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Genius At My Arts High School RAW novel - Chapter (7)
7화. 새로운 후원자
“엄마! 지금 어디야!”
달칵. 상대방과 연결되자 박선화가 큰 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이제 돌아가는 길이지. 왜, 뭐 빼먹고 내렸어?
좀 전 학교 앞에서 박선화를 내려주고 집으로 돌아가던 박선화의 엄마, 강유진이 벽돌폰을 들어 딸과 통화했다. 다급한 목소리, 어쩐지 심상치 않은 분위기였다. 강유진이 운전하던 기사에게 갓길에 잠시 차를 세우란 손짓을 보냈다.
“두고 온 건 아닌데. 엄마, 지금 우리 학교로 좀 와줄 수 있어?”
-다시?
“왜? 안 돼?”
하나뿐인 외동딸. 가끔 버릇없이 굴 때가 있긴 해도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리는 아이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나 보구나, 강유진이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답했다.
-벌써 멀리 오긴 했는데, 알겠어. 어디로 가면 되니?
“실기실. 3층 실기실로 와! 불 켜진 교실이 하나라 바로 보일 거야! 사랑해, 엄마!”
용건을 끝낸 박선화가 철컥. 수화기를 내려놓았고, 아직도 들썩이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3층 실기실 쪽을 올려다보았다.
“미친. 진짜 미쳤어. 한수현.”
***
“미안, 미안. 오래 기다렸지?”
잠시 후, 수현이 기다리던 실기실로 박선화가 쓰윽 얼굴을 내밀고는 민망한 웃음을 지었다.
“뭐야, 한참 안 와서 무슨 일인가 했다.”
수현이 피식 웃으며 일어났다. 그림과 스케치북은 벌써 챙긴 후였다.
“가자.”
“어?”
“밥 먹자며. 기숙사로 들어가서 먹자. 나 배고파.”
수현이 문 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박선화가 성큼 다가오더니 수현의 손을 잡으며 만류했다.
“잠깐만 여기 더 있으면 안 될까? 아니 도시락, 그냥 여기서 먹자.”
“어?”
“아니다. 그보다 내가 너한테 하나 고백할 게 있어.”
얘가 왜 이래?
두서없는 박선화의 말에 수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박선화가 눈을 질끈 감았다 뜨더니 어렵게 입을 열었다.
“사실…… 하아. 이걸 어디부터 말해야 하지.”
“뭔데 그래?”
“너, 내가 애들한테 가끔 그림 달라고 하고 다녔던 거 알지?”
박선화가 수현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어. 몇 번 보기는 했지.”
“그게 내가 제대로 설명을 안 하긴 했는데…… 그러니까 내가 수집을 좀 했어. 어릴 때부터 유명한 화백들이나 그림을 접할 기회가 많았거든. 집에서 조기교육으로 수집을 시키기도 하셨고.”
지금 집안 얘길 꺼내려는 건가?
수현이 눈을 끔뻑이며 박선화를 바라보았다.
“음. 그러니까 우리 엄마가 일선화랑 강유진 관장이야. ”
“어? 아, 아. 그래.”
뜻밖의 고백에 수현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던 사실이지만 이렇게 박선화의 입으로 직접 듣게 될 줄이야. 그런데 얘는 왜 갑자기 이런 얘길 꺼내는 거지?
잠자코 다음 말을 기다리자 박선화가 쭈뼛거리며 입을 열었다.
“나도 나중에 엄마처럼 내 화랑을 하나 만들 생각이야. 세현예고에 들어온 것도 그런 목표 때문이고. 그러니까 안목을 좀 더 키우고, 가능성 있는 예술가들을 미리 만나고 싶은 마음이 있었거든.”
“……어.”
일이 과거와 다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과거 박선화는 누구에게도 자기 배경과 앞으로의 꿈 같은 걸 늘어놓은 일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차분히 자신을 소개하고 있었다.
“여튼 그래서 내 눈에 들어오는 그림들을 달라고 졸랐던 거야. 나중에 화랑을 차리면 내 콜렉션들로 전시를 열고 싶어서. 너한테도 같은 이유로 그림을 보여달라고 한 거고. 아, 물론 잘 되면 작품값은 제대로 지불할 생각이었어. 정말!”
“그래, 알겠어.”
“근데 오늘 네 그림을 보니까. 하아…….”
박선화가 평소에는 볼 수 없던 진지한 얼굴로 수현의 눈을 바라보았다.
“이거, 내가 감히 평가할 수준이 아닌 것 같더라고.”
