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Genius At My Arts High School RAW novel - Chapter (31)
31화. 최초의 그랑프리(3)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800원이던 시절. 3만 달러는 2천 400만 원에 해당하는 큰돈이었다.
“3만, 3만 달러요?”
암산을 마친 경매사가 아득한 표정으로 되물었고-.
“네, 문제 있습니까?”
제임스 리는 평온한 얼굴로 답했다.
“아뇨, 전혀 없습니다. 아, 3만 달러면 한화로 2400만 원 정도 되는 돈입니다. 응찰자가 더 계시지 않는다면 이만 낙찰을 선언하겠습니다.”
더 지를 여력이 있는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탕!
경매사의 망치가 경쾌하게 낙찰을 알렸고 무려 2천 4백만 원에 수현의 그림이 낙찰되자 뒤늦게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
“이게 웬일이야!”
“미쳤다, 정말!”
그리고-.
“잠시만요!”
이 상황을 도무지 믿기 어려운 한 사람, 최형욱 선생이 흥분한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제임스 리 앞에 섰다.
“실례지만, 누구신지.”
아까부터 거슬리긴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일주일 전부터.
웬 노랑머리 여자와 단발머리 남자가 전시장을 어슬렁거리며 피식거렸고, 영어로 계속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최형욱의 눈에 띄었다.
학생들과 인연이 있는 외국인이겠거니 넘겼는데, 떡하니 경매장에 들어왔고. 하지만 경매에는 참여하지 않아 어느 순간부턴 염두에 두지 않았는데 막판에 3만 달러를 지르며 판을 뒤엎어버린 거다.
‘뭐하는 놈이야?’
최형욱은 그의 정체가 몹시도 궁금했다.
아니, 솔직히 말해 그가 신원이 불확실한 인물이길 바랐다.
‘청바지에 셔츠 차림을 한 이 남자가 고등학생들의 경매 행사에 3만 달러란 거금을 쓴다구? 그럴 만한 재력가로 보이진 않는데, 설마 멋대로 질러놓고 유찰시키려는 거 아냐?’
그러나 그의 기대는 힘없이 꺾이고 말았다.
“아이고! 혹시나 했는데, 정말 맞군요!”
앞자리에 앉아 흐뭇하게 경매를 지켜보던 학교장과 이사장이 감격스러운 얼굴로 남자 앞에 섰다.
“……?”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남자와 학교장, 그리고 이사장을 번갈아 바라보는 최형욱.
그런 최형욱을 이사장이 나직한 목소리로 나무랐다.
“뭐 하시는 겁니까? 얼른 제대로 모시지 않고.”
“네?”
“이분이 제임스 리 아닙니까. 이번 우리 세현예고 전시회 심사를 맡아주신.”
“네에?”
이사장의 말에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린 최형욱.
그가 다시 고개를 홱 돌려 제임스 리의 얼굴을 확인했다.
‘저 사람이 진짜 제임스 리라고? 런던을 대표하는 현대미술 작가, 뉴욕 화랑을 떠들썩하게 한 그 천재 화가?’
아무리 쳐다봐도 알아볼 순 없었다. 애초에 최형욱은 제임스 리의 얼굴을 몰랐으니까.
제임스 리는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작가였다.
작가는 작품으로 소통하는 거지 대중 앞에 모습을 자주 드러내 좋을 게 없다는 생각이었고, 가까운 동료와 지인, 화랑 관계자, 콜렉터들 외엔 접촉을 삼갔던 거다.
그러나 세현예고 이사장은 지난해 겨울, 자신의 인맥을 최대한 동원해 뉴욕에서 제임스 리를 볼 기회를 얻었다.
그 인맥을 통해 전시회 심사위원 섭외까지 밀어붙였으니 제임스 리를 단번에 알아볼 수밖에 없었고.
“어쨌거나 너무나 큰 영광입니다. 세상에. 심사 때문에 여길 찾아주신 건가요?”
그렁그렁한 눈으로 제임스 리를 바라보는 이사장.
그 덕분에 주변에서도 그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됐다.
“세상에. 저분이 그 제임스 리라네.”
“제임스 리? 그게 누군데요?”
“요즘, 유럽이랑 뉴욕에서 완전 핫한 작가 있잖아요. 몰라요?”
“아니, 근데 그런 유명 작가가 왜 여길 왔대요?”
“이번 전시회 심사를 저분이 맡았다는데요?”
“어머나, 어머나! 정말요?”
“설마, 그랑프리 심사 때문에 온 걸까요? 웬일이야!”
“그럼 이번엔 그랑프리가 나오려나?”
