보급관더러 배식을 줄이라 명하게.”
값진 승전으로 고무되었던 어젯밤이 무색할 정도로 수뇌부의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었다. 서로 눈치만 보는 사이 토드가 태평하게 입을 열었다.
“이것으로 우린 중대한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사령술사에게 쏠렸다.
“비록 우리의 상황이 열악하지만, 사방에 가득한 수렁 탓에 보급이 원활하지 못한 건 적도 마찬가지입니다.”
루반호프의 향사인 베이츠가 반문했다.
“하오나 사령술사님. 제국백은 대규모 원정군을 꾸렸습니다. 그의 영지가 에베르호펜에서 멀리 떨어진 만큼, 방백과 달리 충분한 양의 물자를 준비했을 겁니다.”
“예. 베이츠 경. 그래서 저는 다시금 후퇴를 제안하고자 합니다.”
베이츠는 부정적으로 반응했다.
“제국백에게 동일한 계책이 통할 것 같진 않습니다. 그는 방백과 달리 여유가 충분합니다.”
제국백은 야전사령관보단 안전을 추구하는 행정가에 가까운 사내라고 들었다.
토드가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그럼 여유를 가지지 못하도록, 계속 흔들어야지요. 제국백에게 소모전을 강요해야 합니다.”
“우리의 사정도 좋지 못한데, 어찌 물자가 넉넉한 제국백을 상대로 소모전을 벌일 수 있단 말인가?”
크뤼거의 물음에 토드는 자신의 뒤에 선 이를 가리켰다.
“간밤에 제 기사인 이스라 경이 쓰러트린 기병만 백이 넘습니다. 그들을 모두 망자로 일으켜 세울 작정입니다.”
가신들에게서 조금 질린 듯한 기색이 보인다.
“망자로 이뤄진 기병대를 유격대처럼 운용하여 제국백의 군대를 집요하게 괴롭힐 작정입니다.”
다른 가신이 되물었다.
“본대와 별개로 운용한다 한들, 그들도 보급이 필요하지 않겠나? 소수의 별동대만으론 승기를 잡기 어렵네.”
토드는 미소를 흘렸다.
“경. 제 하수인들은 살아있지 않습니다.”
저들의 무지는 이해한다. 생전 저들이 망자의 군대를 운용해봤겠는가.
“그들은 먹을 필요도 없고, 지치지도 않습니다. 죽은 자들은 적이 행군할 때나, 식사할 때나, 잠을 청할 때라도. 낮과 밤, 새벽녘이나 해 질 무렵, 개활지나 협곡, 평원이나 늪을 가리지 않고 적을 공격할 수 있습니다.”
망자의 장점을 극대화해야 한다.
유지력, 그리고 사령술사에게만 복종하는 조직력.
“우리가 방백을 상대로 승리를 거뒀던 까닭은 적이 조급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적의 지휘관은 판단력이 흐려졌고, 얼핏 뻔해 보이는 함정에도 걸려들 수 있었지요.”
가신 중에 감탄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반신반의하는 자들도 있었다.
“제국백을 조급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현재로선 아군이 회전에서 제국백의 군대를 상대론 이기지 못합니다. 최대한 적을 지치게 만들고, 정신적으로 극한에 내몰렸을 때.”
전략 지도 위엔 제국백을 의미하는 조각이 유유히 서 있었다. 토드는 그를 가리켰다.
“그때 이르러서 우리는 제국백을 상대해야 할 겁니다.”
베이츠가 침묵하는 와중에 크리슈토프의 조카인 요코프가 물었다.
“하워드님. 별동대로 거듭 쉬지 않고 기습을 가하더라도, 적의 방비가 강화된다면 입히는 피해가 미미할 겁니다.”
요코프의 지적은 타당했다. 비록 적이 심적으로 지치긴 하더라도, 경계만 철저히 세운다면 막상 사상자가 많이 발생하진 않을 거다.
