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spectable male god RAW novel - Chapter (144)
#144. 국가 대표 선수단
피해자에 대한 걱정에 빠져 있던 재인은 어두운 일행의 얼굴을 보고 아차 했다.
행사가 취소되고 식사 약속마저 시작도 전에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었다. 분위기가 가라앉다 못해 불안에 잠겨 드는 건 당연했다.
“아직 식당이 닫을 시간은 아니죠?”
“네.”
“그러면요. 다 같이 식사라도 할까요? 프로모션도 거의 끝이고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손님도 있잖아요.”
“네, 자리가 있는지 물어보고 알려 드리겠습니다.”
“부탁해요, 매니저님.”
행사가 취소되어 뒤처리를 걱정하는 홍보 회사 직원들도 달래 주고, 바쁜 일정 내내 그를 지키느라 수고한 재현의 팀과 키퍼 팀에도 맛있는 식사를 한 끼 대접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해서 자리를 만들었는데 분위기가 예상보다 빨리 풀어지지 않았다. 재인의 스태프들과 홍보 회사 직원들은 그나마 괜찮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문제였다.
‘헐! 뭐 이런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다 있어?’
해성은 식당 안에 모인 사람들을 돌아보고 속으로 경악했다. 일부러 모으려고 해도 쉽지 않은 조합이 재인과 같이 식사하려는 목적을 위해 모인 게 신기하기까지 했다.
최상호가 잡은 식당 안에는 스트라이커와 키퍼, 빌런에 일반인까지 골고루 모여 있었다. 확연하게 갈리는 분위기와 서로를 견제하는 무리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까지 생긴 듯했다.
“김태오 변호사님이시라고요?”
“그렇습니다, 선우현 중령님.”
“예, 선우현입니다. 베이징에는 어떤 일로?”
“소송 자료 수집차 방문했습니다만.”
해성은 이런 상황을 모르는 스트라이커나 키퍼는 둘째 치고라도 사실을 잘 아는 김태오가 태연하게 대답하는 모습은 감탄스러웠다. 괜히 조직 보스를 하는 게 아닌 모양이었다.
“…….”
“…….”
그렇다고 대화가 길게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진짜 대단하다. 이 사람들이 전부 재인 씨 때문에 모였다는 거 아니야.’
일을 위해서든 사적인 목적을 위해서든 이런 사람들을 모으는 힘이 있다는 것 자체로 대단했다. 물론 본인은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한데 모아 놓은 게 미안한 것 같지만.
테이블 사이사이를 돌며 인사하고 부족한 게 없는지 챙기는 재인을 보며 해성이 미소 지었다. 본인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면서도 항상 재밌는 결과를 도출해 내는 게 정말 특이했다.
“진짜 잘생겼다. 화면발이 아니었네.”
“아니라고 했잖아. 카메라가 실제보다 못 담는다니까.”
“못 담은 게 그 정도라니. 진짜 사람이 아닌가?”
만나고 싶다고 계속 시끄럽게 굴던 동료는 실제로 재인을 보자 제대로 말도 못 붙였다. 기껏 김태오의 일을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소개까지 해 줬는데도 떠듬떠듬 인사 몇 마디만 겨우 건넸다. 그래 놓고 지금은 목을 길게 빼고 재인을 훔쳐봤다.
“뭐 해?”
“등 봐.”
“재인 씨 등? 뭐 붙었어?”
“아니. 아무리 봐도 사람이 아니라 천사 같아서. 날개 있나 보려고.”
“…….”
해성은 동료의 주접에 입을 쩍 벌렸다. 입덕한 건 알아차리지도 못한 주제에 주접은 당당하게 떠는 게 부끄러웠다. 입덕했다고 진작 알려 주지 않은 게 후회됐다. 미리 알려 줬으면 그나마 덜 부끄러웠을 텐데…….
“하, 하, 하. 직원분들이 참 재밌으십니다.”
“…….”
없는 소송 핑계도 잘 댔던 김태오도 이번에는 대꾸할 말이 없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근처 테이블의 모든 시선이 쏠린 상황이라서 뻔뻔함이 닳아 없어졌는지도 몰랐다.
“중령님. TV 좀 켜도 되겠습니까?”
“왜? 무슨 일인데?”
“중요한 뉴스가 나오는 중입니다.”
“재인 씨 TV 켜도 괜찮습니까?”
“네, 켜세요.”
해성과 동료가 한참 재인의 영향력과 미모에 감탄하는 사이 키퍼 부대의 꽁지머리 팀원은 다른 곳에 집중하고 있었다. 업무가 정보 관리 쪽이라서 그런지 식사보다 테러 사건의 후속 보도에 더 관심을 보였다.
