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Hitler RAW novel - Chapter (175)
175화 개와 늑대의 시간 (1)
1942년 7월 30일
영국 런던 다우닝 가 10번지
“지금까지 히틀러, 그놈은 제 마음대로 날뛰었지만, 이제는 그러지 못할 것이오.”
처칠의 자신만만한 대답에 부총리 애틀리와 외무장관 이든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하늘이 대영제국을 위해 내려주신 기회요. 저 망나니 히틀러 놈과 나치당 패거리를 박살 내고 유럽의 평화를 지키라는 신의 뜻이지.
이 천우일회의 기회를 놓쳤다간 대영제국과 유럽에 미래는 없을 것이오.”
소련 스파이 건으로 악화일로로 치달던 여론은 벨파스트 사건으로 서서히 반전되어 지금은 독일에 대한 징벌을 외치고 있었다.
그러나 불안요소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어서, 아직도 반전파가 일본과의 전쟁에 집중하라는 시위를 벌이고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다.
보수당뿐 아니라 노동당의 일부 의원들도 참전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고, 군 내에서조차 잡음이 많았다.
독일이 더 강해지기 전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말에 대해선 이해한다.
정말로 독일이 소련까지 격파한다면, 유럽에서 영국을 도와 독일을 막을 나라는 아무도 남지 않게 될 테니.
문제는 독일이 강해도 너무 강해서, 예전처럼 승리를 장담하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프랑스가 멀쩡할 때조차 개같이 깨졌는데, 그때보다 훨씬 강력해지고 덩치도 커진 독일을 상대로 싸워서 승산이 있을까?
이러한 의문과 패전했을 때 닥칠 후폭풍에 대한 공포는 이성적으론 독일의 팽창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조차 참전을 꺼리게 했다.
처칠이라고 해서 마냥 걱정과 우려를 모두 무시하는 것은 아니었다.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니고, 그 자신조차도 같은 걱정을 가졌으니.
하지만 처칠은 달랐다.
그는 전쟁에 승산이 있냐는 의문과 후폭풍에 대한 우려보다, 당장 독일을 막지 않고 방치했을 때 생길 일을 더 두려워했다.
히틀러가 언제 약속을 지키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이제껏 히틀러는 라인란트를 시작으로 오스트리아, 주데텐란트, 체코를 집어삼켰고 끝내 폴란드까지 침략함으로 두 번째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그런 히틀러가 조약을 지킬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아직 제대로 힘을 기르기도 전부터 숱하게 약속을 어겨왔는데, 힘까지 가진 상태에서는?
처칠의 논리는 간단했다.
조약 하나만 믿고 독일을 내버려 둔다면 히틀러는 틀림없이 영국을 속국으로 만들려 들 것이고, 그때가 돼서 독일과 싸우려면 너무 늦다.
차라리 독일이 조금이라도 덜 강할 때, 소련과 싸우느라 서부전선에 대한 방비가 취약한 지금 싸워야 승산이 있다.
기회가 왔을 때 단숨에 밀고 나가야지, 여기서 더 밍기적거렸다간 죽도 밥도 안 될 뿐이다.
“마침 독일의 신경은 온통 러시아 전장에 쏠려 있소. 프랑스에 주둔 중인 독일군 사단들은 대부분 예비역과 신병들로 이루어진 신편 사단들로 이들의 전투력은 잘 쳐봤자 2선급에 불과하지.”
처칠의 말은 반만 맞았다.
프랑스에 주둔 중인 독일군 사단들 절대다수가 갓 창설된 신편 사단들인 것 자체는 사실이나 노원수 룬트슈테트는 이들을 철저하게 훈련시키고 적군의 상륙이 예상되는 프랑스 해안가 주요 지점에는 고르고 고른 최정예 부대들을 집중적으로 배치하는 세심함까지 보였다.
무엇보다도 영국군의 전투력 또한 독일군과 비교해서 나은 점이 없었다.
됭케르크에서 척추가 부러졌던 영국 육군은 뒤이어 터진 태평양전쟁으로 주력 다수를 인도-버마 전선으로 파견했고, 그 결과 영국 본토에 주둔 중인 병력은 소수의 정예사단을 제외하면 신병 및 예비역으로 구성된 사단들이 다수였다.
영연방과 동맹국 소속 군대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자유 프랑스,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망명정부의 군대들은 사기는 높았지만, 규모도 작을뿐더러 실전 경험도 적었다.
여러모로 불안한 점이 많았지만, 그래도 처칠은 이 정도면 한 번 해볼 만하다고 여겼다.
당장 독일군의 주력은 동부전선에 발이 묶인 상태고, 프랑스에 주둔하고 있는 독일군은 2선급 부대뿐.
수적으로 프랑스 주둔군보다 영국군과 그 동맹군이 더 많았다.