“어?”
“그래서 갑작스럽긴 하지만, 내가 누굴 소개해주고 싶은데 괜찮을까?”
설마 자기 엄마인 일선화랑 강유진 관장을 말하는 걸까?
수현의 호흡이 저도 모르게 가빠졌다.
“소개? 누구를?”
혹시나 하며 물었더니-.
“어, 그게 우리 엄마.”
정말 강유진의 이름이 툭 튀어나왔다.
“헐.”
수현의 표정이 멍해졌다.
그림을 보여주고 그걸 계기로 박선화에게 쌓았던 벽을 허물겠단 생각이었는데, 일선화랑 강유진 관장과 만날 기회가 생기다니.
강유진이라면 국내 미술계의 거물 중 거물이 아닌가.
“아아. 미안해. 내가 또 부담 준 거지?”
박선화가 수현의 눈치를 살피며 자기 손으로 제 머리를 쥐어박았다.
“내가 성격이 좀 급해. 앞뒤 안 가리고 막 지를 때가 있어. 단점인 건 아는데 이게 고의가 아니라 내 딴에는 진짜 잘해보자고 하는 일이거든.”
“아냐. 내가 고맙지.”
수현이 작게 웃었다.
“좋은 기회를 열어주려는 거잖아. 물론 결과는 알 수 없지만, 네가 내 그림을 좋게 봐주고 어려운 이야기까지 꺼내준 건데 원망이 아니라 고맙게 생각해야지.”
“헐. 진짜야?”
박선화가 그제야 안심이 된다는 듯 손을 가슴에 얹으며 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드르륵.
마치 짠 것처럼 실기실 문이 열리더니 화려한 외모의 여성이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들어왔다.
“엄마!”
박선화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여자를 반겼다.
저 사람이 일선화랑 강유진 관장이구나.
“안녕하세요.”
수현이 일어나 꾸벅 인사했다.
“어. 안녕. 처음 보는 친구네.”
강유진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수현과 자기 딸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네. 한수현이라고 합니다. 선화, 기숙사 룸메이트예요.”
“아, 네가 수현이구나.”
강유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활짝 웃었다. 영리한 머리를 가진 강유진은 이 상황으로 딸 박선화가 자신을 급히 호출한 정황을 벌써 그려내고 있었다.
‘신의 손이라고 불리는 친구가 같은 방이라고 하더니, 오늘은 그 친구 그림을 보러 일찍 학교로 돌아가겠다고 난리였지. 제법 대단한 걸 그렸나 보네. 그러니 선화가 나한테까지 선을 보여주려고 이 난리를 쳤을 거고.’
하지만 그래 봐야 고등학생. 그것도 고작 1학년.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강유진이었다.
“늦은 시간까지 그림들 그리고 있던 거야?”
강유진이 쓰윽 실기실을 살피며 물었다. 한수현이 메고 있는 화구통과 손에 들린 스케치북에 아마도 딸 아이를 흥분시킨 그림이 있겠구나, 짐작하면서.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 구경하고 가는 것도 나쁘진 않을 일이었다. 그래도 명문 중 명문인 세현예고. 1학년에서 가장 두각을 드러내는 아이라니 어느 정도일지 실력이 궁금하기도 했고.
“수현아. 괜찮을까?”
박선화가 수현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고.
“꺼낼까?”
수현이 스스럼없이 커버를 벗기고 그림을 꺼냈다.
그리고-.
“……이거, 정말 네가 그린 거니?”
그림을 확인한 강유진이 성큼 그림 앞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얼굴에 맺혔던 웃음기는 단번에 사라지고 없었다.
“네?”
“엄마,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좀 놀라서 그래. 수현이라고 했지? 이거 진짜 네 생각으로 그린 게 맞아?”
“아. 네.”
수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강유진이 고개를 저으며 허허 웃음을 내뱉었다.
물 흐르듯 그려진 능숙한 선. 강렬한 주제 표현, 개성과 메시지도 분명했다.
‘기가 막히네. 기교도 놀랍지만 작가로 대성할 자질이 뛰어난 아이야. 적어도 국내 또래 중에선 최고. 아니 20대 신예까지 헤아려 봐도 탑3 안엔 들겠는데?’
강유진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이런 아이가 세현예고에 있었다니.
왜 여태 몰랐을까.
“하, 정말 대단하네. 대단한 친구구나.”
감탄을 이어가던 강유진은 한참이나 ‘첫인상’을 들여다보다가 다시 책상 위에 놓인 수현의 스케치북을 천천히 넘겨봤다.