“중국 공안에서 테러 배후로 빌런 연합을 지목했습니다. 테러가 벌어지기 얼마 전 다수의 빌런이 베이징으로 들어온 정황을 밝히며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꽁지머리 팀원은 지나간 브리핑 내용을 정리해서 알려 주는 사이사이 TV 화면에 나오는 빌런의 사진을 보고 이름과 소속된 조직을 불러 주었다. 테러 현장 사진이 나올 때마다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중요한 일이라 생각해 수배된 빌런을 빼놓지 않고 알려 줬다.
“많다. 대체 몇 명이야?”
“진짜 많다. 저렇게 많은 인원이 지금 여기 있다는 거지? 무섭네.”
“우린 어차피 내일 귀국할 거니까.”
“공항이 폐쇄되진 않겠지?”
“설마. 아무리 그래도 외국인한테 그러겠어?”
스태프를 비롯한 사람들이 출국을 걱정하는 사이 김태오 일행은 황당한 표정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조심해야 했다. 말도 안 되는 날조가 사실인 양 뉴스로 나오는 상황이 어이없었으나 표를 낼 수는 없었다.
‘얼씨구. 베이징에 오지도 않은 빌런까지 다 가져다 붙이고 빌런 연합? 있지도 않은 빌런 연합은 또 뭐야?’
진실을 아는 김태오 일행은 빌런 연합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단체를 테러의 배후로 지목한 당국의 발표에 기가 막히는 듯했다.
곳곳의 연구소에서 탈출한 피실험자와 사이비 교단 피해자들이 테러 단체와 손잡은 결과가 이번 올림픽 경기장 테러였다. 사막 연구소에서 얻은 자료에 고스란히 그런 정황이 담겨 있었는데, 엉뚱한 상대를 범인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아주 그냥 빌런이라고만 하면 뭐든 다 통과지.’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빌런의 소행이라는 핑계를 가져다 붙이는 게 괘씸했지만, 한편으로는 이해되는 부분도 있었다. 그들이야 김태오의 뜻에 따라 적정선을 지키는 편이었으나 다른 조직은 그렇지 않았으니.
“브리핑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곧 각성자에 대한 통제가 시작될 것 같습니다.”
“귀국하자는 얘기지?”
“예.”
“나도 그게 낫다 보지만은…….”
실질적으로 일정을 결정하는 건 선우현이 아니었다. 경호를 맡은 것도 KH 길드의 스트라이커 팀이었고. 식사 자리가 어쩌다 보니 다음 일정을 결정하는 자리로 바뀌긴 했지만, 엄연히 이 자리도 주최자가 따로 있었다.
선우현의 시선이 재인을 향했다. 홍보 회사가 짜 둔 일정대로 움직이고 있어도 최종 승인자는 그였다. 모든 일의 중심은 재인이었다. 그가 움직이지 않으면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귀국 시간을 당길 수 있을까요?”
“으음. 잡아 놓은 인터뷰는 서면이나 화상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만, 오찬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
“죄송합니다.”
론칭 쇼케이스나 예능 프로그램 출연도 중요했지만, 가장 중요한 일정은 귀국 직전으로 잡았던 오찬이었다. 방송국 관계자와 여러 유력 인사들과 하는 오찬이 실질적으로 이번 베이징 프로모션의 핵심이었다.
‘매니저님 잘못은 아니지. 이쪽 분위기가 이렇다는데 어쩌겠어.’
최상호와의 대화하는 걸 곁눈질로 보는 홍보 회사 직원의 표정이 무척이나 근심스러웠다. 혹시라도 재인이 오찬 초대를 거절할까 걱정하는 것 같았다.
표정으로 보아 약속 상대는 분위기가 좋지 않으니 나중에 보자는 상식적인 말이 통하는 상대는 아닌 모양이었다. 이쪽에서 약속을 취소하면 체면이 상했다고 여기고 어떤 방식으로든 대가를 받아 내려 드는 그런 상대인 듯했다.
“어쩔 수 없죠. 그러면 최소 인원만 남기고 가장 빠른 항공편으로 다른 사람들은 먼저 귀국하기로 해요.”
“…….”
“몇 시간 일찍 귀국하는 게 뭐가 중요하냐 하실 분도 계실 텐데요. 노파심이라고 여기고 따라 주셨으면 해요.”
“알겠습니다.”
예정대로 오찬 약속에 참석한다는 재인의 말에 안도하는 홍보 회사 직원과 다르게 경호를 맡은 선우현의 팀과 재현의 팀은 반대였다. 오찬 약속을 지키겠다는 그의 뒤통수와 뺨이 따끔따끔할 정도로 강렬한 시선을 쏘아 보냈다.
“내일 일정은 그렇게 하기로 하고 식사 계속할까요?”
사방에서 쏘아 대는 시선을 무시하고 재인이 식사를 종용했다.
* * *
재인은 경호 팀을 배경처럼 두르고 최상호와 호텔 앞에 나와 있었다. 홍보 일정 내내 같이 움직이면서 사소한 것까지 챙겼던 스태프들을 배웅하기 위해서였다.
