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spectable male god RAW novel - Chapter (65)
#65. 예능 출연 제안
재인은 사람이 북적이는 거리에 나온 게 오랜만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배우가 된 후엔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직접 차를 몰고 다닐 일이 없었다. 가끔 택시를 이용하는 걸 빼면 대부분 누군가가 모는 차를 타고 다녔다.
‘그래서 이런 경험이 많지 않다고요.’
누구도 듣지 못할 외침을 속으로 외치면서 미소 지었다. 최상호의 주의대로 인상 찌푸렸다가 사진 찍혀서 태도 논란이 생기지 않게, 미리미리 예방했다.
“꺄아아! 이재인!”
“진짜, 세상에 진짜 저런 얼굴이 있구나. 진짜로.”
“아! 미남이 뭔지 처음으로 알 거 같아.”
“헉! 눈이! 보고 싶은데, 계속 볼 자신이 없어.”
“꺅! 어떡해! 너무 잘생겼어.”
어째서일까. 듣기 민망한 말일수록 귀에 콕콕 와서 박혔다. 덕분에 여자 주인공을 만나러 나서서 설레는 하랑의 감정을 끌어올리다가 헛기침할 뻔했다.
‘진짜 대단하다. 통제 구역 너머에서 하는 말인데도 여기까지 들리네.’
평일 오전이라서 사람이 많지 않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구경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보조 출연자들이 대기하는 뒤편에도, 스태프들이 통제하는 선 밖에도 구경하는 사람이 즐비했다.
“괜찮으십니까?”
“네, 괜찮아요. 하찬이 잘 부탁드려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컹.”
지금까지 재인과 같이 촬영장에 자주 다녀서 사람이 많은 환경은 익숙하지만, 대부분은 하찬에 관심을 보이기보다 자기 일에 바쁜 사람이 있는 곳이었다. 하찬의 이름을 부르고 관심을 끌려고 시도하는 사람이 가득한 환경은 아니었다.
‘어휴. 매니저님 말대로 촬영 직전까지 차에서 기다려서 다행이지. 그전에 나왔다면…….’
누군가는 자의식 과잉이라고 할진 모르지만, 아마 스태프들이 현장 통제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었다.
그런 의견은 재인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인파와 소음을 통제하기 어려워 촬영 장면 확인도 쉽지 않았다. 허가받은 통제 시간도 넉넉하지 않아, 제시간에 끝낼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레디, 액션.
사람들이 택시를 세우는 걸 주의해서 보던 재인이 구부정하게 어깨를 움츠리고 도로변에 섰다. 남들처럼 한 손을 들었지만, 그의 앞에 서는 차가 없었다. 태워 주긴커녕 쌩쌩 지나가는 차에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다.
-쾅! 쾅! 쾅!
다시 일어나 택시를 잡으려 했지만, 여전했다. 운전자와 눈이 마주쳐도 무시하고 지나갔다. 한참 동안 도로변을 서성이던 재인이 돌연 쾅쾅 발을 굴렀다. 숲에서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이었지만, 박지아를 찾으러 가는 길이라 마음이 급했다.
“크르릉.”
짜증이 나자 저절로 몸에서 본능적인 반응이 튀어나왔다. 발톱이 삐져나올 듯 손끝, 발끝도 간질거렸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고, 근육이 부풀어 차수원으로 변신한 것까지 풀릴 것 같았다.
“우루루루.”
푸드덕푸드덕. 강아지가 물기를 털 듯 머리를 터느라 입술이 부딪히면서 우스꽝스러운 소리가 들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변신을 유지하려면 정신을 차려야 했다.
-짝!
양 볼에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따끔한 감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있는 힘껏 부딪혀 뺨도 손도 얼얼했지만, 덕분에 변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
-킁킁, 킁킁.
손자국 난 얼굴을 한껏 치들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마치 그렇게 하면 박지아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처럼. 물론 여우 수인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럴 일은 없었지만.
“차.”
변신은 유지했지만, 한껏 올라온 여우 수인의 본능은 여전히 전부 가라앉지 않은 상태였다. 재인은 흉포한 기세를 주변에 뿌리며 도로를 주시했다.
-끼이이익!
“야! 이 미친 새끼야!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크르릉!”
멈추지 않으면 멈추게 하겠다. 도로에 뛰어들어 차를 세운 재인이 거칠게 차 문을 열었다.
-오케이, 컷!
감독의 오케이 사인이 울리자마자 재인은 뺨을 문질렀다. NG 없이 한 번에 끝내겠다는 마음이 너무 컸던 모양이었다. 지나치게 세게 때려서 아직도 얼얼했다.
“쓰읍.”
“괜찮니?”
“따가워요.”
“그래. 따가워 보인다. 뭘 그렇게 세게 때렸어. 물수건 대 줄까?”