독일 전 병력과 추축국 군대 전체로까지 확대하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처칠의 계산에는 프랑스에 주둔하는 독일군만 대상으로 삼았다.
단순 수적으로 우위에 서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질적으로도 영국군은 나름 장족의 발전을 거듭했다.
프랑스 상공에서 독일 공군에게 치욕을 당한 영국은 절치부심하여 스핏파이어 Mk.V를 개발해냈고 폭격기임에도 전투기 수준의 속도를 낼 수 있는 DH-98 모스키토를 만들어냈다.
육군도 공군 못지않게 노력하여, 4호 전차보다 강력한 처칠 보병전차를 개발해냈다.
화력에선 여전히 4호 전차가 앞서지만, 처칠의 전면장갑은 티거와 동일한 100mm에 측면은 포탑과 차체 둘 다 76mm로 4호 전차보다 월등히 뛰어나 쉽게 격파당하는 일은 없으리라 예측되었다.
4호 전차와 대등한 성능을 가진 M4 셔먼도 미국이 1800대나 공여해준 덕에 전차도 수량에 부족함이 없었다.
해군의 경우 비록 노르웨이 전역에서 망신살을 제대로 뻗쳤고, 인도양과 태평양에도 적지 않은 수가 불려 나갔지만 그래도 독일 해군보다는 한 수 위라고 평가되었다.
비록 독일이 보유한 전함의 수가 영 마음에 걸렸지만, 그래도 해군의 규모나 숙련도 면에서 영국이 독일보다 위에 있으면 위에 있지 밀리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처칠이 영국이 전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고 있을 때, 애틀리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그 역시 처칠처럼, 독일의 세계정복을 막으려면 최대한 빨리 참전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는 정치인이었다.
허나, 그는 이상과 별개로 최소한 처칠보다 냉정하게 현실을 볼 줄 알았다.
처칠은 애틀리가 괜한 질문을 했다는 듯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순순히 그가 한 질문에 대해 답변했다.
“안타깝게도 미국은 당장 참전하기 힘들 것이오.”
루즈벨트와의 통화에서 처칠은 그에게 참전할 의향이 있는지 은근슬쩍 떠보았다.
그러나 루즈벨트는 여론의 시선 때문에 참전이 어렵다고 대답했다.
독일군이 영국에 상륙하거나, 독일이 미국을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고선 불가능하다는 말과 함께.
“그래도 걱정하지 마시오. 루즈벨트 대통령은 식량, 연료, 무기 등 영국이 필요로 하는 모든 물자를 지원해주기로 약속했으니 말이오. 따라서 우리 병사들이 총알이 부족해 벽돌을 던지며 싸울 일은 없을 것이오.”
처칠은 굳은 분위기를 풀어보기 위해 자신이 생각해낸 농담을 던졌지만, 분위기는 쉽게 펴지지 못했다.
미국의 참전이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회의실 내부의 공기는 한층 더 무거워졌다.
“미국이 참전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래도 벌써 낙담하기엔 이르오. 당장 우리 영국과 영연방만 해도 수백만에 달하는 병사들이 있고 우리와 뜻을 함께하는 동맹국 정부들도 있소. 반면 독일은 총칼을 앞세운 공포정치로 체코, 폴란드,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발칸 등지에서 많은 원성을 사고 있지.
자유 프랑스의 드골 장군은 내게 연합군이 프랑스에 상륙하면, 나치의 압제에 저항하는 프랑스인들이 들고 일어나 연합군에 합류할 것이라 장담했소.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망명정부들도 자국민들이 독일 침략자들에게 저항하고 있다고 말했지. 체코슬로바키아와 폴란드 망명정부는 또 어떻고.”
처칠의 말에 따르면 연합군이 상륙에 성공하기만 해도 프랑스인들이 자발적으로 봉기를 일으켜 프랑스 땅에서 몰아낼 것이고,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에서도 프랑스인들의 봉기에 자극받은 시민들이 일제히 반란을 일으킬 것이다.
프랑스 탈환에 성공한다면 독일과 연결이 끊겨 고립된 스페인은 제 살길을 찾기 위해 영국과 타협할 것이고, 역사적으로도 오랫동안 영국과 동맹 관계였던 포르투갈과 독일에 처맞고 숨죽여 지내고 있는 이탈리아, 그리스는 즉시 영국과 손을 잡고 대독전선을 형성할 것이다.
덴마크, 노르웨이, 헝가리 같은 독일 동맹국들은 거리도 멀거니와 군대도 별 볼일이 없는 수준에 불과해 신경 쓸 필요조차 없다.
연합군이 라인강까지만 가더라도 이들은 몰락 위기의 베를린을 구원하기보다 제 살길을 위해 타협을 선택할 게 분명하다.