“하…….”
“허…….”
나지막한 한숨과도 같은 감탄이 이어졌다. 한 장 한 장 그림을 넘길 때마다 강유진의 미간이 좁아졌다.
벌써 자기만의 소재를 잡고 그걸 표현할 화풍을 개발하고 있다니. 정말이지 천부적인 재능이었다.
‘볼수록 감각적이야. 이 아이, 어쩌면 세계적인 작가가 될 수도 있겠어. 전례가 없던 일이긴 하지만…… 이런 인재를 놓칠 순 없지.’
충격에 사로잡혔던 강유진의 마음에 뜨거운 확신이 차올랐고, 마침내 강유진은 굳은 결심을 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수현아. 아줌마는 일선화랑 강유진 관장이라고 해.”
강유진이 한쪽 손을 내밀며 자신을 다시 소개했다.
“어. 네.”
영광이란 말이라도 해야 하나?
수현이 고민하며 조심스럽게 강유진의 손을 맞잡았다. 강유진이 그런 수현을 따뜻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 딸이 아주 귀한 보배를 찾은 것 같구나. 수현이 너, 혹시 우리 일선화랑의 후원을 받아볼 생각 없니?”
“……네?”
갑작스러운 제안에 수현이 할 말을 잃자 강유진이 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널 작가로 제대로 키워보고 싶어서 그래. 물론 후원을 받는다고 해서 노예계약을 하거나 작품 활동에 제약이 있거나 수익에 손해를 입는 일은 전혀 없을 거야. 네가 온전히 작품에 집중할 수 있게 학비와 생활비를 후원해주고, 또 네 그림을 알리는 매니지 역할을 하려는 거니까. 성과가 좋으면 해외 쪽 담당도 하고, 나중에 전시할 때 도움을 주는 그런 역할.”
이게 무슨 일이지?
길게 들어도 얼떨떨한 제안이었다.
기성도 아닌 신인. 그것도 일개 고등학생에게 일선화랑의 후원이라니. 구체적인 조건이야 더 들어봐야겠지만, 일선화랑의 규모와 뉘앙스로 짐작할 때 꽃길을 깔아주겠다는 말이 분명했다.
“정말 저한테 후원을 해주신다고요?”
“그럼. 일선화랑은 예술가를 미리 발굴하고 육성하는 데도 큰 관심을 두고 있거든.”
“하지만 왜 저한테…….”
“글쎄. 내 눈과 마음이 그렇게 하라고 하는데? 혹시 부담되니?”
“아…….”
부담이 되면서도 욕심이 나는 제안이었다. 수현이 머뭇거리자 강유진이 껄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 이 결정에 대한 책임은 관장인 내가 온전히 지는 거니까. 너는 하나도 부담 가질 게 없어.”
“네…….”
수현이 저도 모르게 긴 한숨을 내쉬었다. 과거에도 후원을 받은 일은 있었다.
대학 졸업반 시절이었고, 감사한 일이지만 그다지 큰 규모는 아니었다.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장소 제공과 약간의 생활비 정도였으니.
‘하지만 이번엔 격이 달라.’
수현이 눈앞에 선 강유진과 박선화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국내 최고의 화랑 중 하나인 일선. 그것도 고 1부터의 후원이라니.
이것으로 앞으로 선택의 폭도 훨씬 넓어질 수 있었다. 과거로 돌아온 것도 축복인데 꿈만 같은 일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었다.
“너무 갑작스러우면 생각할 시간을 좀 줄까?”
부드러운 강유진의 말에 수현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럴 필요 없어요. 감사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수현이 허리를 꾸벅 숙이며 강유진에게 인사했다.
“아이고. 그림도 그림인데 우리 수현이 성격도 외모도 정말 아줌마 마음에 너무 쏙 든다. 이럴 게 아니지. 우리 같이 나가자. 제대로 축하라도 해야겠어.”
강유진이 크게 웃으며 한쪽 팔은 박선화에게 한쪽 팔은 수현에게 둘렀다.
“뭐 먹고 싶니? 오늘은 너희들 먹고 싶은 거 일선에서 전부 시원하게 쏜다!”
결국 도시락은 기숙사 냉장고에 안전하게 넣어두고, 수현과 박선화는 강유진의 차로 이동했다.
수현의 삶에 전에 없던 그린라이트가 켜진 날.
수현은 일선의 후원으로 전과 다른 선택을 할 기회를 한 번 더 얻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