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spectable male god RAW novel - Chapter (32)
#32. 재인과 하찬의 전투
연출진이 모여 있는 장소로 출발하기 전 재인은 김현민의 차 방향을 살폈다. 비명 소리가 심상치 않아서 걱정됐다.
‘몬스터일까?’
잘 있던 사람이 끔찍한 비명을 지를 만한 상황이라고는 몬스터 난입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좀 친했으면 진정시켜 주고 할 텐데.’
매니저를 통해 선물을 전해 받았어도 심적으로 느껴지는 거리감은 여전했다. 선뜻 다가가서 진정 스킬을 걸어 주기엔 망설여지는 그런 게 있었다.
다행히 바리케이드 방향에서 각성자 한 명이 그쪽으로 달려가는 게 보였다. 경호 팀과 같이 경계를 서던 김현민 소속사에서 고용한 각성자 같았다.
재인은 그 각성자가 김현민을 잘 달래 주길 바랐다.
“재인 씨. 다 챙겼습니다. 그만 가시죠.”
“네. 하찬아 가자.”
“컹!”
차 문을 꼼꼼히 단속한 매니저가 재인을 불렀다. 그는 양손에 귀중품을 담은 가방과 항상 차에 싣고 다니는 캠핑용품 가방을 들고 있었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 것을 대비해서 챙긴 물품 같았다.
“혹시 뭔가 느껴지는 게 있습니까?”
“저는 아니고요. 하찬이가 아까부터 방향을 이쪽저쪽 바꿔 가면서 경계하고 있어서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주변을 맴돌고 있는 것 같아요.”
“……으음.”
“이게 보호막을 펼칠 수 있는 아이템이에요. 이 편이 더 안심되잖아요. 오버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람들이 보호막 안에 있으면 각성자분들도 싸우기 편하고요.”
“이해했습니다.”
최상호는 하찬이 보이지 않는 몬스터를 찾아냈을 거라는 재인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래도 반대하지 않고 이동하는 것은 안전을 위한 일에 과한 것은 없다는 지론 때문이었다.
‘만약에 몬스터가 없어서 헛수고로 끝나더라도 이렇게 대비하는 게 훨씬 낫지.’
아무 일 없이 끝나는 해프닝이라도 좋았다. 약간의 수고로 자기 배우의 마음이 편해진다면, 그 정도는 못할 것도 없었다.
“감독님.”
“최상호 매니저? 무슨 일이에요?”
“감독님. 사람들을 전부 이곳으로 모아 주실 수 있을까요?”
“네? 사람들을요?”
“네. 재인 씨가 보호막 아이템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을 모아서 일이 끝날 때까지 보호막 안에서 기다리시죠.”
“흐음.”
최상호의 제안을 감독은 곧바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보호막 아이템이 값나가는 물건이라는 점 때문은 아니었다. 현재 상황이 그다지 위험해 보이지 않아서였다. 비명을 질렀던 김현민도 진정됐는지 조용해서, 겉보기엔 안전 구역 안은 아무 문제 없어 보였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보시다시피 괜찮지 않습니까?”
“몬스터 믹스인 재인 씨 반려동물이 경계를 멈추지 않는 게 예사롭지 않습니다. 만약을 위해서라도 대비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런 일이……. 잠시만요. 경호 팀에 연락 먼저 해 보고요.”
“네.”
재인은 답답한 표정으로 최상호 매니저와 감독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기껏 사람들을 전부 불러 모았는데, 해프닝으로 끝나면 괜한 불안만 가중시킨 꼴이 되고 만다. 그런 현장 총책임자인 감독의 걱정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미적거리는 태도가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지만.
“어라? 저 사람들이 왜?”
감독의 답을 기다리지 말고 등신대를 설치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안전 구역 바깥쪽을 경계하던 바리케이드 위 각성자 중 일부가 안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마치 안전 구역 안쪽에 위험 요소가 있는 것처럼 경계했다.
“재인 씨?”
“시간이 없어 보여요. 설치 먼저 할게요.”
재인이 바닥에 등신대의 거치대를 내려놓았다. 감독의 허락을 얻고 자시고 할 때가 아니었다. 각성자들의 움직임이 갑자기 바뀐 데에는 이유가 있을 터였다.
‘등신대가 쪽팔린다고 망설일 때가 아니야.’
촬영장의 경호 팀은 인력이 적었다. 몬스터의 퇴치보다는 배우나 스태프들을 최대한 빨리 대피시키는 게 행동 원칙이어서였다. 주차장을 안전 구역으로 삼은 것도 같은 이유로, 대피가 결정되면 신속히 움직이기 위해서였다.
만약 예기치 못한 상황, 몬스터의 침입을 막아 내지 못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는 경호 팀이 막는 사이 탈출하게 되어 있었다.