“아뇨. 모니터링하고 괜찮다고 하시면 바로 치유할 거예요.”
“그래.”
정비 시간이 주어지자마자 김신우가 재빠르게 재인을 향해 다가왔다. 그는 먼저 대본을 넘겨준 뒤 한 손엔 미니 선풍기, 한 손엔 티슈를 들고 빠르게 재인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
‘아이고, 이 잘난 얼굴에 손자국이라니. 작가 제정신이야?’
볼수록 영감이 솟고, 가꿀수록 의욕이 솟는 얼굴에 시뻘건 손자국을 내다니. 작가의 면상에 똑같은 자국을 그려 주고 싶었다. 아마 촬영을 지켜보던 사람 모두 그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살살해, 살살. 촬영 하루 이틀하고 끝낼 거 아니잖아.”
“네?”
“얼굴, 아니, 몸이 재산인데 아껴야지.”
“네, 그럴게요.”
“대답은 잘하지.”
촬영장을 다니다 보면 가끔 연기에 몰입을 넘어 매몰되는 배우를 보게 된다. 그런 연기 스타일이 나쁜 건 아니지만, 볼 때마다 심지가 다 타 버린 양초 같아서 위태롭게 느껴졌었다.
재인의 연기 스타일이 그렇지는 않았지만, 집중력이 남다른 편이라서 같은 결과가 나올까 걱정스러웠다.
* * *
“실장님? 뭘 그렇게 열심히 보세요?”
“아! 아, 하하하. 커뮤니티 반응 좀 살펴보고 있었어요.”
“커뮤니티요?”
“네, 요 며칠 전에 길거리 촬영하셨잖아요. 그거 목격담이 올라와서요.”
“아, 네.”
김 실장은 어떤 목격담이 올라왔고, 사람들 반응은 어땠는지 물어보면 알려 주려고 잔뜩 기대했는데, 재인의 반응은 심플했다. 어떤 댓글들이 달렸는지 궁금하지도 않은지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안 궁금하세요?”
“별로요. 꼭 알아야 하는 얘기면 먼저 알려 주실 테니까요.”
“하, 하하. 그렇지요.”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이세요?”
“사실 전화로 해도 되는데, 퇴근하셨다길래 들르시라 했어요. 시간 있을 때 몸보신시켜 드리려고요. 몇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고요.”
초보 각성자를 모아서 훈련 시키는 일은 클로버 엔터에서 관여할 일이 아니라서 일정만 조정해 주면 끝이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몸에 좋은 밥도 먹이고 효과 좋다는 영양제랑 건강 보조제도 챙겨 줄 의도였다.
그 외에 몇 가지 의향을 물어보고 결정할 사안도 있었고, 헛소리일 게 분명한 소문도 확인할 생각이었다.
-킁킁, 킁킁.
재인과 김 실장이 대화를 나누는 도중이었다. 얌전히 클로버 엔터의 직원들을 구경하던 하찬이 주위를 돌면서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하찬이가 왜 이럴까요?”
“……뭔가 이상한 냄새를 맡았나 봐요.”
“이상한 냄새요?”
“네. 전에 몰카범 잡을 때도 딱 이랬었어요. 혹시?”
낯선 사람이 자리에 온 적 있냐는 재인의 질문에 김 실장이 맹렬하게 고개를 저었다. 외부 사람과 미팅할 때는 1층의 카페에서 만나거나 회의실을 이용했다. 계약서와 제안서, 비공개 대본 등이 즐비한 자신의 자리로 사람을 데려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 안쪽까지 사람을 데려올 일이 뭐가 있겠어요. 이쪽은 제가 쓰기 시작한 후로 외부인은 누구도 데려오지 않았어요.”
“컹컹! 컹컹!”
“진짜예요.”
“믿어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확인하시는 게 낫겠어요.”
사무실의 다른 곳까지 돌고 왔지만, 하찬은 여전히 김 실장의 자리만을 향해서 짖고 있었다. 똑똑한 아이가 사무실 직원들의 냄새를 헷갈릴 일은 없으니, 정말로 누군가가 침입했을 수도 있었다.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래요. 그럼, 여기 확인 맡겨 두고 저흰 식사하러 가지요.”
“네?”
“요 앞에 삼계탕 기가 막히게 하는 집이 있어요. 12가지 한약재를 넣고 푹 끓인 육수로 탕을 끓이는데, 요새 예약이 밀려서 최소 삼 일 전에는 예약을 넣어야 하거든요. 가시죠. 상호도 그쪽으로 오라고 했어요.”
“네.”
김 실장은 하찬의 얘기도 해 뒀다며 재인의 등을 떠밀었다. 가끔 반려동물도 데리고 오는 사람이 있어서, 같이 들어갈 수 있다며 어서 가자고 재촉했다.
* * *
“사람이 존재만으로 이 정도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게 놀랍다. 피폐한 내면을 어루만져 주고, 남은 삶에 대한 기대까지 품게 해 준다.”