“이미 나온 거 아니에요? 저분이 좀 전에 경매에 참여했잖아요.”
“헉. 그렇네요. 진짜! 저분이 3만 달러를 불렀잖아요.”
세현예고 그랑프리 심사를 맡은 심사위원의 강렬한 등장.
그리고 조금 전 그가 보여준 행동으로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수현을 향했다.
수현은 그 무거운 시선을 이겨내며 저만치 서 있는 제임스 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저 사람이 제임스 리였구나. 한국에 직접 올 줄이야. 근데, 스티브와도 인연이 있는 건가?’
제임스 리는 스티브, 또 이름 모를 여성과 함께 서 있었다.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난 건지 제대로 알 수는 없었지만 그 제임스 리가 자신의 그림을 인정했다니, 수현의 가슴은 서서히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안녕하세요!”
언제 내려갔는지 잽싸게 1층에서 나타난 김하영과 무리들.
“저 작가님 작품을 너무 좋아해요.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서 정말 영광입니다.”
평소와 다른 다소곳하고 차분한 말투. 김하영이 살짝 무릎을 굽혀가며 초승달 눈을 만들었다.
그러나-.
“수현은 어디 있죠?”
제임스 리는 팬심을 드러내는 김하영은 물론 자신을 앞에 두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이사장 등엔 전혀 관심 없다는 얼굴로 그림의 주인인 수현을 찾았다.
“수현!”
그리고 2층에 서 있는 수현을 발견한 스티브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아, 내빈 여러분. 죄송하지만 남은 경매가 있으니 잠시 진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경매는 빠르게 진행할 테니, 우선 모두 착석해주시기 바랍니다.”
어수선한 분위기를 정리한 건 진행을 맡은 경매사였다.
그가 주변을 진정시키며 남은 경매를 진행했고, 순서를 기다리던 그림들은 싱거우리만치 빠르게 낙찰됐다.
덕분에 최형욱이 원했던 대로 10시가 되기 전에 모든 행사가 끝났지만, 거기까지일 뿐.
그간 최형욱이 치밀하게 세워온 다른 계획들엔 아무런 성과를 얻을 수 없었다.
***
“반가워.”
복도로 나온 제임스 리가 수현에게 악수를 청했다.
“아, 네. 반갑습니다. 한수현이라고 합니다.”
수현이 긴장하며 제임스 리의 손을 맞잡았다.
조금 어눌한 한국말. 꾸민 듯 안 꾸민 듯 자연스러운 스타일에 매력적인 외모를 한 남성.
‘이 사람이 제임스 리였구나.’
이름과 그림만 알았던 유명 작가를 눈앞에서 보게 될 줄이야.
게다가 그 대단한 작가가 내 그림을 거금을 주고 구입하다니.
수현은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꼭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오늘은 시간이 너무 늦었고, 따로 한번 만날까? 내가 일주일 정도는 한국에 있을 거거든.”
제임스가 부드럽게 다음 만남을 청했고-.
“네. 시간과 장소 알려주시면 찾아뵈러 가겠습니다.”
수현이 얼른 답했다.
바짝 긴장한 감정이 드러났는지 준이 엄마 미소를 지으며 수현의 등을 툭툭 두드려줬다.
“드디어 얼굴을 보네. 그림만 봤을 땐 어떤 친구인지 너무 궁금했거든. 근데 내 상상보다 너무 가냘픈데? 맛있는 것부터 좀 사줘야겠어.”
“아, 하하. 감사합니다.”
“나는 준이라고 해.”
준이 수현을 배려하며 느릿느릿, 간결하고 정확한 발음의 영어로 자신을 밝혔다.
“어, 혹시…….”
“준 도번. 제임스처럼 나도 화가야.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고.”
“아, 알아요! 작가님 그림도 제가 엄청 좋아하거든요.”
흥분한 나머지 수현의 목소리가 살짝 커졌다.
준 도번이라니, 제임스 리와 함께 영국은 물론 유럽과 뉴욕 화랑을 떠들썩하게 한 재능있는 화가였다.
지금도 유명하지만 앞으로 더 유명해질 세계적인 작가.
“와, 이거 기분 좋은데? 한국에까지 내 팬이 있을 줄이야.”
“진정해, 준. 네 그림을 좋아한다고 했지, 네 팬이라고까진 안 했어. 그리고 네 그림‘도’라고 했고. 그건 수많은 그림 중 네 그림도 좋아한다는 말이거든.”
“와, 질투하는 거야? 수현, 제임스 말이 맞아? 그냥 인사치레로 한 말이야?”