“……재인 씨. 그 아이템이 맞습니까?”
“……맞아요.”
펼쳐진 족자를 보면서 떨떠름하게 묻는 매니저와 눈을 맞추기 힘들었다. 쪽팔림은 감수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역시 대답이 시원하게 나오진 않았다. 재인 본인도 알고 있었다. 자기 사진을 족자로 만들어서 거치대와 같이 가지고 다니는 게 얼마나 이상한지.
‘자기애의 화신 같은 별명만 안 붙으면 다행이지.’
등신대는 설치가 끝나면 접는 우산 사이즈에서 그의 키만큼 커진다. 그때 가서 사람들이 부디 그를 이상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길 빌었다.
-파아앗!
등신대의 크기가 쑥쑥 커지는 것과 동시에 빛의 고리가 퍼져 나갔다. 한순간에 어슴푸레하던 주차장 안에 등신대를 중심으로 옅게 빛나는 공간이 생겨났다.
“이재인 배우!”
경호 팀과 대화를 마치기도 전에 설치된 보호막을 본 감독이 재인을 큰 소리로 불렀다.
그런 감독에게 재인은 담담한 얼굴을 해 보였다. 한 소리 들을 걸 각오하고 일을 벌였다. 게다가 이미 설치해서 사람들이 다 봤는데, 인제 와서 뭘 어쩔 건가. 속으로 꽤 뻔뻔한 생각을 하며 상황을 설명하려던 순간이었다.
그의 설명보다 훨씬 확실하게 설명해 줄 존재가 나타났다.
“끼에에에엑!”
“끄아아아아!”
“스펙터다!”
“꺄아아!”
보호막이 펼쳐지기 전 안전 구역 안에 몰래 숨어들었던 영혼 계열 몬스터 스펙터였다. 흉측하게 일그러진 반투명한 유령은 보호막이 펼쳐진 뒤 칠판 긁는 듯한 끔찍한 괴성을 지르며 밖으로 튕겨 나갔다.
“뭐, 뭡니까? 지금 뭐가 어떻게…….”
“진정하세요, 감독님. 보호막 밖으로 몬스터가 튕겨 나간 것뿐이에요.”
“그런……. 고마워요, 이 배우. 덕분에 큰 사고로 이어질 뻔한 걸 막았어요.”
“아니에요, 감독님. 그보다 사람들한테 보호막이라고 알리고, 안으로 들어오라고…….”
“아차차! 그걸 먼저 해야지. 알겠어요.”
재인은 겸손한 척 대답하는 한편 슬금슬금 다리를 움직였다. 감독을 비롯해 주변에서 흘깃흘깃 등신대를 훔쳐보는 게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등신대를 막아서면 더 눈에 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당장 필요한 뻔뻔함을 갖추지 못했으니 이렇게라도 해야 했다.
‘와! 역시 배우는 다르네. 저런 걸 만들어서 가지고 다니는구나.’
‘전에 보니까 어떤 배우는 자기 사진을 크게 뽑아서 벽 한쪽에 걸어 놨더라고. 블라인드도 자기 사진으로 만들고.’
‘아이템에 자기 사진을 넣다니. 대단하다. 저 정도는 돼야 배우라고 할 수 있는 거구나.’
‘사진 엄청 잘 나왔다. 저런 건 얼마나 하지? 나도 하나 갖고 싶다.’
‘엄청 비쌀걸? 아까 설치할 때 보니까, 저게 보호막인 거 같더라고.’
가까이 다가와서 등신대를 확인하려고 들 만큼 친한 사람이 없어서인지, 아직까진 주변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지도는? 표시되네!’
보호막 밖으로 쫓겨난 스펙터의 숫자가 상당했다. 보호막에 쓰인 힘이 신성력이어서 그런지 한번 대미지를 입은 스펙터는 육안으로도 보이고 지도 위에도 붉은색으로 표시되었다.
‘스킬 중에 쓸 만한 게 없나?’
재인은 평소에는 거의 열지 않는 스킬 창을 열었다. 혹시라도 현재 상황에 도움이 되는 스킬이 있나 싶어서였다. 물론 도움이 될 만한 스킬이라도 주문이나 액션이 민망하면 쓰지 않을 테지만.
‘……기대한 내가 바보지.’
스킬 창에 스킬이 있기는 있었다. 아군의 사기를 높이는 격려 스킬과 부정한 것을 정화하는 스킬, 두 가지나 있었다. 다만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쭉 사용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격려: 대상의 용기나 의욕이 솟아나도록 기운을 북돋워 줍니다.-주문: 계속 가. 그 길의 끝에서 내가 기다릴게!
-액션: 한쪽 눈을 깜빡거리며 눈짓합니다.]