“예. 그래서 저는 초장엔 제국백의 본대를 위협하다가, 점차 물자를 후송하는 보급대를 집중적으로 타격할 생각입니다.”
제국백이 수레에 바리바리 짐을 싣고 온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론 영영 전쟁을 지속할 순 없다. 하물며 여긴 택배도 없고, 제대로 포장된 도로는 드문 세상.
‘바닥까지 털어먹어야 해.’
“이 방법밖에 없습니다. 크뤼거 님. 지금은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병력을 뒤로 물리셔야 합니다. 그동안 제가 제국백을 물고 늘어지며 시간을 벌겠습니다.”
크뤼거가 침음을 흘렸다.
“에베르호펜에서 보충병이 3주 뒤에 도착하네. 그렇다고 해서 우리도 영영 이 싸움을 지속할 수는 없을 걸세.”
“마찬가지로 제국백 또한 전쟁에 진척이 없으면 협상에 나서게 될 겁니다.”
토드는 확신에 찬 눈으로 속삭였다.
“그가 회담장으로 나설 때까지, 제 하수인들은 멈추지 않을 테죠.”
경청하던 베이츠가 입을 열었다.
“만약 제국백이 회담장으로 나서지 않는다면요?”
토드는 음산한 미소를 흘렸다.
“그럼 그들은 이 땅에 모두 뼈를 묻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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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명의 병력이 행진한다. 장창병을 앞세우고, 중간중간 화승총으로 무장한 사수들과 양옆으론 기마대까지.
특이한 점이라면 대열의 선봉에 군견들이 있다는 점이었다.
연신 바닥을 훑으며 걷던 도중, 개들이 요란스럽게 코를 킁킁댔다.
어느 지점에 이르러선 녀석들이 일제히 땅을 향해 짖어대기 시작했다.
“정지! 정지!”
곧 대열이 멈춰 서더니, 행렬 사이에 끼어있던 자들이 튀어나와 지면을 가리켰다.
쩌정! 쩡!!
손아귀에서 뻗어 나온 전격이 지면을 두들기자, 마구잡이로 헤집어진 흙무더기 속에서 시신의 잔해가 드러난다.
토드는 그늘에 숨어 그 광경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건 이제 막혔네.’
지뢰처럼 묻어둔 시체를 모조리 걷어낸 제국백의 군대는 다시 행진에 나섰다.
토드의 곁에 서 있던 이스라가 안광을 좁혔다.
【마법사까지 거느리고 왔군.】
“사용하는 주문으로 보아 창공 학파의 마법사인 것 같습니다.”
【전에 보았던 그 마법사 계집이랑 견주었을 때, 실력이 어떤 것 같나?】
카리나? 그녀에 비하면 파괴력은 떨어진다.
아마 누굴 데려와도 순간적인 화력만큼은 카리나에게 못 미칠 거다.
“아마 에스터리츠 양보단 못한 것 같은데요.”
【하, 하! 하. 그렇다면 그리 큰 문제가 되진 않겠군. 유약한 요술쟁이가 재주를 부린다 한들, 블루레이에게서 벗어날 수 없을 테니.】
하지만 창공 학파, 특히 번개를 다루는 원소 마법사의 강점은 파괴력에 있지 않다.
토드는 입술을 훑었다.
“아마 저 마법사를 잡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창공 학파는 일찍이 순간이동에 능한 재주꾼이 시초였죠.”
토드는 고삐를 잡아당겼다.
“우선은 밤을 기다립시다.”
사령술사는 말이 투레질치지 못하도록 목덜미를 다독이며 자리를 물러섰다.
그 뒤를 파멸의 기사와 해골 기수들이 뒤따랐다. 수십 기의 기병들이 일제히 움직였지만, 먼지가 조금 일뿐, 어떠한 소음도 새어나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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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과 달리, 방백은 상석에 앉아있지 않았다. 비록 그의 작위를 감안하며 바로 옆자리를 마련해주긴 했으나, 방백은 연신 불안한 티를 감추질 못했다. 특히 방백의 옆에 대동한 아내, 마가렛트가 눈자위를 번뜩일 때마다 그의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상석에 위치한 베벨부르크 제국백이 입을 열었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모이텐슈하임 방백. 그리고 방백 부인도.”