“오찬에 입을 옷 기억하지? 액세서리도 잊지 말고 착용하고.”
“네.”
“우리 진짜로 다 들어가? 내가 남아서 봐줄까?”
“괜찮아요. 먼저 귀국하세요.”
“……그래. 먼저 갈게. 너도 바로 들어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인 재인이 김신우의 등을 조금 세게 밀었다. 마지막까지 남아서 스타일링을 해 주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통에 설득하느라고 애를 먹었다. 등을 미는 손에 힘이 슬쩍 들어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인원이 꽤 많은데도 항공편이 바로 수배되어서 다행이네요.”
“항공편이 많은 노선이기도 했고, 선우현 중령님이 힘을 써 주시기도 해서 금방 수배할 수 있었습니다.”
“진짜 다행이네요.”
아무리 항공편이 많은 노선이라도 인원이 많아서 쉽지 않았을 텐데, 선우현이 나서 준 덕분에 빠르게 귀국 티켓을 살 수 있었다. 미리 준비라도 해 둔 양 바로 항공편을 연결해 줘서 큰 어려움 없이 귀국할 수 있었다.
“올라가시죠.”
“네.”
최상호의 재촉에 호텔로 돌아가는 재인의 일행은 단출했다. 경호를 맡은 인원들을 제외하면, 재인과 최상호, 홍보 회사 직원 두 명, 강여진 일행 셋이 전부였다.
“먀앙! 먕먕! 먕!”
“힘내, 하찬아. 잡으면 누나가 맛있는 거 줄게.”
“먀앙! 먀앙, 먕!”
“옳지. 하찬이 잘한다.”
인터뷰 대신 받은 서면 질의서에 답변을 적던 재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약속 시간까지 기다리기 지루했는지 재현의 팀원들은 하찬의 놀이 상대를 해 주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초능력으로 공격당하는 것처럼 보여서 걱정스러웠는데, 하찬은 그런 과격한 놀이가 무척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놀이를 시작하고 한참 지났는데도 여전히 먀앙 먀앙 시끄러웠다.
-똑똑.
질의서를 거의 다 채웠을 때였다. 재인의 방으로 몇 명의 손님이 찾아왔다.
“상대 쪽에서 약속을 취소했다고요?”
“테러 때문에 연일 뉴스를 특별 편성하는 상황이라 자리를 비울 수 없다고 나중에 따로 초대하겠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사과하실 필요 없어요. 약속이 취소된 게 팀장님 잘못도 아닌데요. 일찍 연락을 줬으면 아까 같이 귀국했을 텐데. 여튼 늦게 알려 준 것 빼면 차라리 잘 됐어요. 출발 시간까지 쉬기로 해요.”
“감사합니다.”
처음부터 내키지 않는 오찬 약속이었다. 좋은 말로는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 까놓고 말하면 있는 체하는 걸 중요하게 여기는 습성 때문에 남아 있던 것뿐이지 딱히 가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건 아니었다.
“시간도 남았는데 맛집이나 검색해 볼까요?”
“베이징덕이요. 오라버님 베이징덕 먹으러 가요.”
“그럴까요?”
“어제 먹었잖아. 뭘 또 먹어.”
“호텔이랑 전문점에서 먹는 건 다르지.”
미안해하는 홍보 회사의 프로모션 책임자인 팀장을 보낸 재인이 활기찬 목소리로 맛집 투어를 제안했다. 시간이 나긴 했어도 관광할 상황은 아니라 점심을 먹으러 갈 계획이었다.
“죄송합니다만, 맛집 검색은 잠시 늦춰 주시겠습니까.”
“아! 죄송해요, 선우 팀장님. 무슨 일이세요?”
그러나 재인은 유명 맛집을 검색하려 들었던 핸드폰을 다시 내려놔야 했다. 약속 취소를 알리고 돌아간 홍보 회사 팀장과 같이 들어온 선우현의 용건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가 대표 선수단에서 지원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네?”
“이번 테러로 피해를…….”
선우현은 중간중간 찌푸려지는 인상을 펴며 테러로 다친 한국 대표 선수단의 상황을 전했다.
의료 설비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병원과 부족한 의료진 지원 때문에 다수의 선수와 관계자가 응급 처치만 겨우 받은 실태나 한국에서 파견하려는 의료진과 치유사의 입국이 막힌 사정을 가감 없이 전달했다.
“재인 씨가 베이징에 있다는 뉴스를 체육회 관계자들이 본 모양입니다. 한국에서 오는 지원이 막히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각성자 관리국 쪽으로 연락한 모양입니다.”
“으음. 맛집은 나중에 들러야겠네요.”
촬영 스케줄이 있어서 귀국을 늦출 수는 없었다. 그래도 그전까지라면 다친 사람을 도와줘도 괜찮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