처음 보는 경호 팀 각성자를 향해서 격려 스킬을 사용한다고 윙크를 보내는 일을 제정신에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아무리 경호 팀 성비가 반반에 가깝더라도 말이다.
정화 스킬 역시 마찬가지. ‘조금 다쳐도 넌 괜찮다!’라는 낯부끄러운 주문은 물론이고, 대체 액션인 ‘손으로 뺨 감싸기’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무슨 수로 스펙터를 붙잡아 두냐고. 붙잡아도 문제지. 스펙터 뺨을 감싸라니, 참 나.’
재인은 격려 스킬과 정화 스킬은 봉인하기로 했다. 대신 치유 스킬을 사용해 보기로 했다. 치유는 잘못 사용해서 각성자를 치유하더라도 오해를 살 위험이 적으니 괜찮을 것 같았다.
“치유.”
그래도 만약을 대비해서, 스펙터에게 치유를 쓰기 전 아무 소용 없는 스킬 명을 외웠다.
게임에서처럼 유령한테는 힐이 딜이 되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지만.
“감사합니다!”
“네, 네. 파이팅이요!”
보호막 근처로 와서 스펙터를 처리하던 각성자를 치유하고 말았다.
‘빠, 빨라. 유령 주제에 왜 이리 빠른 거야!’
스펙터가 너무 빨리 움직여서 타깃팅 하기 쉽지 않았다. 전투 상황을 처음 겪는 그에게 순간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스펙터를 특정하는 일은 너무 힘겨웠다. 지도로 위치를 보면서 치유를 거는데도 번번이 각성자를 치유하고 감사 인사를 받았다.
재인이 보호막 경계까지 나와서 치유를 쓰면서 도왔지만, 전황이 좋지는 않았다. 경호 팀은 여전히 숫자가 적었고, 몬스터의 숫자는 점점 늘고 있었다.
‘키퍼 부대는 아직인가?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은데.’
던전 발생 안전 문자가 들어올 정도면 키퍼 부대 혹은 이 근처를 담당하는 스트라이커 길드에도 보고가 들어갔을 것이다. 토벌대가 얼마나 빨리 결성되는지는 정확히는 몰랐지만, 빨리 와 줬으면 싶었다.
“크르릉!”
“어, 하찬아. 오빠가 생각 좀 해 보고.”
재인은 든든하게 옆을 지키는 하찬의 존재가 고마운 한편 고민스러웠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다는 일본 속담처럼 손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하찬을 보호막 밖으로 보내서 경호 팀을 돕게 해야 되는 게 아닐까 고민됐다.
“나가고 싶어?”
“커헝!”
“다치면 안 되는데. 하찬이 안 다칠 자신 있어?”
“컹!”
“그러면 한 바퀴만 휘젓고 와, 알았지?”
재인은 눈동자만 굴려서 좌우를 훑어봤다. 그를 지켜보는 사람은 없었다. 보호막 안의 사람들은 전부 바깥쪽 경호 팀과 스펙터, 알 수 없는 몬스터가 싸우는 방향만 보고 있었다.
‘작심하고 몇 분이나 지났다고.’
봉인하겠다고 맘먹은 스킬들을 연달아 사용했다. 윙크, 뺨 감싸기 마지막으로 손가락 키스. 재인은 하찬을 대상으로 격려 스킬, 정화 스킬, 마지막엔 보호막 스킬인 손가락 키스까지 빠르게 해치웠다.
세 스킬 모두 처음 써 보는 것이었지만, 신성력이 뭉텅뭉텅 빠져나가는 게 생각보다 잘 걸린 모양이었다.
“다녀와. 오빠가 여기서 보고 있을게.”
“커헝!”
다녀오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찬이 달려 나갔다. 원래 저렇게 빨랐나 의아할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
하찬의 전투를 지켜보던 재인은 눈을 부릅떴다.
하찬을 내보냈을 땐 각성자들이 한숨 돌릴 틈을 만들어 주고 싶어서였지, 전투력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전장 곳곳을 휘젓는 하찬은 더 이상 어리광쟁이 반려동물이 아니었다. 갈기를 칼날처럼 세워 투명한 스펙터를 갈기갈기 찢어 버리는 하찬은 한 마리의 맹수였다.
“뭐, 뭐야? 순간 이동?”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닐까 싶어서 두 눈을 비벼 봤지만, 그대로였다. 하찬이 스펙터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타났다 사라지고 있었다.
‘애초에 방문 따위로 막을 수 있는 애가 아니었구나.’
과거 문 닫힌 방에서 어떻게 나왔는지 이제야 이해됐다.
전황은 하찬의 가세로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했다. 다만 그걸 지켜보는 재인의 마음은 조금 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