“무슨 얘기에요?”
“그냥 모든 게 완벽한 사람. 빚도 많은데 일도 잘려서 가뜩이나 우울한 내 삶에 한 줄기 빛.”
“!”
“무의미한 삶이 유의미하게 바뀌고, 인생이 살 만하다고 깨닫게 해 줬다.”
예약한 식당에 도착해 자리에 앉자마자 김 실장은 스마트폰을 꺼내서 무언가를 읽어 내렸다. 내용은 대부분 누군가를 찬양하는 말이었는데, 썩 나쁘진 않았다.
“재인 씨 목격담에 달린 댓글이에요. 잘 쓴 것만 골랐는데, 괜찮지요?”
첫 문장을 듣고 어쩌면 하고 생각했는데, 역시 그거였다. 재인은 민망함과 감사함 중에 어떤 감정을 표현해야 할지 정하기 힘들었다. 그건 아마 앞에서 크흡, 크흡거리면서 웃음을 참는 김 실장 때문일 것이다.
“아이, 진짜. 왜 그러세요.”
“크흐흐흡. 식사 전에 분위기도 띄울 겸. 커뮤니티 반응이 좋더라는 얘기도 전해 드릴 겸 해서요. 절대로 놀리려는 건 아니에요.”
“백 퍼 놀리시는 것 같아요.”
“하하하. 진짜 아니에요.”
아주 약간 놀리고 싶은 마음이 섞여 있긴 해도 이제 한 작품을 촬영한 배우에게 이 정도로 호의적인 댓글이 달리는 게 기뻐서 그랬다. 김 실장은 민망해하는 재인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일 년이면 자리 잡고도 남는다고 호언장담한 게 무색하게 이제 겨우 반년 조금 넘었는데, 이미 어엿한 배우로 자리매김한 상태였다.
그 짧은 기간에 낯선 업계에 발을 디뎌 이 정도 성과를 낸 걸 보면, 재인은 사실 뭘 해도 성공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자신들과 손을 잡고 같이 일한다는 게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예능에 같이 출연하실 생각 없냐고 이주환 씨 소속사에서 연락 왔어요.”
“예능이요? 이주환 선배 예능 찍고 있어요?”
“지기지기 산장 편을 찍을 예정이시라는데, 들은 소식 없으세요?”
“차기작 들어가기 전에 쉬신다는 말씀만 하셨었어요.”
“그렇군요. 어떠세요, 예능 출연이요?”
지기지기 시리즈는 재인도 몇 편 봤었다. 친한 연예인 몇 명이 정해진 기간 숙박업소를 운영하는 내용이었다. 예약제로 받은 손님들에게 음식도 대접하고, 같이 어울리기도 하는 자연스러운 관찰 예능이었다.
재인에게 온 제안은 기간 내내 머무르는 메인 호스트는 아니고, 이박 삼 일간 촬영하는 게스트였다.
“요리는 고기 굽고 라면 끓이는 것밖에 못 하는데요? 그거 아니면 밀 키트 있죠? 재료 다 손질되어 있어서 익히기만 하는 거요. 그것만 할 줄 아는데, 괜찮을까요?”
“당연히 괜찮지요. 요리는 잘하는 사람이 하면 되죠. 굳이 재인 씨까지 주방에서 일하실 필요는 없지요.”
더 좋았다. 능숙하고 노련한 캐릭터는 다른 선배 연예인들이 맡을 테니, 재인은 어설퍼도 부지런하고 성실한 캐릭터를 맡으면 충분했다.
게다가 재인의 외모가 오죽 뛰어난가. 예쁘고 잘생긴 사람만 출연할 테지만, 그 안에서도 재인은 독보적일 게 분명했다. 그런 외모로 주방에서 요리만 하는 건 손해였다.
“그러면 할게요. 산장은 어디에 있어요?”
“산장은 강원도…….”
하찬이도 같이 출연해도 된다는 말에 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박 삼 일 일정의 관찰 예능 출연이라면 부담도 적고, 오랜만에 캠핑 기분도 낼 수 있을 것 같아서 고민 없이 승낙했다.
‘해외 시청자도 많이 보는 프로인데 나가면 무조건 이득이지.’
재인과는 다른 의미로 김 실장과 최상호는 예능 출연을 반겼다. 시즌 1의 인기로 이미 프로그램의 가치는 증명된 상태였다. 시즌 1과 같은 포맷이라면 출연이 득이 되면 득이 되었지, 실이 될 일은 없었다.
-띠링!
재인의 인지도를 다시 한번 확 올릴 생각에 귀 끝까지 걸리려던 입꼬리가 내려왔다. 회사 보안팀에서 온 연락 때문이었다.
[매니지먼트 사무실에서 침입자의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연락은 무척 달갑지 않은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