행복회로를 돌리다 못해 회로가 불타 폭발해버린 수준이었지만, 독일과의 전쟁이라는 보통 미친 짓이 아닌 짓을 저지르기 위해선 당연히 필요한 덕목일지도 몰랐다.
정상인이라면 실패 시 리스크가 너무 크고, 성공할 확률도 희박한 도박에 배팅을 하는 짓을 하지 않을 테니.
“한때 나폴레옹이 유럽 전체를 집어삼키기 직전까지 갔을 때도 우리 선조들은 꿋꿋하게 싸워 이 나라와 유럽의 평화를 지켜냈소. 선조들께서 나폴레옹에 굴종해 프랑스 하수인으로의 삶에 만족했다면 대영제국이 탄생할 수 있었겠소?
먼 훗날 우리의 후손들도 같은 말을 할 것이오. 그때 우리 선조들께서 용기를 가지고 히틀러와 나치에 맞서 싸우신 덕에, 여전히 세계 곳곳에 유니언 잭이 휘날릴 수 있는 것이라고.”
처칠이 생각하는 밝은 미래란 오직 하나였다. 전 유럽의 도시들에서 자랑스러운 유니언 잭이 휘날리는 것. 그것이 바로 처칠이 바라는 찬란하고 아름다운 미래였다.
유니언 잭 아래로 하나가 된 유럽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그는 어떤 고난도 감내할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국민도 자신처럼 고난을 마땅히 인내해주기를 그는 간절히 염원했다.
“비록 많은 고난과 희생이 있을 테지만, 결국 언제나 그랬듯이 대영제국은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오. 히틀러와 나치는 패망할 것이고, 20년, 아니 10년 뒤 유럽에서 유니언 잭이 휘날리지 않는 곳은 없을 것이오.”
벌써 전쟁에서 이기기라도 한 것처럼 환희에 들떠 말하는 처칠에게, 참석자들은 불안한 시선을 보내면서도 박수와 지지를 보냈다. 그들도 결국엔 대영제국이 1등이 아닌 유럽은 유럽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자들이었기에.
***
시기가 많이 이른 것이 아니냐는 물음에도 드골은 꿋꿋하게 샴페인을 터뜨렸다.
이제껏 우중충한 나날들은 충분히 겪었으니 최소한 오늘만큼은 축배라는 것을 들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오늘부로 프랑스는 다시 살아날 걸세. 우리가 다시 숨을 불어넣을 테니까.”
샴페인 잔을 든 드골은 부하들 앞에서 일장연설을 했다.
드골 하나만 보고 고향을 등진 채 런던에서 변변찮은 망명객 생활을 지속해왔던 그들에게 드골이 하는 말은 신의 계시와도 같았다.
“처칠 총리는 8월이 끝나기 전에 영국군과 프랑스군이 프랑스에 상륙할 것이라고 확답했네.”
“오오오!”
“드디어!”
꿈에 그리던 본토 탈환의 시간이 다가오자 자유 프랑스군 장교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2년 동안 기다리고 기다려왔던 본토 탈환전이 드디어 한 발 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이날이 오기만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드골은 말하면서도 스스로 기분을 주체하지 못해 말을 자주 멈추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설욕의 시간이 찾아오자 감정이 북받쳤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숱한 고난이 있었지. 우리는 동포들이 나치의 압제에 고통받는 현실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그때마다 우리의 무력함을 탓해야 했네. 하지만 이제는 아닐세. 전쟁이 시작되면 우리는 프랑스로 돌아갈 테니.”
프랑스에서 독일군과 맞서 투쟁 중인 레지스탕스 조직의 8할은 모스크바의 지시를 받는 공산주의 계열이었다.
이들은 독소전쟁이 발발하기까지 독일 점령군에 저항하지 말고 순응하라는 모스크바의 지령을 충실히 따르다가, 전쟁의 발발과 함께 무기를 들고 독일군과의 전투를 시작했다.
어디까지나 조국 프랑스를 위해서가 아닌, 그들이 추종하는 유일신이 내린 명령을 따르기 위해서.
그랬기에 공산당 계열 레지스탕스들과 우익 계열 레지스탕스들은 같은 프랑스인들임에도 불구하고 사이가 좋지 못했다.
그러나 이들 공산당조차 프랑스의 해방을 위해선 이념 차이는 잠시 덮어두고 협력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동의했다.
그들이 믿던 소련은 제 한 몸 챙기기도 급급한 상황이며 독일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프랑스 민중의 절대다수조차 레지스탕스 활동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고, 페탱 정권에 절대적인 충성과 지지를 보내는 판국에 그들이 기댈 구석은 이제 런던의 망명정부뿐이었다.
공산당 레지스탕스들조차 자유 프랑스군의 작전에 전적으로 협조하겠다고 의사를 밝힌 것에 대해 말하자 분위기는 더욱 달아올랐다.