방백이 어설픈 미소를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제국백 각하.”
“다행히 간악한 사령술사의 마수가 미치기 전에, 두 분의 신병을 확보한 건 구주님의 자비가 미쳤던 까닭이겠지요.”
목에 걸린 광륜표에 입을 맞추는 제국백을 향해 마가렛트가 당당히 쏘아붙였다.
“제국백 각하. 당초에 우리와 약속하신 집결 날짜는 목요일이지 않으셨나요? 어째서 약조한 날이 닷새나 지났음에도 도착하지 않으셨던 건가요.”
제국백은 광륜표를 갈무리하며 답했다.
“도로 사정이 열악하여 행군이 늦어졌습니다. 앞서 전령을 보내 전달하려 하였으나, 사령술사의 함정을 우려하여 무산되었지요.”
마가렛트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되물었다.
“그놈이 제국백 각하께서 오시는 길목에까지 함정을 안배해놨다고요?”
“그렇습니다. 당장 오늘 낮에도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놈은 땅에 주문이 걸린 시체를 매설해놓았습니다. 제 부하에 따르면, 이미 쾨흘링 분쟁에서도 이리공을 상대로 사용했던 간악한 술수라 하더군요.”
그녀가 코웃음 쳤다.
“핑계를 대시는 건 아니고요? 그놈은 우리와의 일전을 준비하느라 여력이 없었어요. 혹여 제국백 각하께서 늦으신 건, 의도적으로 우리 병사들을 던져주고 적의 술수를 지켜보시려던 수작은 아니셨을까요?”
그녀가 몰아붙였음에도 제국백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른 가신들의 표정이 험악해지자 방백은 사색이 되어 그녀를 만류했다.
“마가렛트. 당신···! 말이 너무 무례하잖소.”
“내가 틀린 말을 했나요? 지극히 합리적인 의심이잖아요. 그게 아니고선 적을 코앞에 두고 미적댈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고요!”
나름 방백의 부인이라 가신들도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는 가운데, 제국백 옆의 여인이 대꾸했다.
“언니. 그러게 우리를 기다리셨어야죠. 뻔히 보이는 함정에 말려들어 병사들을 사령술사에게 던져준 건 전적으로 그쪽의 실책이 아니었나요?”
마가렛트가 이를 갈았다.
“이세벨···!”
이세벨은 제국백의 팔을 쓸어내리며 조소했다.
“보시다시피 제 남편은 만사에 신중한 편이라서요. 인내심을 갖고 조금만 기다렸다면 완승이었을 텐데, 그걸 못 참아서 병사는 절반을 잃고, 겨우 도망쳐서 살려준 게 누군데. 왜 억지로 화를 내는지 저만 이해하기 어려운 걸까요?”
애당초 이 분쟁은 에베르호펜에 누가 먼저 깃발을 꽂는지 여부를 가르는 경주나 다름없었다. 그걸 서로 뻔히 알고 있는 마당에 상대가 저리 나오니 마가렛트는 피가 끓었다.
“이게 지금 억지를 부리는 것처럼 보여? 이 계집애가 누구나 뻔히 알 법한 사실을···”
두 백작 부인의 갈등이 격화되려던 차에 부관 하나가 들어섰다.
“각하! 적습입니다! 적의 기병대입니다!”
“기병대라고? 크뤼거가 운용하는 병력 중에 기병은 없다 하지 않았소?”
제국백의 물음에 방백은 영문을 모르는 표정이었다. 그를 대신하여 하켈이 답했다.
“죽은 자들입니다. 아마 사령술사가 죽은 아군을 되살려 끌고 온 것이 틀림없습니다.”