“아,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정말 작가님 그림 좋아해요. 물론 제임스 작가님의 그림도 좋아하고요.”
“어휴, 정말 못 말리겠네. 준. 수현이 당황하잖아.”
“아, 그랬나? 미안. 내가 장난기가 좀 있거든. 어쨌든 정말 반가워. 조만간 꼭 만나자. 하고 싶은 얘기가 무척 많아.”
“네. 정말 감사합니다.”
두 거장 사이에서 수현이 얼굴을 붉혔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스티브 역시 이들과 안면이 있는 듯했다.
예전엔 멀리서 동경하기만 했던 작가들. 그들과 한 자리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칭찬까지 듣다니.
어쩌면 계속 교류를 이어 나가며 작품 활동을 할 수도 있을까.
상상만으로도 벅찬 미래였다.
“자, 내 연락처야. 이왕이면 빨리 다시 만날 날이 오면 좋겠다.”
제임스 리가 다정하게 자기 번호를 넘겨주었고, 수현이 그걸 조심스럽게 받아들었다.
“기다리는 분들도 있는데 우리가 너무 시간을 뺏은 것 같네. 오늘은 돌아가서 마음껏 축하하고 기분을 즐겨.”
“네,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 그림을 사주신 것도요.”
“흠. 그건 앞으로의 가능성을 보고 투자한 거니까 넌 그저 더 열심히 좋은 작품을 그려주면 되는 거야.”
“네. 꼭 그럴게요.”
꾸벅 인사를 하고 난 수현이 다시 시선을 돌려 복도 저편에 서 있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정말 놀라운 날이었다.
제임스 리가 경매 행사에 등장해 자신의 그림을 산 일도.
그리고 이 행사에 가족들이 온 것도.
“어떻게 오신 거예요?”
수현은 아까 2층에서 내려온 다음에야 큰아빠와 큰엄마, 그리고 동생이 자선행사에 참석했다는 걸 알았다.
2층 자리에선 보이지 않는 뒷자리에 가족들이 앉아있어 뒤늦게 얼굴을 발견했던 거다.
놀란 얼굴을 한 수현에게 큰아빠와 큰엄마는 먼저 제임스 리와 인사를 나누고 오라며 고개를 끄덕였고, 대화를 마친 수현이 기다리고 있던 가족에게로 곧장 다가갔다.
“학교에서 연락이 왔었어. 전시회 마지막 날 경매 행사가 있을 거라고 하더라.”
“아.”
큰엄마의 설명에 수현이 짧게 답했다.
그렇다고 해도 의외였다. 과거 미술 전시회 때에는 이렇게 가족들이 찾아오지 않았으니까.
“대충 살펴보니 자기 애들 그림을 사주는 분위기라 우리도 처음엔 경매에 참여했는데, 뒤로 가면서는 그럴 필요가 없겠더구나.”
“사실 덤벼들 만큼 만만한 가격도 아니었고 말이야.”
큰아빠와 큰엄마가 대견하다는 눈빛으로 수현을 바라보았다.
이 역시 전에 없던 따뜻한 관심이었다.
‘조금은 다른 눈으로 날 봐주시는 건가? 하지만, 왜지?’
“그림 보는 눈은 없지만 그냥 봐도 너무 잘 그렸더라. 수현이가 그렇게 재능이 있는지 몰랐어.”
“그래. 기숙사랑 화랑에만 있더니, 그간 많이 노력하고 고생했구나.”
“맞아. 언니 그림이 최고였어. 오늘 1등인 거잖아. 언니가 세현예고 1등인 거 맞지?”
어쩌면 지난번 집에 들렀을 때 큰엄마에게 그림을 선물한 일이 작은 변화를 일으킨 걸까?
어쨌거나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가족들의 모습에 수현의 마음이 조금 뭉클해졌다.
“오늘은 집으로 가자. 내일은 토요일이니까 좀 늦게까지 깨어있는 것도 괜찮겠지? 혹시나 해서 샴페인을 사뒀는데 한 잔씩 해야겠어.”
“어마, 이이가? 수현이 아직 고등학생이에요.”
“에이, 내가 샹젤리 제과점에서 무알콜 샴페인으로 사둔 거야. 수현이도 먹어도 될만한 걸로.”
“그래, 언니. 집으로 가자! 오늘은 나랑 같이 자야 해!”
큰아빠가 전시회를 축하하며 가족끼리 작은 파티를 열자고 말했고, 큰엄마도 작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가방만 좀 챙겨올게요.”
수현이 꾸벅 인사하고 기숙사 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강유진 관장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완벽한 해피엔딩을 만들기 위해 해결할 일이 있었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