혈기왕성한 젊은 장교들은 드골의 연설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이름을 연호하며 주먹쥔 손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드골! 드골! 드골!”
“드골 만세! 프랑스 만세!”
드골은 손에 든 잔을 치켜올렸다. 그가 잔을 들어 올리자 그의 부하들도 일제히 잔을 든 손을 치켜들었다.
“그럼 건배하지. 비바 프랑스(Vive la France, 프랑스 만세).”
“비바 프랑스!”
만세를 외친 건 자유 프랑스 정부만이 아니었다.
독일에게 조국을 빼앗기고 런던으로 이사를 해야 했던 나라들-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의 망명정부도 작게나마 축배를 들었다.
곧 다가올 전쟁을,
머잖아 찾아올 조국의 해방을 기대하면서.
***
1942년 7월 31일
프랑스 파리 베르사유 궁전
“영국은 정말로 전쟁을 결심한 모양이네.”
“그러잖아도 게슈타포 친구들이 말하길, 최근 영국 대사가 초조해한다고 들었습니다. 가족들은 진작에 영국으로 돌려보냈고요.”
“후우…..”
늙은 원수는 한숨을 푹 쉬며 가죽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존불 놈들. 2년 전에 그렇게 당하고도 또 전쟁을 일으키려 한다니. 이해할 수가 없군. 그놈들은 지금 소련 놈들이 무슨 꼴인지 안 보이는 건가?”
룬트슈테트는 진심으로 의문이 들었다.
소련이 지금 어떤 신세인지 뻔히 알면서 굳이 전쟁을 일으키려는 속셈은 대체 뭔가? 신종 자살법인가?
“어쩌면 제 찰진 손맛이 그리워서 그러는 것일지도 모르죠.”
양어깨에 상급대장 견장을 단 롬멜이 농담을 던졌다. 그는 크림과 각설탕을 커피에 넣고 저어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독소전쟁이 발발했을 때 롬멜은 자신도 곧 동부전선에서 러시아인들과 싸우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히틀러가 그에게 내린 명령은 서부전선으로의 전속이었다.
서부전선 부사령관. 그것이 롬멜에게 주어진 새 직함이었고 롬멜은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른 채 프랑스로 떠났다.
총통이 자신을 신임하기에 이런 막중한 자리를 준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전장에서 활약할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은 것에 대해 롬멜은 무척 아쉬워했다.
롬멜의 아내 루시에는 남편이 위험한 전장에 가지 않게 되어 기뻐했지만.
아무튼 프랑스에 도착한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간단명료했다.
연합군의 상륙에 대비해 북프랑스 해안가 방비를 강화하고, 신규 사단들을 육성할 것.
보병전술의 전문가였던 롬멜은 총통의 명령대로 군복 입은 햇병아리들을 당장 실전에 투입해도 모자람이 없는 사나이들로 탈바꿈시켰다.
틈틈이 그는 기갑전술도 연구하였고, 베를린에 지속적으로 요청해 판터와 티거도 소수나마 배치했다.
그리고 그는 룬트슈테트와 함께 연합군의 상륙이 예상되는 지점을 직접 답사하며 방어선 공사를 감독하고, 기갑부대의 배치를 두고 설전을 벌였다.
롬멜은 적군이 해안가에 상륙하는 즉시 반격할 수 있도록 기갑부대를 해안가 가까이에 배치할 것을 주장했고, 룬트슈테트는 반대로 해안가에서 멀리 떨어진 후방에 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안 가까이 기갑부대를 배치했다간 연합군 해군과 공군의 화력에 큰 피해를 볼 위험이 있다면서.
평행선을 달리던 둘의 대립은, 히틀러가 롬멜의 손을 들어주면서 롬멜의 승리로 끝났다.
그렇게 롬멜은 기갑부대를 해안가 근처에 집중배치하여, 유사시 연합군의 상륙에 대비하도록 했다.
“프랑스군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장비도 형편없고, 숫자도 적은데다 사기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동감일세.”
프랑스군 중에서 정예부대는 동부전선으로 떠난 지 오래고, 프랑스 본토에 머물러 있는 부대들은 하나같이 한두 군데 나사가 빠진 2, 3선급 부대들이었다.
이들에게 제대로 된 전투력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히 무리였다.
아니, 제대로 싸우는 것을 넘어 적군인 연합군에 가담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이 부분에서 의견이 일치한 둘은 프랑스군을 스페인 국경과 남프랑스 일대에 배치하기로 합의했다.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지. 내일 일정이 어떻게 되나?”
“참모들과 함께 노르망디에서 피크닉을 즐길 예정입니다. 각하께서는요?”
“나는 내일 라발 총리와 점심을 같이 하기로 했다네.”
······그러나
이들의 일정이 예정대로 진행되는 일은 없었다.
바로 다음 날 전쟁이 터졌기 때문이다.