다른 가신들은 혀를 내둘렀다.
“악랄하군.”
“지독한 놈이야. 그놈은 반드시 추포하여 단죄하게끔 해야 하네.”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선 기사들은 신속하게 무장을 챙겼다.
“침입한 적을 요격한다.”
군막을 나선 이들은 곧장 야영지 끄트머리에서 날뛰고 있는 푸른 불꽃을 목격했다.
화염에 휩싸인 유령말이 포효하고, 그 위에 올라탄 기사가 거침없이 병사들을 베어대고 있었다.
【하, 하! 하. 달콤한 죽음이여! 본인에게 오라!】
그의 주변엔 녹색 안광을 번뜩이며 뼈만 남은 기병들이 아군의 진영을 휘젓고 있었다.
제국백이 부관을 향해 다급히 외쳤다.
“루데신트! 그자는 어디 있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해골 기수들을 향해 벼락 줄기가 내리꽂혔다.
쩌저정!!
“지금 왔소. 마침 차를 달이던 참인데, 이런 소동을 벌일 줄이야.”
터번을 두른 기인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기다란 창을 쥐고 있었다.
“저놈을 죽이게. 루데신트.”
제국백의 손이 가리킨 자를 바라보던 마법사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죽음의 기사인가. 문헌상에서만 보던 존재를 실제로 보게 될 줄은.”
그런데 창에 맺힌 벽력이 내리치기 전에, 파멸의 기사는 돌연 말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엄청난 속도로 빠져나가는 모습에 가신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뒷모습을 바라보며 마법사가 수염을 쓰다듬었다.
“흠. 아무래도 대강 정리는 된 것 같군. 다시 차나 마시러 가봐도 되겠는가?”
막상 상황을 수습하고 보니 경계를 서던 보초와 가장자리에 있던 병사들이 몇 죽은 것 말곤 피해가 경미했다. 오히려 아군의 반격으로 죽은 자들이 일부 쓰러졌다.
“경계를 더 철저히 세우게. 외곽에 순찰대를 배치하고, 척후조의 간격을 좁히고.”
“예. 각하.”
그렇게 첫날밤의 야습은 성공적으로 격퇴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망자들의 공격은 서막에 불과했다.
“적습! 적습이다!!”
땡땡!
종이 울리고, 또 야영지가 뒤집어진다.
첫날과 마찬가지로 죽은 자들은 폭풍처럼 야영지를 휩쓴 뒤에 부리나케 도망쳤다.
“적이다! 적의 기병대가!”
땡땡땡!
찻주전자까지 들고나온 루데신트는 인상을 구겼다. 그는 차를 들이켜며 번개를 떨어트리는 묘기를 선보였다.
이번에도 놈들은 달아났다.
“적, 적이다.”
“이런, 망할. 또?”
땡땡땡땡!!
밤마다 제국백 군대의 종은 쉬는 일이 없었다.
“적의 기습이다!!”
“도랑에서 적이 나타났다!”
“구릉지에 적의 기병대가!”
제아무리 잘 훈련된 군대라도 계속 행군할 수는 없다. 원정을 나선 것만으로도 고된 일인데, 야영하거나, 취식을 지을 때의 여유조차 사령술사는 앗아가 버렸다.
마치 벌집이라도 들쑤신 것처럼 주둔지에서 우르르 쏟아져나오는 병사들을 지켜보며 토드가 히죽 웃었다.
“됐습니다. 이스라. 이제 슬슬 빠집시다.”
의념 상으로 이스라의 즐거운 목소리가 새어 들어온다.
【알겠네! 토드! 처음엔 좀 비겁한 술수가 아닌가 싶었네만, 나름 이것도 재밌구만! 하, 하! 하.】
꽁무니에 수백 명을 끌고 오는 이스라를 바라보며 토드가 어깨를 으쓱였다.
“원래 벨튀만큼 스릴 넘치는 게 없긴 하죠.”
토드는 이 짓을 장장 2주 동안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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